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에도 유행이 있을까?
[장 PD의 클래식 한담(閑談)] 조성진 같은 혜성들, 클래식 유행에 큰 역할 연주자의 독창적 해석...재탄생하는 음악 비발디 ‘사계’ 유행시킨 ‘이 무지치’ 대표적 영화·김연아 배경음악도 한때 열렬한 인기
영화·콩쿠르 우승 같은 화제성이 만들어 낸 유행곡들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예능 프로에 나온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보게 되었다. 2015년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의 최종 우승자로, 우승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단박에 클래식계의 샛별이 된 피아니스트. 그를 TV 예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피아노 앞에서의 진지함과는 또 다른 인간적 면모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지켜봤다.
‘공연 후에는 기름진 음식으로 피로를 푼다. 취미로 운동은, 특히 팔과 손을 많이 쓰는 구기종목은 생각도 못한다. 그래서 피아노 외에 이렇다 할 취미도 아직 만들지 못했다. 갑작스런 (대타) 연주 제의로 꿈에 그리던 빈 필하모닉과 협연하게 되었을 때, 라흐마니노프를 밤새 연습하고, 비행기로 대륙을 건너가 뉴욕의 카네기홀 무대에서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코피까지 터지긴 했지만, 너무 행복했다’는 얘기.
개그맨 진행자들의 다소 과장된 반응에 “여긴 리액션이 상당히 좋군요!”라며 딴 세상 같은 예능 녹화현장에 신기해하고, 이 프로의 마지막 관문으로 출연자를 다소 긴장케 하는 퀴즈 제안에 “퀴즈는 사양하겠습니다”라며 선을 긋는 절제의 모습까지 스물아홉 살 유명 피아니스트로서의 성취와 고충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클래식은 유행음악, 대중음악과 달리 크게 유행을 타지는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항상 고여있는 물처럼 변화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유행의 흐름은 주로 연주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가까운 예로 앞서 말한 조성진의 국제콩쿠르 우승 같은 것도 있다. 그는 콩쿠르 우승 이후 국내외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갖고, 이곳저곳에서의 초청 독주회, 또 음반발매 등으로 ‘조성진 붐’을 일으키며, 그 인기가 아직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조성진에 이어 재작년 ‘반 클라이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의 경우도 대단한 선풍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임윤찬은 인문학적 소양을 드러낸 인터뷰로도 칭송이 자자했는데, 국내 클래식 공연계에서 한동안은 조성진, 임윤찬 신드롬이 이어질 것이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의 해석이 클래식 음악 새롭게 한다
얼핏 클래식 음악은 ‘고답적인 것’으로 보인다. 주로 200, 300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이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 작품들이 계속 연주되고 사랑받고 있는 연유는 무엇일까.
‘음악의 3요소’를 창작, 연주, 감상이라고 하는데, 이 세 가지 중 작곡과 감상을 매개하는 연주는 창작에서 감상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도 모른다. 연주자는 악보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숙련된 테크닉 위에 자신만의 미학적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그 해석은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야 공감과 인정을 받는다. 악보는 오래된 박제품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탄생될 생물 같은 것이다. 같은 곡일지라도 연주자, 지휘자에 따라, 악단에 따라 다 다르게 들리는 이유다. ‘전통에 충실한’, ‘개성 넘치는 도발’, ‘피아노계의 이단아’ 등등 다양한 수사의 새로운 연주자와 경향이 등장하여 고인물 같은 클래식 음악계에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유행도 만들어 낸다.
