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에선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고요?
[최지윤의 스페인 이야기] 수돗물을 사랑하는 마드리드 시민들 마드리드에 수돗물 음용대 2천여개나 친환경·건강 위하고 생수값 부담 줄이려 스페인 여행 때는 탈나지 않게 조심해야
유럽의 물은 다 석회수?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어느 날 마드리드의 카페 종업원에게 물 한 잔을 부탁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 어쩐지 염소 맛이 확 느껴지는 게 수돗물이 확실했다.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아, 마드리드 수돗물 맛있어. 진짜 깨끗해서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니까” 스페인 친구들은 ‘내게 왜 유난이냐?’며 한마디씩 한다. 한국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셔본 적도 없을 뿐더러 요리할 때, 커피나 차를 끓일 때나 사용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수돗물 음용률이 겨우 7%인 한국에선 수돗물을 마시는 게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때문에 필자는 스페인에서도 수돗물을 마시는 게 껄끄럽게 느껴진다. 특히 유럽의 물은 다 석회수인 것 같고, 무시무시한 괴담도 생각난다. 유럽에는 유난히 발목이 퉁퉁 부은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석회질이 함유된 물을 많이 드셔서 그렇다는 게 괴담의 내용이다. 아무리 근거 없는 얘기라고 해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마드리드 주변은 연수...바르셀로나는 경수
그러나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나라마다 수질은 천차만별이다. 지역별로도 차이가 크다. 센물이 나오는 지역에서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스페인 해안지역이나 바르셀로나에 며칠 머물 때는 컨디셔너를 써도 머리카락이 뻣뻣하고, 정전기가 많이 생겼다. 바디로션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건조했다. 물은 웬만하면 사서 마시라는 현지인들의 조언도 있었다. 그런데 마드리드 시민들은 수돗물을 마시는데 익숙하다.
우리가 사용하거나 마시기에 좋은 물이란 어떤 물을 말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인체에 유해한 세균의 유무, 잔류염소, pH농도, 경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다고 한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센물(경수)과 단물(연수)은 경도로 나타내는데, 경도(hardness)는 물 1ℓ(리터)에 함유된 칼슘과 마그네슘의 농도를 측정하는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기준에 따르면 0~60㎎/ℓ는 연수(soft), 60∼120㎎/ℓ는 중경수(moderately hard), 120∼180㎎/ℓ는 경수(hard), 180㎎/ℓ 이상은 강한 경수(very hard)로 구분한다.

서울의 수돗물인 아리수의 경도는 58㎎/ℓ로 연수에 속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경도가 50~100㎎/ℓ 정도일 때 우리는 ‘맛있는 물’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스페인의 유명한 관광지 중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 알메리아, 마요르카 섬 등지의 식수는 경도가 400㎎/ℓ를 넘는 강한 경수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드리드 지역 식수의 경도는 약 50㎎/ℓ로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다. 마드리드와 가까운 아빌라와 세고비아도 같은 수치를 나타낸다. 마드리드와 인접한 카스티야이레온주(州)는 평균 100㎎/ℓ의 경도로 맛있는 물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 지역 사람들의 물에 대한 자부심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 연수는 목 넘김이 좋고 담백한 맛이 나서 식수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반면, 물의 경도가 높아질수록 미네랄 함량이 높아져 텁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언제나 경도가 낮은 물이 좋은 물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또한, 미네랄을 듬뿍 섭취하고자 하는 사람은 경도가 높은 물을 선호할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자기 지역 물로 된 수돗물 맛에 익숙해져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500년 넘는 마드리드 수돗물 역사
이런저런 이유로 마드리드 시민들은 페트병에 든 생수를 사서 먹는 양도 적다. 스페인 사람의 생수 소비량은 연간 1인당 59.46ℓ지만, 마드리드 주민은 연간 16.7ℓ를 소비한다는 당국의 조사 결과가 있다. 마드리드에서 생수를 구매하는 가구의 비율은 겨우 32.62%로 조사되었다. 이 비율도 전국 평균인 49.4%보다 낮다. 그만큼 많은 마드리드 시민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신다는 뜻이다. 이렇다 보니 수돗물을 바로 자신의 물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는 게 일상적이다. 공공기관이나 은행, 심지어 쇼핑몰에도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는 한국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학교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서슴없이 마시는 학생들도 여럿 보았다.
