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오와 JSA, 남북 현실과 영화 사이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분단 대치 속 따뜻한 남북병사 영화 젊은이들의 통일은 로또처럼 재밌는? 현실의 남북관계 통렬히 꼬집은 코미디
영화 ‘육사오’의 흥행
요즘 이런 걱정이 많다. 이러다 정말 전쟁이 나는 건 아닐까. 한미 군사훈련과 북한 미사일 발사의 악순환은 8월 말부터 본격화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 고조와 정반대로, 지난 8월24일 개봉된 영화 ‘육사오’는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는 11월1일 기준으로 관객수 198만명과 매출액 198억원을 기록했다. 손익분기점 165만명과 제작비 50억원을 훌쩍 넘기며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해외에서 더 인기가 있다. 베트남과 대만에서도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10월24일 기준으로 관객수 232만명, 매출 446만 달러로 역대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모으는 신기록도 세웠다.
북한 소재 영화는 왜 흥행할까
BBC 뉴스는 지난 9월 21일 “북한에는 관심이 없는데, 왜 북한 소재 영화는 흥행에 성공적인지”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9월 20일 현재 박스오피스 1위는 ‘공조2: 인터내셔날’, 2위는 ‘육사오’, 3위는 ‘헌트’인데, 세 영화의 매출점유율은 84.2%라고 했다.
이 기사는 전문가 몇 분의 의견을 인용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중략) 민주화 이후 전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정치적 측면에서 점차 사회적으로 확장되었다”고 말했고,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북한 관련 소재에는 기본적으로 흥행 요소가 있다....(중략) 대중들은 남북한 분단 속에 화해, 통일 등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다....(중략) 영화 ‘쉬리’의 성공 이후 지금까지 약 20년간 계속해서 남북 화해모드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에 의미있는 시사점이 있다.

남북병사 영화의 고전,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 제목 ‘육사오’는 45개 숫자 중 6개를 맞히는 복권이라는 의미에서 로또 용지에 적힌 ‘6/45’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22년 전인 2000년 9월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공동경비구역 JSA’를 패러디(원작을 과장이나 풍자로 따라하며 익살스럽게 표현)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JSA’를 패러디한 포스터도 여러 장 나왔다. 남북 병사들이 모여 로또 협상을 벌이는 장소를 공동급수구역(Joint Supply Area)으로 설정하여 또다른 JSA라고 불렀다. 그 외에도 ‘JSA’에서 나온 몇 개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패러디되어 관객의 눈길을 끈다.
1997년 박상연이 쓴 소설 ‘DMZ’가 원작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소설로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병사들이 서로 교제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8년 2월 판문점 JSA에 근무하던 김훈 중위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JSA에 근무하는 남북 병사가 수십 차례 접촉하고 회식까지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로써 대중들은 이 소설과 영화의 설정이 충분히 개연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과의 역사적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본격화된 남북화해 분위기는 이 영화의 성공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지난 2000년 11월 3일 한국일보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필름이 북한 고위급 인사의 특별 요청으로 북한으로 전달되었다고 보도했다. 그 뒤로 충무로에는 이런 얘기가 돌았다. ‘영화예술론’이라는 영화 교과서를 쓸 정도로 영화이론에 정통하고 실제 영화광이었던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공동경비구역 JSA’가 크게 칭찬을 받았다고...
‘육사오’의 성공비결1 : 영리함과 유쾌함
지난 8월에 개봉된 영화 ‘육사오’가 성공한 비결은 요즘 젊은 영화팬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영화적 영리함과 내용의 유쾌함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50억원을 들여서 만든 소예산 영화다. 출연료가 높지 않으나 연기력과 열정이 넘치는 젊은 배우들로 영화를 만들었다. 코로나 방역이 다소 완화되어 극장관객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시점에 절대 무리하지 않는 실속있는 영화 제작이 돋보인다.
젊은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는 젊은 코미디 영화에도 잘 어울렸다. ‘헤어질 결심’에서 장해준 형사(박해일 분)의 부하 형사 오수완으로 나왔던 고경표 배우가 대한민국 육군 박천우 병장 역을 맡았으며, 영화, 드라마, 예능에서 모두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이경 배우가 조선인민군 리용호 하사역을 연기했다.
대남방송을 담담하는 조선인민군 군단선전대 병사 리연희 역은 최근 개봉된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고교시절 염정아 역으로 호평을 받았던 박세완 배우가 맡았다. 그녀는 깔끔한 북한 말씨에 멋진 춤과 액션 연기까지 선보이며 열연했다. 리연희 역은 영화 ‘공조’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보였던 ‘북남 남녀’의 공식, 즉 항상 북한의 매력적인 남자 배역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기존의 관행을 처음으로 뒤집은 것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로그라인 : 1등 로또가 만약 북으로 날아간다면?
영화 ‘육사오’는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버린 57억, 1등 로또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 간의 코믹 접선극”이라는 코믹 컨셉에 철저히 충실했다. 요즘 극장영화를 즐겨 보는 20대 관객층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들이 쓰는 신조어로 시나리오를 탄탄하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흔히 빠지기 쉬운 남북 관계의 신파를 피하려는 노력도 칭찬받을 만하다. 각본을 쓴 박규태 감독은 시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통일은 먼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에 로또 1등의 꿈을 매개로 하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고 설명한다.

‘육사오’의 성공비결2 : 따뜻하고 성숙한 주제의식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유쾌한 웃음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한 패러디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영화의 따뜻하고 성숙한 주제의식 그 자체는 남북 병사의 인간애를 다룬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한 오마주(원작에 대한 ’경의‘와 ’존경‘의 뜻을 담아 모방)가 아닐까 싶다.
도입부 장면에서 도심의 저녁 술집에서 판촉용 공짜 로또가 날리고 날려서 전방부대에까지 전달되는 모습은 마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 장면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이 영화가 따뜻한 판타지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남북의 병사들은 57억 로또를 앞에 놓고 자신만의 소박하고 따뜻한 소망에 부풀어 있다. 북한 병사는 고향의 아버지에게 틀니를 해주고 싶어 하고 여동생의 가수되는 꿈을 이뤄주려고 하며, 남한의 병사는 젖소 농장을 꿈꾸거나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고 싶어 한다. 무엇인들 어려우랴.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서로를 총으로 겨누는 현실에서...
믿고 협력해야 나아가는 남북의 현실을
우당탕탕 실컷 웃기기만 하는 이 코미디는 다른 한편으로 우리들의 멍청한 무의식과 바보스러움을 너무나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지만 서로를 믿고 협력하지 않으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이 영화는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무지막지하게 배꼽 잡는 이 상황극의 설정은 다른 한편으로 너무나 성숙한 주제의식을 깔고 있어 새삼 놀라게 된다.
이제 IPTV로 만날 수 있는 이 영화를 꼭 놓치지 말기를 권해 드린다. 반복되는 군사 훈련과 전쟁 연습으로 한반도는 어느 때 보다 위기다. 영화 ‘육사오’ 속으로 들어가 실컷 웃고 나면, 문득 다시 희망이 생기고 새 기운이 솟아나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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