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촛불을 들 것인가?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탄핵· 퇴진 요구보다 더 근본적 접근을 朴 이어 ‘무소불위’ 대통령...’헌정’ 문제 “새 헌정체제를”...시민大토론회를

지난 10월 22일 오후 서울 시청역 앞에서 촛불전환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11차 전국집중 촛불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0월 22일 오후 서울 시청역 앞에서 촛불전환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11차 전국집중 촛불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게 나라냐?

이제는 탄식이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게 엉망일 수 있을까? 내가 지지하지 않았던 윤석열 대통령이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 주길 바랐다. 어쨌든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 전체가 잘못되면 내 삶도 불행해질 터이니 말이다. 내가 기대했던 방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 정도는 통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게 뭔가?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지 않은가? 다시 한탄 섞인 소리가 나온다. 이게 나라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청와대 입주를 거부한 일이나 최근의 무슨 비속어 논란 같은 일은 그냥 쓴웃음 한 번 짓고 넘어갈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고, 우리나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국정 전반에서 보이는 그의 무능과 무위는 나라를 순식간에 혼란 속으로 빠트릴 수 밖에 없다.

취임하자마자 뜬금없는 종북몰이로 전 정권을 압박하더니 이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검찰통치’에 여념이 없다. 민생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이라도 있는 걸까? 어처구니없는 퇴행도 다반사다. 그렇게 자유를 외치더니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고등학생의 표현의 자유조차 겁박하는 건 뭔가? MB맨 이주호를 다시 교육부 장관에 앉히다니, 신자유주의적 경쟁 교육을 좀비처럼 부활시키겠다는 건가? 그 사이 이 나라에는 걱정거리만 쌓여간다. 저소득층에 집중하는 복지를 하겠다더니, 복지예산은 왜 그렇게 깎았을까? 환율은 치솟고 심각한 경제위기가 예고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대책이라도 마련하고 있는가?

‘정치’는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 윤 대통령은 달랑 시행령 하나 고쳐 경찰을 장악하고 무소불위 검찰권한을 확대한 다음, ‘사법 처리’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건가? 신종 ‘공포 정치’를 하겠다는 건가? 종북좌파 타령은 또 뭔가?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야당과의 최소한의 협치나 대화도 없이 어떻게 나라가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이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안보 관련 정세가 두렵다. 윤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은 남북 관계와 관련해서도 그저 거친 대결 의지만 드러낸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느니 전술핵을 재배치해야 한다느니 하는 헛소리마저 서슴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9.19 군사 합의도 파기되고 극단적인 전쟁 상황까지 올지 모른다. 얼마 전 북한의 도발에 강경 대응한답시고 쏘아 올린 현무 미사일 낙탄 사고를 떠올려 보라. 만약 그 미사일이 휴전선 너머로 잘못 날아가 떨어졌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선 곧바로 남북 간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또 촛불을 들어야 하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막 취임 5개월이 지난 마당에 벌써부터 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촛불 시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얼마나 지났다고 그 많은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모여 갓 취임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게 되었단 말인가? 일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슨 ‘대선불복’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위기의식이 너무 크고 절박한 게다.

탄핵 이야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포함해서 국민들 60%가 넘게 탄핵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다. 하기야 집권한 지 다섯 달도 안 되어 지지율 30%를 넘기는 게 무슨 새삼스러운 뉴스가 될 정도이니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는가? 게다가 지금 야당은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지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무턱대고 탄핵을 외치는 데는 조심스럽다. 상징적인 정치적 구호 차원에서 윤 대통령 퇴진이나 탄핵을 외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다. 민주당 의석수를 믿고 탄핵을 시도해보자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국민적 동의나 명분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령 ‘김건희 특검’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게 탄핵의 이유가 될 수는 없을 터이다. 역풍이 불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라는 벽도 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쩌면 광장은 찬반 세력 사이의 충돌로 대혼란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지난 주말, 벌써부터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러다간 민주주의가 길을 잃을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지금과 같은 검찰 통치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마땅히 경계하고 견제하며, 비판하고 저항해야 한다. 참된 자유는 시민들의 ‘영원한 각성’에 주어지는 대가라고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시민들은 이 각성을 확인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고 촛불은 타올라야 한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을 위해? 결국 어떤 경우에도 ‘정치’가 모든 걸 마무리해야 한다. 어떤 결말이 가능할까? 민주당은 무얼 해야 할까?

