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사유화와 민주공화제의 위기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국민의힘 ‘친윤’ 일색 당협 재편 정당 사당화는 유사독재화의 징표 민주공화제 수호 위한 시민지성 필요
집권여당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지난 29일 당원협의회(당협) 위원장을 대폭 개편하였다. 이번 연말 개편은 내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와 2024년 총선을 위한 공천의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68곳 가운데 42곳의 조직위원장이 개편되면서 소위 ‘반윤’은 대폭 솎아내고 ‘친윤’ 일색으로의 물갈이가 노골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지난 10월 당내세력분포의 다양성이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일체의 고려 없이 친윤 일색으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를 구성하면서 이미 예상되었던 바다. 비대위 체제의 당연직 인사, 조강특위 구성, 그리고 당협 개편까지 법정공방 끝에 당헌까지 개정하며 당원과 국민이 선출한 당대표를 축출한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전면적으로 가시화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친윤 일색 조강개편과 정당의 사당화
집권여당이라면 윤석열 정부의 한 축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와의 기본적 동일화는 필요불가결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여당과 정부의 동일화는 오로지 정당민주주의를 전제로 해서만 성립한다는 민주공화헌법의 기본원칙만 보더라도 집권여당의 최근 흐름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집권여당이라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부의 민주적 정당성을 끊임없이 견인해야 할 자율적 결사체임을 한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민주화 이후 당정분리가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기본요소로 자리잡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집권여당이라고 대통령의 사람들만으로 획일적으로 지도부를 구성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권력의 집중을 공화국의 적으로 보고 권력의 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강조하는 민주공화제의 기본정신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집권여당 또한 국민의 자발적 결사이고 국민의 정치사회적 의사를 의회와 정부의 의사결정구조에 전달하는 중간통로로서 헌법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만큼 당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당헌이나 정강·정책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여, 정부와 분리된 독자적 관점에서 한편으로는 정부에 협력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를 견인할 수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당내외의 다양한 세력과 여론을 반영할 수 있도록 투명하고 민주적인 정당의 조직과 운영이 집권여당과 정부 관계의 전제가 된다.
결론적으로 집권여당을 대통령실의 국회 출장소로 만들려고 헌법에서 정당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도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당에 대해 국민의 세금으로 국고보조의 근거를 마련하고 정당해산을 헌재의 심판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특별한 대우를 하면서 법률에 의해 그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보장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가 현대 민주공화제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당사의 고질병 – 정당의 사당화
오로지 대통령과의 친소관계에 기반한 비대위, 조강특위, 그리고 당협의 개편은 국민의힘의 ‘친윤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실 한국 정당사에서 집권당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재편되어 온 것은 새삼스러운게 아니긴 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정당사는 인물중심의 엘리트정당의 정체성이 강하게 작동함으로써 정당민주주의에 기반해야 할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구조적 병폐를 답습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공식홈페이지에 따르면 그 기원을 1997년에 출범한 한나라당에 소급하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2012년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개편할 때까지 약 15년간 지속되었다. 이때 새로 출범한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거치면서 2017년 자유한국당으로 개편되었고, 2020년 김종인 당시 비대위원장의 주도로 자유한국당이 소멸되고 국민의힘이 출범하였다. 한나라당이 보수대연합을 표방한 민주자유당(1990년)에서 신한국당(1995년)을 거쳐 온 정당임을 고려하면 민주화이후 최근 30여년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당명이 5번 바뀐 셈이다. 대개 대선후보나 대통령 혹은 비대위원장의 주도로 당의 정체성이 좌지우지 되어 온 특색이 있다.
이런 경로의존성을 고려하면 아마도 친윤파가 당권을 제대로 장악하게 된 이후에 현재의 당명과 당정체성마저도 또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현재의 국민의힘 정강은 보수혁신을 내건 김종인 체제의 색채가 강하고 권위주의적 퇴행의 징후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 근본적으로 조화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당사당화의 근본원인인 소선거구제와 비민주적 공천제
이처럼 한국 정당, 특히 집권여당이 공천한 국민대표자의 정체성을 견인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공적 정체성이 대통령과 동일시되는 권위주의적 유산이 민주화이후에도 지속되는 근본원인은 양당체제에 고착된 선거제도와 당내민주주의 및 민주적 대응성이 무력화된 공천제도에 있다.
