‘조선의 뜻’ 지키고, ‘한글 자부심’ 입히자

광화문 현판 논쟁에 대해 선택의 문제인가, 정오의 문제인가?

광화문 한문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추가 설치한 모습을 상상해 만든 가상 이미지.
광화문 한문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추가 설치한 모습을 상상해 만든 가상 이미지.
  • 정오가 아닌 가치 선택의 문제 광화문 현판 논쟁은 한자에 담긴 ‘조선의 뜻’을 보존하는 것과 한글을 통한 ‘시대적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 사이에서, 우리 시대가 무엇을 우선할지 선택하는 일이다.
  • 공간의 상징성과 정체성 세종대왕 동상과 연결된 ‘세종로’라는 공간적 맥락을 고려할 때, 한자 현판만 고수하는 것은 한국의 정체성을 알리고 싶은 외국인들에게 오해를 부를 수 있다.
  • 과거와 미래의 조화, 한글·한자 병기 한자에 담긴 역사적 뜻을 존중하면서도 한글의 자부심을 입히기 위해, 두 문자를 위아래로 병기하는 실용적 선택이 미래의 새로운 원형이 될 수 있다.

두 개의 세계관, 두 개의 언어

쑨원(손문, 孫文)과 일부 겹쳐 살았던 중국 작가 린위탕(林語堂) 이야기다. 유머십이 있던 린위탕이 미국에 가서 미국과 중국의 차이를 강의했다.

“미국인은 산에 굴을 뚫을 때 정확하게 측량해서 마침내 하나의 굴을 뚫습니다. 그리고 ‘정확했다’고 좋아합니다. 중국인은 산 양쪽에서 대충 굴을 뚫습니다. 그래서 굴이 두 개가 만들어집니다. 중국인은 굴이 ‘두 개가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하나를 선택하려고 할 것이며, 정확함을 추구한 미국의 길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두 개의 굴을 뚫는 그런 세계관에도 귀를 열어 놓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중국 청나라는 초기부터 명나라의 대궐이었던 자금성 현판에 ‘만주어’를 병기했다. 명나라는 천자의 거처가 우주의 중심인 자미원(紫微垣)에 있어 그곳을 기점으로 우주가 움직인다고 믿었기에 이를 상징하는 뜻에서 ‘자(紫)’를, 황제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금(禁)’을 사용해 자금성이라 명명한 건데도 이 뜻을 담을 수 없는 만주어를 병기한 것이다.

중국의 ‘정통’을 드러내고 동시에 만주의 ‘주권’을 밝히기 위해서 한 것인데, 결국 두 개의 언어가 자금성 문자가 된 셈이다. 왜 이 이야기들을 하냐 하면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 논쟁 때문이다.

‘광화문’ 언어의 가치 확장

광화문(光化門)은 “임금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라는 의미이다. 1392년 조선 태조 시기에 경복궁과 함께 지어진 광화문은 조선의 주요 관청이 밀집한 육조거리의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다.

1592년 선조 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소실과 함께 파괴되어 한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으로 복원되었다. 장소 이전과 복귀 등 사연도 많다.

광화문은 오늘날 서울을 넘어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 건축물이다. 그 앞에는 한국의 두 영웅인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축선으로 세워져 있어 그 거리는 한국의 가장 중요한 상징을 모신 ‘한(韓)의 길’이다.

광화문 앞의 육조거리 이름도 세종로다. 베트남, 태국 등에서는 한글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고 전 세계 87개국 252개의 세종학당에서 한글 배우기 과정은 필수이다. 한류 덕분에 한글을 배우고 이곳을 찾는 외국인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찍는 사진엔 光化門이 기본으로 찍힌다. 한국을 찾는 연간 1,800만의 외국인과 그 사진을 공유받은 외국인들이 이 光化門 한자를 보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1. 어, 저건 중국 글자?

2. 한국은 저 상징적 장소에 한자를 쓰네. 자기 글이 없나? (‘중국 사대 국가였다더니!’)

사실의 역사지만, 오늘날 한국 자부심이 충만한 시점에서 심장부에 떡 걸린 한자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논쟁과 갈등이 생기고 있다.

핵심은 한국 그리고 서울의 ‘아주 중요하고’, ‘상징적인 거리’에 있는 광화문 현판이 한자로 되어 있는 것이니 다른 곳의 문화유산에 명문화된 한자 현판은 논외이다.

