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아카데미아’ 학교로 돌아간 유럽 패션
[이영지의 글로벌 패션 동향] 강달러, 유럽 럭셔리시장 ‘구세주’역할 파리 고급 패션매장앞 ‘줄서기’ 재현 전쟁·인플레 등 어두운 현실에 ‘반항’ 프레피 룩과 아카데믹 그런지 ‘유행’
혼돈의 세계, 떠오르는 다크 아카데미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지정학적 긴장이 지속되고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글로벌 패션 시장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팬데믹으로부터 회복돼 정상화되는 듯했던 상황이 급변하자 지금 글로벌 패션 업계는 매우 불안한 시기를 마주하면서, 유통망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재구상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럭셔리 부문은 유럽 시장의 회복과 새로운 엘도라도 미국, 그리고 여전히 럭셔리의 큰 파이를 차지하는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 베팅하며 성장 기대치를 낮추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강달러가 지속되면서 대량 유입된 미국 관광객들이 파리, 밀라노 등 대도시에서 강한 소비세를 이어가면서 팬데믹기간 가장 낮은 성장률을 보였던 유럽의 럭셔리 시장이 이제는 오히려 강한 반등세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프랑스의 럭셔리 2위 그룹 ‘케어링(Kering)’의 최고 재무책임자(CFO) 장 마크 뒤플레(Jean-Marc Duplaix )는 “2021년 성장 전망에서 가장 하단에 자리잡았던 유럽이, 2022년에는 관광객들이 유입되고 내수 소비가 회복되면서 오히려 럭셔리 시장을 이끌고 있다”며 “유럽은 경기나 지정학적 상황을 봤을 때 단기적으로 가장 걱정했던 시장이었으나 앞으로 유럽에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갤러리 라파예트나 쁘렝탕 등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백화점들에서는 루이비통, 샤넬 등의 매장에서 팬데믹 기간 사라졌던 ‘매장 앞 줄서기’모습도 다시 찾아 볼 수 있게 됐다. 또한 대형 쇼핑몰 ‘웨스트필드(Westfeild)’가 자리잡은 파리 라데팡스나 샤틀레 등은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 동안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를 위해 밀려든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반항적 감성의 프레피 룩과 아카데믹 그런지
이처럼 전쟁과 경기 침체, 기후, 환경 문제까지 혼돈의 세계 정세속에서도 올 가을/겨울 대표적으로 떠오른 룩은 ‘Y2K 감성과 다크 아카데믹 스타일’이다.
2022년 파리, 밀라노 등에서 진행된 가을/겨울 패션쇼를 보면 지난해에도 큰 인기를 끌었던 밀레니얼 Y2K패션과 스쿨룩인 아카데믹 스타일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스터디 홀, 도서관이나 대학의 카페테리아를 연상할 때 쉽게 떠오르는 치노와 셔츠, 자켓 등 단정한 ‘범생이’ 스타일에 젊음이 주는 반항어린 언더톤(undertones)을 가미함으로써 고유의 스타일을 표현해냈다.

가을/겨울 시즌 특유의 어둡고 음울한 감성, 특히 전쟁과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실을 마주해 젊음을 대변하는 클래식하고 프레피한 대학가 룩에 저항적이고 비주류적인 에지(subversive edge)를 추가하는 식이다(프레피 룩preppy look은 미국 동부 사립고교에서 입는 심플하고 클래식한 복장스타일을 말한다.-편집자주). 전세계가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아카데믹 그런지는 대학과 학교로 완전히 돌아가(서양은 9월학기 시작이므로) 유스(youth) 패션을 비주얼화함으로 우회적으로라도 혼돈의 세상을 외면하고 싶은 모양이다.
특히 ‘가십걸’ 리부트나 ‘유포리아’ 시즌2 등 하이스쿨 미드가 다시 시작되면서 ‘다크 아카데미아(#DarkAcademia)’ 에스테틱(유럽풍+범생이 느낌의 검은색, 갈색 계열 스타일. 해리포터 시리즈의 레반클로 학생들 스타일-편집자주)의 옷이 소셜 미디어에 노출되고 관련 룩들이 런웨이에 소개되자 더욱 붐을 타는 분위기다.
