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보여주고 휘둘러야 맛?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과시욕과 갑질의 공통된 심리학 자존감 낮아 타인의 인정 받으려는 행동 한나라 장군 한신의 ‘과하지욕’ 고사에서 굴욕 참았던 것은 ‘자신감’이 강했기 때문

부모의 갑질을 목격하는 자녀는 이를 모방해 학교폭력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부모의 갑질을 목격하는 자녀는 이를 모방해 학교폭력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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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이 있었다.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논점은 공격적인 이웃의 행동 변화를 유발하기 위해 더 센 힘으로 마주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아니면 포용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의 문제였다.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첨예하게 대립되는 정책을 우리 정치판에서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진정한 논의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역사학계에서 가능할 것이다.

현 정부에서 북한의 군사적 활동에 대응하는 기조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포용 대(對) 강경 대응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비둘기파 정책을 “적에게 굴종하는 것”이라 보는 모양새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눌러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 대통령의 철학이다. 이 글은 매파의 주장이 타당하느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과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해 분석하려는 것이다. 또한 인사청문회에 출석하는 공직 후보들의 흔한 부적격 사유인 “갑질”과 “자녀 학폭”에 대해서도, 힘을 과시하고 휘두른다는 관점에서 분석해 보려 한다.

I. 힘을 보여주기

아프리카 사자의 경우

힘을 보여줌으로써 원하는 바를 얻는 전략은 일등 수컷이 무리의 암컷들을 독차지하는 동물에서 나타난다. 필자가 힘을 “보여준다(과시, 誇示)”라고 표현한 것은, 힘을 사용하는 목적이 적을 파괴하는 것 보다는 겁을 주어서 알아서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자들의 이런 행동양식은 공격성이 높은 개체가 후손을 더 많이 낳도록 해 줄 것이다. 그 결과 집단 내에 공격성을 물려받은 후손이 많으면, 다른 집단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힘의 과시는 종의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진화된 기능, 즉 본능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문명을 가진 인류에서는, 힘의 과시와 복종시킴이 아닌 협조와 포용이라는 전략도 가능하다. 인류에서도 유전자에 씌어진 본능은 힘의 과시겠지만, 유전자만큼 강력한 문명의 힘은 협조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물론 문명 아래서 인류는 수많은 전쟁을 저질러왔고 문명은 학살 도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문명 세계에서 인류의 이상(理想)은 그래도 싸움이 아닌 공존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최고 상위의 포식자인 사자. 힘의 과시는 생존을 위한 본능에 따른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최고 상위의 포식자인 사자. 힘의 과시는 생존을 위한 본능에 따른 것이다.

조직 폭력배의 경우

조직 폭력배의 세계에서도 힘의 과시는 서열을 결정하는 수단이다. 가장 센 힘을 보여주어 경쟁자를 제압하는 사람이 우두머리가 된다. 이 싸움에서도 중요한 것은 물질적 이득이나 경쟁자의 파괴라기보다는 일등으로서의 힘과 권위를 인정받아 경쟁자를 복종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사자 무리에서나 조폭에서나 힘의 과시에 의한 권력 서열은 안정적이지 않다. 사자 무리에는 호시탐탐 일등을 노리는 젊은 사자가 있고 조폭 세계에서도 호시탐탐 보스의 자리를 넘보는 2인자가 있다. 그래서 일등은, 도전 받지 않더라도, 낮은 자들에게 먼저 싸움을 걸기도 한다.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줌으로써 아랫사람이 자기에게 도전하려는 꿈조차 아예 꾸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용감하고 강력한 정책 같지만 그 뒷면에는 “내가 저들을 제압하지 못하면 언젠가 저들이 나를 제압하고 일등을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국가의 경우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공격하면서 “하마스 궤멸”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팔레스타인 독립정신에 뿌리를 둔 하마스를 궤멸시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공격하는 진짜 목적은 하마스가 다시는 이스라엘을 공격할 엄두를 못 내도록 겁을 주는 것이다. 민간인을 포함하는 학살은 정책의 단순한 “부산물(소위 collateral damage)”일 뿐 목적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유엔 규정 위반이더라도 우리나라를 향해 미사일을 쏜 것은 아닌데, 우리 정부가 이를 우리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여 이전의 유화적 정책과 합의를 폐기하고 강경 기조의 발언들을 날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한 국가가 힘을 과시하는 뒷면에는 우리가 힘을 보여주지 못하면 적국이 우리를 정복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더구나 정권은 이 두려움을 시민들에게 전파함으로써 힘의 과시를 정당화하려 한다. 그러나 정복당하는 두려움은 하마스와 북한 쪽이 더 클 것이다. 그들이 두려움 때문에 힘을 과시하려 한 결과가 이스라엘 폭격과 정찰위성 발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약자는 과시할 힘도 약하고 일등으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오히려 하마스와 북한은 강자가 힘을 과시할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낮은 서열의 사자가 우두머리에게 감히 도전한 결과다.

