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기차표 공짜’ 복지, 성공하고 있을까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서민복지에 에너지 절감·탄소배출 줄이기 취지 좋았지만, 노쇼 등 부작용 이어져 살림 어려운 스페인...포퓰리즘 논란도
스페인 정부는 7억 유로(9949억 원)를 들여 내년 12월 31일까지 일부 구간의 기차와 통근 열차(교외와 도심간 운행)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 9월 1일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당초 올해 12월 31일까지만 적용될 거라 했지만, 재무부 장관은 이를 내년 12월 31일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기차표 무료 정책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위기 속에 서민들의 지출 부담을 줄이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이후 심화된 에너지 외부의존과 함께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마련한 정책이다. 국민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었다고 판단한 정부는 이를 연장했다. 라켈 산체스 교통부 장관은 기차표 무료 제공 덕분에 스페인은 1억 1800만 리터(ℓ)의 휘발유를 절약하고, 36만 576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방지했다며 더 많은 국민이 이 제도를 이용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신나는 ‘무료기차 여행’이 됐지만
스페인의 기차는 시속 310km로 달리는 고속 열차 아베(AVE), 최고 250km인 알비아(Alvia), 평균 시속 100km로 한국의 새마을호, 무궁화호 같은 MD(Media Distancia)가 있다. 이번 기차표 무료정책에 따라 가장 가격이 비싼 아베는 무료 혜택은 아니지만, 일부 노선에 대해서 50% 할인된 가격에 기차표가 판매되고 있다.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기차표는 MD 열차다. 무료 혜택을 받으려면 이용자는 20유로를 내고 먼저 여행 카드를 구매해야 한다. 4개월 동안 열차를 16회 이상 이용하면 보증금을 환급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MD 기차표 한 장의 가격이 대부분 20유로를 넘기 때문에 여행 카드를 구매한 후, 한두 번만 사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더라도 소비자에겐 이득인 셈이다.

이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너도나도 혜택을 누리고자 여행 카드를 발급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평소에도 오류가 많은 렌페(스페인 국영철도)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 등의 문제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직접 창구를 찾아가 여행 카드를 사기도 했다. 지난 8월 말부터 10월 첫째 주까지 판매된 여행 카드는 총 150만 개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정책 시행 후 첫 달인 9월에만 MD 열차 이용량은 전년 대비 40%, 통근 열차는 24% 증가했다. 많은 국민은 부담 없이 출퇴근하거나 다른 도시를 여행하는데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에 대한 잡음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정책 시행 초반에는 여행 카드를 지닌 사람이 몇 번이고 무제한으로 기차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자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날 서로 다른 시간대의 기차표를 여러 장 구매한 후 본인 시간에 맞는 기차를 타고는 나머지 표를 취소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스템상으로는 많은 예약이 되었지만 취소하지 않는 바람에 정작 기차를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피해를 봤다. 이같은 ‘노쇼(no show)’ 승객이 많아 ‘유령 열차 같았다’는 다수 역무원의 증언이 있을 정도였다.
또한 기차를 16번 이용해야 보증금을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타지도 않을 기차를 막무가내로 예약해버리는 사람들도 속출해 큰 문제가 됐다.

‘노쇼’ 방지책까지 내놓은 복지
현재는 하루 최대 4개의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예약한 기차표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 취소하지 않아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어 노쇼 승객이 여전하다. 또한 대중교통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이용자가 많은 구간이나 주말 열차의 예매가 몹시 어려운 일이 됐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국민이 많지만, 시스템 오류 등으로 몇몇 지역에 대해서는 아예 원하는 날짜에 기차표를 살 수 없는 상황이다.
대중교통편이나 기차 표를 무료로 제공해 서민 경제에 도움을 주고, 탄소 발자국도 줄이고자 의도한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을 사전에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정부를 향해 국민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또 기초수급자 또는 취약계층, 학생과 같은 특정 대상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 정책을 내년 연말까지 추진한다는 소식에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어려운 나라 살림인데도 거액의 세금이 투입되니 공짜 기차표에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이후 유럽의 경제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스페인도 예외가 아니다. 서민들의 아우성은 멈출 줄을 모르고, 정부는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각종 지원금 제도를 마련하며 경제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올해만 해도 여러 제도를 통해 국민에게 혜택을 주려 했다. 연소득 1만4000유로(약 2천만 원) 이하, 자산이 6천만 원 이하인 국민에게는 200유로(약 28만원)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원금이 일회성에 그친다는 점, 형평성에 맞지 않는 지급 기준으로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계속된 포퓰리즘 정책...논란 커져
또한 올해 초 스페인 정부는 18세가 되는 학생들을 위해 400유로(약 56만 원) 상당의 청년 문화 바우처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와 관련된 활동, 서비스 이용,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바우처로, 코로나 팬데믹 동안 어려움을 겪은 스페인 문화 부문의 활성화와 청년의 문화생활 지원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하필 18세에게만 이런 바우처를 주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19세, 20세 청년은 한 푼도 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리꾼들은 투표 가능한 나이인 18세 청년의 표심을 노린 전형적인 매표행위 아니냐며 비판했다.

스페인 정부가 막대한 복지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자 최근 유럽의회의 질타도 받았다. 유럽의회 예산통제위원회 위원장이 “지원금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고, 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이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코로나 이후 국가 경제 복원을 이유로 스페인은 유럽연합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는 EU와 약속했던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뿐더러 지출 내용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지적했다. EU는 지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추후 지급할 지원금을 동결할 것이라고 했지만, 스페인 재무부는 이를 부인하며 현재 상황에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스페인 정부는 국민을 위해 꿋꿋이 복지 지원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요즘 스페인에서는 기차표 무료 지원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의 전기 요금 감면이 이슈가 되고 있다. 계속되는 에너지 대란에 스페인 정부는 150만 저소득 가구에 최대 40%의 전기 요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경제가 어렵고 살기 팍팍한 시기다 보니 정부의 작은 지원도 서민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국민의 혈세가 올바르게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다수가 납득할만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지급 기준을 제시하고, 꼭 지원이 필요한 국민에게 가장 먼저 도움이 닿을 수 있도록 정부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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