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잘하는 법
[이영균이 ‘말이란 말야’] 거짓말 잘하는 법이 과연 있을까 거짓말 고수의 5단계...나는 어디에 거짓말의 대가는 대체로 ‘혹독하다’
주식 시장에서 SG증권 사태에 이어 또 한번의 다수 종목 하한가의 사건이 일어났다. 이른바 5종목 하한가 사태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과 검찰은 한 주식 온라인카페 운영자를 지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관련 보도에서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 지목 당한 온라인카페 운영자가 실명으로, 그것도 모자이크 하지 않은 얼굴로 각종 뉴스 등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언론과 언론 관련법에 대해서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법원의 허가 없이 피의자, 아니 아직 피의자 신분도 되기 전 인물의 실명과 얼굴이 공개가 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보도가 이뤄졌다면 그건 아마도 본인이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의 억울한 상황과 본인은 죄가 없음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본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진실로 보이도록 만드는 하나의 언론 대응 기법이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뉴스 인터뷰를 통해 발언하고 있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저 사람이 진짜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저 카페 운영자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대마불사’의 원리를 이용하는 거짓말의 고수인 것일까? 만약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본인은 매우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 사건의 사실은 무엇이고, 또한 진실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영원히 알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일이 한둘이랴. 이제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거짓말’이 화두로 떠오른 김에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뤄보자.
우선 고백부터 한다. 나는 제목에서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잘하는 법이라는 제목이 거짓말이다. 오랜 시간 나름대로 연구해 본 결과, 거짓말은 상당 부분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거짓말이 잘 간파되는 스타일이다.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 요령을 익혔음에도 거짓말을 잘 못한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외에도 지켜보면 볼수록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느낌이 더욱더 강해진다. 그러니 단언컨대 우리가 거짓말의 요령을 배운다 해도 갑자기 거짓말 실력이 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같은 ‘범인’, 이른바 ‘머글’들도 적어도 ‘거짓말의 수법’을 알아둘 필요는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에 속지 않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거짓말 바보
현희 : 제발 제 말 좀 믿어주세요. 정말로 어제 리포트를 다 작성하고 잤는데, 파일이 날라가 버렸어요. 정말입니다.
승헌 :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지난 번에도 똑같은 핑계를 대더니… 자네 교수를 바보로 아나?
현희 : 사실 지난 번에는 거짓말이었는데, 이번에는 진짜입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승헌 : 뭐? 지난 번에는 거짓말이었다고? 좋아. 이번에는 믿어주지. 그러나 지난 번에 거짓말을 했으니 자네는 F학점이네.
현희 : 헉! ㅠㅠ
‘거짓말 바보’의 유형이다. 같은 내용으로 반복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대화 중에 보면 ‘정말이다’, ‘믿어 달라’ 등의 말들을 남발하고 있는데, 이는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사실을 얘기해도 거짓말처럼 들린다. ‘믿어 달라’는 것은 상대가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들은 상대방 역시 믿지 않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인지부조화’를 방지하기 위함인데,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믿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등의 말로 상대방의 생각을 흔들어 놓는 것이 낫다. 굳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줄 이유가 있을까? 어쨌든 ‘믿어 달라’는 류의 말은 ‘거짓말 바보’들이 구사할 어구라는 것만 기억해 두자.
거짓말 하수
현희 : 교수님, 어제 학교 앞 커피숍에서 제 노트북을 도둑 맞았습니다. 경찰에도 신고를 하고 커피숍 CCTV도 확인하고 했는데, 아직 범인을 못잡았습니다.
승헌 : 아이고, 그게 정말인가? 어쩌나?
현희 : 미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덕분에 리포트도 제출을 못하게 됐습니다. 며칠만 시간을 주시면 꼭 다시 작성해서 제출하겠습니다.
승헌 : 뭐? 자네 혹시 거짓말 하는 것 아닌가?
