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의 근본문제: 권력기관 카르텔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다시 떠오른 87년체제 개편론 현황과 전망(2) 87년체제의 다의성이 주는 혼선 개헌과제와 입법과제의 정확한 식별 필요 통치도구에서 통치의 중심이 된 권력기관 권력기관 개혁 없는 제도개혁의 한계 직시해야

지난 2020년 1월2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검찰 간부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를 위해 현충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1월2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검찰 간부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참배를 위해 현충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7년체제 개편론을 논의할 때 87년체제가 도대체 무엇을 지목하는 것인지를 정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개편 대상의 혼란은 개편론에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87년체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를 87년체제의 특징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5년단임 국민직선의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자 행정권의 수반으로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나 사법권을 가지는 법원이나 헌재보다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가지면서 입법·행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대하여 포괄적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87년체제의 본질이고 근본문제라고들 한다. 정부형태 혹은 권력구조와 관련한 헌법제도의 문제를 87년체제의 본질로 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대통령제라는, 행정권의 수반에게 어떤 권한과 의무를 부여할 것인가의 문제 외에도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의 구성이나 국회와 대통령의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거법 및 정당법과 같은 정치관계법, 나아가 권력집중의 결과를 초래하는 권력기관 구성법제를 통털어 87년체제로 넓게 보는 시각도 있다. 5년단임 직선대통령제외에도 헌법사항이 아니라 법률사항인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상대다수대표제로 국회를 구성하다보니 양당제의 극단대결이 심화되는 것이나 민주화이전의 권위주의체제의 통치도구였던 검찰, 경찰, 국가정보기관 등 소위 권력기관을 제대로 민주화하지 못하는 법제가 87년체제 정치구조의 주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87년체제를 헌법적 권력구조 외에 하위법률체계나 민주화에도 변하지 않고 문화지체가 빚어지고 있는 퇴행적 관행체제의 이질적 결합으로 보고 헌법제도보다 입법제도나 정치사회문화의 개혁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필자는 두 번째, 즉 좀 더 넓은 의미의 87년체제론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왔다. 개혁적 성과와 퇴행적 유산이라는 이질적 본질을 동시에 보유한 것으로 87년체제를 바라보는 입장은 87년체제의 근본문제를 첫 번째 관점처럼 헌법상 권력구조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87년체제 개편론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 등에서 87년체제가 반복해서 위기에 직면하는 근본문제라고 보는 시각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나 ‘눈 가리고 코끼리 만지기’식의 오류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87년체제는 대통령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개혁과 같은 헌법적 차원의 개혁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국회 구성과 관련한 선거법이나 정당법의 개혁과 병행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번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의장자문기구를 출범시키면서 이 두 축을 중심으로 헌법개정과 정치개혁의 병행추진을 목표로 한 것은 그동안의 87년체제 개편론의 실패 경험에서 제대로 성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시청 광장 등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 수백만 명이 모여 '호헌 철폐'를 외쳤다 사진=연합뉴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시청 광장 등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 수백만 명이 모여 ‘호헌 철폐’를 외쳤다 사진=연합뉴스

통치도구에서 ‘통치의 중심’이 된 권력기관

그러나, 이처럼 헌법과 정치관계법의 병행개혁으로 추구되는 권력구조 개혁은 87년체제개편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되기에는 태부족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 예컨대, 선거의 공정성이나 사법기관의 독립성 및 중립성은 기본적으로 달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상당하다. 그동안 많은 성취가 있었고 그 성취에 자부심을 느낄 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점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특히 그동안 정치권력이 통치도구로만 이해되어 왔던 이른바 권력기관의 자생성, 혹은 대중적 용례로 권력기관의 조직이기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권력기관은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국가의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집행기관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국가권력 자체의 정당성이 부족하다보니 그 유지를 민주적 정당성이 아니라 권력 자체의 억압적 기술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권위주의 체제의 특징이다. 이런 까닭에 오랜 권위주의 시대를 거쳤던 우리나라에서 권력기관은 법집행권을 오남용하여 정당성이 결여되거나 위헌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기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통용되어 왔다.