광화문 현판 한자와 한글의 뒤바뀐 역사에서 1968년 중건 시에 박정희 대통령이 현판을 한글로 했는데 2010년 복원 때에는 다시 한자로 작성되었던 사연도 있다.

테세우스의 배 논쟁?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세우스’편 제23장에는 다음 일화가 나온다.

헤라클레스에 버금가는 아테네의 영웅인 테세우스가 청년들과 함께 항해하고 무사히 돌아온 갤리선은, 팔레론의 디미트리오스 시대까지 아테네인에 의해 보존되었다.

아테네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은 판자를 새롭고 튼튼한 판자로 교체했는데 그러자 어떤 이들은 배가 원래와 같은 배라 주장하였고, 어떤 이들은 다른 배라고 주장했다. 이 사례는 안전한 보존을 위한 교체였음에도 ‘보존’과 ‘동일성’이라는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광화문도 그 배처럼 여러 차례 보수와 교체를 거쳤다. 수많은 오류 시비가 일었고 보수 사고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보존과 동일성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 논쟁은 광화문 자체가 아니라 현판에 있는 글자 때문이다. 논쟁의 핵심은 세 가지다.

1. 한자로 유지해서 보존할 것이냐?- 원형 보존의 원칙을 지키고 광화문 한자의 원뜻을 그대로 알려주는 장점이 있으나 이를 읽지 못하는 층이 다수이며 점점 늘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2. 한글로 바꾸어서 한글세대 한국인, 그리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정체성을 보여줄 것이냐?- 원형 보존의 원칙을 깨고 건물과 글자 디자인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다.

3. 한자와 한글을 위/아래로 병기해서 역사성과 새 정체성을 동시에 보여줄 것이냐?- 둘 다를 취하는 실용적인 주장인데 반(半) 보존, 반(半) 정체성 즉 이도 저도 아닌 타협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런데 이 셋 중에 틀린 주장이 있는가? 다 일리 있다. 문제는 한글의 달라진 위상이고 세종로라는 공간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논쟁은 정오(正誤)의 문제가 아니라 글자의 에센스(essence. 본질) 설정과 달라진 국격과 시대성, 미래까지 생각하는 우리 시대 가치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에센스는 21세기 한국의 대표 현판이라는 것이고(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한자가 한국의 대표 문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선택의 기준은,

1. 과거 보존의 가치와 광화문의 한자 뜻 유지,

2. 한글세대의 증가라는 시대성,

3. 광화문 앞 세종로 축선에 있는 한글 창제 대왕 세종 상과 연결성

4. 한국을 알고 싶은 외국인에게 보여줄 핵심 연상

5. 자금성, 개선문 등 국내외 참고 사례

다섯이 타당해 보이며 이 다섯 중에 어떻게 가중치를 매길 것인가 하는 선택이 중요해진다.

우선순위를 무엇에 둘 것인가

주관부처인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이 국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거나 전문가 의견 조사를 할 때 현재 광화문의 1. 에센스가 무엇인가? 2.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해 어떤 가중치를 선정해야 하는지를 정한 후 국민이 판단하고 선택하게 함이 옳을 것이다.

위에 1번 항목에 대해서는, 참고로 국가유산청이 기존의 보존 중심에서 활용을 병행하는 시대성 방향으로 이미 선회한 바 있음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필자 개인의 의견은 선택 기준 순서대로 30: 30: 25: 10:5의 가중치고, 그래서 선택은 한글과 한자 위/아래 병기표시이다.

이 선택은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새 한국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표시하고 세종의 업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미래에 새로운 원형이 될 것이므로.

글쓴이

황인선 작가 겸 문화마케터

황인선은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제일기획에 입사, AE를 하다가 민영화된 KT&G에 입사, 마케팅 부장을 하면서 서태지와 상상 체험 프로젝트, 홍대 앞 상상 마당과 콜라보 마케팅을 전개해서 '문화마케팅의 선구자'로 불린다. 이후 서울혁신센터장,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을 역임한 후 몇 개 기업 고문을 수행했다. 현재는 서울그린트러스트와 한국문화기획학교 사업감사를 하면서 해석과 도시 브랜딩, 기후 위기 대응 그리고 AI 시대의 상상력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기후 행정, 기후 소득』, 『해석의 마법』, 『빅샷, 황인선의 마케팅 ALL』, 『컬처 파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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