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눈의 이상 경로, 한반도에 남긴 위기 메시지
[김해동의 기후위기와 세상만사] 불규칙한 이동·느린 속도, 원인 뭘까 태풍을 움직이는 힘의 변화가 더 커 한반도는 항상 ‘가을우기 시즌’ 맞을 듯
올해에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첫 번째 태풍이었던 ‘카눈’은 일본 가고시마(큐슈) 부근에서부터 매우 느리게 북진하여 한반도 중앙을 관통하여 신의주로 진행하는 특이한 경로를 지났습니다. 카눈은 그동안의 태풍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면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항으로 다음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카눈은 동경 140도, 북위 13도 열대 해상에서 7월 28일에 태풍으로 발달하여 8월 11일 신의주에서 온대저기압으로 소멸되기까지 2주일간 지속되었습니다. 이것은 태풍의 평균 수명인 6,8일보다 2배나 길었습니다.
둘째, 위도 26도 부근 해역에서 서진하여 중국대륙으로 진행하던 카눈은 상륙 직전에 진로를 180도 바꾸어 동진하여 일본의 가고시마 남쪽 해상으로 약 1천km나 이동하였고, 그곳에서 한반도를 향하여 북진하였습니다. 너무 불규칙하고도 생소한 경로였습니다.
셋째, 카눈은 매우 느리게 한반도로 북상해왔습니다. 정상경로를 따라서 이동하는 태풍의 이동속도에 비하여 거의 절반 정도로 느렸습니다.
카눈의 특이한 이 3가지 특성은 우리나라 부근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후변화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카눈의 수명은 왜 길어졌을까?
카눈은 동경 140도 부근 열대해역에서 생성된 열대저기압이 북상하면서 더욱 발달하여 북위 13도 부근에서 6호 태풍으로 발달하였습니다. 처음엔 보통의 태풍들과 마찬가지로 북서방향으로 느리게 이동해갔고, 8월 4일 경에 북위 26도 부근에서 중국 대륙으로 상륙하여 소멸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그런데 카눈은 중국 상륙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동경 125도 북위 26도 부근해상에서 경로를 180도 바꾸어 큐슈의 가고시마 먼 남쪽 해상으로 사흘간 약 1천km나 역주행해 갔습니다.
카눈은 그곳에서 8월 7일 경에 북태평양고기압의 서쪽 가장자리를 만나게 됩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동쪽으로 크게 치우친 상태로 이례적으로 북쪽으로 크게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눈을 북쪽으로 이동시켜갈 북태평양 고기압 서쪽 가장자리의 바람은 약한 상태였습니다. 카눈이 매우 느린 속도로 북쪽으로 이동을 한 것은 그 ‘약한 바람’이 원인이었습니다.
8월 10일 아침 9시 경에 통영 부근으로 상륙한 카눈은 여전히 느리게 이동하여 서울을 빠져나가기까지 15시간 이상이나 걸렸습니다. 이렇게 느리게 이동한 태풍은 좀체 볼 수 없는 특이한 사례였습니다. 큰 피해를 내는 태풍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이동속도가 느린 태풍이라는 점에서 카눈의 사례는 장래 우리나라로 다가올 태풍의 무서운 면을 보여준 셈입니다.
8월에 발생하는 보통의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 열대해역에서 발생하여 느리게 북서방향으로 이동하다가 위도 30도 부근에서 북태평양고기압의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서 부는 바람에 실려서 경로를 북동방향으로 크게 전향하여 우리나라나 일본 열도 쪽으로 빠르게 이동합니다. 태풍의 이동속도는 전향점을 만나기 전까지는 대략 시속 20km, 전향 이후엔 40km 전후가 됩니다. 그리고 35도 부근에서 상층 제트기류를 만나게 되면 아주 빠른 속도로 동쪽해상으로 빠져나가고 그곳에서 수명을 마칩니다.
카눈의 수명이 유달리 길었던 원인은 매우 느렸던 이동 속도와 불규칙한 경로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기압계 패턴이 만들어낸 사건이었습니다. 태풍의 경로에 티베트 고기압이 관여하는 문제도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기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카눈의 경로는 왜 그렇게 복잡해진 걸까?