플리츠 스커트에 박시한 자켓을 매칭하거나 슬라우치 스웨터와 매스큘린 셔츠, 학과 점퍼 등 학구적인 스타일이지만 일반적인 프레피 룩보다는 실루엣이나 프로포션을 과장되게 해석해 훨씬 쿨하고 캐주얼한 감성으로 표현된다.
이같은 아카데믹 트렌드가 가을/겨울 패션의 메인 디자인 테마로 떠오르면서 칼리지적 요소(collegiate elements)와 유스 에스테틱을 잘 믹스해 재해석한 스쿨 걸 룩이 스타일리시하고 다이내믹한 소비자들에게 반전의 선택지로 떠오른 셈이다.
자칫 침울해 질 수 있는 시즌의 특성을 살짝 레이-백 그런지 어필(laid-back grunge appeal)로 풀어준다. 이 트렌드의 머스트-해브 아이템들로는 미니 스커트나 플리츠 스커트, 로퍼 슈즈, 엑스트라로 긴 소매의 상의, 박시한 아우터 등으로 밀레니얼 학교 교실로 돌아간 듯한 에지있는 느낌을 만나볼 수 있다.
세기말 Y2K패션, 여전한 인기
지난해부터 유행이 시작된 ‘뉴레트로’풍 Y2K 스타일이 올해에도 그런지 컬처에 뿌리를 둔 감성으로 디지털MZ세대를 사로잡으며 여전히 어필하고 있다.
Y2K는 컴퓨터 밀레니엄 버그에서 시작된 단어로 YEAR(연도)의 ‘Y’와 1000을 나타내는 Kilo의 ‘K’ 사이에 2000년의 ‘2’가 들어간 이들 글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의 패션을 통틀어 칭하는 Y2K패션은 20세기가 끝나고 2000년대를 맞이했던 밀레니얼 세대들이 과거의 관습과 통념을 바꿔버리는 색다르고 독특한 패션을 추구하면서 탄생했다. Y2K패션의 대표되는 스타일로는 크롭드 톱과 로우 라이즈(골반 바지), 벨벳 소재와 찢어진 청바지, 핑크 등 파스텔 컬러와 화려한 체인 장식 등이다.
이처럼 돌고 도는 트렌드 가운데 20년 전 유행했던 패션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버리지 않고 장롱에 보관했던 옷들이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올 가을/겨울 새롭게 선보이는 Y2K패션은 레트로를 포인트로 클래식 폴로 칼라(Collar)와 그래픽하고 화려한 프린트의 톱들을 배기 팬츠나 미니 헴라인(기장)과 매칭해 밀레니얼룩의 차별화된 감성을 풀어냈다.
또한 전세계적인 팬데믹 이슈로 인해 주춤했던 컬러 플레이가 다시 부활했다. 이번 가을/겨울 시즌에는 선명한 비비드 컬러들로 뉴레트로 풍의 Y2K스타일을 선보인다. 핑크, 그린, 네온 라임 등 강한 컬러 톱에 뉴트럴한 컬러의 하의를 매칭하거나 신발로만 이같은 컬러 포인트를 줄 수도 있다.
이에 더해 하트 모양 선글라스, 어깨에 밀착해 매는 미니 숄더백, 실버나 골드 컬러 등 볼드하고 키치한 액세서리를 포인트로 전체적인 Y2K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연말이니 만큼 팬데믹때보다 더욱 화려해진 스팽글과 비즈 장식의 원피스나 매쉬 또는 벨벳 소재의 바디콘(신체가 드러나는)드레스들이 다시 화려하게 귀환했다.
이같은 트렌드는 올 겨울 자유로운 영혼의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대유행이다. 샤틀레나 마레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중심가 거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쾌한 크롭드 톱에 파라슈트(Parachute) 팬츠로 불리는 와이드 배기 팬츠나 박시한 오버사이즈 재킷, 아우터 등으로 코디한 MZ세대들을 흔히 마주칠 수 있다. 밤새 의논하고 나온 듯 비슷한 룩들을 한 이들을 보면서 어떤 스타일이 유행이다 하면 모두 똑같은 룩으로 도배된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지금 패션 흐름은 레트로 Y2K스타일에 다크아카데미아까지 혼돈의 시대를 외면하고 싶은 듯 과거로, 학교로 돌아가고자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