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미국에서 ‘능력주의’는 어떤 가치일까
[황진영의 어떤 미국] 미 대법원, 적극적 우대정책 ‘위헌’ 자신의 노력 강변하는 흑인 학생의 말 “피부색이 합격 도장 찍어준 것 아냐” 노력하는 이들을 우위에 두는 ‘능력주의’
‘적극적 우대정책’ 위헌 판결
지난 6월말, 미 연방 대법원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연합(Students for Fair Admissions: SFFA)’이 하버드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상대로 제기한 위헌 청구에서이들 대학이 ‘인종’을 입시 과정의 한 축으로 활용한 것이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의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SFFA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판결문에 쓰인 표현 중 흥미로운 문구가 있었다.
“대학 입시는 제로섬 게임이다. 일부 지원자에게 주어지지만, 다른 지원자에게 주어지지 않는 혜택은 누군가에게는 ‘유리함’을 선점하게 하고, 이 ‘유리함’은 혜택 받지 못하는 자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으로 작용하게 된다.(College admissions are zerosum, and a benefit provided to some applicants but not to others necessarily advantages the former at the expense of the latter)”
이 판결에 대해 하버드 대학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요점은 세 가지다.
①학문적 우수성을 위해서는 다양성과 차이가 필수적이다.
②복잡한 세계의 지도자를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한 학생들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 과정을 결정하는 구체적인 방법 역시 중요하다.
③오랜 기간 동안 닫혀있었던 이들에게도 문을 열어주는 곳, 부모 또는 조부모들이 꿈꿀 수 없었던 꿈을 이룰 기회를 열어주는 장소로서 대학이 존재해야 한다.
하버드 대학의 입장문은 어떤 의미일까.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지만 대학에서 다양한 집단을 구성하는 것은 중요하고, 그 집단을 구성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가치에 의해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해석된다.
미국 교육의 바탕이 되는 두가지 가치
미국의 교육, 그중에서도 교육제도의 흐름에 대해 살펴보게 되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두 가지 표현이 있다. ‘기회의 땅(land of opportunity)’과 ‘능력주의(Meritocracy)’다. 정치, 종교, 인종, 성별과 무관하게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는 인식은 미국 사회 전반을 흐르는 American Dream의 근간이 된다. Dream이라는 단어 때문일까, 현실에서는 언제나 그 꿈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는가가 문제다.
어느 사회나 경쟁은 존재하고, 대학 교육의 가치가 남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미국은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서는 명문대에 입학하는지의 여부가 향후의 직업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결정한다. 소위 ‘잘 나가는 회사’는 특정 학교 졸업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법정 드라마 <Suits>의 배경이 되는 한 미국 로펌의 경우, 대놓고 하버드 로스쿨 졸업생만을 채용한다고 공공연하게 언급한다. 공공 영역에서도 ‘명문대’ 졸업생이 프리미엄을 가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학생은, 학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원보다 언제나 많다. 어떤 학생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는 것이 입시 정책의 핵심이다. 명문대를 졸업한 학생은 사회 각계에서 리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 학교의 입시 정책은 언제나 주목을 받아왔다.
논란이 된 ‘적극적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은 1961년 존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무차별(non-discrimination)’을 목표로 하는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인종과 무관한 고용기회를 보장하려는 취지에서 대학 입시에도 반영됐다. 그러나 적극적 우대정책은 실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역차별’을 조장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법적 분쟁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능력주의’ 바탕하에 차별 해소를
‘역차별’에 대한 반발을 고려해서였을까. ‘적극적 우대정책’의 시행에서 강조된 점은 특정 인종의 일정 비율 선발(quota)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소수인종의 고용기회를 늘리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을 관통하는 ‘능력주의’를 거스르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러나 법정분쟁은 이번 연방 대법원의 판결 이전에도 입시 과정에서 ‘적극적 우대정책’을 금지하는 판결이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워싱턴 등 3개 주를 시작으로 하여 아리조나, 조지아, 미시건, 네브라스카, 뉴햄프셔 및 오클라호마 등 9개 주로 확산되는 추세로 변했다. 판결 이후 각 대학에서 적극적 우대정책의 수혜 그룹(under representative group)의 비율이 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 결과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대학원에서 입시와 적극적 우대정책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 앉게 되면 필자는 말을 아끼고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려 애썼다. 미국 공교육도, 미국의 대학입시도 체험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 지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토론은 “적극적 우대조치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해당 정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흘러가곤 했다.
‘내 노력을 폄하하지 말라”는 학생의 항변
정책의 수혜자 그룹인 흑인, 히스패닉 학생들은 “적극적 우대조치 때문에 내가 이 학교에 입학하는 데 쏟아부은 노력이 폄하된다”고 불평했고, 해당 정책으로 인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룹의 구성원인 백인과 아시아 학생들은 “이 정책으로 우리가 양보한 자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방향으로 시행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입시도, 채용도 선발 과정의 대략적 개요만이 공개되고 합격의 이유도, 불합격의 이유도 정확하게 고지되지 않는 만큼 학생들의 생각이 얼마만큼의 리얼리티를 반영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1960년대 적극적 우대정책 시행 이래 대학이 이 정책의 기본 취지를 충분히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이러한 생각이 2023년 연방 대법원 판결문에도 반영된 것이다. 대학들이 개인의 정체성을 평가함에 있어 개인이 이루어낸 성취나 습득한 기술이나 교훈 대신 ‘단지 피부색’만을 보고 있었다는 판결문의 문구는 세미나 도중 한숨을 푹 내쉬며 내뱉은 한 학생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OO대학에 다니는 흑인이라고 해서, 내 입학 서류에 합격 도장을 찍게 만든 게 내 피부색이 전부는 아니야. 나도 공부를 할 만큼 했고, 입시를 위해 죽도록 노력했단 말이야”라고 토로하던 그녀 앞에서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위헌 판결후 동양계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은 ‘적극적 우대정책’에서의 역할이 ‘수혜자’에서 ‘피해자’로 극적으로 반전된 그룹이 아닐까 싶다. 인종 문제를 논할 때는 백인과 대척되는 유색인종의 일부로 묶이지만, 입시 등 선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백인과 함께 묶인다. 히스패닉,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과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우세 그룹‘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명확히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평가를 내려야 할 때, 우리의 편향된 생각이 극명하게 드러나곤 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 인생을 걸 각오로 애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려 하는 사람들이 모인 미국에서, 누군가가 잡은 기회를 ‘쉽게 차지했다’고 폄하하는 것은, 기회의 땅을 지배하는 법칙인 ‘능력주의’를 너무 간과한 건 아닐까.
글 앞에서 언급한 하버드 대학의 입장문은 하버드를 거쳐간 모든 이들에게,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적극적 우대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도, 비판하는 사람도 ‘공짜로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 ‘애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기회의 땅’을 아우르는 법칙인 ‘능력주의’를 강조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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