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H권에서 살아도 그리운 한국음식

[황진영의 어떤 미국] 한식을 먹으며, 한글로 된 책을 보며, 한국어로 수다를 떨며 마음을 달랜다

미국 뉴욕에 있는 한국 식당중 한 곳.
미국 뉴욕에 있는 한국 식당중 한 곳.

뜨뜻한 뚝배기 국 한그릇

한국에서 해외 출장을 다닐 때, 굳이 한국 음식점을 찾는 ‘아재 상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매일 먹는 김치찌개와 소주를 굳이 해외 출장지까지 와서 먹어야 하나? 라고 마음 속으로만 투덜거리며 묵묵히 그들 앞에 수저를 놓고, 맥주잔에 소주를 채우고, 맥주를 따라 소맥을 만들어내곤 했었다.

아이와 함께 셋이서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유학생 가족으로 살아가며, 그 뜨끈한 국물을 찾아대던 ‘아재 상사’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나 차디찬 바닥에 라디에이터 바람만 조금 도는, 뼈가 시려오는 가을이 되면 뜨거운 뚝배기에 담긴 빠알간 국물을 나도 모르게 찾게 되었다.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몸 안에 누가 모닥불을 피운 듯 온기가 피어오르는 느낌. 아, 그런 느낌이 그리웠을 수도 있겠구나.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는 그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H 마트에서 울다』에서 “음식은 엄마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라고 말했다. ‘엄마표 집밥’이 주는 위안은 만국 공통의 정서라 할 수 있겠지만, 한국 엄마들이 음식에 담아 보내는 사랑은, 어쩐지 찡한 데가 있다.

타지에 사는 딸을 보러 가는 엄마들은 가방 속에 옷보다 먹거리를 가득 채우곤 한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살게 된 후 3년 차에 엄마가 한국서 오셨는데, 엄마의 가방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이건, 언니 시댁에서 보내온 고사리, 이건 파주 아줌마가 만든 집된장, 이건 영천 시장 할머니가 일일이 까준 더덕, 끊임없이 나오는 꽁꽁 포장된 비닐봉지를 보며 나는 “뭐 이런걸 싸 왔어”라며 타박을 했다.

배우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를 찍으며 자신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 엄마가 가방에 몰래 숨겨왔던 한국 배를 한 조각씩 나눠먹으며 눈물 흘렸던 시절을 회상했다고 말했다. 미국서 지금이야 떡을 구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쫀득한 식감을 선호하지 않는 미국 생활 중 한국식 떡이 그리워 일본식 찹쌀가루인 ‘모치코’ 가루를 견과류와 섞어 오븐에 구워낸 모치코 찹쌀 파이는, 어쩌면 엄마가 직접 다녀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음식이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만들어 먹는 한국 음식

미국이 내가 첫 해외 생활을 시작한 곳은 아니었지만, ‘엄마’로서 시작하는 첫 번째 타국살이이긴 했다. 어떻게 하면 미국 마트에서 파는 재료로 조금이라도 한식스러운 음식들을 만들 수 있을까를 매일 고민했다. 제육볶음을 하려면 pork shoulder(목심)를 사야 하고, 장조림을 하려면 flank(설도)를 사야 하고, 자주 팔지 않는 shaved beef(얇게 썬 불고기감 고기)가 매대에 보이면 불고깃감으로 무조건 집어들어야 했다.

매일매일 쌓이는 먹거리에 대한 영어 표현을 정리해두곤 했다. 미국 마트에서 한 통에 5달러가 넘는 배추와 단무지를 만드는 일본식 Daikon 무를 사다가 김치를 만들기도 했다. 동양 식품을 파는 가게가 있기는 했지만, 물건의 회전이 느렸기에 늘 먼지가 쌓인 한국 식품을 보며 아쉬워 했다. 시장에서 파는 갓 튀겨진 따끈한 오뎅이 먹고 싶어 생선 살을 사다가 전분 가루를 섞어 튀겨내기도 했다. 기름이 튀어 엉망이 되어버린 부엌을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한국인들은 어쩌다 한 번씩 ‘H마트’가 있는 대도시에 다녀온다고 했다. 가서 한국식당에서 밥도 먹고, 덥수룩해진 머리도 다듬고 온다는 얘기를 듣고는 우리도 가자고 남편을 부추겼다. 편도 세 시간 거리를 달려 센터빌 쇼핑센터로 향했다.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고는 H마트에 들어섰다. 40파운드짜리 쌀을 사고, 참외를 사고, 미국 마트에서 한 통에 5달러 하는 배추가 열 통도 넘게 든 박스가 9.99달러라며 환호성을 지르며 ‘박스 떼기’를 해 와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잘 다듬어진, 굽기만 하면 될 정도로 포장된 목살을 사와 알 배추에 쌈을 싸 먹곤 했다. 몇 달에 한 번 느낄 수 있는 사치스러운 하루였다.

