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가요? 그댄’...대한민국 의회와 정치인은
[어느 프랑스 공화정 연구자의 목소리] ‘권력 추구’가 정치라는 업(業)의 전부일까 佛정치가 장 조레스 “신뢰를 갖자” 역설 한국 정치는 ‘신뢰’노력 얼마나 하고 있을까
의회의 드라마는 각자 고유하다
대한민국 입법부의 이름은 국회이다. 한자로는 國會, 그러면 나라 국, 그 글자가 국가인지 국민인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의문은 곧 풀린다. 우리나라 국회는 영어로는 내셔널 어셈블리(National Assembly), 국민의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어로 내셔널 어셈블리라면 1948년 제헌의회 그때 국민의회라고 못 박지 왜 국회라고만 했을까 싶지만 이 문제는 서양사 연구자로서는 알지 못한다.
하여튼 내셔널 어셈블리는 1789년 6월 혁명 프랑스가 왕정에 대립하여 국민의 이름으로 창출한 역사적 명칭이다. 프랑스어로는 의회라는 명사 아상블레가 먼저 나오고, ‘누구의 의회인가, 국민의’라는 나시오날이 뒤따라 아상블레 나시오날(Assemblée Nationale)이다. 파리 센 강변 석조건물의 들보에 새겨진 이 이름 국민의회는 풍파를 겪었다. 그 이름은 혁명기에 이미 변환되고 나폴레옹 시대에는 물론 사라졌다가 19세기 후반까지도 그늘 속에 있었다. 혁명이 온 나라에, 온 인민에 미친 파급력이 하도 커서 1870년 독일에 패전하자 공화파가 제3공화정을 세우고 의회 주권을 명시했을 때에도 국민의회라는 명칭을 피했다.
공화파는 혁명과 반혁명의 대립을 가라앉히고 단명했던 제1, 제2 공화정의 전철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 목표였다. 보수적인 상원(Sénat)을 존치하면서 하원은 대표원(Chambre des Députés)으로 이름 지었다. 국민의회가 소생한 것은 2차 대전으로 수립되었던 민족 우익의 비시 정부가 무너지고 1946년 10월 제 4공화정이 섰을 때이다.
의회의 드라마는 각자 고유하다. 영국의 정치 제도는 대륙과 떨어진 지정학적 조건에도 힘입어 프랑스처럼 요동치지 않고 견고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회는 1801년 이후 지금까지 상하원 모두 이름이 변치 않았다. 독일은 알다시피 영국, 프랑스에 비하면 늦어도 너무 늦게 1871년 통일국가를 만든 나라이다. 종교개혁 이래의 교육 체계, 경건주의를 비롯한 종교적 심성, 또 철학이 아마 통일의 바탕이었지만, 정치사는 일천하니 프랑스처럼 의회에 국정의 권한을 대폭 부여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의회의 이름이 서운해도 오늘의 본론은 그건 아니다. 이름이 뭐 그리 대수일까. 내용과 실상이 문제이지. 단도직입적으로 현재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300명에 대해 우리는 어떤 판단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이에 답하기 어렵다. 우선 국회의원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 왜 몰라. 신문 방송에 매일같이 국회의원들이 나오는데... 당대표, 원내대표, 수석대변인, 부대변인, 또 실력파 의원들. - 하지만 그건 잠시 듣는 목소리이고 언뜻 스치는 인상이다.
하나의 통계 자료를 따르면(2022년도 4월 한국 리서치 조사) 우리나라에서 신뢰도가 가장 낮은(일을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9%, 믿을 수 없는 수치다. 그 많은 선거 비용에다 사회적 에너지를 쏟아 붓고 지역마다 공들여 선출한 대표들이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진정 가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은 의회라면 딱 질색하기 쉬웠다. 의회가 정부를 세우고 또 무너뜨린 제3공화정 프랑스 정치사에서 반의회주의는 심각했다. 프랑스가 우리나라나 미국 같은 직선제를 택하고 선출된 대통령에게 국가 통수권을 부여한 것은 자그마치 1958년이 되어서다. 난감한 알제리전쟁(1954-1962)을 해결할 구원투수로 2차 대전기에 프랑스의 해방을 이끈 군인 샤를 드골이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또는 절충적인 제도의 선택은 어느 나라든 자기들 손으로 처리할 문제 같다.
신뢰를 역설하는 프랑스 하원의원 장 조레스
어떻든 (의회)정치의 본질은 권력이라고 누구나 믿는 것 같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채택한 민주주의 제도에서 진정 권력의 추구가 정치라는 업(業)의 전부일까. 혹시 정치는 권력이면서도 그것을 넘는 어떤 것은 아닐까. 그럼 그게 뭐냐는 반문에 대해 나는 하나의 핵심어로 ‘신뢰’를 들고 싶다. 100년도 더 전, 남의 나라 이야기지만 신뢰는 1903년 7월 30일 프랑스 하원의원 장 조레스(Jean Jaurès 1859-1914)가 남부 시골 고등학교에서 행한 연설의 주제이기도 했다.

툴루즈 인근의 시골 출신으로 파리 고등사범학교(ENS) 철학과를 나오고 고향 알비(Albi)에서 교사를 지낸 후 1885년 9월, 26세에 의회에 들어간 조레스는 1903년 이 해에 3선 의원이었다. 잠깐, 그 사람은 유명한 사회주의자이잖아. 사회주의는 나쁜 건데. 왜 하필이면 사회주의자를? 우리는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다. 유럽 사회주의가 남의 것 뺏자는 사상도 아니었고 더구나 그는 온 인민의 안녕을 위해 전쟁을 반대하다가 암살당한 사회주의자이다.