지역구에 기초한 소선거구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는 엄청난 사표를 남발하여 유권자 상당수가 지지하는 정당의 의회진출을 봉쇄한다. 이러한 선거제도에서 기득권을 가진 거대정당의 공천은 당락의 핵심적인 조건이 되는데, 정작 공천은 당내민주주의에 기반하지 않고 당권파가 주도하는 공천심사제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중앙집권적 구조이다. 따라서 행정권력을 배경으로 막강한 정치적 자산과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제1당원인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당권파를 장악하게 된다면 집권여당을 대통령중심으로 사당화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사당화 징후의 근본적 문제 – 유사독재화의 전조
그동안의 한국정당사에 비추어 ‘친윤’ 일색으로 구성된 조강특위와 비대위의 결정으로 ‘친이준석계’를 비롯한 ‘반윤’ 인사가 물갈이 되고 그 자리를 대선캠프 출신이나 대통령과 사적 인연을 가진 검찰 출신 인사들로 채우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모든 관심사가 총선에서의 공천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번 당협 위원장 개편으로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알게 된 집권여당의 차기총선을 위한 정지작업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국 정당사에서 쉽게 확인되는 사당화경향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민의힘의 동향은 한국형 민주공화제에 특별한 위기징후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친윤이 주도하는 집권여당의 사당화는 이미 정부조각이나 공공기관의 조직 및 운영에 있어 검찰형 하나회로 불릴 만한 사조직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하는 직할통치체제의 일부로 집권여당이 편입되는 중요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검찰이라는 법집행기관과 그 출신을 중심으로 국가공조직을 사유화하는데 이어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인 정당의 사당화가 검찰형 사조직의 구조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중심의 국가권력 사유화를 발판으로 검찰 등 법집행기관을 정파적 목적으로 동원하는 사정정국을 주도하면서 야당, 언론, 시민사회를 무력화하는 한편으로 의회장악의 교두보를 당대표 찍어내기와 친윤조직강화를 통한 정당의 사당화로 확보하는 모양새이다.
정부의 사유화에 이어 정당의 사당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여기에 더하여 이제 조만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권력의 재편이 기다리고 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영향력이 작동할 최고사법권력의 재편은 한국형 민주공화제가 검찰주의자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검찰형 하나회’를 정점으로 아무런 헌정적 통제장치가 없는 ‘유사독재체제’로 전락할 수 있는 운명에 처하게 됨을 의미한다. 더구나 검찰독재만으로 부족한 대중적 지지를 입헌주의에 충실한 합리적 보수가 아니라 헌법무시적 수구파에게 소구하는 현재의 추세는 가뜩이나 거세지고 있는 정치사회의 갈등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번 집권여당의 사당화는 민주화 이후의 이전 정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민주적 법치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전조가 될 수 있어 걱정스럽다.
이런 결과까지 예상하고 깻잎 한 장 차이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지난 대선에 참여한 국민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주권자 국민이 민주공화국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유사독재체제의 독주를 허용할 것인지의 분수령은 그나마 주권자 국민의 집단지성이 발현될 수 있는 2023년 재보선과 2024년의 총선이 될 것이다. 만일 민주공화세력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이 기회마저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쌓아온 민주공화제의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지도 모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역사의 퇴행에 대한 우려가 어설픈 책상물림의 허무한 공상에 지나지 않기를 빌어 보지만, 불과 9개월 전에 정부와 공공기관을 넘어 집권여당마저도 검찰출신과 학연, 사연으로 연계된 거대한 직할체제가 구축될 줄 누가 제대로 예상이나 했던가를 회고해보면 불안감이 쉬 가시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한 번, 위기가 닥칠 때마다 도도한 민주화의 흐름을 일깨워온 우리 대한국민의 집단지성에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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