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下手)들의 게임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게임의 이론들, 상대 수 읽기가 기본 법무부의 체포동의안 게임에서 보듯 제 꾀에 넘어가고 적(敵)도 별 생각없어 하수들의 정치, 혐오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면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의 블러핑 전략이 드러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하면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의 블러핑 전략이 드러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 사진=연합뉴스

블러핑 게임

포커 게임할 때 블러핑(bluffing) 전략이 있다. 자신의 패가 안 좋지만 좋은 패를 가진 듯 허세를 부려 강하게 베팅함으로써 상대방이 지레 겁먹고 죽도록(drop) 만드는 전략이다. 블러핑이 성공하면 자기 패를 공개할 필요 없이 승자가 되어 판돈을 따지만, 상대방이 “콜”을 불러 패를 비교하게 되면 크게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전략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허세를 얼마나 진짜인 것처럼 부리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전략은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된다. 예컨대 법무장관이 야당 의원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설명하면서 강력한 구속사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는 패가 별 것 없지만 야당이 겁먹고 드롭(체포동의안 부결)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패를 공개하지 않고 게임을 이기려 한 것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야당이 “콜” 해버리면서 법무부는 법원에서 자신의 패를 공개해야 했는데, 결국 별 것이 아니었음이 판명되어 법무부의 패배로 끝났다. 실패한 블러핑인 셈이다.

매복 게임

반대의 전략도 있다. 자신의 패가 좋지만 별 것 아닌 척 야금 야금 베팅하여 상대방이 죽지 않고 끝까지 끌려오게 함으로써 크게 따는 전략이다. 이런 전략은 전쟁사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왔다.

A 나라와 B 나라 군대가 일전을 위해 평원에 포진한다. 선두로 나선 두 장수간에 먼저 한 합(合)을 붙는다. 그러다가 A의 장수가 세 불리를 깨달은 듯 도망간다. B는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전 병력을 동원해서 협곡으로 도망가는 A 군대를 추적한다. 한참 깊은 곳까지 추격해 들어간 B는 뒤에 매복하고 있던 A의 공격을 받아서 전멸한다.

게임 이론

블러핑과 매복은 반대 방향의 전략이지만, 공통적인 것은 상대방을 속임으로써 이긴다는 것이다. 속이는 것은 고도의 심리적 능력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순진무구하던 어린이가 “부모가 속아넘어가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 아이는 잘못된 발달단계를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읽기’라는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서 그가 속아줄 것임을 예측할 수 없다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굳이 속이려는 의도가 없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은 두뇌 게임에 필수적 요소다. 바둑 둘 때 수를 읽는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이 수를 두었을 때 상대방은 어떻게 응수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고수(高手)는 하수보다 더 멀리 수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고수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수학적 모델로 만들어 다루는 것이 게임 이론(game theory)이다. 게임 이론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경제학에서는 경제 주체들 사이의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한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데, 각 주체는 자신의 입장을 갖고, 자신과 거래할 상대방이 나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고려해서 가장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쪽으로 경제 행위를 할 것으로 가정한다. 그리고 다양한 조건들을 도입해서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 핵무기의 전쟁 억제력을 설명하는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MAD) 전략도 게임 이론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상대방이 내가 진짜 핵 공격할 수도 있다고 믿도록 만들어야 MAD 전략은 효과를 가진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 이론과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예가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두 명의 용의자 갑, 을이 체포되어 격리된 상태로 심문을 받는다. 검사가 갑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당신이 자백하면 풀려날 수도 있다. 단 을도 같이 자백하면 둘 다 5년 형을 받을 것이다. 을이 자백했는데 당신이 자백하지 않으면 을은 풀려나지만 당신은 10년 형을 받을 것이다. 둘 다 자백 않는다면 1년씩 받을 것이다.” 물론 을도 똑같은 제안을 받는다. 이 제안을 표로 만들면 아래와 같다.

이 조건에서 어떤 판단이 최선일까? 일견 보면 갑, 을 동시에 부인함으로써 1년씩 형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갑의 입장에서 보자. “만약 을이 부인한다면, 이때 나는 자백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나는 석방되기 때문이다. 만약 을이 자백한다면 나도 자백하는 것이 좋다. 내가 부인한다면 나는 무려 10년을 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건 자백이 좋은 선택이다. 이것은 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둘 다 자백하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의 판단이 되고 두 사람은 1년이 아닌 5년씩 형을 살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 일러스트.
죄수의 딜레마 일러스트.