과시의 심리학

‘과시’는 사자나 조폭이나 정권뿐만 아니라 누구든 흔히 사용하는 전략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의 종류는 각각 다르더라도, 과시는 그 영역에서 자신감 없음을 감추기 위한 전략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은 지식이 빈곤한 사람이 오히려 더 말을 많이 한다는 의미이니 과시의 본질을 제대로 지적하는 것이다.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는 상류층이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서민층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것인데, 상류층이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만한 정신적 자산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열심히 플렉스하는 배후에는 내가 남들의 부러움을 사지 않으면 나의 자존감이 위태로워지리라는 위기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힘이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의 그림자 속에는 ‘부족한 자존감’이 있다.

감투와 완장

권력도 과시의 중요한 대상이다. 명함에 대여섯개의 직함을 새겨가지고 다니는 사람에게는, 그 직함이 실권은 없더라도, 자신이 이렇게 많은 권력을 가졌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 자리에 오르는 것을 “감투를 쓴다”고 한다. 같은 상황을 폄하할 때는 “완장을 찬다”고 한다. 감투나 완장은 다른 사람 눈에 잘 띄는 신호(sign)이므로, 두 표현은 권력 추구의 배후에 있는 과시욕을 적시하는 것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권력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위 오르는 것을 “이 세상에 나서는(出世)” 것이라 하니, 과시 심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들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뿌리가 깊다. 과시욕은 건강한 심리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깃들어 있다.

II. 힘을 휘두르기

칼은 휘둘러야 맛

그런데 힘을 가지면,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느낀다. 장수의 칼은 차고 있을 때 보다는 적을 벨 때 위용이 드러난다. 권력을 집행하는 것은 단순한 과시를 넘어 힘을 실증하는 것이다. 휘두름으로써 권력자는 자신의 세력하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지배하게 된다. 항거할 능력이 없는 피지배자는 자존감을 내려놓고 지배자의 뜻을 따르게 된다. 아이러니는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배자 또한 피지배자의 승인(지배당함을 받아들이는 것)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적에게 무력을 과시하는 경우건 아랫사람에게 권력을 집행하는 경우건 상대방에 의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누군가의 승인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쓴다는 것은 자존감이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교 폭력에서 피해자가 다른 학생에 대한 가해자가 되는 복잡한 양상이 있는데, 이런 이중성은 피해자가 되건 가해자가 되건 자존감의 문제는 비슷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상황에 따라 표출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권력 집행과 갑질

정치는 권력을 집행하는 행위다. 그런데 권력기관의 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거론되는 후보자의 결함 중 하나는 ‘갑질’ 의혹이다. 갑질은 권력을 부당하게 집행해서 타인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권력의 정당한 집행과 갑질은 모두 힘을 휘두르는 것이므로,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10 여년 전 기관장이면 당연히 해왔던 권력 행위들 중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갑질인 것들이 제법 있는데, 문제를 보는 시각이 바뀐 것일 뿐 권력의 집행이라는 점은 같다. 그래서 청문회의 갑들은 자신의 갑질이 정당한 권력 집행이라 주장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무지함을 드러낼 뿐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인사청문회에 갑질만큼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자녀의 학폭 의혹이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발생 당시에는 자신의 권력으로 그 사건을 무마하였다는 흑역사까지 부록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우연이 아니라면 두 현상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더 높은 권력을 추구하는 부모”와 “동료 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자녀”간에.

부모의 갑질, 자녀의 학폭

학교 폭력을 “가해 학생이 힘을 휘둘러서 피해 학생을 지배하는 현상”이라 본다면, 정치인의 권력 추구와 학폭간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그것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것, 갑질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부모에서 자식 세대로 지배욕이 이어지는 것은 왜 그럴까? 성격 특성이나 행동양식은 자녀의 외모가 부모의 외모를 닮는 것처럼 유전되지만, 유전만큼 중요한 것은 부모의 행위를 모방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자녀의 행동양식이다.

이런 문제는 정신의학에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다. 예컨대 알코올 의존은 대물림되는 성향이 강한데, 유전뿐만 아니라 부모의 음주습관을 모방하는 것도 대물림과 관계된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친구들에게 학폭하는 학생은 자신의 부모가 평소 다른 사람들에게 갑질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약자에 대한 갑질이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당연한 행동양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한신 장군의 고사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힘의 과시가 개인의 사생활 문제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공격성을 과시해야 국가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위정자는, 자신이 이끄는 나라의 힘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부족함을 공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행위는 상대방의 공격적 반응을 유도함으로써 대립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공인이 되려는 사람의 이전 경력상 갑질이 두드러져 자녀가 모방할 정도라면, 이 사람은 새 권력을 얻어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할 위험이 높을 것이다. 사자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명 사회는 사자 사회와는 기본 원칙이 달라야 하지 않을까?

돌아 볼 한가지 고사가 있다. 유방(劉邦)의 천하 통일에 일등 공신인 한나라 장수 한신(韓信)의 일화 중에는, 젊은 시절 건달의 가랑이 밑을 태연히 기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다(과하지욕, 胯下之辱).

당시 한신은 백수 청년에 불과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건달과 겨룰 능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 역사의 전개를 보면 한신이 무능해서 굴욕을 선택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더구나 그가 후일 초나라 제후로 금의환향 했을 때, 그는 그 건달을 처벌하기는커녕 측근으로 중용하는 아량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한신은 굴욕을 참은 것이 아니라 당시 자신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굳이 없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게 판단한 것은 내가 힘을 보여주지 않아도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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