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년음악회, 다시 화려해진 이유

[박기찬의 말랑고소한 북한 이야기] 2019년에 이어 가장 화려한 공연 펼쳐 ‘경제 위기 탈출’ 회복기 들어선 자신감 북한 자신감, 한반도 평화에 나쁘지않아

2023년 신년 경축공연에서 가장 눈에 띈 가수 정홍란. 사진=MBC 캡쳐
2023년 신년 경축공연에서 가장 눈에 띈 가수 정홍란. 사진=MBC 캡쳐

북한연구자들이 새해에 관심있게 본 두가지

매년 새해가 되면 북한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두 가지가 있다. 최고지도자의 신년사와 새해맞이 공연이 그것이다. 매년 1월1일에 발표되는 신년사는 수년 전부터 당 전원회의 결정서의 형태로 바뀌긴 했지만, 북한이 지난해를 어떻게 평가하고 새해 국가운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새해맞이 축하공연은 신년 메시지처럼 텍스트로 된 것은 아니지만, 국가 주도의 음악예술 공연을 통하여 북한의 내부 분위기와 새해의 국정 방향을 상징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문화행사다.

2022년 12월31일 밤부터 시작된 2023년 경축 신년공연 장면. 사진=조선중앙TV/연합뉴스
2022년 12월31일 밤부터 시작된 2023년 경축 신년공연 장면. 사진=조선중앙TV/연합뉴스

신년음악회의 일반적 구성과 대표곡 ‘설눈아 내려라’

두 시간 정도 거대하게 벌어지는 신년 음악공연은 유튜브를 통해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그 내용이 기·승·전·‘최고지도자 또는 당에 대한 충성’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북한연구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보고 즐기기는 쉽지 않다. 이 음악회는 당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송가, 조국에 대한 충성과 애국의 노래, 밝은 분위기의 민요와 춤, 청년과 어린이들의 노래, 그리고 장엄한 드론과 불꽃놀이 등으로 구성된 종합 무대공연이다.

북한의 신년맞이 공연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표곡은 ‘설눈아 내려라’이다. 이 곡은 2018년 삼지연 악단의 강릉 및 서울 공연에서 ‘흰눈아 내려라’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가사도 당이나 최고지도자를 찬양하는 것 같은 정치색이 없다. 한해를 마무리 하고 새롭게 다가오는 희망찬 새해를 기쁘게 맞이하는 내용이다. 이 곡의 3분의 2는 관현악으로 연주되어 관객의 박수와 함께 하는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의 ‘라데츠키 행진곡’와 비슷한 분위기다. 노래 가사로 부르는 나머지 3분의 1은 마치 성탄절 캐럴을 연상케 하는 빠르고 경쾌한 춤곡이다.

새해공연에서 주목할 것은 규모, 형식, 내용의 변화

12월31일 밤에 시작되어 1월1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신년 경축 공연은 그 내용과 형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목할 점들이 많다. 특히 공연의 규모, 형식의 변화, 연주곡의 구성, 관객의 반응방식 등을 유심히 살펴보면 많은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실내 공연인가 대규모 야외공연인가, 무대의 크기와 조명기법, 관객의 수, 가족관객인가 조직단위 관객인가, 현장 관객의 리액션 방식, 공훈배우급 가수의 등장 횟수, 새로운 신곡, 무용과 의상의 화려함, 국기 게양 등 공식적 행사 분위기의 정도, 드론이나 불꽃놀이 등 화려한 볼거리 등등이 관전 포인트다.

가장 스펙터클한 공연은 2019년과 2023년 음악회

필자가 보았을 때 가장 웅장하고 화려했던 신년 공연은 지난 2019년과 올해 2023년의 공연이었다. 둘 중에서도 더 파격적이고 대외 영향력이 컸던 공연은 2019년 1월1일 신년 경축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분명 2018년 4월27일 남북정상회담과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의 낙관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파격적인 공연의 변화는 수년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초기인 2012년 7월, 모란봉 악단이 최고지도자 부부가 참가한 공연에서 디즈니 캐릭터들의 흥겨운 무용과 함께 미국 만화영화 주제가를 연주하여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일부 언론은 저작권자인 월트디즈니사의 동의 없이 연주된 사실을 보도했고, 뉴욕타임즈 등 일부 언론은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젊은 지도자가 주도하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2017년 신년경축 음악회에서는 삼지연 악단이 대형 영상화면을 배경으로 북한의 최장수 인기 만화영화인 ‘소년장수’와 ‘령리한 너구리’의 주제곡과 함께 다음의 8곡을 연주하였다. 미키마우스(이하 북한식 제목 미키마우스), 인어공주(인어공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백설공주와 일곱명의 난쟁이), 미녀와 야수(미인과 야수), 라이언킹(사자왕), 라푼젤(라판젤), 드래곤 길들이기(룡을 길들인 소년), 쿵푸팬더(무술사 참대곰) 등.

기존 신년음악회의 개념을 바꾼 2019년 공연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했던 2019년 신년음악회는 공연 장소부터 달랐다. 실내 공연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이 열리는 김일성 광장으로 바뀌었다. 공연무대는 ‘인민대학습당’ 방향(서쪽)과 ‘대동강 주체사상탑’ 방향(동쪽) 쪽으로 두 겹의 무대가 초대형으로 설치되었다. 어느 방향에서든 공연을 볼 수 있는 혁신적 무대였다.

관객들 쪽으로 돌출된 특별 무대에서는 인민배우급의 가수들이 노래했으며,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가족단위의 평양시민들이 플라스틱 막대 응원봉과 풍선을 들고 열광했다. 가족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열광하는 리액션 모습들이 그대로 화면에 담겨 TV로 중계되었다.

