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리더에 필요한 것은
- 화려한 착시와 창작의 파산 한국 발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무용수를 배출하는 전성기를 맞았으나, 국립발레단은 12년 장기 집권 동안 자체 작품 창작 없이 해외 라이선스 수입에만 안주하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1등 복제 예술’이자 수입 대행사로 전락했다.
- 폐쇄적 조직과 인적 난국 이러한 콘텐츠 빈약은 내부 출신 위주의 폐쇄적인 순혈주의 카르텔과 단원을 예술적 부품으로만 대하는 구시대적 시각에서 기인하며, 결국 행정적 무능과 인사관리 실패, 민간 단체의 혁신을 폄하하는 총체적 위기를 낳았다.
-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단장의 역할 2030 관객이 주도하는 현시점의 새로운 수장은 과거의 화려한 왕관이나 출신 성분을 떠나, 해외 작품의 종속을 끊을 자체 창작 레퍼토리를 설계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축할 냉철한 ‘문화 디자이너이자 예술 전략가’여야 한다.
강수진 체제 12년이 남긴 명암
최근 국립발레단 단장 선임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발레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이렇게 높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세금으로 운영되면서, 국가 최고의 발레단에 대한 논란인 만큼 애정을 품고 이 사태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 무용수 강수진을 모셔온 것은 12년 전의 일이다. 강수진의 장기적인 발레단 운영이 남긴 그늘은 무엇인가. 강 단장의 화려한 조명 뒤에 어떤 문제점이 남았을까.
한국 발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착시’ 속에 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최고 무용수 자리를 거머쥔 박세은을 비롯해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 전준혁,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 등 세계 최고 발레단의 메인 간판들이 한국인들이다.
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비롯한 정교한 영재 교육 덕분에, 지금 한국의 20대 무용수들은 서구 무용수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신체 비율과 가공할 만한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 콩쿠르를 휩쓰는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몸의 언어로만 본다면 대한민국 발레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화려한 조명을 끄고 무대 뒤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국립 단체라는 빛나는 이름 뒤에 숨겨진 낡고 병든 민낯과 맞닥뜨린다.
창작없이 해외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만
가장 뼈아픈 대목은 국립발레단이 대한민국의 발레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얼굴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발레단은 창작 작품 대신 해외 유명 작품을 사 와서 무대에 올리는 ‘라이센스 대행사’로 전락해 있다. 지난 12년간의 장기 집권 체제 동안 우리만의 독창적인 안무작이나 고유한 시그니처 레퍼토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 발레마저도 해외 버전을 그대로 수입해 무대에 올린 탓이다. 안전한 복제에 안주하느라 우리만의 서사를 담은 창작 엔진을 개발할 소중한 기회비용을 탕진한 것이다.
이러한 낙후성과 왜소함은 이웃한 뮤지컬 시장과 비교할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거 한국 뮤지컬 역시 <오페라의 유령> 같은 외국의 대형 작품을 그대로 들여와 조립하는 라이센스 산업기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뮤지컬계는 치열한 자본의 논리 속에서 체질 개선을 감행했고, 오늘날 <프랑켄슈타인>, <마리 앙투와네트> 같은 독창적인 창작 서사(IP)를 개발해 해외로 역수출하는 K-한류 산업으로 진화했다.
반면 연간 150억 원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는 국립발레단은 해마다 단 며칠의 공연을 위해 수억 원의 로열티를 해외 거장 재단에 송금한다. 게다가 그들의 ‘예술적 순혈주의’를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파견되는 해외 스태프들의 특급 체재비와 일당까지 별도로 전액 세금으로 떠받친다.
뮤지컬이 과감한 투자로 ‘자체 작품’을 만들 동안, 국립발레단은 세금의 보살핌 속에서 해외 작품을 들여와 연습하고 세련화하는 안일한 ‘라이선스 예술활동’을 반복해 온 것이다.
카르텔화된 발레예술계, 그리고 인사실패
이러한 국산 콘텐츠의 빈약함은 조직의 폐쇄성에서 기인한다는 비판도 있다. 발레는 고도의 전문 영역이기에 외부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특권의식이 조직 내부에 방어막처럼 팽배해 있다.
다른 문화예술 단체들이 개방적인 소통을 지향할 때, 국립발레단은 철저히 내부 출신과 특정 라인 중심으로만 소통하며 고인 물이 되어가는 폐쇄적 성벽을 쌓아 올렸다. 객관적인 시선과 자정 능력을 상실한 공간 안에서 리더십의 부재는 필연적인 비극을 불렀다.
세계적인 무용수로서의 명성이 조직을 이끄는 행정가이자 예술감독으로서의 능력을 보장하지 않았다. 스타 단장의 권위 뒤에서 발생한 단원에 대한 인사관리 실패와 정서적 방치는 조직의 기본적인 안전망마저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아픈 단면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불투명한 평가 등 내부 잡음이 끊이지 않는 현실은 예술적 성과라는 화려한 장막 뒤에 가려진 행정적 무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더욱이 국립발레단은 ‘국립’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자신들이 최고라는 독단에 빠져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사실 한국 발레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혁신적인 시도와 현대적인 실험은 예산과 인프라를 독점한 국립발레단이 아니라, 척박한 환경에서 피땀 흘리는 민간 전문발레단이 주도해 왔다.
그럼에도 국립 단체는 안전한 수입 작품 재탕에 머물면서 다른 단체들의 예술적 성과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마치 덩치만 큰 대기업이 벤처기업들의 혁신을 폄하하는 꼴이다.
무용수의 예술적 개성과 해석 사라져
이러한 문제의 중심에는 무용수를 ‘예술적 동지’가 아닌 단장의 표현 도구로만 바라보는 19세기식 구시대적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용수 개개인의 예술적 개성과 해석은 무시된 채, 지시하는 동작을 기계처럼 수행하는 부품처럼 다루어진다.
부상을 당해도 대체 가능한 소모품 취급을 받거나 눈밖에 나면 무대 설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구조 속에서 예술가들의 자존감은 짓밟힌다. 결국 지금의 국립발레단은 자체 콘텐츠 개발 없이, 폐쇄적인 인맥 안에서, 부실한 리더십으로 단원들을 방치하며 독점적 지위에만 안주하는 난국에 직면해 있다.
국립발레단의 새로운 도전을 이끌 리더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 단체인 만큼, 새로운 수장에게 요구되는 자격은 과거의 화려한 왕관이나 순혈주의 훈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단장은 직업발레단 출신이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아직도 힘을 받고 있다.
최근 발레예술의 주 관객층은 2030 세대다. 이들은 ‘세계적 발레 수준’은 기본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서사’를 가진 작품을 기대한다. 강수진이라는 ‘아우라’ 그 다음의 정교한 준비를 요구한다.
무대가 간절히 기다리는 국립발레단 리더는 출신 성분을 떠나 이 초일류 인적 자원들을 엮어낼 냉철한 ‘문화 디자이너이자 예술 전략가’이어야 한다. 낡은 복제 공장 대신, 젊은 단원들과 관객이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한국 발레의 백년대계를 새로 디자인할 정교한 예술 대장장이가 필요한 시점이다.
해외 로열티 종속을 끊어낼 자체 창작 엔진을 짤 줄 아는 안목, 도제식 권위주의를 깨고 젊은 단원들이 전력질주할 수 있는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발레라는 고결한 신체 언어를 이 시대 대중의 서사로 명징하게 번역해 낼 줄 아는 소통의 감수성이 와야 한다.
기예가 완벽하게 준비된 지금이야말로 국립발레단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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