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과 친해지기 좋은 계절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고도의 구성력과 세련된 완성미의 실내악

브람스가 태어난 북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전경
브람스가 태어난 북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전경

요즘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온기가 절실해지는 계절에는 클래식 장르 중에서도 실내악이 제격일 듯 싶다. 해서 지난 글에서 소개한 피아노3중주곡에 이어 브람스의 실내악 명작들에 대한 소개를 이어간다.

실내악(室內樂)은 말 그대로 실내에서 적은 인원이 함께 연주하는 기악곡이다. 챔버앙상블, 챔버뮤직 등으로 불리는데, ‘챔버’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가 카메라(Camera)이고, 17세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무지카 다 카메라(Musica da Camera)’에서 유래되었다. 카메라는 왕궁이나 귀족들의 저택 안 사랑방을 의미하며, 당시 극장이나 교회에서 연주되는 음악과 구별하기 위하여 쓰기 시작한 용어이다.

연주자의 수(=악기의 수)에 따라 2중주(Duo)· 3중주(Trio)· 4중주(Quartet)· 5중주(Quintet) ... 이런 식으로 부르는데, 다만 2중주의 경우는 독주악기의 비중이 두드러지는 곡은 독주곡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악기편성의 주축은 현악기 3총사, 즉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다. 여기에 피아노 및 관악기가 더해지면 피아노3중주, 플루트4중주 식으로 명칭을 붙인다. 또한 목관악기나 금관악기로만 편성된 목관5중주(Woodwind Quintet), 금관5중주(Brass Quintet)의 편성도 있다. 현대음악에서는 독창이나 인성(人聲)이 포함되기도 한다.

실내악은 바로크 시대부터 시작되어 고전주의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특히 하이든에 의해서 현악4중주의 형식이 확립되었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역시 걸출한 실내악 작품들을 남겼다. 이어지는 낭만파 음악가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역시 다양한 면모의 실내악 작품을 다수 남겼다.

실내악은 고도의 구성력과 함께 섬세하고 세련된 완성미를 요구하는 음악이다. 각 파트 악기의 역할과 기량은 독주 악기로서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 파트는 독주와 반주라는 주종관계 없이 대등한 입장에서, 각각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협연의 정신이 중요하다. 관현악에 비해 전체의 음량이 작기 때문에 감상에도 집중을 요하며, 무대와 객석과의 거리가 좁은 실내공간에서 연주자들의 표정과 호흡을 느끼며 들어야 제맛이다.

중년의 브람스.
중년의 브람스.

성숙한 아름다움의 브람스 실내악곡

브람스가 남긴 작품들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장르는 아무래도 교향곡과 협주곡, 서곡 같은 관현악 작품이지만, 사실 그의 창작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실내악 분야이다.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로맨티시스트 브람스에겐 실내악이 잘 맞았을 것이다. 타오르는 내면의 감정을 절제하여 차분하고 섬세하게 다듬어 세련되고 성숙한 아름다움으로 완성시킨 브람스의 실내악 작품들은 19세기 후반 독일 낭만음악의 보석과도 같다.

브람스는 첫 번째 피아노트리오를 작곡한 이후, 실내악 창작에 대한 열정을 평생 이어갔다. 악기편성에 있어서도 다양함을 꾀하여 당시에는 다소 생소한 편성의 현악6중주곡(String Sextet)을 5년의 간격을 두고 두 곡이나 남겼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각 두 대씩 사용한 것인데, 이러한 편성을 시도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도 전해진다.

매우 신중한 성격의 브람스는 선배음악가들, 그중에서도 베토벤을 늘 의식하였기에 ‘넘사벽’인 베토벤에 비교되는 것을 여간 신경 쓴 게 아니었다. 그래서 베토벤이 만년에 천착한 ‘현악4중주’ 장르를 피해서 6중주를 작곡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5중주가 아닌 6중주로 편성이 늘어난 이유는 또 다른 선배,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C장조)를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단다. 명곡의 탄생 뒤에는 이런 후세의 추측이 난무하기도 한다. 그런데 브람스 이후 드보르자크를 비롯하여, 차이콥스키(피렌체의 추억), 쇤베르크(정화된 밤) 등이 현악6중주의 명작들을 작곡한 바 있다. 브람스의 6중주가 기폭제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독일 데트몰트의 풍경.
독일 데트몰트의 풍경.

