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그런데 사과’는 없다
[이영균의 ‘말이란 말야’] 사회생활에서 사과 제대로 하는 법 어정쩡하거나 변명 담긴 사과는 안돼 자존심 지키며 사과 잘하는 요령도 있어 마지노선 사과, 사과 꼬리자르기 등 배워야
최근 ‘사과’가 화두다. 그래서 이번 편에는 사과를 다뤄볼까 한다. 이른바 ‘사과 잘하는 법’이다.
‘일본의 사과’가 사과로 안들리는 것처럼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사과를 하는 요령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사과를 잘못하면 결과가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들이 많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감정이 없는 사과는 말할 것도 없지만, 미안하다는 생각이 있는데도 표현이 잘못되어서 결과가 나쁜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외교 관계상 명분을 위한 사과의 경우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일본이 과거 일제시대 행위들에 대해서 사과를 할 때 보면 저게 사과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국가의 자존심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일테다. 사과의 메시지는 전하되 사과의 ‘톤 앤 매너’는 전혀 사과가 아닌 것처럼 들린다.
특히 ‘유감이다’ 등의 표현은 사과로 느껴지지 않는다. 유감이라는 말은 내가 기분이 나빠도 쓰는 말이기 때문에 자기 잘못은 아니지만 하여튼 기분이 나쁘다는 뉘앙스로 느껴지는 말이다. 사실 그런 발표나 선언은 진짜 사과가 아니라 그냥 명분상의 외교 행위라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 정부 입장에서는 사과의 메시지가 들어갔다고 자평하고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자위한다. 정치인들끼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만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뭔가 화가 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우리 일상은 이런 외교적인 명분 주고받기가 아니므로 사과를 할 거면 상대가 사과를 받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맞지 않을까?
병철 : 희원아 이번엔 오빠가 정말 잘못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을 삼갔어야 하는 건데 내가 너무 흥분했나봐.
희원 : 맨날 막말하고 그냥 사과만 하면 그만이야? 이게 한두번도 아니고.
병철 : 그게 화가 나면 통제가 안되네. 내가 봐도 한심해. 그런데, 너도 내가 너무 흥분했다 싶으면 자극을 하지 말았어야지.
희원 : 뭐? 내가 잘못했다는거야?
병철 :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너무 흥분했을 때는 조금 참아 달라는 말이야. 하여튼 정말 미안해.
희원 : 됐어. 오빠는 맨날 미안하다고 하고 바뀌질 않으니 계속 만나야 하는건지 모르겠어.
사과의 ‘적’은 자존심...요령 5가지
병철의 사과가 희원에게 사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병철이 사과를 하더라도 자존심은 지키겠다고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사과는 고개를 숙이는 행위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사과를 한다면 그것이 사과로 느껴질 수 있을까? 또한 사과라는 것은 미안하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미안하다’라는 말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으면 사과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사과에 몇 가지 팁이 있다. 우선, 사과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떤 행위나 말이 잘못된 것인지를 표현해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표현이 없이 그냥 미안하다고만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미안한 것인지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사과의 말에 앞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등의 말을 붙이는 것은 진정한 사과로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마지 못해서 사과를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표현은 그 자체로 ‘나는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사과를 할 거면 할 필요가 없다. 정치인들이나 외교상에서 자주 이런 표현이 나오곤 한다. 일상에서는 아주 좋지 않은 사과법이다.
셋째, 인정한 후에는 뭔가 변명을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즉, 뒤에 ‘그런데’, ‘그렇지만’ 등의 표현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잘못을 인정해 놓고, ‘그런데 어쩌고…’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는 표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른바 ‘그런데 사과’는 상대에게 사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넷째, 사과 이후 상대의 반응에 대해서 부정을 하거나 반발하지 말아야 한다. 혹시 상대로부터 과하게 피드백이 와서 ‘울컥’하는 감정이 몰려올 지라도 잠시 억제하고 참을 필요가 있다. 계속 얘기했지만 기왕에 사과를 하려면 자존심은 잠시 눌러 놓는 것이 맞다. 자존심을 세우려면 사과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다섯째, 사과와 동시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화하거나 문제를 방지할 것인지를 언급하는 것이 좋다. 그런 말을 들으면 상대로 하여금 ‘이 사람이 말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변화하려고 하고 있구나’ 하는 신뢰감을 준다. 실제 그 정도의 준비가 없다면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뭔가 변화나 재발 방지책을 만들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병철 : 희원아. 이번엔 오빠가 정말 잘못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을 삼갔어야 하는 건데 내가 너무 흥분했나봐.
희원 : 맨날 막말하고 그냥 사과만 하면 그만이야? 이게 한두번도 아니고.
병철 : 그게 화가 나면 통제가 안되네. 내가 봐도 한심해.
희원 : 제발 다시는 이러지 마. 또 이러면 우리 정말 끝이야.
병철 : (욱 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래. 이번만 용서해줘. 앞으로는 흥분했을 때 ‘조심하겠다고 약속했지?’ 하고 스스로한테 상기시킬게.
희원 : 정말? 그럼 이번에는 믿어 볼게. 대신 맛있는 거 사줘.
