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사회, 프랑스에서 금주하기

[프랑스 연하남편과 좌충우돌기] 한국만큼 지독한 프랑스 애주가 아페로로 시작, 디제스티프까지 요즘 젊은이들 ‘술 안마시기’ 문화

tvN 드라마'응답하라 1994'.
tvN 드라마'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4’에도 나왔던 스텐 대접 그릇에 술 말아먹던 대학가 MT문화. 사회에선 회식 문화, 밤문화까지 이어지곤 했던 우리의 음주 문화. 그래서 대한민국은 술 권하는 사회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 했다. 지난 2018년 세계건강보건기구(WHO)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인의 음주량은 세계 평균 6.8리터(ℓ)를 월등히 추월하는 남자 16. 7리터(ℓ), 여성 3. 9리터(ℓ)다.

술 하면 빠질 수 없는 유럽의 와인 대국, 프랑스는 어떨까? 프랑스 거주 10년차인 필자는 한국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프랑스 보건기구 ‘Santé publique France’의 2020년 조사에 의하면 프랑스는 OECD 34개국중 음주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 6위를 차지했다. 또한 15세 이상의 연간 음주량은 11.2리터(ℓ)로 한국 못지 않다. 이런 나라에서 술을 끊을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 7월 한국에서 한달간 휴가를 보내는 끝무렵에 프랑스인 남편과 크게 다퉜고 불현듯 금주를 선언했다. 밤새 한숨 못자고 머리를 싸맨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한국인들보다 더한 프랑스 주당들

프랑스로 출국하기 전 마지막 저녁 자리가 한국에서 금주를 선언한 후 첫 관문이었다. 한국에서의 휴가 마지막날을 기념하자며 뒷풀이로 치맥을 준비했고 언니 가족과 식구들이 후라이치킨반(半) 간장치킨반(半)에 ‘건배’를 연거푸 외치는 와중에도 필자는 열 살짜리 아들과 콜라를 나눠 마시며 참아야했다. 생각보다 수월히 지나갔다. 하루쯤이야.

본격적인 시험대는 역시 와인 대국 프랑스로 돌아온 후였다. 해마다 여름 방학 마무리를 프랑스 남부 시댁에서 하는 우리 가족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시어머니와 시동생이 사는 랑송 프로방스(Lançon Provence)로 향했다. 우리를 기다리는 시어머니는엄청난 애연·애주가였다.

프랑스 시골의 술문화는 어땠을까. 결혼 전에 인사차 찾아갔을 때도 90세가 넘은 예비남편 조부모를 비롯, 10여명의 가족들이 모여 점심부터 와인으로 낮술을 시작해 오후에는 ‘아페로’(Apéro-아페르티프의 속어·식전주)와 함께 본격적인 술자리가 이어졌다. 샴페인을 더한 저녁식사에 이어 자정에는 시어머니가 직접 담근 버베나 ‘디제스티프’(digestif-서양요리의 정찬에서 식후에 소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내는 술-꼬냑, 위스키, 진 등) 리큐어로 간신히 마무리를 했다. 그때 보낸 일주일은 내 인생 최장, 최대 음주 기록으로 남아 있다. 결국 필자는 술자리를 중도 포기하고 한국 대표 자리를 내어놓을 만큼 그들은 대단한 애주가였다.

프랑스에서 식사전 '아페르티프'로 나오는 캄파리 소다.
프랑스에서 식사전 ‘아페르티프’로 나오는 캄파리 소다.

이번 시댁 방문에서 시동생 가족까지 예닐곱명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조용히 청량음료만 마시는 필자를 눈치챈 이는 없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계속 ‘non,merci(아니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며 사절했던 필자에게 급기야 주변인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결국 금주 사실(?)을 털어놓아야만 했다.

종종 나와 술잔 기울이기를 즐겨하던 시어머니는 충격받으신 듯 첫 반응은 “Tu es devenu musulmane?(너 이슬람으로 전향했니?)”였다. 심지어 시댁 가족 중 일부는 가임기가 지난 필자에게 결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남편에게 임신여부를 묻기도 했단다.

전형적인 프랑스 남부 부르주아 출신인 시어머니가 사는 동네는, 라벤더와 올리브 그리고 로제 와인이 유명한 지역이다. 프로방스는 프랑스에서 로제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생산량의 70%가 로제 와인이다. 특히 백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정치적 성향도 이민자와 복지에 인색한 ‘극우주의자’ 마린 르펜에 몰표를 줄 만큼 매우 보수적이다. 그만큼 ‘이슬람 포비아’가 만연하지만 시어머니 질문의 의미는 금욕적인 그들의 생활방식을 빗댄 우스개 얘기였다.