이 무지치가 유행시킨 <사계>
전후 유럽음악계에는 바로크 음악의 재발견이라는 하나의 흐름이 있었다. 고음악(古音樂), 원전(原典)악기 단체 등 바로크 전문 악단이 속속 등장하던 시기에 로마의 체칠리아 음악원 출신들이 모여 만든 단체가 ‘이 무지치(I Musici : 음악가들, 1952년)’.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올바른 연주를 목적으로 결성된 ‘이 무지치’가 1959년에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는 이듬해 음반 대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의 정통성을 대표하는 이 무지치는 신선한 감각과 풍부한 음악성, 균질성을 갖춘 단원들의 높은 기량, 선율을 마음껏 노래하는 이탈리아적 여유를 갖고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어 냄으로써 전 세계 청중들을 매료시켰고, 이들의 <사계>는 인기 레퍼토리가 되어, 오늘날에도 클래식 선호 조사에서 늘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사계>의 인기엔 이 무지치의 공로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연주가들이 주도하는 유행이 있는가 하면, 영화나 드라마 등에 삽입되어 인기 곡목으로 유행을 탄 레퍼토리도 있다. 국제대회 우승 콤플렉스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음악계뿐 아니라, 스포츠계에서의 국제대회 우승 이슈에 편승한 클래식 곡목의 유행도 있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세계선수권 대회, 동계올림픽에서 우승했을 때, 그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곡들이 ‘김연아 클래식’이라는 타이틀로 음반으로 발매되었을 정도였는데, ‘죽음의 무도’, ‘타이스 명상곡’, ‘세헤라자데’ 같은 곡을 모은 일종의 명곡 선집(選集)음반이 꽤 많이 판매되었고, 이 곡들은 당시 라디오 신청곡으로 쇄도하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유행한 클래식 곡목들
영화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클래식 곡목 역시 음악방송에 신청곡으로 자주 등장하면서 유행곡, 유명곡이 되곤 했다. 70년대 말 한국영화 중흥기에 제작된 <겨울여자> 중에 나온 ‘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라디오를 통해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베르디의 <나부코>라는 오페라는 몰랐어도 ‘노예들의 합창’은 친숙한 멜로디가 되었다. 영화 <엘비라 마디건>은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의 2악장을 유행시킨 영화다. 필자도 학창시절에 이 영화를 보고는 극 중 애잔한 멜로디가 흐르던 전원의 풍경과 주인공들의 비극적 결말의 장면을 한동안 잊을 수 없었다. 모차르트의 멜로디는 주인공들의 불륜 행각조차도 아름답게 그려내는 효과가 있었다. 이후 이 협주곡의 2악장은 경음악으로 편곡되는 등 거의 유행가 선율처럼 익숙해졌다.
그 외에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삽입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협주곡의 2악장, 국내 영화와 헐리우드 영화(아이즈와이드샷)에 나와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재즈모음곡 2번 중) 등 많은 곡이 유행을 탔다.
클래식FM에서는 몇 년마다 소위 인기 클래식 설문조사를 해오고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같은 타이틀을 달고 조사 결과를 특집으로 방송하기도 한다. 오래된 기억으로는 1980년대의 조사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 당시엔 부동의 1위였다. 2위는 비발디의 <사계>. 그 순위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세기가 바뀌자 베토벤의 ‘황제협주곡’,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비발디의 <사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등이 순위에 올랐다. 작곡가로는 베토벤, 장르로는 피아노협주곡이 상위권을 차지한 이유는 당시 유행한 ‘피아노의 숲’이라든가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영화 덕분이었다.
이러한 인기곡 설문조사의 역사는 바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흐 생전, 라이프치히의 한 신문에서 조사한 인기 작곡가의 순위는 이렇다. 1위 텔레만, 2위 헨델... 과연 우리의 바흐는 몇 위였을까? 순위에는 들었을까? 당시 1위를 차지한 텔레만(Georg Phillipp Telemann, 1681~1767)은 바로크 후기 독일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인물로, 기네스북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작품(3000곡 넘게 쓴 것으로 추정)을 남긴 작곡가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텔레만의 음악을 찾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한때의 인기, 유행이라는 것은 이리 허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대에 와서 클래식의 창작 분야는 대중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세기의 클래식, 예술음악의 경향이 감상자보다는 창작자의 예술관과 미학에 매몰됨으로써 대중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갔기 때문이다. 음악대중에게는 매혹적인 유행음악이 넘쳐나게 되었으니, 현대의 예술음악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현대음악이 어렵다는 선입견, 대중으로부터의 소외로 공연계 역시 과거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에 대한 선호와 집중이 고착되어가고 있다. 결국, 이 분야에서 작은 유행이나마 주도하는 것은 연주자이거나 음악 외적 현상에 의한 것 같아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아참, 라이프치히 시절의 인기음악가, 바흐의 순위는 ‘7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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