축포와 드론으로 새해를 알리는 “10, 9, 8, ... 2, 1, 0” 카운트다운 숫자와 “2019” 숫자가 환호와 함께 밤하늘에 새겨졌고, 대동강 위에서 쏘아올린 장엄한 불꽃놀이로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그 규모와 내용, 파격적 형식에 있어서 세계 어느 대도시의 새해 풍경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고 희망찬 새 시대를 예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020년부터 점차 축소된 새해맞이 공연

2020년부터 새해맞이 공연은 그 규모와 내용, 관객의 반응 등 여러가지 면에서 위축되기 시작했다.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의 불발과 초강력 대북 경제제재의 누적된 영향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2020년에는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방역에 취약한 북한은 국경을 물적 인적으로 완전히 닫아 버렸다.

점차 깊어지는 경제적 고통 속에서 2021년에 이은 2022년 새해맞이 경축공연은 가장 작고 소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대와 공연장의 크기는 물론이고 출연 가수의 급(레벨)도 낮았으며 드론이나 불꽃놀이 행사도 없었다. 작업복 차림의 관객들은 마치 군중행사에 동원된 것처럼 보였고 비장하기만 할 뿐 밝고 희망찬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2023년 신년 경축공연 무대. 사진=조선의 오늘
2023년 신년 경축공연 무대. 사진=조선의 오늘

다시 화려해진 2023년 신년경축 대공연

2023년 새해맞이 공연은 2020년, 2021년, 2022년 공연의 분위기를 완전히 뒤엎는 수준이었다. 공연장소가 김일성 광장에서 실내극장으로 다시 돌아 온 것이 아니라 ‘릉라도 5.1경기장’으로 옮겨졌다. 장대하고 입체적인 연출이 가능한 초대형 스타디움으로 돌아옴으로써 모든 관객들이 야광봉을 흔들며 더욱 화려해진 무대와 볼거리에 열광할 수 있었다.

드론과 레이저빔, 불꽃놀이가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가운데 대형 2층 무대가 설치되었다. 무대 주변을 다시 아이스링크가 넓게 자리잡아 노래에 대한 백댄싱으로 집단 빙상무용이 펼쳐지고 피겨선수의 아이스쇼까지 펼쳐졌으니 그 규모와 혁신성에 있어서 과히 역대급이었다.

스타성이 높은 원톱 가수 정홍란

2023년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수는 김류경과 정홍란이었다. 두 명 중에서도 정홍란은 풀뱅머리에 바지정장 차림으로 6명의 백댄서들과 함께 빠른 춤곡 ‘이 하늘 이 땅에서’를 불러 관객들의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강동완 교수는 이 노래가 애국주의적 가사, 강한 비트의 선율과 춤이라는 측면에서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을 연상케 한다고 평가하였다.

2022년 9월 9일 정권수립 기념공연에서 연주된 ‘이 하늘 이 땅에서’에 대하여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새롭고 특색있는 편곡, 젊음이 약동하는 배우들의 세련된 예술적 형상으로 일관된 황홀한 공연”이라고 칭찬하였다. 조선중앙TV도 정홍란과 이에 열광하는 젊은 관객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편집해 중계하였다. 서방세계로부터 젊은이들에게 유입되는 ‘황색바람 음악(저속하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음악)’에 대항하기 위한 곡이라는 해석도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가수 정홍란이 마치 서방세계의 아이돌처럼 강력한 개성으로 팬들을 사로잡고 이끌어가는 스타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형화된 동작이나 춤사위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무대를 크게 활보하면서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몰아가는 현란한 무대 매너는 북한 음악공연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다.

2022년 9.9절 공연에서는 정홍란 본인이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걸어가서 ‘이 하늘 이 땅에서’ 앵콜 연주를 요청한 다음에 이 노래를 다시 부르는 파격적 모습을 보였다. 최고지도자 부부가 참석한 국가행사 공연에서 자신이 공연의 단순 출연자가 아니라 공연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으로.

화려해진 2023년 새해공연의 배경

다시 커지고 화려해진 2023년 신년경축 대공연은 북한이 수년간 지속된 혹독한 경제 위기에서 탈출하여 회복기에 들어섰다는 자신감과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새롭게 형성된 범 중국/러시아 진영에 밀착하면서 안정적 출구를 찾아 나가는 국가전략의 재설정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최근 10년 투쟁과 맞먹는 힘겨운 곤난과 진통을 이겨내며 사회주의건설을 더 힘차게 더 폭넓게 진척시켜 왔다”며 3중고(코로나, 경제제재, 자연재해) 경제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음을 알렸다.

역대급이었던 2019년 신년 축하공연과 다른 점도 보인다. 2019년 공연이 자연스러운 관객들의 기쁨과 열광으로 표현되었던 반면, 올해 공연은 각 분야의 조직 구성원, 대표자들과 평양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매우 조직적이고 긴장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국가행사 성격이 더해져서 화려하지만 딱딱하고 꽉 짜인 모습이다. 다가올 2023년이 희망차긴 하지만 만만찮은 한해가 될 것이니 새해에 함께 긴장하고 집중하자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다시 한반도에 평화가 중요한 이유

북한이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경제 회복과 정치적 안정과 자신감을 되찾아 가는 모습은 미래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결코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북한은 자신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외부와의 대화에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가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때 한반도에도 대화와 평화의 분위기가 이어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한반도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관리해 간다면, 멀지 않아 평화를 향한 새로운 대화의 모멘텀은 반드시 나타날 것으로 소망해 본다. 크든 작든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안정적 위기관리에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할 시기다.

글쓴이

박기찬 북한학 박사

필자인 박기찬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 MBA를 마친 금융인으로,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한반도 이슈에 접근하는 북한연구자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협력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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