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잖이 어려운 “하와유? 아임 파인 땡큐”
[황진영의 어떤 미국] 미국인의 ‘긍정 강박’때문에 인사법의 ‘기본값’ 때문에 알듯 말듯 한 미국인들의 인사법
1994년 3월, 중학교에 입학해 영어를 처음 배웠다. 교과서 맨 첫 단원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대화를 죽어라고 외웠던 기억이 난다.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혼자서 읽고, 짝과 대화 하듯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외웠다. 이 대화를 외울 때만 해도 내가 미국의 수도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너, 나 알아? 근데 왜 친한 척?
미국 생활 8년 차다. 영어에 능통해지지는 못했지만, “How are you?”보다는 “How have you been?”이나 “How is it going (with you)?”에 익숙해졌다. 대답도 술술 나온다. 중학교 때 외웠던 그대로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하지는 않는다. 일단, 내 기분이 어떤지와는 상관없이 얼굴에 ‘미소’를 장착한다. 이어서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Doing) great, how about you?”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적절한 대답이다.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났건 간에.
미국에 처음 와서 ESL 수업을 들을 때였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ESL 선생님에게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은 매일 새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본인의 경험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시간은 모두 진도를 나갈 때보다 훨씬 반짝이는 눈을 하고 들었다. 한 친구가 한 질문에 모두 박수를 쳤다. 길을 걷다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반가운 얼굴로 “How have you been?”이라고 물어서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리 봐도 그 길엔 다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Do you know me?”라고 되물었더니 그 사람이 아주 불쾌한 얼굴을 하고 지나갔다는 거다.
선생님은 웃으며 미국인의 ‘오지랖’스러운 인사 문화에 대해 알려주고, 대처법도 알려줬다. “Good, good” 하며 상대방의 제스처와 레벨을 맞춰 응대하면 된다는 거였다. 손을 들어 인사하는 사람에게는 손을 들어주고, 손을 흔드는 사람에게는 흔들어주고, 미소의 레벨도, 반가움의 정도도 비슷하게 맞춰주라는 말을 들으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럼 씹어? 손도 흔드는데
몇 년이나 살았다고 이제 나도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이 공식을 자연스레 따라 한다. 얼마 전 출근길에 동네에서 개를 산책시키던 사람이 손을 들어 인사하기에 나도 손을 들고 반가운 감정을 ‘회신’했다. 운전석에 있던 남편이 물었다.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근데 왜 인사해?”
“그럼 씹어? 손까지 흔드는데?”
ESL 선생님이 말한 대로 상대방의 인사 정도에 비례해서 ‘잘 지냅니다’라는 메시지를 돌려주면 일단 본전이다. 격하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에게 비슷한 정도의 인사를 되돌려 주다가 가끔 황당해하는 얼굴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때도 있다. 이 공식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나머지 한국에 가면 ‘도를 아십니까’의 주요 공략 대상이 된다는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피식 웃게 되기도 한다.
길을 걸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적절한 반응을 돌려줬을 뿐인데, 어느새 내 손에는 전단지가 한 움큼 들려있기도 하고, 서명 운동의 취지를 설명하는 분들에게 붙잡혀 있기도 하다. ‘아 맞다, 여기 한국이지’를 되뇌며 다음에 만나는 사람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실패로 돌아갈 때가 많지만.

진짜 안부를 말하면 안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잘 지낸다는 안부 인사를 돌려주는 것’은 그나마 쉽다. 자주 만나는 친구나 동료가 안부를 물을 때 실수를 하기가 쉽다. ‘친한 동료’ zone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한국에서처럼 나의 ‘진짜 안부’를 전했을 때 ‘그러지 말걸’ 하고 후회하며 돌아서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매일 만나는 옆 부서 직원에게 매번 “잘 지내”라고 똑같은 말을 하기도 그렇고, 오늘따라 기분이 별로이기도 해서 “So, so”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인사와 함께 지나치려던 발길을 멈추고, 나를 정면으로 마주 본 뒤, 무엇이 문제인지를 묻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나는 ‘내 기분을 별로로 만든 상황’을 살펴보고 그중 이 직원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거리를 찾은 다음 그 말을 영어로 번역해 전달해야 한다. 내가 서툰 영어로 상황을 떠듬거리는 순간 상대방의 얼굴에는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야 하는 긴박함이 스쳐 지나간다.
