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함’에 숨겨진 비밀

[이영균의 ‘말이란 말야’] ‘진솔하다’와 ‘솔직하다’의 차이는? 우린 듣는 사람 입장에서 진실할까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진실할까

tvN 주말드라마 '일타 스캔들' 한 장면. 회자가 진정성을 갖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대화를 풀어나갈 때, 부드러운 분위기는 물론 서로간에 신뢰로 발전하기도 한다.
tvN 주말드라마 '일타 스캔들' 한 장면. 회자가 진정성을 갖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 대화를 풀어나갈 때, 부드러운 분위기는 물론 서로간에 신뢰로 발전하기도 한다.
  • 나 혹시 그때 수업을 끊으실 때 있는 그대로 말씀하신 것 아닌가요? 수업 종료가 제 시간에 잘 안돼서 그렇다는 등등?
  • 강사 맞아요. 솔직하게 얘기했죠. 그게 문제였을까요?
  • 나 :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그 여자 분은 기분이 나빴을 거에요. 강사와 수강생 관계를 떠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잡담도 많이 하고 했었는데, 수업이 잘 안 끝나서 그만둔다고 하니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을 거에요. 그 여자분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죠.
  • 강사 아이구… 그럼 이번에는 어째야 할까요?
  • 나 오가는 시간이 2시간이나 걸린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으시는게 좋겠어요. 다른 수업 시간이 잘 조정이 안되고 몸도 너무 힘들고 해서 사실 몇 달 전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래도 의리 때문에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 했는데 이제는 한계에 부딪혔다 이렇게... 그게 사실이잖아요. 상대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 본인의 미안함을 상쇄시키는 거죠. 오가는 시간이 2시간이나 걸려서 그만두겠다고 하면 단순히 실리적인 이유 때문에 그만하려 한다고 생각할 거에요. 감정적인 부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죠.

최근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담과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논란 때문에 ‘솔직함’ vs ‘국가 이익’, 혹은 ‘털어놓음’과 ‘국가 기밀’의 논쟁이 한창이다. 무언가 이슈가 터지고 이에 대한 대응 발표가 나오면 그 발표 내용의 사실성, 진정성 등에 관해 다시 논쟁이 이어진다. 답답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솔직함과 진솔함, 진정성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외교 관계, 국가 관계 등은 논의할 자신도, 자격도 없으니 대신 일상 생활에서 사람들 대화에서의 진솔함을 다뤄보려 한다. 이를 외교 차원, 국가 차원으로 확대 적용시키는 것은 독자의 역량과 몫에 맡긴다.

흔히 ‘진정성 있게,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들 한다. 더불어 진솔하다는 것을 솔직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솔하게 말한답시고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구분없이 다 털어놓고는 ‘진솔하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솔하다는 것과 솔직하다는 것은 꽤 다른 말이다. 도대체 뭐가?

사전적 정의로는 ‘진솔하다’가 ‘진실되고 솔직하다’로 풀이되니 ‘솔직하다’가 ‘진솔하다’의 필요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즉, 진솔하려면 일단은 솔직해야 하는 것으로 들린다. 뭐 정의상으로는 그 말이 맞다. 진솔=진실+솔직이니까.

SBS '돌아와요 아저씨'의 스틸 컷. 화자 입장에서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하더라도 청자는 그 솔직함에 오히려 상처를 받고 서운해하기 한다.
SBS ‘돌아와요 아저씨’의 스틸 컷. 화자 입장에서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하더라도 청자는 그 솔직함에 오히려 상처를 받고 서운해하기 한다.

솔직했는데 왜 화를 낼까

그러나 ‘진솔하다’와 ‘솔직하다’는 말에는 ‘진실’에 관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청자 중심’인가, ‘화자 중심’인가의 차이이다. 전자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 진실하다고 느껴지는 것이고 후자는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화가 목적에 맞게 쓰여지려면 타겟, 즉 청자를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은 말은 운이 좋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진실되게 느껴질 수 없다. 진실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공감을 얻을 수도 없을 터이다.

몇 년 전 내가 1대 1 중국어 수업을 받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중국어 강사가 수업 후에 괴로움을 토로했다. 수업 하나를 종료해야겠는데 ‘그만하자’고 말하기가 매우 두렵다는 것이다. 지역이 경기도의 먼 지역이어서 오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몸도 피곤하고 다른 수업에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오랫동안 수업을 해온 분이고 해서 도저히 말을 못하겠다고 했다. 아니 ‘잘’ 말하면 되지 그게 뭐 그렇게 어렵냐고 물었더니 과거의 아픈 기억을 털어놨다.

역시 오랜 기간 수업을 했던 한 여성분이 있었는데 이 분과 수업을 하면 잡담이 길어져서 제 시간에 끝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덕분에 이어지는 다른 수업 시작 시간에 늦곤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만 둔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만두겠다고 하자 그분이 갑자기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고 태도도 냉랭해져서 남은 2주 동안 정말 괴로운 분위기로 수업을 진행했다고. 그 트라우마가 2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남았다고 했다. 이런 트라우마 때문에 수업을 끊을 때마다 너무나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들은 이후의 대화다.