새로운 헌정체제를 위한 ‘시민대토론회’를 제안한다

내가 무슨 패배주의자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 촛불 시민들의 열정과 의지가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귀결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이쯤 해서 나는 우리 시민들이 조금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지금 우리 정치 현실의 문제에 접근해 보자고 제안을 하고 싶다. 그러니까 대통령 한 사람 문제에만 골몰하지 말고 우리의 정치 체제 전반을 바꾸는 일에 우리 시민들이 나서보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보여준 게 있다. 우리의 지금과 같은 헌정체제에서는 대통령 한 명 잘 못 뽑으면 나라 전체가 대혼돈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힘이 너무 세고 무겁다. 국회의 문턱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데 주목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번에 우리는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나 큰지, 가령 행정부가 주도하는 ‘시행령’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똑똑히 봤다. 아직 행사된 적은 없지만 대통령은 ‘거부권’이라는 엄청난 무기도 갖고 있다.

이쯤 되면 국회가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진짜 ‘제왕’이다. 사실 대통령이라는 직위 자체가 왕정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흔적이 여전히 너무 짙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시민주권국가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트럼프 같은 이가 대통령이 되니, 민주주의가 엄청난 위기에 빠지는 걸 지켜봤다. 그래도 미국은 우리 보다 더 명확한 권력분립체제가 확립되어 있고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다 연방국가라서 권력이 많이 분산되어 있다. 그래서 트럼프 집권기에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원리가 완전히 무력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대통령 탄핵을 성공시킨 생생한 사례가 있어도, 다시 대통령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 바로 헌정 체제 그 자체 때문이다. 이제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지금은 탄핵이 아니라 새로운 헌정 체제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것도 좋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윤석열 같은 이가 대통령이라는 게 아니다. 우리의 헌정 체제 자체가 무언가 근본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실현되기 힘든 퇴진이나 탄핵 구호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우리 정치가 왜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는지를 돌이켜 보며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고민해 보면 어떨까?

그리하여 촛불의 초점을 우리 헌정 체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해 보고 새로운 헌법을 제안하는 데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촛불집회가 새로운 헌정 체제를 만들기 위한 ‘시민대토론회’가 된다면? 구체적인 방법은 좀 더 고민하고 토론해 봐야 하겠지만, 지역 단위든 전국 단위든 다양한 층위에서 이런 토론회를 열어 지금 헌정 체제의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체제에 대한 다양한 기대를 모아내 보면 어떨까?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이 논의되던 2016년 11월 국민의 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정진석 당시 원내대표(왼쪽에서 세번째) 등 소속의원들이 탄핵 대신 임기축소를 골자로 한 개헌을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TV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이 논의되던 2016년 11월 국민의 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정진석 당시 원내대표(왼쪽에서 세번째) 등 소속의원들이 탄핵 대신 임기축소를 골자로 한 개헌을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TV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한다고 꼭 의회제(내각제)가 대안일 수는 없다. 분권형 대통령제도 있고, 단원제의 한계도 따져볼 수 있다. 민주공화국의 이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새롭게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하고, 그 이념을 제대로 실현해 줄 헌정적이고 제도적인 장치에 대한 설계도 끊임없이 재검토되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소수의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만들어 낸 지금의 헌정 체제가 그 수명을 다한 것이 점점 더 분명해 지고 있는 지금, 이제 시민들이 먼저 나서 새로운 헌정 체제를 도입할 때가 되었다. 새로운 ‘제7공화국’을 위한 촛불을 들자. 그리하여 미완으로 끝난 저 2016년 ‘촛불혁명’을 이제라도 제대로 마무리하자.

물론 최종적인 개헌은 의회정치적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 준비 과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당들, 특히 민주당이 같이 나서 호응해 준다면 좋겠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어처구니없는 공세에 대응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믿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대장동 특검’은 사실 꽤 적절하고 정당한 요구 같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적으로 실현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와 여당은 이재명 대표를 위한 ‘방탄 특검’이라는 식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공방이 계속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이러다가는 다음 총선까지 민주당은 그저 허송세월만 하지 싶다.

민주당이 할 일을 제대로 하라고 압박하는 차원에서라도 시민들이 이니셔티브를 쥘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정치개혁’은 이재명 대표의 대선 주요 공약이기도 했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다음 총선 전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 공약이 결코 하나마나한 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정치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별 소식이 없었다. 시민들이 나서야 할 또 다른 이유다. 우리 시민들은 명분과 이유만 분명하다면 추운 겨울이라도 언제든 광장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잘 알지만, 이번에는 우리의 시민정치가 좀 더 제대로 된 생산적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적 공정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 부하고 ‘민주적 평등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 <공정의 배신>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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