정중하게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며, 이런 안부를 듣게 되어 유감이라며, 미안한 얼굴을 하고 돌아서는, 어색하고 개운치 않은 상황을 몇 번 겪고 난 후 참여하고 있던 언어교환 프로그램의 원어민 봉사자들에게 이런 상황에서의 대처법에 물어본 적이 있다. 나이, 성별, 직업을 가리지 않고 나의 ‘원어민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진영, 그건 미국 문화야. 우리는 긍정 강박을 갖고 있거든.”
기본적인 미국인의 안부 묻기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에서 안부를 물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혹은 별일 없이) 잘 지낸다’라는 말을 기본값으로 기대한다는 거였다. 기본값을 무시하고 나의 고충을 털어놓는 것은 듣는 이에게 ‘나의 고충을 해결해주거나, 적어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말을 듣고 지난 대화의 장면들을 떠올려보니 과연 그랬다. “응 잘 지내”로 대화가 마무리되는 찰나의 안부 말고, 엘리베이터나 탕비실처럼 일정 시간을 함께 머물러야 하는 경우, 그럴 때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지를 잘 몰라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옛 기억. “How are you?”에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답하는 건 조금은 맞고, 조금은 틀린 거였다. ‘잘 지낸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기에 ‘fine’은 뭔가 부족하다. Good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Doing great!”이라며 얼굴 가득 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를 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이어지는 문장, “Thank you”는 역시 당연히 필요한 문장이다. 안부를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나도 너의 안부를 묻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And you?”라고 물어 너와 나의 안부를 차례로 묻고 답하며 대화가 마무리되는 것이 ‘기본적인 미국의 안부 묻기’의 공식이다.
‘몰라서 그랬다’라고 하기엔 억울한 면도 있다. 애초에 “잘 지내?”라는 질문에 “응 잘 지내”라고 답한 내게 심화 주제의 질문을 던진 건 그들이다. 남편은? 아이는? 새로 이사한 집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새로 온 팀원은? 심화 주제를 설명하다가 보면 당연히 “Awesome great”하지 않은 부분이 생각나기 마련이지만, 미진하고 힘든 부분을 안부를 주고받는 대화에서 굳이 꺼내놓을 필요는 없다. 어떤 심화 주제가 던져져도, 내가 이 안부 대화에 ‘무척 흥미가 있으며 생활 구석구석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다’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내게 안부를 물은 사람은 이 대화를 쉽사리 끝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인의 ‘긍정 강박’은 누군가 무엇을 건네줄 때 ‘좋게 거절하는 법’에서도 드러난다. 중학교 때 배운 것처럼 “No thanks.”라고 대답하면 얼마나 친절하게 그 말을 건넸는지와는 별도로 상대방은 당신을 무례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수의 원어민 반응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확인을 받은 ‘무례하게 들릴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안전한 대답은 “I’m good.” 으로 시작해서 “Thank you.” 이후 권하는 것을 먹지 못하는 합당한 이유로 끝나야 한다.
“잘 지내지?”에 “어휴 죽겠어요” 혹은 “맨날 똑같죠 뭐”로 대답하던 버릇이 아직 남아있는 나는 가끔 긍정이 기본값인 미국 안부 묻기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내가 너무 낯설다. 피곤함에 절어 있는 걸 뻔히 보면서도 나의 ‘잘 지냄’을 굳이 확인하려고 하는 그 의도가 뭔지 되묻고 싶을 때도 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다.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미국 생활을 오래 한 한국인들이다.
바닥 카펫 교체 공사로 2주 동안 재택근무를 명 받았지만, 다음 주 행사 준비를 위해 출근했다가 옆 부서에 근무하는 한국인 선배님을 만났다. “잘 지내? 힘들지?”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꽁꽁 숨기고 있던 진심이 튀어나왔다. “아휴 죽겠네요”로 시작된 대화는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서 시키는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로 이어져 “아, 놔 빨리 은퇴해야지”까지 튀었다가, “언제 한 번 점심 같이해요”, “그래, 내가 Calendar invitation 보낼게”로 끝났다.
실제로 선배님이 ‘언제’ 점심 초대장을 보낼지는 잘 모른다. 다음에 만나면 우리는 “맞다, 우리 밥 먹기로 했었는데”라며 서로 미안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묵은 숨을 몰아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묵은 감정을 나누고 나면, 다시 또 기본 공식에 따라 얼굴에 미소를 띠며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낸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될 테니까.

나의 잘 지냄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서로 안심이 되는 미국, 어디 힘든 점은 없는지를 살피는 한국, 두 문화의 ‘안부 묻기’의 기본값은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본심, 상대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서로 통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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