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정치적 의미
[권용주의 모빌리티 돋보기] 경제성·효율 높이기 거듭한 車산업 ‘유해물질 배출’이라는 환경문제 직면 친환경 전기차, 결국 구매자 부담 키워 이제 ‘친환경=불편함’을 논의해야할 때
‘에너지를 얻는다’는 현상의 또 다른 본질
자동차의 탄소 배출 저감은 내연기관 등장 때부터 화두였다. 물론 당시는 환경적 요인이 아니라 오로지 경제적 목표만 추구했던 게 배경이다.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이용자의 경제적 이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쉽게 보면 기름 1리터(ℓ)로 주행 가능한 거리를 최대한 확보해야 경제성 가치가 올랐다는 의미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려면 매우 간단한 공학적 원리가 적용된다. 이동시켜야 할 이동 수단의 무게가 가벼워야 하고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 안에서 최대한 기름 낭비를 억제해야 한다. 동시에 내연기관에서 만들어진 동력이 바퀴로 전달되는 과정의 손실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이른바 내연기관 이동 수단의 ‘효율 향상’ 기술은 경량화, 엔진 연소율 증대, 그리고 동력전달율 상승에 집중돼 왔다.
구체적으로 경량화는 무거운 철 재질 대신 가볍고 질긴 고장력 강판 사용 비중을 높이고 차체의 일부를 강화 플라스틱으로 바꾸기도 한다. 엔진 연소율은 기름과 공기의 완벽한 혼합 배율을 위해 공기가 들어가는 입구의 높이를 조절하거나 여닫히는 시간을 정교하게 맞춘다. 기름을 엔진 안에 넣을 때 최대한 잘 타도록 잘게 쪼개기도 한다. 이와 함께 동력과 속도의 흐름을 최적화시키기 위해 변속 체계를 4단에서 5단, 심지어 10단까지 높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목표는 ‘1ℓ 기름으로 최대한 멀리 가기’에 맞추어졌다.
에너지 전환으로 치르는 벌금
하지만 에너지로 불리는 기름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에너지로 전환될 뿐이다. 문명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엔트로피(Entropy)’로 부른다. 여기서 ‘벌금’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사용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에너지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기름 소비를 엔트로피 법칙에 적용하면 간단하다. 기름 1ℓ가 내연기관에서 연소될 때는 바퀴 회전에 필요한 물질만을 연소시켜 동력을 얻는다. 반면 필요하지 않은 물질은 다른 형태로 바뀌어 공기 중에 배출된다. 이때 배출 물질을 그대로 두면 공기의 혼합 성분이 달라져 인류에 위해가 된다. 따라서 1ℓ로 제아무리 최장 거리의 경제성을 달성해도 공기 중에 섞이는 배출가스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생각해 낸 것은 이미 유해 물질로 전환돼 배출되는 가스를 무해하게 바꾸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때는 또 다른 에너지가 투입돼야 한다. 예를 들어 요소수는 유해 물질인 질소산화물을 무해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 사용하는데, 요소수를 만드는 과정에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한번 전환되고 나면 다시 역반응을 통해 기름 1ℓ로 되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엔트로피의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셈이다. 로봇의 3원칙을 내세운 러시아 태생의 미국 생화학자 아이작 아시모프도 일찌감치 비슷한 말을 남겼다. ‘뜨거운 열을 운동으로 전환시켰다면 열은 파괴된 것이 아니고 다른 장소로 옮겨진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화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인류는 바퀴 회전에 필요한 동력으로 전기를 주목한다. 물론 이때의 전기는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화석연료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장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지만 점진적으로 자연을 이용하는 게 궁극의 목표다. 하지만 자연 또한 스스로 전기를 만들지 못한다. 결국 발전 장치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에너지는 추가로 필요하다. 그럼에도 전기를 수송 부문에 활용하려는 노력은 효율 때문이다. 기름 1ℓ로 갈 수 있는 거리와 기름 1ℓ로 만든 전기를 배터리에 담아 주행 가능한 거리를 비교할 때 전기로 가는 것이 낫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기름보다 전기는 얼마나 효율적일까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름과 비교해 대체 얼마나 효율이 높은가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대략 3배 가량 전기차의 효율이 높다. ‘3배’가 도출된 환산 기준은 연료의 순발열량과 파워 등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기름차 대비 전기차는 완성차 제조에 필요한 부품 생산, 그리고 사용 후 자원 재활용 관점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기름차 대비 많다. 그래서 부품 생산에 자원 재활용까지 모두 넣고 계산하자는 목소리가 LCA(Life Cycle Assessment: 전과정 평가) 개념이다. 둘은 여전히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경쟁하며 갈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각 나라 정부의 결론은 전기차의 역할이 분명하다는 점에 도달했다. 최근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연비 계산법을 완화한다는 방침이 알려지자 일부에선 전기차 시대가 늦어질 것이란 전망을 쏟아내기도 한다. 미국은 판매되는 모든 차의 ℓ당 평균 주행 가능 거리를 벌금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당초 ℓ당 전기차 효율을 환산할 때 ‘㎾h당 4.5㎞’의 주행인 경우 98.4㎞를 인정했다. 전기차를 조금만 팔아도 내연기관 판매 여력이 많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다 지난해 환경보호청이 기준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28.7㎞로 낮췄지만 제조사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34.8㎞로 완화한 것이다. 즉 표면적으로는 완화라도 핵심은 98.4㎞에서 34.8㎞로 대폭 높아진 셈이니 미국 또한 전기차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해야 한다.
친환경 뒤에 감춰진 ‘불편함’ 공개 논의해야
그런데 효율 향상은 또 다른 관점에서 논란이다. 이른바 제품 가격 상승에 따른 구매자의 부담 증가다. 여기서 우리는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를 되돌아봐야 하지만 현실 세계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탄소 배출 저감 과정을 ‘억제-중립-감축’으로 나눴을 때 당장 억제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정부와 정치의 역할이다. 탄소 감축 정책을 어느 시점에 맞추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는 현재 세계만을 본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의 유권자일 뿐 앞으로 주인공이 될 미래 세대의 유권자는 존재하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 타협점이 ‘기술 발전’을 전제로 한 점진적 탄소 배출 저감이다. 기술 향상을 통해 배출 저감은 물론 제조물 가격이 내려가는 동안 구매자 소득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 점을 우려한다. 점진적 전환은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 것일 뿐, 이성에 기반한 과학은 이미 한계점에 빠르게 도달하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선택은 이성에 기반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욕망의 선택이 우선한다.
따라서 자동차 배출 저감에 대한 인식 전환은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그래야 기꺼이 친환경을 위해 불편과 비용 부담을 감수할 수 있게 된다. ‘친환경’이라는 단어 뒤에 감춰 놓은 비용 부담, 불편함도 이제는 공개적으로 논의하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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