1898년 드레퓌스 사건으로 있는 대로 곪아 터진 사회주의 진영의 갈등과 반목에 지쳤던지 그날 그는 애잔하게 강연을 시작했다. “해는 저무는데 곳간은 텅 비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신뢰의 문제를 짚었다. 나를, 국회의원을, 사회주의자를 믿어달라는 말이 아니었으며, 아직 새로운, 그래서 반대자들이 많은 체제인 이 공화국을, 공화국을 세울 우리를 믿자는 논지였다. 그는 고대 공화국에 비한 프랑스 공화국의 특징과 미덕을 설파한 후 말한다. “신뢰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악덕, 범죄, 과오, 편견이 즐비하며 온갖 이기주의가 횡행한다는 것을. 개인도, 카스트도, 당파도, 계급들도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신뢰는 압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던한 프랑스에서 공화국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그는 스스로 답했다. “공화국은 커다란 신뢰의 행위입니다.” 그에 따르면 신뢰는 하나의 가치에 매달리는 빡빡한 태도가 아니었다. 신뢰는 양날의 가치, 곧 자유와 법, 운동과 질서를 양립시킬 줄 아는 자세에서 우러나왔다.
그는 이날 공화국에서는 사람들이 비열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공화국이 너무 피로하니 독재가 편하지 않을까 하고 독재 안에 숨어든다면 비열한 도피였다. 관대해야할 때는 관대하자는 제언도 잊지 않았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말은 인간성에 대한 신뢰로 공화국을 신뢰하자는 정치철학이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인이 그처럼 순진했으며 인간성, 신뢰, 공화국 그런 것이 진정 뼈 있는 정치 언어였을까. 그랬다. 그건 세상 풍파에 휩쓸려 부정의를 당해본 사람들만이 토하는 당부였다. 현실이란 얼마나 ‘비루’한지,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제 들밭에 나가고 작업장에서, 사무직에서 종사할 젊은이들을 무방비로 세상에 내보낼 수 없었다.
이 국회의원은 이 돌이킬 수 없는 노동분업 사회에 진입하는 젊은이들이 일하면서 철학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대하고 요청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사회주의가 찬반양론 속에 주시하던 정치인 조레스는 알비 연설을 이렇게 맺었다.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삶이 활기 있고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정치와도 관계없고 사회주의와는 더구나 무관할 것 같은 ‘용기’를 이날의 결어로 들었다. 우선 용기란 침공하고 정복하고 개선하여 의기양양한 무엇이 아니었다. “만약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용기의 표현이라면 그런 인류는 저주받았습니다. 오늘날 용기는 물리적, 도덕적인 모든 시련 앞에서 꺾이지 않고 견디는 것, 끝없는 생의 혼란 속에서 직업을 택하고 어떤 직업이든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파리 고등사범을 나온 당대의 지식인이 그런 혜택을 입지 못한 세상 젊은이들에게 굳이 해야 할 말이었을까. 그랬다. 그는 그 말을 반드시 해야 했다. 그가 10년 후 1914년 7월 31일 파리 몽마르트르 식당에서 암살당했을 때 사회주의권, 노동 진영뿐 아니라 좌우 정치인들과 프랑스인이 애도해 마지않은 것은 자유를 지키며 평화를 파괴하지 않으려는 그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행동이 신뢰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회의감 속에서도 기다릴 것이다
방향을 돌려서 우리나라에서 신뢰도가 높은 직업 집단은 (앞의 조사에 따르면) 단연 의사이다. 곧 과학자 집단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럼 얘기는 간단하네. 국회의원들이 의사나 과학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되지 않겠어. 사실 좌우의 이념적 반목이 심했어도 19세기 유럽 정치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정치와 사회를 과학화하자는 원칙이었다. 그게 뭔데? 우리가 간혹 정치선진화라고 말하는 것과 통하며 그 내용은 사실 어렵지 않다. 말은 정직하고 의정은 정확하고 정밀하게 수행하는 것일 뿐이다. 행정은 물론 정치 비용을 한 푼 허비하지 않는, 감정에 호소하는 대중 동원을 물리치는, 숫자가 민주주의의 관건이지만 만사는 숫자라는 셈법이 아닌 것일 뿐이다.
생각 있는 의원들은 오늘도 고민하리라. 기술과 물질의 이렇게도 거센 변화 속에서 정치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그래서 위원회의 소란 속에서도, 10분의 시간을 보면 가방에 든 책을 꺼내 들고, 안락한 승용차에서도 그 안락함에 지지 않고 긴장하리라. 맬서스의 <인구론>을 필히 다시 봐야 해. 니스벳의 <보수주의>, <만화로 읽는 프랑스 좌파의 역사>도 들여다보아야지.
당신들은 믿을 수 없다는 지탄 속에서는 신뢰가 피어나기 힘들 것이다. 때문에 우리 먼저 신뢰할 대상을 애써 믿기로 한다. 기다리기로 한다. 의회의 갈 길은 멀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의회를 짓누르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착오와 맹신과 경직이 모두 거름되어 지금 같은 혼란상 아닌, 제헌의회 같은 새 의회를 보여 주리라.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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