미국내 최대 한국 슈퍼마켓인 H마트의 내부 전경.
미국내 최대 한국 슈퍼마켓인 H마트의 내부 전경.

‘한국 마트’가 얼마나 소중한 지

대도시인 워싱턴에 있는 직장에 입사하게 되며 자연스레 우리의 고민은 DMV(워싱턴Washington DC에 근접한 메릴랜드Maryland 주, 버지니아Virginia 주를 한 번에 이르는 말)중 어디에 집을 구할 것인지로 향했다. 한국마트 장을 보러 한나절을 투자해서 오가던 한인 타운이 여러 군데 형성되어있는 노던 버지니아 (Northern Virginia: NOVA)에 정착하게 되면서 이제 우리도 ‘H권(H 마트 가까이에 산다는 뜻)’에 입성했다고 환호했다. 이젠 집에서 10분 거리에도 H마트가 있고, 후발주자인 Lotte Plaza, 프랜차이즈가 아닌 마트까지 합하면 10개가 넘는 한국 마트가 있다. 먼 거리를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니 신선 식품도, 아이스크림도 언제든 살 수 있게 됐다. 코로나로 인해 밀키트 배달이 유행되며 한식 반찬 배달업체들도 생겨났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의 ‘최애’ 아이스크림은 ‘조스바’다. 미국 마트에서 파는 Popsicle과는 뭔가 다르다나. 하긴 필자도 미국 마트에서 파는 2갤런 짜리 바닐라 아이스크림보다는 투게더나 엑설런트가 더 끌린다. 가끔 한국인 직원들이 모일 때면 노란색 맥심 커피믹스를 가져가 나눠주기도 한다. 카페라테에 설탕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다방 커피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재외 동포’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 음식에 대한 접근권에 따라 나뉘기도 한다. 한국 음식을 맛보려면 최소 다섯 시간에서 열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곳에 사는 분들에게 “한국 음식이 그리워요”라고 말하는 게 미안해질 때도 있다. 그런데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내 안에 존재한다.

작년에 한국에 다녀오며 아들은 한국 가서 꼭 채워야 할 리스트가 하나 생겼다. 서울 할머니가 미국 손주에게 타 줬던 핫초코 ‘미떼’가 그립다는 거다. 아이가 좋아했다며 몇 개 가져가라는 엄마에게 “엄마, 이런 거 우리 동네 H마트 가면 다 팔아, 안 가져가도 돼”라며 손사래를 쳤는데, 집에 와서 동네 마트를 아무리 뒤져도 핫초코 ‘미떼’는 보이지 않았다. “어? 분명히 본 것 같았는데, 왜 없지?”라며 멋쩍은 목소리로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내게 아들은 씩 웃어 보이며 가방 안에 꼬깃꼬깃하게 눌린 ‘미떼’ 세 봉지를 꺼내 보였다.

호기롭게 소리치지 말 걸, 타박하지 말걸, 주는 대로 받아올 걸 하며 아이에게 다음 한국 방문 땐 꼭 ‘미떼’를 많이 사주겠다고 약속하며 유튜브에서 “찬 바람 불 땐 핫초코 미떼”를 외치는 광고 모음 영상을 보았다. 엄마의 사랑보다 몇 배는 진하다는 할머니의 손주 사랑까지 마다하지는 말아야지.

한달 뒤엔 추석이다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계속해서 미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생활하던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는 그녀에게 약 대신 한국 음식을 실컷 먹으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했다. 한동안 봉인되었던 한식을 먹으며, 한글로 된 책을 보며, 한국어로 수다를 떨며 구멍이 났던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라는 그녀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돌았다.

미국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근처에 놀러 오면 “그 동네 없는 게 뭐니?”라고 묻곤한다. 한국식 고깃집에 데려갈 때도 있고, ‘스끼다시(밑반찬)’가 많이 나오는 한국식 일식집에 갈 때도 있다. 스푼 말고 숟가락으로 가득 뜬 흰 밥을 떠 넣는 모습을 보며, 눈 앞을 가득 채운 반찬을 싹싹 비우고선 “이모님, 여기 콩나물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하면, 뼈가 시렸던 기억 속 빈 공간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잠시나마 식구가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한달여가 지나면 추석이다.

글쓴이

황진영 워싱턴 칼럼니스트

황진영 워싱턴 칼럼니스트는 20대에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며 성장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공공기관에서 국제협력을 담당하였고, 이제는 미국의 금융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좁혀가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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