프랑스 시댁에서 가진 식사 자리에서 필자 가족이 식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영지
프랑스 시댁에서 가진 식사 자리에서 필자 가족이 식사하고 있는 모습. 사진=이영지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와인의 나라

사실 프랑스는 금욕과는 거리가 먼 나라라 할 수 있다. 음식, 문화, 예술이 발달한 만큼 무척 향락적이고 국가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중 자유가 제일 먼저 나올 정도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 취향을 존중한다. 점심에도 종종 와인을 곁들여 마시는 이 나라에서 금주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같은 고난의 챌린지일 것이다.

미슐랭 에뚜알 레스토랑(Restaurant étoilé Michelin 미슐랭 별점을 받은 레스토랑)을 찾아간다면 금주는 더더욱 어렵게 된다. 거의 모든 에뚜알(별점) 레스토랑은 4개에서 6개, 또는 10개까지로 구성된 만찬의 각 코스마다 술을 곁들인다. 심지어 미슐랭 별하나 레스토랑도 그랬다. 에뚜알 레스토랑은 각 코스마다 소믈리에가 직접 와인을 추천하며 곁들여 마시도록 유도한다. 주메뉴가 나오기 전 마시는 식전주 아페르티브(Apéritf)와 식사 마무리로 나오는 디제스티프의 유혹도 빠뜨릴 수 없다.

프랑스인들에게 와인은 지친 삶에 위로를 주는 서민술이다. 슈퍼마켓에서 5유로 미만의 와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와인 산업은 국가 산업이라할 만큼 창출하는 일자리의 규모와 그 경제적 효과가 크다. 직간접적으로 약 50만 일자리가 와인 산업에서 만들어지며 프랑스내 항공산업 이후 두번째로 경제에 기여한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화장품 산업을 앞선다.

그런 프랑스 와인산업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최근 몇년간 정체상태를 겪었다. 프랑스 내 와인은 절반인 50% 정도가 슈퍼마켓, 30%는 레스토랑, 10%가 와이너리에서 판매되고, 나머지 10%는 와인 전문점이나 온라인 샵에서 판매된다. 코로나 봉쇄로 바와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슈퍼마켓과 와인 전문점으로 수요가 몰리기도 했지만, 전체 소비는 소폭 줄었다.

반면 프랑스 전체 주류매출은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리서치 전문기관 닐슨(Nielsen)에 의하면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슈퍼마켓 등 대형 유통점 위주로 와인을 제외한 주류 전반이 약 5% 성장했다. 맥주, 특히 맥주 시장의 4%를 차지하는 무알코올 맥주 판매가 21.5%나 늘었다. 또 위스키나 럼 등 스피리튜(Spiritueux-독주)로 불리는 주류중 럼은 12.4%, 진은 22.5%, 위스키는 11.5% 급증했다고 한다.

독주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스피리튜 판매 증가는 팬데믹 기간 사람들이 받은 스트레스와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팬데믹 기간 미국과 독일도 3~5% 가량 알코올 소비가 늘어났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거주지내 음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그와 관련된 가정 폭력, 이혼 증가 등 사회적 문제도 증가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저녁 필자의 무알코올 아페로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 저녁 필자의 무알코올 아페로

젊은층에 퍼지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다행인 것은 전세계적으로 Z세대 등 청년들을 중심으로 ‘Sober Curious’(맑은 정신으로 있고 싶어 하는 사람, 일부러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팬데믹 기간 무알코올 맥주 판매량의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젊은 세대들은 알코올로 인한 폭력, 음주운전 등 취해서 이성을 잃는 행동이 현명하지 않으며 만취하는 것이 시간·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이들에게는 이전 세대에 비해 인터넷, 콘텐츠 등 즐길거리가 많고 양질의 문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음주를 나쁜 오락거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언론매체도 있었다.

Z세대도 아닌 필자의 ‘소버 큐리어스’는 2개월이 넘도록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최근에는 집 인근 와인숍에 혹시 무알코올 와인이 있을까 다시 찾아가봤다가 퇴짜를 맞았다. 와인숍 주인은 때마침 잔에 와인을 따르고 있었고 혹시 무알코올 와인을 판매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좋은 병(와인)만 취급한다”며 힐난어린 눈길을 던지는 바람에 필자는 발을 돌려야 했다. 결국 프랑스에선 무알콜 와인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고 웹서핑을 통해 무알코올 와인을 컬러별(화이트, 로제, 레드)로 주문해 주말 아페로에 마실 기대에 가득차 있다.

글쓴이

이영지 파리 통신원

이영지 통신원 겸 칼럼니스트는 미국 뉴욕의 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NIX, 나인 식스 뉴욕, 타임 등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2012년 프랑스로 이주해 현재까지 ‘패션비즈(fashionbiz)’ 파리 통신원으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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