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적 국회’ 위해 의원수 늘려야 한다

[기획- 민주주의·리더십 포럼] 의원정수 확대없는 선거개혁, 한계 불보듯 ‘기업과 관료’ 견제에 국회기능 강화해야 감정적 대응보다 이성적 논의 필요하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대기업 총수들이 나와 증언하기 위해 선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대기업 총수들이 나와 증언하기 위해 선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023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는 공동기획으로 [민주주의·리더십 포럼]을 진행합니다. <더 칼럼니스트>는 정치학·법학·언론학·행정학·경제학을 전공하는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통해 월 2회에 걸쳐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소개하여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의식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정개특위, 선거제 개선3안의 관건

국회가 3월 30일 오후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를 구성하고 향후 2주간 지난 22일 정개특위가 의결한 선거제 개편안 3개 안에 대한 토론에 돌입한다. 정개특위의 안은 ①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③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첫 번째 안은 국민의힘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안은 민주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3개안 모두 의원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고정하였다.

이 3개안은 애당초 지난 17일 정개특위의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에서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개선 국회의장 자문위원회가 제안한 안인 ①소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③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3개 안을 ‘결의안’ 형태로 넘긴 것을 대폭 수정한 것이다. 특히 소위의 1‧2번째 안이 의원 정수를 50명 더 늘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을 폐기한 점이 눈에 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의원정수 확대를 둘러싼 자문위와 소위의 안이 공개되자 국민의힘 지도부가 나서서 의원정수 증원 반대를 절대적 조건으로 내건 탓이다.

또한 정개특위 3개 가운데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는 당초 소위의 결의안에 없었다가 새로 추가된 것이고, 대신 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로 했던 소선거구제 2개 안은 현행 선거제도의 비례제 요소에 권역별 의석배분 제도를 도입하면서 1개로 통합된 셈이다.

결론적으로 의원정수 현행 유지와 유력대안으로서의 중대선거구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 정개특위 3개안의 특징이다. 선거제 개혁에 대하여 매우 많고 복잡한 쟁점과 논의가 있지만 이번 전원위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될 정개특위 3개안과 관련한 관건은 의원정수 확대의 문제이다.

그림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블로그
그림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블로그

민주공화제 선거의 기본원리와 비례성의 중요성

선거는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주권 원리에 따라 국가권력을 구성함에 있어 필수적인 대표 선출과정이다. 공정한 제도에 따라 민주적으로 대표가 선출되지 못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권력 전반의 정당성이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선거개혁의 주체는 주권자 국민의 의사이고, 또한 선거개혁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국민이 정치과정에서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 선거제도에 대한 개혁이 기정사실이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이 민주공화제 선거의 기본원칙과 목적인 민주적 대표성과 비례성의 보장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소선거구제에 기반한 상대다수대표제, 즉 선거구에서 1표라도 더 득표한 후보를 당선시키는 선거제도는 너무 많은 유권자의 선택이 의석배분에서 배제되는 ‘사표효과’가 극심해서 민주적 대표성과 비례성이라는 선거의 존재의의를 충족하는데 많이 미흡했던 것이다. 이를 보완한답시고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두었으나 그 의석수가 전체 의석수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여 비례성 개선 효과가 너무 미미하였다.

흔히들 현행 제도를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의 혼합형이라고들 하고, 일반적인 명칭도 준연동형 선거제로 부르곤 하는데 현행 제도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명칭이다. 혼합형이나 연동형이 되려면 비례대표가 지역구대표와 동수이거나 최소한 2분의 1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행 선거제는 비례제가 부분적으로 가미된 변형 다수대표제가 본질이다. 비례보정효과가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를 조금이라도 보정하려는 준연동형의 입법취지는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무력화시켜 버렸다.

이 제도를 개혁하는 성과를 달성하려면 현행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제에 의해 선출되는 의원의 정원과 비율을 상당 부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바로 이 점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빌미로 의도하는 바가 바로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제 개혁의 기본방향을 좌초시키는 것이라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례성이 거세된 현행 제도에서 가장 수혜를 받는 지역기반 거대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번 정개특위의 3개안인 셈이다.

의원정수 확대 반대론의 토대, 감정적 탈정치정서

민주공화제 선거에서 비례성이 이토록 중요한데도 정작 주권자 국민은 왜 거대정당의 방패막이로 스스로 나서고 있는지 즉, 주권자 국민은 왜 의원정수 확대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지를 제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일반 국민의 반대여론은 실증적 논거가 약한 반정치·탈정치적 정치혐오에 기반하고 있다. ‘정쟁만 일삼고 제대로 일도 안하면서 특권만 누리는 국회의원을 50명씩이나 더 늘리는 게 말이 되느냐’는 정치혐오 혹은 정치인혐오의 감정적 대응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감정적 대응 말고 의원 정수를 늘렸을 때의 주권자 국민 혹은 국가적 공익에 도대체 어떤 손해가, 얼마나 생기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뒤에서 검토하듯이 민주공화제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많은 장점이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국민의 여론과는 달리 학계나 전문가들의 의견에선 의원정수 증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전형적으로 여론과 전문가의 의견이 대비되는 영역이 이 의제인 셈이다. 이 의제에서 국민여론이 더 옳은지, 전문가층의 전문적 판단이 더 타당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하는데 목소리를 높이는 무명의 일반 국민들을 뒷배로 삼아 누가 실제로 현행 제도의 수혜를 누리는지를 살피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많이 인용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가 간접적 시사점을 줄 수 있다.

2020년 7월 국회 개원 때 대통령을 향해 구두를 던졌다가 제지당하는 시민.
2020년 7월 국회 개원 때 대통령을 향해 구두를 던졌다가 제지당하는 시민.