현희 : 아이고 제가 감히 교수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학교 앞 커피숍이라 확인하시면 금방 들통날 텐데요…
승헌 : (의심스럽지만) 일단 알겠네. 이틀 줄 테니 다시 작성해서 제출하게.
‘거짓말 하수’의 수법이다. 거짓말을 하되 스케일 크게 해서 상대로 하여금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상대가 거짓 여부를 확인하고자 하면 확인이 가능할 것이고 그만큼 리스크가 큰 거짓말 수법이다. 여기서도 승헌은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치밀한 사람이라면 실제 확인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거짓말을 성공시킬 가능성은 ‘거짓말 바보’ 보다 커졌지만 여전히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거짓말 하수’의 수법이라 명명했다.
거짓말 중수
현희 : 교수님 이것 좀 보십시오.
승헌 : 노트북이 왜? 무슨 문제가 있나?
현희 : 바이러스에 걸린 건지 이유를 모르겠는데 먹통이 돼 버렸습니다.
승헌 : 아이고 어쩌다가?
현희 : 어젯밤부터 갑자기 이렇게 됐습니다. 리포트 거의 다 썼는데, 너무 참담합니다.
승헌 : 다 쓴 건 맞아?
현희 : 어휴, 제가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이렇게 노트북을 직접 보여 드리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승헌 : 한 이틀 주면 다시 작성 가능하겠나?
현희 : 네. 최대한 빨리 작성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노트북이 이렇게 망가졌으니 PC방에서 작업하겠습니다.
‘거짓말 중수’의 수법이다. 사실과 거짓을 섞어서 거짓말도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수법이다. 고장 난 노트북을 구해와야 한다는 어려움은 있겠지만 눈앞에서 고장 난 노트북을 본 교수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실제 이런 방법은 우리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관찰된다. 명확한 사실 속에 거짓 내용을 슬쩍 끼워 넣어 놓으면 상대가 전체를 사실로 믿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수법으로 사실 부분을 증명해 줄 증언자를 미리 만들어 놓는 방법도 있다. 위 사례라면 해당 노트북이 현희의 것이라는 것을 증언해 줄 조교가 되겠다.(물론 현희는 본인의 진짜 노트북과 같은 모델의 노트북을 준비한 상황이다.) 이때 거짓말 중수는 증언자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부탁하지 않는다. 그랬다가 증언자 연기가 미숙해서 오히려 거짓말이 발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증언자가 사실로 믿는 부분만 증언시키는 것이다. 이 수법은 자주 보이는 수법이고 꽤 잘 통하는 방법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특히 유의해야 하겠다.
거짓말 고수
현희 : 교수님, 어젯밤에 작성 중이던 리포트 파일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승헌 : 아이고 자네 평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쩌다가?
현희 : 모르겠습니다. 컴퓨터 문제지만 어쨌든 백업을 받아 놓지 않고 작업한 제 잘못이 큽니다.
승헌 : 한 이틀 시간을 더 줄 테니 다시 작성하게. 힘내고.
현희 : 감사합니다, 교수님.
‘거짓말 고수’의 수법이다. 이게 뭐야? 라고 생각하시는 독자도 있겠다. 아까 ‘거짓말 바보’ 사례와 뭐가 다르냐고 물을 수도 있다. 너무 당당해서 넘어가는 건가? 설마… 여기서 승헌 교수의 반응을 보면 뭔가 다름을 엿볼 수가 있다. 그렇다. 여기서의 현희는 평소에 거짓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친구인 것이다. 그러니 한번 거짓말을 해도 이를 믿는다. 물론 그만큼 평소 승헌 교수와 현희는 자주 보고 자주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을 것이다.
거짓말의 고수들은 평소 거짓말을 자주 하지 않는다. 한번의 결정적인 거짓말을 위해서 평상시 ‘진실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는 진짜 사기꾼들이 쓰는 수법인데 100번의 말 중 한번 정도 거짓말을 섞어 놓으면 누가 이를 간파하랴. 그러니 평소 전혀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확률이 드문 이야기를 한다면 ‘이 사람이 혹시 거짓말 고수는 아닐까’ 하고 한번쯤은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지갑이나 통장에 영향이 없을지 확인해 보라는 말이다.