상대가 ‘나의 진정성’을 느끼는게 중요하다

있는 사실이라고 해서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말하는 입장에서는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가 이해해 줄 거라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이나 감정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진솔함이다. 내가 진정성을 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진정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 말은 잘못 전달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듣는 사람의 상태나 예상 반응을 먼저 고려하자. 그것이 이성적인 부분이든 감성적인 부분이든 말이다. 말을 하기 전에 반드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려해 보라. 그리고 상대가 ‘진실하다’ 느낄 것이라 예상되는 내용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후담. 이후 중국어 강사에게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얘기하기도 전에 에이전시가 어떻게 얘기를 전달했는지 수업이 남았는데도 더 이상 오지 말라고 연락이 왔단다. 아마도 이동에 2시간이 걸리는 등등 강사가 에이전시한테 말했던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겠지. 오래 수업을 진행한 사이라 인사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에이전시가 이후 개인적으로 연락하면 안된다고 했다며 속상해 했다. 나는 강사에게 에이전시가 뭐라 하든 정중하게 문자라도 건네는 것이 좋겠다고 코칭했다. 그 속상함, 아쉬움을 품고 또 몇 년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 수 있으니까.

연우 : 현정아, 우리 내일 같이 영화 보기로 한 거 나 안될 것 같아. 너무 미안해~
현정 : 왜? 무슨 일 있어?
연우 : 어. 한동안 못봤던 친구가 갑자기 보자고 해서. 우리야 매일 보니까 며칠 내로 날 다시 잡자.
현정 : 어, 그래. 그럼 그러자. 낼 즐겁게 보내.
연우 :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이 대화 속 현정은 어떤 기분일까? 연우가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니 충분히 이해를 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른 친구 만나겠다고 나와의 약속을 깼으니 연우에게 있어 다른 친구가 더 중요한 사람이고 본인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설마 누가 이렇게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해?” 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해를 돕고자 이렇게 간략하게 군더더기 다 빼고 구성했으니까 비현실적으로 보일 뿐, 실제 대화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살을 붙이면 현실적으로 보일까?

연우 : 현정아, 우리 내일 같이 영화 보기로 한 거 나 안될 것 같아. 너무 미안해~ 어쩌지?
현정 : 왜? 무슨 일 있어?
연우 : 어. 내가 지난 번에 얘기한 친구 있잖아. 어릴 때 친했다가 최근 몇 년간 이상하게 연락이 끊겼다고 한 친구, 나영이라고… 걔가 갑자기 연락이 왔어. 내일 보자네. 우리야 매일 보니까 며칠 내로 날 다시 잡자.
현정 : 어, 그래. 그럼 그러자. 낼 즐겁게 보내.
연우 :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대신 우리 영화 보는 날 내가 밥 살께.
현정 : 아싸~ 좋았어.

청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자

어떤가? 이 정도면 현실적인가? 그러나 핵심 내용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현정은 과연 대화 이후 기분이 좋았을까? 밥 사준다고 해서? 물론 아까 대화 보다는 현정 기분이 조금은 나았을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화자 입장에서의 솔직함이 청자 입장에서의 진정성으로 이어지지 않는 법이다. 이제는 청자의 입장을 고려한 대화로 변형시켜 보자.

연우 : 현정아, 우리 내일 같이 영화 보기로 한 거 어떨 지 모르겠어.
현정 : 왜? 무슨 일 있어?
연우 : 어. 내가 지난 번에 얘기한 친구 있잖아. 어릴 때 친했다가 최근 몇 년간 이상하게 연락이 끊겼다고 한 친구, 나영이라고… 걔가 갑자기 연락이 왔어. 공교롭게 내일 우리 동네로 온다네. 내가 선약 있다고 다른 날로 잡자고 했더니 내일 아니면 한동안 어려운가봐. 어쩌지?
현정 :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우리야 매일 보니까 날 다시 잡으면 되지. 그 친구 만나.
연우 : 너랑 약속이 먼저인데, 어떻게 그래? 그럼 우리 같이 보는 건 어떨까?
현정 : 에이, 오랜만에 봐서 니네 할 말도 많을텐데… 그냥 둘이 즐겁게 보내.
연우 : 그게 나을까? 미안하다. 배려해 줘서 고마워. 대신 우리 영화 보는 날 내가 밥 살께.
현정 : 아싸~ 좋았어.

이번 대화에서의 연우는 아마도 이미 옛 친구 나영과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을 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을 현정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 놓지 않는다. 마치 고민 중인 상황인 것으로 열어 놓고 의견을 묻고 심지어 함께 만나자고까지 제안을 한다. 사실 같이 만나도 상관은 없겠지만 아마도 현정이 그냥 둘이 보라고 할 것을 예상하고 한 말일 것이다. 현정은 자신의 감정을 고려한 연우의 배려를 충분히 느꼈을 것이고 다른 친구가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적 변수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할 것이다. 청자 입장에서의 진솔함이란 이런 것이다. 똑같은 상황과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청자의 입장과 감정을 고려하여 표현한다.

이제 마무리의 시점에서 ‘진솔함’을 이렇게 다시 정의하면 좋을 듯하다.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되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상대가 자신을 배려하면서 진정성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 우리 일상에서 진정성 있고 솔직한 대화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나 편하자고 여과 없이 그대로 ‘뱉어’ 내지는 말자.

글쓴이

이영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필자인 이영균은 홍보 전문가로 25년간 사람 만나는 일을 해왔다. 약 4만 명의 사람들과 깊고 얕은 만남을 지속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기술, 관계의 기술을 습득했다. 만나온 사람들은 주로 언론인, 기업인, 방송인, 연예인들이다. CJ E&M, 오리온 등에서 홍보팀장 및 홍보임원(상무)으로 재직했다. 현재는 ‘에브라임 커뮤니케이션’의 대표 컨설턴트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 홍보>(2015), <제대로 통하는 소셜마케팅 7가지 법칙>(2011), <미르몽의 원더풀 트위터 라이프>(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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