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논쟁, ‘킬러 문항’ 봉쇄가 답 아니다
노태우 ·이명박 정부가 변질시킨 수능시험 대학 다닐 능력 평가 대신 당락 결정 도구로 ‘킬러 문항’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 이해해야 민주시민 성장은 뒷전, 입시만 챙기는 현 구조 수능 개선으로 안돼...’학벌주의’ 고치려 나서야
최근 교육부장관이 ’공교육 과정에서 벗어난 수능문제 출제 배제‘라는 발언을 윤석열 대통령이 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수능을 둘러싼 논쟁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자신의 교육관과 연계하여 갑론을박을 이어갑니다.
수능시험의 설계에서 변질의 과정
수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준말입니다. 대학에 진학하여 학습할 수 있는 소양이 갖춰져 있는 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이름입니다. 수능은 노태우 정부의 교육정책자문회의에서 대학입학 적성검사 개발로 만들어졌습니다. 고교 과정에서 배운 교과목의 단순 암기식 지식을 묻는 학력고사 성적 만으로 대입이 결정되는 입시 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컸기 때문입니다. 수능은 1994학년도 대입에 처음 시작되었고 올해까지 40년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능은 학력(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할 수 있는 논리력과 사고능력을 측정하고자 설계된 시험제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수능은 대학입학을 위한 1차 시험의 형태로 설계되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시험과목도 수리와 언어 영역으로만 치를 계획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신입생을 실제로 선발할 때에는 대학별로 일정 수준의 수능 성적을 받은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학력평가를 시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능시험을 도입할 단계에 이르자 수리와 언어영역 이외 교과목 담당 교사들과 관련 분야 관계자들의 반발이 컸고, 결국 과학, 사회 및 영어로 출제 영역이 갑자기 확대되어 버렸습니다. 학문이기주의에 정권이 항복해 버렸던 겁니다. 이런 행태는 교육과정개편 과정에서도 항상 되풀이됩니다. 학습량을 줄이려고 초·중·고 과정의 학습내용 일부를 빼려고 하면 교육 과정에서 배제되는 영역의 학회 원로들이 강하게 반발합니다. 그러면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됩니다.
여기에 덧붙여서 대학은 이 수능시험 성적을 당락 결정의 자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정권에서도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대학별 시험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3불(不) 정책’이라는 말을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여 입학, 대학 본고사, 고교 등급제의 3가지는 불허한다’는 것이 공고한 교육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수능은 대학입시 당락을 결정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수능은 학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간단히 변질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노무현 정권에서 도입된 전문대학원 입시제도에서도 되풀이되었습니다. 로스쿨, 의∙치∙약학전문대학원 적성시험으로 고안된 시험(언어, 추리논증, 논술)이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성적으로 둔갑하였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실업계 고교생들의 대학입시 문호를 연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직업탐구 과목이 수능으로 편입되었고, 제2외국어도 수능 교과로 들어갔습니다. 애당초 설계와 실제 용도가 완전히 달라져버렸으니 황당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 공부를 할 만한 능력을 얼마나 갖췄는지를 1차적으로 검증하려 설계된 제도가 대학입시 당락을 결정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수능은 형식만 남고 실상은 학력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애초 설계대로였다면 절대평가로 운영되어야 했겠지만, 입시 시험이 되는 바람에 수험생을 성적 순으로 줄을 세워야하는 엄격한 상대평가 제도가 되었습니다.
수능에 제기되는 문제점과 불가피성
우선 수능이 출제되는 과정을 살펴보아야 이번에 수능에 제기된 문제점의 진위에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능시험 문제는 출제위원(교사와 대학교수 또는 국립연구소 연구원으로 구성)들이 출제를 담당하고, 고교 현직교사들로 구성된 1, 2차 검토위원단 및 검토자문단(대학교수나 국립연구소 연구원)이 문제의 오류 여부, 교육과정 준수 여부, 난이도를 집중 검토하여 피드백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만들어냅니다.
수능의 문항 제작에 20일 정도 걸립니다. 먼저 출제 위원들이 문항 4개 정도를 초벌구이 수준으로 만들어 제시합니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별로 소요되지 않습니다. 검토단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문항을 다듬어가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교육과정을 준수한 문항이어야 한다는 점은 불문율 중의 불문율입니다.
교육 과정을 준수한 문항이어도 학교에 공급된 다양한 교과서의 대부분에서 다룬 내용이 아니면 검토 위원들이 출제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검토를 맡은 선생님들 입장에서도 학생들이 수능에 출제된 내용을 학교에서 다뤄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출제에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 출제 위원은 다시 새로운 문항을 만들어야 합니다.
출제 위원들이 감당해야 할 큰 짐은 또 하나 남아있는데, 그것은 난이도 조절 과정입니다. 정말로 지난한 과정입니다. 수능시험은 천차만별의 학력차를 가진 수험생들을 성적별로 줄을 세워야하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교과목별로 9개 등급에 펑크가 나지 않도록 난이도를 세밀하게 조절해야합니다. 펑크가 나면 대학입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니까요. 사람이 이걸 해낸다는 것은 예술 내지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번에 수능에 제기된 2가지 문제를 살펴볼까요?
첫 번째는 ’공교육과정에서 벗어난 수능문제 출제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것은 수능출제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런 지적이 나올 이유조차 없습니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는 나갈 수 없는 구조입니다. 거기에 EBS연계가 더해져서 학생들에게 익숙한 문항이 출제됩니다. 수능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문항이 되어버렸습니다. 적어도 수능이라면 고교 과정에서 배운 지식을 종합해서 설계된 상황에 답을 찾아가는 문항이어야 하는데, 눈에 익숙한 문항으로 수능시험을 친다는 것은 ‘형용모순’입니다.
두 번째는 킬러문항(이하, 초고난도 문항이라 지칭) 배제의 문제입니다. 수능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수험생들을 등급에 펑크가 나지 않도록 서열을 지워줘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시험입니다. 수능시험은 각종 자격증 시험처럼 학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평가해주는 용도가 아닙니다. 수험생들을 성적에 따라서 서열을 매겨야 하는 용도의 시험입니다. 그래서 등급을 가르는 용도로 사용되는 문항이 필요합니다. 1등급과 2등급을 가르는 문항, 그것을 초고난도 문항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수년 전에 생물Ⅱ와 국어 비문학 문항(지구중력 관련)이 너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이후로 최근에는 설령 등급 구분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초고난도 문항은 출제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진 것으로 압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문항은 있으니, 그것이 초고난도 문항이라고 우긴다면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
개선의 방향은 어디로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아무리 지적해도 부족합니다. 우선 초중고교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대부분의 비중을 두고서 운영된다는 사실 자체가 해외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병폐입니다. 학교에서 건실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에 필요한 교육은 하지 않고, 입시교과목 일변도로 편성하여 운영하는 현실은 개탄할 문제입니다. 이러한 병폐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각해진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병폐를 수능제도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전쟁터가 되어버린 입시과열은, 대학 간 및 학과 간 서열화가 지나치게 첨예하다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서열화는 대학 졸업 후에 갖게 될 직업 간에 존재하는 직업안정성과 보상의 큰 차이에서 만들어집니다. 학벌주의 말입니다. 이 문제를 완화하지 않고서 입시제도 변경으로 해답을 찾으려한다면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튼튼한 나무를 키우려면 뿌리가 튼실해지도록 토양을 개선해야합니다. 나뭇잎을 날마다 닦아서 광을 낸다고 튼실한 나무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수능시험제도보다는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본질에 관하여 논쟁하고 대안에 합의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변질된 수능시험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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