이걸 보고 나는 절대 못해! 자존심 상해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사과를 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럼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하여튼, 일은 벌어졌고 관계도 이어가야겠고 자존심 죽이는 사과는 못하겠고… 그렇다면 한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다. 정말 진심이 느껴질 만한 편지 한 통과 함께 누가 봐도 ‘아! 정말 사과의 마음이 있구나’ 하고 느껴질 만큼 엄청난 선물을 해라. 그게 가격이 엄청나게 높아서건, 정성이 엄청나서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상대가 깜짝 놀라서 감동의 눈물을 터뜨릴 정도면 된다. 이것도 자신 없다면 그냥 고개 숙여 사과하든지…

자존심 지키려면 ‘마지노선 사과’를
장호 : 어찌 됐건 결론적으로는 유감스럽게 됐다.
호식 : 도대체 잘했다는거요, 잘못했다는거요?
장호 : 아, 유감이라니까.
호식 : 뭐가 유감인데요?
장호 : 아니, 난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이었는데 술이 과했나 보네. 결론적으로 네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호식 : 남 한대 치고 유감이다… 이러면 그만인 거요? 그리고 술 취하면 막말 해도 되는 거고?
장호 : 뭐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 선배가 고갤 숙이고 들어가면 받아줘야지.
호식 : 아니, 언제 고개를 숙이셨소? 미안한 것 같지도 않구만.
장호 : 사실 니 잘못도 있잖냐. 술 취했다 싶으면 빨리 보냈어야지. 그럼 내가 이런 실수 안했지.
호식 : 참나, 끝까지 남 탓이구만. 이제 서로 연락하지 맙시다.
장호 : 아이고…
장호가 술이 과해서 호식에게 충고를 한답시고 심한 말을 했다. 저 대화는 그 다음날의 통화 내용. 아마도 장호는 서로 관계를 이어가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과를 못하고 있다. 자존심과 사과… 참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이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지만 사과는 해야겠고… 느껴지듯이 저런 사과를 받고 마음을 열 사람이 있을까? 물론 평소에 무척이나 뻣뻣했던 사람이라면 저 정도면 많이 숙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받기 어려운 수준의 사과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사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장호 : 내가 할 말이 없다. 미안하게 됐다.
호식 : 뭐가 미안한데요?
장호 : 난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인데 술이 너무 과했어.
호식 : 남 한대 치고 미안하다… 이러면 그만인거요? 그리고 술 취하면 막말 해도 되는 거고?
장호 : (꾹 참으며) 내가 왜 그랬나 몰라. 내가 덕이 부족했다.
호식 : 다음부터는 조심하쇼.
장호 : (한번 더 참으며) 그래. 조심하마.
호식 : 일단 이번에는 넘어 가겠소. 다신 안그러겠다 하니…
장호 : 고맙네.
이 정도가 자존심을 지키면서 사과하는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 설명했던 ‘제대로 사과하는 법’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효과가 떨어지겠지만 자존심 때문에 아무래도 제대로 된 사과는 못하겠다면 최소한의 선에서 사과를 하는, 이른바 ‘마지노선 사과’를 해보라 권한다.
사과할 때도 ‘꼬리자르기’를 잘해야
‘마지노선 사과’에 대해서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 보자.
첫째, 아무리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해도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어찌됐건 잘못했다’라든지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같은 말은 절대로 꺼내선 안된다. 이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표현이다.
둘째, 기왕 사과를 할거면 유감 보다는 미안하다라고 하는 것이 낫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유감이라는 표현은 사과로 못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최소한도 ‘미안하다’는 표현은 아끼지 말자.
셋째, 사과 마지노선의 핵심 사안이다. 상대 발언에 ‘욱’하는 감정이 들더라도 두 세번 정도는 어쩔 수 없이 ‘꾹’ 참아야 한다. 두 세번 정도를 안 참을거면 도대체 사과는 왜 하는 것인가. 다만 그 정도를 참았는데도 상대가 계속 도발을 해 오면 사실상 사과를 받아 줄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판단해도 된다.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차라리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는 편이 낫다.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표현이 몇 가지가 있다. “내가 할 말이 없다”, “무조건 잘못했다” 등의 ‘닥치고 잘못했다’류의 표현과 “내가 덕이 부족했다”, “왜 그랬나 모르겠다” 등의 ‘자기 꼬리 자르기’가 그것이다.
‘닥치고 잘못했다’는 것은 강한 표현을 내뱉음으로써 스스로의 민망함을 좀 줄여준다. 하기 싫은 말을 할 때 큰 소리로 외쳐 버리는 행위와 유사하다. 어쨌든 상대 입장에서는 잘못했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니 써서 문제될 것은 없다. “내가 덕이 부족했다”는 일종의 꼬리 자르기다. 스스로 자신의 ‘덕’, ‘내공’, ‘생각’ 탓을 함으로써 내 전체를 비난하지 않고 일부만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인 것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나를 분리해서 “왜 그랬나 모르겠다”며 과거의 나를 비난하는 것도 일종의 ‘꼬리 자르기’다. 온전한 자기를 내려 놓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상대 입장에서는 어차피 본인 탓을 하는 것이니 트집 잡기가 쉽지 않다.
사과. 어떤 이들은 이를 ‘굴복’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굴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언가 사과할 일이 생겼다는 것은 상대가 나로 인해, 혹은 내 조직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사과란 내가 입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남에게 상처를 입혔으니 치유해줘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상대와 나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공감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과의 용기를 내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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