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브람스를 들을 때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사모하는 여인을 위로한 브람스의 실내악곡

젊은 시절의 브람스.
젊은 시절의 브람스.

필자는 음악방송의 프로듀서로 일할 때 음악선곡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런 질문은 스스로에게도 늘 하는 것이어서 이러저러한 원칙이나 요령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날그날의 날씨에 따라 사람들 기분이 조금씩 달라지듯 선곡 역시 정해진 원칙같은 것을 따르기보다는 그날그날의 형편과 상황에 좌우되곤 했다. 일상과 함께 호흡하는 매체인 라디오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의 편성이 대체로 일반인들의 생활 사이클에 맞춰진다. 음악채널 또한 그러한 편성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이다. 방송이 나가는 시점에서의 사회적 이슈, 또 시간대와 계절 같은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큰 사건이나 계절, 날씨 등의 변화를 겪는 (청취자의) 집단무의식은 어떤 음악을 원할까? 라는 생각까지. 그러니 ‘답정너’식의 선곡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날씨와 계절에 따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악은 존재한다. 대중음악은 물론이고 클래식도 날씨와 계절을 타는 편이다. 요즘 같은 늦가을엔 낙엽을 우수수 떨구게 하는 스산한 바람에 옷깃을 세우다가 문득 떠올리는 음악도 있게 마련이다. 봄 여름의 찬란함을 뒤로하고, 가볍게 밖으로 향하던 것들이 이제 안으로 고요하게 침잠하는 시간, 그럴 때 사람들은 ‘브람스 음악’을 찾아 듣는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이 계절의 느낌이 브람스 음악의 쓸쓸함과 우수를 닮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음악에 그런 가을빛 정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깊은 사색을 통한 묵직한 감동, 중후함 같은 것도 깃들어 있다. 이러한 브람스 음악의 독특한 개성은 그의 인생 여정과 무관치 않으리라.

베토벤을 우상으로 삼아...’신고전주의’ 악풍

북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 출신의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극장 관현악단의 악사로 일하던 아버지 요한 야코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아들에게 기초적인 음악을 가르쳤는데, 아이에게 타고난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어려운 형편에도 일곱 살부터 피아노 레슨을 시키고, 열 살이 되자 당시 함부르크 제일의 음악가였던 마르크스젠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우게 했다.

브람스는 열세 살 무렵부터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저녁이면 선술집이나 레스토랑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해야 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중학교 과정도 채 마치지 못한 짧은 가방끈이지만, 그는 늘 독서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삶을 잘 개척해간 사람이다. 덕분에 끈기와 근면함, 신중함이 몸에 배었고, 그런 성품은 창작의 태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의 작곡 스타일은 베토벤을 우상으로 섬긴 만큼 한 개의 음도 소홀하게 다루지 않는, 정교하게 악상을 다듬어 공들이며 작품을 완성해 간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작은 형식의 악곡을 작곡해 보고, 차츰 큰 형식으로 차근차근 옮겨가며 창작의 영역을 넓혀갔다. 피아노소나타 다음에는 실내악을, 그다음에 관현악곡과 협주곡을, 마지막 단계엔 교향곡을, 이런 식이었다. 그리하여 마흔두 살이 돼서야 조심스레 첫 번째 교향곡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브람스가 음악가로 이름을 알릴 무렵 당대의 거장인 리스트, 바그너 같은 ‘신독일악파’의 음악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귀족적인 화려한 생활과 자신만만한 태도에 주눅이 들어버렸고, 또 지향하는 음악에도 동화되기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브람스는 고전적인 음악전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바탕 위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음악언어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기에 ‘신고전주의’라는 소릴 듣기도 했는데, 바그너 스타일의 외향적이고 거창한 작풍이 그에게는 몸에 맞지 않은 옷 같았을 것이다.

브람스의 열렬한 지지자 슈만

브람스는 음악가로 명성을 얻고, 재산도 좀 모았으나 늘 수수한 옷차림과 소탈한 생활을 즐겼다. 심지어 헤진 데를 꿰맨 자국이 난 옷을 자주 걸치고 다녔다. 대신 처지가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돕는 일엔 진심을 다했다.

그의 초기 작품 피아노 3중주곡에선 그런 따뜻한 심성이 전해지는데, 브람스와 슈만과의 인연이 시작되던 해에 쓰기 시작해 이듬해에 완성한 곡이다. 시간을 거슬러 3년 전, 브람스는 연주 여행차 함부르크에 온 슈만 부부를 먼발치에서 보고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곡의 악보를 보냈으나, 악보는 그대로 반송되어 온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당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의 추천장을 들고 뒤셀도르프의 슈만을 직접 만나러 그의 집 문을 두드리게 된 것. 1853년 가을 어느 날의 일이다.

