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승부차기로 가면 무조건 져!”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엔리케 호’ ‘연습만 1천번 했다’는 승부차기 또 패배 ‘황금세대’ 이후 유망 스타 없는 스페인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첫 월드컵 우승을 일군 스페인. 당시 골키퍼 카시야스, 페페 레이나를 비롯해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 다비드 실바, 세르히오 라모스, 이니에스타, 피케, 사비 알론소 등은 스페인 축구의 황금세대를 이끈 주역이었다. 사진=marca.com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첫 월드컵 우승을 일군 스페인. 당시 골키퍼 카시야스, 페페 레이나를 비롯해 페르난도 토레스, 다비드 비야, 다비드 실바, 세르히오 라모스, 이니에스타, 피케, 사비 알론소 등은 스페인 축구의 황금세대를 이끈 주역이었다. 사진=marca.com

카타르팀 감독은 스페인 출신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11월에 개최된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시작부터 세계인의 큰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월드컵 유치가 확정된 2010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도시가 월드컵을 위해 생겨나기도 했다. 카타르 정부는 관광객을 위해 지하철 및 숙소를 새롭게 마련하고, 경기장에는 에어컨을 설치하며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다. 개최국 자동 출전으로 첫 월드컵 본선에 나간 카타르의 감독 펠릭스 산체스는 스페인 출신이다. 그는 2006년부터 카타르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9년에는 카타르에 아시안컵 우승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은 달랐다. 개최국인 카타르는 개막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패배했고, 이후 남은 경기 역시 속수무책으로 연패하며 첫 월드컵을 3전 전패로 마감했다.

이번 월드컵은 초반부터 이변이 속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첫 경기에서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2대 1로 이겼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다음 날을 임시 공휴일로 정할 정도였다. 모로코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벨기에를 꺾고 36년 만에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죽음의 조’라고 불렸던 E조에는 스페인, 독일, 코스타리카, 일본이 있었다. 혼돈의 도가니였던 E조에서는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이기며 조 1위로, 스페인이 2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스페인은 첫 경기에서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원조 티키타카를 선보이며 대승(7 대 0)을 거두었지만, 그 후 독일과의 무승부, 마지막 조별 경기에서는 일본에 2대 1로 충격적인 패배를 하고 말았다.

스페인 축구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화려한 최전성기를 보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정도의 세계적인 선수들로 구성된 황금세대 덕분이었다. ‘무적함대’의 타이틀에 걸맞게 강하고 빠른 축구를 선보이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2014 월드컵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칠레(2-0)와 네덜란드(5-1)에 대패하며 조별 리그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2018 월드컵 때 역시 16강에 진출했지만, 러시아와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8강 진출이 물거품 되었다.

페널티킥 1천번 연습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도 스페인은 승부차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까스로 16강에 안착한 스페인은 ‘아틀라스의 사자’ 모로코를 상대로 경기를 펼쳤다. 스페인은 초반부터 답답한 경기를 이어 나가며 고전했다. 전반전에서는 아센시오와 가비가 투입되었지만, 정교한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후반전에 모라타와 솔레르를 투입하며 경기 흐름을 바꾸고자 했지만, 모로코 골문을 흔들지는 못했다. 승부가 나지 않자 연장 경기에 돌입했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경기는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스페인은 승부차기까지 가면 무조건 져!” 스페인 친구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었던 얘기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스페인은 유난히 승부차기에서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8강 스페인전에서도 연장전까지 접전을 벌인 한국과 스페인은 결국 승부차기로 넘어갔다. 한국은 첫 번째 키커로 나선 황선홍을 시작으로 다섯 번째 키커 홍명보까지 모두 골을 넣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네 번째 키커였던 호아킨의 킥이 이운재의 슈퍼세이브에 막혀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앞서 언급했듯 2018 월드컵에서 스페인은 러시아와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패배의 쓴맛을 보았다. 이니에스타, 피케가 연속으로 골을 넣었지만 세 번째 키커 코케와 다섯 번째 키커 이아고의 킥이 러시아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2020년 유로 준결승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다니 올모와 알바로 모라타의 실축으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승부차기에서 거의 패배했던 스페인이라 이번 모로코전 첫 번째 키커의 부담감이 엄청났으리라 생각한다. 모로코의 첫 키커 사리비는 시원하게 골을 넣었지만, 스페인의 사라비아는 어딘가 모르게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결국 사라비아의 슛은 골대를 맞고 나왔고, 이후 솔레르, 주장 부스케츠의 슛마저 골키퍼 야신(세비야 FC)에게 막히고 말았다. 승부차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패배한 스페인 대표팀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빨리 떠나지 못했다. 승부차기와의 악연을 끊기 위해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페널티킥 1000번 연습’이라는 명령을 내렸다지만, 효과가 없었다.