전략적 합리성

그런데 두 사람이 격리된 것이 아니라 같이 만나서 사전에 전략을 논의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모두 부인하는 쪽으로 입을 맞추자”라고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면 둘 다 1년 형만 사는 가장 좋은 결과에 도달할까?

게임 이론은 결과가 달라지지 않으리라 예측한다. 갑의 입장에서 볼 때, 을의 선택에 관계 없이 자백하는 쪽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 을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내가 상대방의 관점을 읽는다면, 그가 약속을 지키기 보다는 자백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고, 그렇다면 나는 10년을 살지 않기 위해 자백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주체들의 판단인데, ‘내시 평형’(Nash equilibrium)이라 한다. 약속을 지키느냐는 도덕적 주제일 수는 있지만 합리적인 주체가 판단할 때 고려할 요소는 아니다. 약속했으니까 상대방도 약속을 따르리라고 순진하게 믿고 범행을 부인한다면, 나에게는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이것은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합리적으로 읽지 못한 탓이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상대방의 수를 정교하게 읽고 그에 의거해서 합리적으로 내가 둘 수를 결정해야 한다(단, 게임이 한판으로 끝나지 않고 무한정 반복된다면, “이번 판에 내가 약속을 지키느냐”는 다음 판에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믿어줄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관건이 되므로, 약속 준수는 도덕적이 아닌 전략적 중요성을 띠게 된다).

마음 읽기의 중요성

필자는 정신과의사로, 게임 이론에 입각한 경제 분석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필자가 게임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환자의 마음 또는 동기를 읽을 수 있어야 의사가 최선의 치료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관점 때문이었다.

환자의 드러난 행위보다는, 왜 그가 그런 행위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한 환자의 공격적 행위는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는 망상에 따른 방어로서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착취해도 자신이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하는 전략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공격적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는 사회적 규칙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차이는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읽음으로써 감별할 수 있는데, 겉보기에 똑 같아 보이더라도 치료적 대처는 서로 크게 다르다.

그런데 이런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필자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과 반목, 극단의 정치적 공격과 방어가 “수(마음) 읽기를 못해서 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수들 간의 대국

두뇌 게임은 한 수 더 읽는 사람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둔 수건 실수로 둔 수건, 내가 그 수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렇게 대응했을 때 상대방은 내 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최소 상대방의 다음 수까지는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반복되는 ‘단순 매복 게임’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치가 정책과 비전 제시보다는 상대방 세력에 대한 비난으로 점철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다. 야당은 여당의 잘못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어쩌다 한군데가 통하는 것 같으면 전력을 다해서 직선으로 쫓아간다. 상대방의 전략을 이해할 관심이나 능력은 없다. 그러다 매복에 걸려든다.

재미있는 것은 애초 공격 당한 세력이 전략적으로 매복을 해 놓은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도 역시 상대방의 전략을 이해하려는 관심과 능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강력하게 공격하던 세력은 대개 상대방이 운 좋게 찾아낸 실수 때문에 무너지고 이제는 공수가 역전되어 반대 방향으로 대 추격전이 일어난다. 그러다가 덜컥 새 사건이 터지면 또 추격전의 방향이 바뀐다. 상대방이 내 약점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할 능력이 없는 하수 기사(棋士)들 간의 대국이다.

예외적으로 한 수 정도 읽는 정치인이 나타났는데, 그는 그 능력으로 파죽지세로 적을 연파해서 자기 세력의 스타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 벌인 담대한 블러핑 게임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것인데, 적이 블러핑이라는 수를 읽고 대응해서 패배하였다기 보다는 그가 제 꾀에 스스로 넘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적은 아무 생각 없이 대응한 것인데, 그가 스스로 적의 수를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한 수를 둘 때마다 공-수 판세가 바뀌는 노련한 두 기사의 대국이라면 우리 정치가 멋있는 예술일 터인데, 유감스럽게도 “단수 치면 잇는 수준”인 한 수 앞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는 하수들의 대국인 것이 현실이다. 이 대국에는 언론이나 팬클럽이라는 해설자와 훈수꾼들이 끼어드는데, 이들의 수 읽기도 그만그만해 보인다.

기사들은 자기편 훈수꾼의 아부와 지지를 믿고 자신이 고수라고 착각하면서 아무 생각 없는 수들을 내지른다. 물론 상대방도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악수(惡手)를 둔다고 내가 질 위험은 크지 않다. 이런 하수들의 대국이 정치 판세를 흔드는 것이, 생각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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