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버릴 게 없다
[권용주의 모빌리티 돋보기] 전기차 배터리法에 대한 기대 유통, 임대, 리스, 교체, 보관 등 새로운 산업군이 형성될 수도 사용후 배터리, 체계적 관리의 시작
‘사용후 배터리’법 나온다
전기차용으로 쓰고 난 배터리는 폐기물인가 아닌가? 현행 국내 법체계 상에선 폐기물이다. 폐기물관리법 제2조에 따라 사람의 생활이나 사업 활동에 필요하지 않게 된 물질인 탓이다.
그런데 자동차에 사용된 배터리는 이미 재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자 배터리 순환 관리 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한 민간사업자들이 아예 정부에 배터리 순환 체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2030년까지 연평균 50% 이상 급성장이 예상되는 사용후 배터리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이 경우 배터리 유통, 임대, 리스, 교체, 보관 등의 새로운 산업군이 형성될 수 있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다.
민간 업계에선 기본적으로 배터리를 폐기물에서 별도로 떼어내는 <전기 자동차 배터리 공급망 안정화 및 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안했다. 사용후 배터리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을 하자는 뜻이다. 제안된 법률이 규정하는 사용후 배터리는 ‘전기 자동차에서 분리되어 재제조, 재사용 또는 재활용의 대상이 되는 배터리’로 규정한다.
먼저 재제조는 수리 및 부품 교체를 통해 성능을 복원한 후 다시 전기차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재사용은 수리 및 부품 교체 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기차 이외 용도로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재활용은 사용후 배터리를 분해 후 리튬, 니켈 등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행위를 나타낸다. 그리고 필요한 배터리의 거래는 민간 시장에서 자유롭게 이뤄지게 하자는 것이 골자다.

그럼 배터리를 어떻게 거래할 것인가. 먼저 거래는 현물 거래와 선도 거래로 나뉜다. 현물 거래는 말 그대로 폐차 과정에서 분리돼 나오는 배터리를 사고 파는 일이다. 반면 선도 거래는 중장기 계약 거래에 해당한다. 전기 신차가 등장할 때 아예 누군가가 미리 배터리를 되사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거래가 이뤄지려면 판매자와 구매자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때로는 둘 사이를 중개하는 사업자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거래 유형은 직거래, 대위 거래, 중개 거래, 재판매로 세분화했다. 직거래는 폐차 사업자가 재제조, 재사용, 재활용 사업자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다. 대위 거래는 사고로 전기차를 더 이상 쓰지 못할 때 소유자가 보험사에 배터리 판매를 위탁하고, 보험사가 재제조, 재사용 및 재활용 사업자에게 되파는 거래다. 중개 거래는 폐차장이 전문 유통 및 보관업자에게 팔고 이들이 배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다시 판매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배터리 유통 사업이 활성화되면 배터리를 빌려주는 리스사업이 발전하고 교체사업도 손쉽게 이뤄질 수 있다. 물론 배터리만 별도로 운송하는 물류 영역이 생겨나 보관도 필요하다. 동시에 배터리의 잔존 수명을 측정해 금전적 가치를 매기는 성능 및 안전 평가사라는 직업도 생겨난다.
하지만 배터리 자체가 위험성을 가진 만큼 일정 부분 규제도 필요하다. 그래서 제도적으로 배터리 관련 사업자는 취득 사업자, 판매 사업자, 활용 사업자로 규정한다. 취득 사업자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분리한 후 소유권을 양도 또는 위탁 받은 자로서 주로 폐차사업자 또는 정비 사업자가 포함될 수 있다. 그러자면 배터리를 안전하게 떼어내 보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판매 사업자는 실제 판매 또는 판매 알선자로서 유통을 책임진다. 잔존 평가 수명 측정도 이 과정에서 이뤄진다.
물론 거래 결과는 정부의 관리 시스템 하에 둔다. 공정 거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불법 거래 등은 단속될 수 있으며 거래 물량이 소규모일 때는 공공 거래 시스템을 활용토록 한다.
배터리 여권제도도 만들어진다
이처럼 배터리 유통 체계를 구축하려는 이유는 완벽한 순환 체계를 갖추는 것은 물론 소재 공급망 강화가 그 배경이다. 유럽연합 등의 배터리법을 고려할 때 한국도 사용후 배터리에서 일정량의 광물 소재를 추출, 다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배터리 소재의 원산지도 구분해 지원을 차등한다. 이때 원산지 인정은 처음 땅에서 캐는 것 외에 이미 사용된 배터리에서 소재를 다시 추출하는 것도 인정된다. 한국에 광물이 없어도 추출만 잘하면 한국산 소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배터리 여권 제도’다. 배터리가 처음 만들어지면 나름의 여행 과정을 거친다. 가장 먼저 자동차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재사용 및 활용 단계로 진입하기에 배터리에 고유 식별 부호를 담아 여권처럼 관리하자는 의미다. 세계 어디로 가든 한국산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도 포함돼 있다.
현재 자동차용 배터리는 상태별, 제품별로 안전 규정이 개별적이다. 물론 입법 공백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최근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검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는 재사용 경우에만 적용된다. 향후 사용후 배터리는 ESS, 자동차, UAM, 선박, 농기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만큼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안전관리 제도가 반드시 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3단계 안전검사 도입이 제안됐다. 첫 번째는 ‘활용전 검사’로 전기차에서 분리한 배터리가 재제조 또는 재사용 목적으로 사용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다. 활용전 검사를 통과한 배터리는 재제조 또는 재사용 목적에 맞춰 전기차, ESS, UAM(도심항공교통) 등 다양한 완제품에 탑재되는데 이때 ‘제품 안전검사’가 2단계로 이루어진다. 이후 판매된 완제품은 3단계의 ‘사후검사’를 통해 동작중인 제품의 안전을 주기적으로 검사받게 된다.
경쟁국들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국내외 전기차 시장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기후 위기 대응 및 에너지 전환 등의 가속화에 따라 지속적인 성장세가 예상된다. SNE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는 2030년 전 세계적으로 약 1300만개, 국내에는 42만개가 발생한다. 국내에서 사용된 배터리를 모두 재활용한다고 가정하면 국내 보급 전기자동차의 43%인 약 17만대의 생산이 가능한 핵심 광물을 확보할 수 있다. 자원 하나 없는 한국이 해외의 핵심광물 확보와 병행해 국내에서 사용후 배터리의 산업화를 반드시 추진해야만 하는 이유다.
주요 국가들은 이미 적극적이다. EU는 배터리 여권제도와 재활용 원료의 사용을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며,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재활용 원료 사용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중국 또한 이미 정부 주도로 배터리 이력추적 플랫폼을 마련하고 시장 선점에 나서는 중이다. 배터리 산업에 있어 우리의 경쟁국들이 핵심광물 가공, 소재, 배터리 셀 제조 및 재활용까지 배터리 전주기에 걸쳐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용후 배터리의 산업화가 경쟁국보다 다소 늦은 상황이다. 여전히 사용후 배터리를 단순 폐기물로 바라보고 관리하는 탓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통상 7~8년 사용해도 70~80% 수준의 성능이 남는다. 그래서 신차 배터리 가격의 1/4 수준에서 거래도 된다. 이를 단순 폐기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
흔히 미래는 현재가 축적돼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적으로 수송 부문의 에너지 전환을 외치면서도 정작 제도는 뒷받침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이제라도 제도가 만들어진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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