젊은 피도 ‘무적함대’ 못 이끌어

‘무적함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스페인 대표팀은 최근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2018년부터 사령탑에 올라 스페인 축구의 세대교체를 위해 힘썼다. 그는 신인 선수들을 파격적으로 기용했고, 오랜만에 경기를 보는 사람은 선수들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번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세르히오 라모스(파리 생제르맹), 데 헤아(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티아고(리버풀) 등 스페인 간판선수들이 제외되어 큰 논란이 됐었다. 2010 월드컵 멤버 중에는 부스케츠(34)가 유일하게 엔리케의 부름을 받았다.

특히 세르히오 라모스는 월드컵 3회 출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 선수이며 나이도 올해 서른여섯으로 호날두나 메시, 모드리치, 수아레스 같은 선수들과 나이가 거의 같다. 기량이 여전히 뛰어난데도 발탁되지 않았다. 루이스 엔리케는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20세 초중반의 젊은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엔리케호의 공격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전부 갓 스무 살을 넘은 선수들이다. 선수의 평균 나이가 어려 경험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또한, 국민들은 루이스 엔리케가 이전에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이었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선수 대신 FC 바르셀로나의 선수를 훨씬 더 많이 부른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그의 감독 자질 논란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얼마 전에는 팬들과 직접 소통하고자 인터넷 스트리밍 방송 서비스 ‘트위치’를 통해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이는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누리꾼의 의견이 많았다. 그리고 엔리케 감독은 사생활로도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이번 월드컵 최종 명단에 오른 FC 바르셀로나 소속의 공격수 페란 토레스는 루이스 엔리케 딸의 남자친구다. 선수 본인은 공과 사를 구분할 것이라고 했고, 엔리케 감독 역시 잘 처신해 왔다고 밝혔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곱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 파블로 가비(오른쪽). 코스타리카전에서 18살의 가비(FC바르셀로나)가 골을 넣었다. 가비는 바르셀로나 유스(라 마시아) 출신으로, 백승호, 리오넬 메시, 일본의 쿠보 역시 라 마시아 출신이다. 사진=marca.com
루이스 엔리케 감독과 파블로 가비(오른쪽). 코스타리카전에서 18살의 가비(FC바르셀로나)가 골을 넣었다. 가비는 바르셀로나 유스(라 마시아) 출신으로, 백승호, 리오넬 메시, 일본의 쿠보 역시 라 마시아 출신이다. 사진=marca.com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엔리케호가 시험대에 올랐다.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7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세대교체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나 독일전, 일본전을 거치며 스페인 대표팀의 실력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감독의 총애를 받은 가비, 페드리 등 어린 선수들이 모로코전에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다. 승부차기 키커들은 모두 감독이 정했고, 루이스 엔리케 역시 본인 책임이라고 전했다. 모로코전의 충격적인 패배는 스페인 축구의 역사상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리그와 여러 훌륭한 선수를 보유한 스페인이 월드컵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젊은 피로 뭉친 스페인이 이번 월드컵 최대 돌풍을 막지 못했다. 축구 명가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계약은 올해 말까지다. 앞으로 어떻게 침몰한 무적함대를 살려내야 할지 스페인 왕립 축구 협회는 큰 고민에 빠졌다.

글쓴이

최지윤 칼럼니스트

최지윤 칼럼니스트는 현재 스페인 살라망카대학 한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고, 국외 한국어 교육 사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세종학당(멕시코)’에서 근무했다. 스페인어권 국가의 한국어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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