태풍은 직경이 500km 이상에 이르는 큰 소용돌이이지만 대기 중에서는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부유물 정도의 크기에 불과합니다. 중위도 지역에서 항상 만나게 되는 이동성 고저기압의 직경은 태풍의 그것보다 10배나 큽니다. 그래서 태풍의 이동경로는 보다 큰 규모의 기압패턴에 의해 결정됩니다. 태풍을 이동시켜가는 대규모 바람을 ‘지향류(steering wind)’라고 부릅니다. 카눈의 경로가 복잡했다는 말은 복잡한 지향류가 관여하였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카눈은 열대 해상에서 생성되어 북서진하다가 중국 상륙 직전에 진행방향을 180도로 바꾸고, 일본 가고시만 남쪽 약 400km 해상에서부터 북진하여 신의주로 올라온 경로를 보면, 여러 명이 치는 당구에서 부딪힘을 여러 번 받은 당구공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경로가 만들어진 원인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카눈에 앞서서 5호 태풍 ‘독수리’가 중국 남방지역으로 상륙해 들어가면서 중국 대륙을 덮고 있었던 티베트 고기압을 남북 방향으로 분리시키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남쪽으로 분리된 고기압을 따라서 서풍계열의 바람이 불게 되었습니다. 이 바람이 중국 대륙을 향하여 북서진해오던 카눈의 이동을 반대방향으로 바꾸었습니다. 카눈은 큐슈의 가고시마 남쪽 약 400km 해상(북위 26도 부근)까지 역주행하여 북태평양고기압의 서쪽 가장자리에 닿게 됩니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열대해양에서 올라오는 태풍을 북위 30도 부근에서부터 고위도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지향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카눈이 만난 북태평양 고기압 서쪽 가장자리의 바람은 약한 남풍이었습니다. 이 바람을 따라서 계속 북상하여 한반도 중앙을 경로로 하여 신의주까지 느리게 이동해 갔습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이 동쪽으로 크게 이동한 상태에서 그 세력은 두만강에 이르기까지 북쪽으로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즉 북태평양 고기압의 서쪽 가장자리 쪽의 등압선은 거의 남북방향으로 직선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8월에 접어들면서 엘니뇨 시기의 기압계 유형 특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탓입니다.
북태평양고기압은 카눈이 지난 후에도 그런 모양을 한 채로 더욱 동쪽으로 이동하였기에 7호 태풍 ‘란’은 일본 오사카에서 동해 먼 바다 쪽을 향해서 느리게 북진하는 경로를 취했습니다.
7호 태풍 란이 일본 열도를 매우 느리게 관통하였기 때문에 일본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올해 8월의 태풍은 강도나 규모보다는 느린 이동속도 때문에 피해가 커졌습니다.
카눈은 왜 그렇게 느리게 이동했을까?
카눈의 이동은 우리나라로 북상해오는 일반적인 태풍에 비하여 무척 느렸습니다. 그 이유는 2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째는 태풍을 이끌어가는 바람을 말하는 지향류가 매우 약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카눈이 한반도로 상륙한 이후에도 상층의 강한 바람인 제트기류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제트기류는 태풍을 동쪽 해상으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앞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상층 제트기류에 관하여 언급하고자 합니다. 상층제트기류란 상공에서 부는 매우 강한 서풍을 말합니다. 강한 서풍이 불기 위해서는 남북 방향으로 기압 차가 커야합니다. 그 기압 차는 기온 차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즉 남쪽과 북쪽에 기온이 크게 다른 거대한 공기덩어리가 맞닿아 있는 지점의 상공에 제트기류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한 지역보다도 더 북쪽으로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카눈이 신의주로 진행해가서 소멸될 때까지도 제트기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역사상 태풍이 남쪽 해상에서 한반도를 완전히 관통하여 지나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 이유는 북진해가는 도중에 제트기류를 만나서 동해상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8월 상순이 지나기까지도 우리나라 여름기후를 지배하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남쪽 해상으로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 북쪽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 한반도의 여름철 기후변화의 핵심적 사항입니다.
하지가 지나고 45일 정도가 지나면 북쪽 고위도 대륙에서는 차가운 공기세력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말복을 지나면 그 차가운 공기가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옵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북태평양에 중심을 둔 북태평양고기압 사이에서 정체전선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가을장마전선입니다. 과거엔 말복을 지날 때쯤이면 북태평양고기압이 일본 열도 쪽으로 남하했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장마전선은 주로 일본 열도 상에서 형성되었고 우리나라와는 관련이 적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우기가 아니라 천고마비의 쾌청한 계절이었습니다.
이제는 기후변화로 북태평양고기압이 9월이 되어도 한반도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장마전선이 한반도에서 형성되고 가을 우기 시즌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을에 올라오는 태풍도 과거엔 일본열도로 갔지만 이제는 태풍이 이동해가는 길인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가 한반도에 상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로 오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경로와 느린 이동속도에는 한반도에 나타난 기후변화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셈입니다. 태풍 이상 경로는, 지금부터 닥쳐올 한반도 기후재앙의 어두운 미래를 우리에게 알려준 메시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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