의원정수 반대론의 불편한 진실

우선 의원의 의정활동이 활발해질수록 더 골치가 아파지는 집단이나 계층이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과 ‘관료’들이다. 기업은 국정감사나 상임위 활동에서 트집 잡을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덩달아 관리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으니 의원정수 확대가 달가울 리 없다. 관료 또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눈치 보아야 할 상대가 더 늘어나는 것을 환영할 까닭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과 관료가 많은 기여를 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더 강한 민주주의를 불편해 하는 기득권을 구성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원론적으로 보더라도 제4부라고 불리는 언론은 물론,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국가권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행정권을 실제로 움직이는 관료나 사회적 권력체로 진화된 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하는 것을 관료나 기업이 불편해 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공화제에서 견제와 균형을 권력분립의 실질적 내용으로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양한 국민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부류가 있다. 정치권력을 소수계층이 독과점하는 제한민주주의 혹은 ‘엘리트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시민혁명 직후 국민주권론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실질적 투표권은 어리석게 선동당하기 쉽고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기 쉬운 일반 시민 모두에게 인정되지 않는 제한선거가 당연시 되었다. 공동체의 이익을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충분한 나이 많은 남성들 가운데 공동체 운영비용을 감당할 세금부담능력이 있고 공동체의 현안을 다룰 식견을 갖춘 교양시민들이 정치를 전담해야 한다는 제한선거론에 바탕한 엘리트주의가 20세기 전반까지 지배적이었다. 한마디로, 청소년, 여성, 노동자, 사회적 취약계층의 참정권을 부인하는 껍데기뿐인 국민주권이 버젓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20세기 중반이후 전면화되기 시작한 보통민주화의 시대에도 이런 제한민주론의 지독한 엘리트주의는 포퓰리즘 반대의 기치아래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속적으로 촛불로 상징되는 광장정치를 통해 민주화의 자랑스런 역사를 이룩해온 우리나라도 여전히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것이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과도하게 감정적인 정서나 선거제 개혁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민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엘리트주의를 반포퓰리즘으로 포장하고 끊임없이 정치혐오, 정치인혐오를 양산하면서 역설적으로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주체인 국민의 정치참여를 통제하는 제도와 문화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실질적 배후에는 민주공화국에 치명적인 탈정치·반정치의 정치문화와 정치제도를 유지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사실상의 권력과 이익을 독과점하려는 우리 사회 기득권 계층의 공고한 연대가 있다.

의원정수가 더 늘어나게 되면 국민을 대표하여 기업이나 관료의 불법·부당행위를 감시하고 감독해 줄 사람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600조원이 넘어서는 국가재정과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위상으로 날로 높아지면서 국가의 역할이 비약적으로 증대한 현실을 볼 때 의회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국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기본책무를 가진 국회의 역할은 최소한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하고, 그 필요조건은 인구 대표성에 상응하는 의원정수의 확대이다.

의원 1인당 대표하는 인구수가 OECD 평균에 미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OECD 평균은 의원 1인당 대략 10만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 반면, 우리의 경우 5천2백만명 인구에 300명의 국회의원이 있으므로 대략 17만명이 의원 1명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의원정수 반대론에선 이 통계에 대한 반론으로 미국의 사례를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때 활용되는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 미국이 연방국가라는 사실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연방국가인 미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연방상원의원 100명에 하원의원 435명만이 3억 3천만명이 넘는 인구를 대변하는 것처럼 단순 비교하곤 한다. 이 경우 60만명이 넘는 1인당 대표인구가 나온다. 이게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관으로도 분명하다. 실제로 50개의 국가들의 연방체인 미국의 경우 7천명이 넘는 주의회 의원들이 국민을 국가적 과제와 관련하여 대표하고 있다. 주의회 의원들을 통계에 통합하여 비교하면 산술적으로도 대략 4만명당 의원이 1명씩 있는 것이 미국의 실제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미국민들은 4배 정도 더 많이 정치과정에서 대표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인구수를 둔 단순비교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행정부의 규모와 국회의원의 수의 비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역대표성이 강한 현행 선거제도에서 국회의원의 직무에 국가사무보다 지역민원이 상당부분 차지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중앙행정기관만 50개가 넘는 것이 정부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300명으로 이 거대 조직을 기본적으로라도 통제하는 것은 제대로 되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 것이다. 기본적 중앙행정기관만도 20개가 넘는 현실인데(최근의 정부조직법 개편에 따라 2원 19부로 개편되었다), 그에 대응하는 국회의 부처별 상임위는 15~16개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 비교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제대로 국정통제의 역할을 하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의원 정수가 늘어나서 더 늘어나는 비용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절약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도 있고 국민의 사회계층적 다양성 만큼이나 훨씬 다양한 정파들이 의회를 구성하게 되면 지금처럼 정치혐오의 원인이 되는 정략적 의정운영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는 가능성도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비용이 국가재정에서 그리 크게 증가하지 않는 의원정수 50명 더 늘리는 것 때문에 민주적 권력구조로의 개혁이라는 헌정중대사가 발목이 잡히는 것은 정말 불합리한 접근임을 알 수 있다.

종합해보면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상당수 국민의 감정적 탈정치의 정서는 민주공화적 의회운영에 필요한 요소에 대한 이성적 공론을 소홀히 한 결과이고, 실질적으로는 주권자가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것과 같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국회의 전원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정치문화적 아이러니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할 국회의원의 헌법적 의무(제46조 제2항)에 충실하게 이루어져서 민주공화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길 다시 한번 빌어본다.

글쓴이

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공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에 기초한 시민헌법교육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헌법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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