많은 전문가는 마드리드의 뛰어난 물맛은 원산지 덕분이라고 한다. 마드리드를 둘러싼 산과 지대는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석회와 미네랄 함유량이 적다는 것이다. 마드리드라는 이름의 유래 역시 ‘물이 풍부한 곳’, ‘수원(水原)’이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 ‘mayrat’에서 왔다. 예로부터 마드리드는 지하수와 우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마드리드에는 만사나레스강이 있지만, 유량이 적어 주요 수원으로 사용하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1561년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가 되고 이후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후 산이 벌목되어 토양이 건조해진 반면 시민들 사이에 공중위생 개념이 생기면서 도시에는 더 많은 물이 필요해졌다. 따라서 더 많은 지하수를 찾게 됐고, 왕실마저도 어렵게 물을 조달해야 했다. 그래도 물 공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1851년 이사벨 2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사벨 2세 운하(Canal de Isabel II)’ 건설에 나섰고, 이를 발판으로 하여 마드리드에는 근대적인 수도 공급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이사벨 2세 운하’는 지금까지도 공기업으로서 마드리드 지역의 물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스페인 여러 지역의 시민이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시는 데에는 또다른 배경이 있다. 유럽환경청 및 유럽연합(EU)은 각국의 수질을 보장하기 위해 적절한 기준을 제시하고,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은 EU에 가입한 후 수질 기반 시설을 보완하고 새로 건설하는 명목으로 210억 유로를 EU로부터 받았다. 그 결과, 스페인의 폐수 여과 및 물관리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스페인의 수돗물 음용은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과도 관련이 있다. 2018년부터 유럽은 연 2900만 톤씩 발생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대대적으로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고, 시민의 건강과 생물 다양성을 위해 수돗물 음용을 더욱 권장하고 있다. 이는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개발과 기후 변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생수병에 들어 있는 미세플라스틱은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도 사람들이 수돗물을 찾고 있다.

환경 위하고 물값 줄이는 시민들
사실 정수기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스페인에서 매번 생수를 사다 먹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정용 필터를 따로 구매하여 식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도 많다. 환경적인 이유나 생숫값을 생각한다면, 마드리드에서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닌 셈이다. 그렇지만 시에서 제공하는 물이 아무리 깨끗하다고 해도, 수도관 노후 등의 문제로 집에 도착하는 물에 문제가 있을 것이란 짐작도 한다.
스페인은 1975년부터 수도관의 납 파이프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마드리드 중심부에는 100년 넘은 건물들도 꽤 있고, 신도시 지역에 비해 오래된 수도관이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다. 그래서 수돗물을 바로 마시는 게 걱정되는 사람들은 수도꼭지에 바로 설치할 수 있는 필터를 사거나 물을 통에 넣기만 하면 정수가 되는 필터형 정수기를 사서 사용한다. 아이가 있거나 물 색깔, 냄새가 이상하다 싶은 가정에서는 시중에 파는 수질 검사 키트로 안전성을 확인한다.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배관공을 불러 수도관의 상태를 점검하고 교체하기도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수도꼭지를 틀고 몇 초 정도 기다렸다가 수돗물을 마신다. 수도관과 수도꼭지에 고여 있던 물을 빼내야 더 시원하고 신선한 물을 즐길 수 있다고 얘기한다. 수돗물 음용은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개인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여전히 생수를 사 먹는 게 더 익숙하지만, 그래도 스페인에 제법 오래 살았다고 집에 물이 다 떨어졌을 땐 별걱정 없이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한다. 역시 습관이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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