민주화는 권력기관의 오명을 순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거악을 척결하고 적폐를 청산하는 건 민주화된 시대에는 법집행기관을 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검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찰, 국민을 향해 한없이 헌신하는 정보기관의 구호가 민주화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그러나 민주화의 역설이랄까, 아이러니랄까, 권력기관이 통치의 도구에서 정의의 사도로 변신하는 조건에 대한 일반적 고민이 부족한 사이, 제대로 된 과거청산 없이 통치도구의 오명을 벗어던지다보니 권력기관 개혁의 구호는 역설적으로 정치의 도구로 권력기관을 장악하려는 시도로 오해받거나 대중적 피로감을 낳고, 심지어는 법집행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반쪽자리 헌법정신에 포획되기 일쑤였다. 법집행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인데, 마치 권력기관은 그 어떤 통제도 불가능한 성역처럼 왜곡된 것이다.

그러므로 도식적일 수 있는 위험성을 감안하고서라도 권력기관의 위상을 중심으로 다시 우리 민주화의 역사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체제는 ‘법치없는 권력만능’의 시대였다. 특히 분단체제를 빌미로 국가정보기관과 경찰의 대공수사부문이 권력의 첨병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기 권력의 근원은 사실적 힘의 정점에 있는 군부였기에 권력만능이라도 권력기관은 통치도구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87년체제의 민주화는 민주화의 역설에 따라 ‘분권없는 법치만능’의 시대를 열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부분적인 과거청산과 3당 합당후 김영삼 대통령의 군부내 하나회의 숙청이후 군부는 권력의 배후로서의 위상을 잃고 군의 정치적 중립은 어느 정도 확립되었다. 그 사이 군부의 공백을 메우면서 권력기관의 위상이 한층 강화되었고, 권력기관 내의 서열관계도 법률전문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검찰이 점차 우위에 서는 시대가 열렸다.

검찰은 통치도구로서의 오명을 과거청산의 주역으로 세탁시키면서 민주화가 진전되면 진전될수록 권력기관 카르텔의 중심으로 위상이 갈수록 높아졌다. 그 정점이 검찰총장 출신으로 검찰을 권력투쟁의 발판으로 삼는 대통령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제왕적 대통령제를 운위하는데, 도식적이지만 본질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은유하자면, 권위주의시대에 절대 권력의 반지를 낀 대통령이 통치의 중심이었고 검찰을 위시한 권력기관 카르텔이 그 수족이었다면, 이제 민주화로 절대반지가 봉인되자 권력기관 카르텔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현실을 대입하자면 지금이 윤석열 정부라고 부르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권력을 배경으로 했고 검찰출신으로 통치의 중심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이 정권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는 이미 못박혀 있지만 권력기관 카르텔이 정권창출의 주요한 변수가 되는 퇴행적 구조는 지속되는 셈이다.

더 이상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 카르텔은 정치권력의 수족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정치권력의 중심이 되어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심지어 정권을 직접 창출할 수도 있는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람만 바뀔 뿐 권력기관과 척을 지고서는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형벌만능주의에 중독된 국가후견주의 사회가 ‘정치의 사법화’의 가장 퇴행적 형태로 등장하여 민주공화제를 권위주의시대의 권력통치시대로 후퇴시키고 있다.

87년체제 개편론의 충분조건인 ‘권력기관 개혁’

대통령이 가지는 입법·행정·사법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권한이 87년체제의 한 단면이지만 그 배후에 권력기관 카르텔이 작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단면이 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민주화시대 재임시 최소한 일부분 제왕적 대통령으로 지목되었던 역대대통령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 것이 과연 누구인가? 흔히들 다음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들 자체가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되는 근본원인이 과연 대통령제 정부형태이기 때문일까? 마치 통치의 도구에 불과한 듯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염불처럼 되뇌이던 검찰을 위시한 권력기관의 카르텔은 아니었던가?

따라서 87년체제 개편론은 당연히 권력기관 카르텔의 도구가 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국회와 법원 및 헌재의 구성과 운영을 더욱 민주적으로 개편하는 헌법개정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더욱 민주적 대응성이 확보되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의 개혁을 위한 입법개혁이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법치만능에 기생하는 권력기관 카르텔을 해체하여 민주적 통제와 사법적 통제하에 두기 위하여 권력기관의 분권화를 더욱 더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분권없는 법치만능’의 오류를 드러낸 87년체제의 한계를 제2의 민주화를 통해 분권화와 민주적 통제가 합리적으로 구축되는 민주적 법치국가를 마련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있다.

글쓴이

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공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에 기초한 시민헌법교육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헌법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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