궁정음악가의 경험, 좌절과 시련의 잔영

브람스의 현악6중주 1번(B♭장조, Op18)은 1859년에서 1860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의 추천으로 1857년부터 3년간 매년 가을 데트몰트에서 궁정음악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 브람스는 궁정악단의 연주자들과 어울려 실내악 연주를 즐기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이 곡을 쓰는 데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1859년 초 브람스는 큰 좌절을 겪어야 했다. 약 5년에 걸쳐 매우 공들여 작곡했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1월에 라이프치히에서 초연하였는데, 그 결과는 참담한 혹평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기대가 컸던 만큼 상심도 컸다. 그 여파로 그는 비밀리에 약혼반지까지 교환했던 연인 아가테와 결별하게 된다. 당시 브람스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이 협주곡이 언젠가는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슬프지만은 않지만, 만약 결혼하여 아내가 있는 상태라면 남편의 실패에 불안해하고 동정심을 갖게 될 아내를 보는 것이 더 두렵다네”라며 결혼이라는 굴레가 자신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구속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리고는 아가테에게 아주 모호한 태도의 편지를 전함으로써 두 사람 사이는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좌절과 상실감이 이 곡의 2악장에서 통한의 눈물처럼 흐른다고 하여 ‘브람스의 눈물’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브람스 자신은 이 6중주에 대해 ‘길고 센티멘털한 작품’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변주곡 형식으로 된 비감한 분위기의 제2악장을 제외하고는 곡 전체에서 밝고 온화한 분위기가 감돈다. 악곡 구성의 깊이와 탄탄함, 여섯 개의 현악기가 빚어내는 농담(濃淡)의 묘미와 함께 중후함도 느껴지는, 원숙미 넘치는 작품이다.

브람스의 현악6중주 1번 B♭장조 Op18

만년에 발견한 클라리넷의 매력

많지 않은 클라리넷의 실내악곡 중에서 모차르트의 5중주곡에 견줄만한, 아니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걸작이 바로 브람스의 클라리넷5중주(b단조, Op.115)이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는 브람스의 시대에 이르러 악기로서의 성능과 음역, 음색이 크게 개량되었다. 그래서 브람스는 이 악기의 밝고 온화한 면과 몽환적이면서도 어두운 음색까지를 잘 포착하여 낭만적 서정이 가득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음악가로서 이미 성공을 거둔 브람스는 만년에 몸이 쇠약해짐과 동시에 창작력의 감퇴까지 느끼며 절필까지 선언한 바 있었다. 그러나 1891년 마이닝엔 궁정악단의 클라리넷 주자 뮐펠트(Richard Muhlfeld)의 연주를 듣고는 이 악기에 매료되었다. 뮐펠트는 원래 바이올린 주자였으나 클라리넷을 독학으로 공부하여 바이올린의 풍부한 감정을 클라리넷에 실어보고자 했고, 이 악기의 표현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데 힘썼던 연주자였다. 뮐펠트의 연주에 자극받은 브람스는 곧바로 이 악기를 위한 음악을 구상하고 작곡에 착수하여 노년의 노고를 바친 클라리넷의 명곡들– 두 곡의 소나타와 3중주곡, 5중주곡 등 네 곡을 완성하였다.

그중에서도 클라리넷5중주는 브람스 만년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초연 당시부터 찬사를 받아온 이 작품은 곡 전체에 배어있는 깊은 슬픔이 브람스의 만년의 고독한 심경을 전해주는 듯하다. 전체 4악장에 걸쳐 목관악기 클라리넷의 모든 표현력을 고루 드러내고 있다. 따뜻하고 서정적인가 하면 몽환적이며 음울하다. 젊은 날의 감미로운 추억, 가슴 저린 사랑, 운명 앞에서의 체념 등 인생의 모든 감상이 비통하면서도 아름답게 응측되어 있는 작품이다.

동영상= 브람스 / 클라리넷5중주 b단조, Op.115
글쓴이

장옥님 칼럼니스트

장옥님 칼럼니스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음악(작곡)과 음악학을 전공하였음. KBS FM라디오에서 다수의 클래식음악 프로그램 및 콘서트, 대중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하였음. 저서로는 <위기의 음악가들, 2021년>, <KBS월드뮤직, 2006년(共著)>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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