거짓말 초고수
현희 : (온통 충혈된 눈으로) 교수님, 이거 뭐라고 설명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승헌 : 자네 몰골이 왜 이래? 무슨 일 있나?
현희 : 간밤에 작업 중이던 리포트 파일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작업해 보려고 밤을 샜는데 완성을 못했습니다.
승헌 :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어? 어쩌지?
현희 : 백업을 안해놓은 제 잘못이 큽니다. 처분을 달게 받겠습니다.
승헌 : 고의도 아니고 실수 한 걸 어쩌겠나. 시간을 좀 더 줄 테니 최대한 빨리 작성해서 제출하게. 일단 잠 좀 자고 와. 자네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니네.
현희 : (울먹이며)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거짓말 초고수’의 행태다. 일종의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인데, 연기에 뛰어난 사람들이 구사하는 방법으로 진짜 진위를 가려내기 어려운 수법이다. 실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자들은 스스로 거짓을 사실이라 믿고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사이비 교주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자기 자신이 정말 신적인 존재라고 믿는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데 남이 그것을 어떻게 간파하랴. 이런 경우는 정말 특수한 경우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마주칠 가능성이 있으니 알아둘 필요는 있겠다.
그렇지만 거짓말 한 대가는
거짓말의 수법을 늘어놓아 봤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누구나 부지불식간에 거짓말을 가려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보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훨씬 더 강해서 얼굴 표정과 손짓, 몸짓 등에서 본능적으로 상대의 진실을 읽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본능에 귀를 기울여 잘 관찰하면 대부분의 거짓말을 간파할 수 있다.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은 위험하다. 위에서 언급한 거짓말의 수법은 간파하는 용도로만 알고 있어야지 이를 함부로 써먹으려 했다가는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윤미 : 도대체 어젯밤에 왜 밤새 연락이 안됐어? 미치는 줄 알았어.
형준 : 아! 어제 내가 휴대폰 충전을 안해놓고 초저녁부터 잤어. 배터리가 없었나봐. 미안해.
윤미 : 뭐? 진짜야?
형준 : 그럼! 우리 엄마한테 물어봐.(사실은 어머니가 초저녁부터 주무셨고, 형준은 밤늦게 외출했다.)
윤미 : 거짓말 하지마. 전화가 하도 안돼서 내가 어젯 밤에 형준씨 집에 찾아 갔었어. 형준씨 방 창문으로 봤더니 없던데?
형준 : (당황스러우나 태연하게) 아이고… 나 어제 거실에서 잤어. 사실 요즘 불면증이 있어서 수면제를 몇 알 먹고 잤더니 인기척도 못느꼈나 보다. 진짜 미안하네.
윤미 : 수면제를 먹고 잤다구?
형준 : 어. 내가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았잖아. 얘기했지? 그래서 불면증이 생겼나봐.(메소드 연기) 휴… 요즘 정말 사는 게 뭔지 모르겠어.
윤미 : 그래… 자기 요즘 힘들었지? 이해해.
형준 : (환희를 느끼며, ‘예스!’) 이해해 주니까 고마워. 역시 윤미 밖에 없어.
윤미 : 앞으로도 스트레스 안받는 편안한 인생 기원할게.
형준 : 응? 뭐라고?(답 없이 전화가 끊어진다.) 뭐지?
(윤미로부터 문자. 형준이 클럽에서 다른 여자랑 끌어 안고 춤을 추고 있는 사진이다)
윤미 : (문자) 어젯밤에 상민이가 보낸 사진이다. 이 거짓말쟁이 나쁜 놈아! 어쩌나 보려고 믿어 주는 척 했더니 정말 가관이다. 너랑은 여기까지인 듯.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잘 살아라!
얘기했다. 거짓말의 대가는 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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