슈만과 클라라 부부는 이 젊은이가 자작의 피아노소나타를 연주하자 그 비범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슈만은 당대의 음악잡지에 ‘새로운 길’이라는 글에서 “크로노스의 머리에서 완전무장한 미네르바처럼 갑자기 출현하는 거장”이라며, 낭만적 수사로 가득 찬 찬사로 브람스를 소개했다(하지만 막상 브람스 자신은 이 엄청난 찬사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이어서 슈만은 잘 아는 유명 출판사에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을 추천하여 악보 출판의 기회를 얻게 하는 등 브람스의 열렬한 후원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로베르트 슈만(왼쪽)과 클라라 슈만. 사진=위키백과
로베르트 슈만(왼쪽)과 클라라 슈만. 사진=위키백과

그러나 당시 슈만은 심신이 쇠약해질 때로 쇠약해져 음악가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접은 상태였다. 그리고 몇 달 뒤인 1854년 2월 슈만이 정신착란증으로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까스로 구출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자신이 치유되기 힘들다고 판단한 슈만은 자청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런 충격적인 소동을 겪으며 클라라도 매우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여섯 명의 어린 자녀들을 돌봐야 하고, 또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브람스는 홀로 남은 클라라가 진정 걱정되었고, 그 가족들을 도와주기 위해 애썼다.

클라라를 향한 애틋한 마음

그리고 절망에 빠진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그즈음에 완성한 피아노3중주를 피아노로 들려주었다. 클라라를 향한 애틋한 감정, 스승과 같은 슈만의 부인이기에 감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음악으로 그녀를 위로하고자 한 것이다. 클라라 슈만은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음악가의 삶을 산 여성이다. 슈만이 1856년에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이후에 그녀는 일곱 명의 자녀를 키우며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도 꾸준히 이어갔다. 또한 남편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데에도 힘썼고, 브람스 역시 슈만의 가족들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었다.

브람스는 생을 마칠 때까지 늘 마음속에 클라라를 품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브람스가 클라라를 대하는 마음은 우정 이상의 것이었지만, 열네 살 연상의 클라라는 브람스에 대해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남편이 정신병원에 있던 시절,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옆에 브람스가 있어 큰 의지가 되었고, 그를 대하는 감정에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 시기에 브람스에게 보낸 편지를 나중에 모두 없애버리는 바람에 두 사람 사이에 대한 세간의 추측만 더 무성해졌을 뿐이다.

그런데 한번은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격한 감정은 육신을 황폐하게 하죠. 그것을 아주 철저하게 누르든지 아니면 그런 기분이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중략) 사랑하는 클라라, 당신은 신중하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해요, 매일 아침, 매우 신중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새로워지세요. 그리고 항상 평온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세요. 격한 감정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건 갑작스럽게 나타나고 쓸데없는 거예요...”

짐짓 점잖게 당부하는 이 내용은 사실 브람스가 자신에게 수없이 다짐했던 말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안으로 삭이며 오랜 세월을 교류했다. 브람스에게 다른 여성들과의 연애담이 몇 번 있었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클라라는 1896년에 일흔일곱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부음에 브람스는 너무 충격을 받고 허둥지둥하다가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40시간이나 걸려 겨우 장례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브람스에게 “내가 평생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 클라라의 죽음은 큰 타격이 되었는지 이후 그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그리고 이듬해 4월 3일 예순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슈만, 클라라, 브람스 같은 피아노3중주 1번

브람스의 <피아노트리오 1번(B장조 op.8)>은 4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1악장의 선율이 가을날 오후 햇살처럼 그윽하고 아름답다. 지적이며 성숙한 여성 클라라를 연상시키는 차분한 선율을 피아노가 먼저 노래하면 첼로가 그 선율을 이어간다. 어느덧 바이올린이 두 악기 사이로 스며들 듯 동참해 세 사람의 정담으로 발전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에 의한 세 사람의 대화는 점차 격해지기도 한다.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 슈만에 대한 존경과 연민 사이의 갈등, 또 슈만이 느꼈을 법한 젊은 브람스에 대한 찬탄과 질투,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두 사람을 포용하려 애쓰는 클라라를 보는 듯하다. 청년 시절의 브람스가 스승의 아내를 향해 품었던 은밀한 연정이 낭만적인 선율로 피어난 음악이다.

유튜브 동영상= Brahms /Trio for piano, violin and cello, in B major, op.8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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