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거짓말로 지켜지는가
[이영균의 ‘말이란 말야’] 솔직히 말하면 혼나고, 거짓말하다가 들통나면 크게 실망시키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적당한 선이 보일까
연말이다. 친구들, 동료들, 친척들과 송년회 및 신년회가 끝없이 이어질 만한 시즌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술자리도 많을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크고 작은 실수도 있게 마련이다. 사고를 칠 수도 있을 것이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사건사고 없이 연말연시를 평온하게 보내시기를 기원한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무언가 사고를 치고 나서 배우자나 연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케이스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뒤에서 이뤄지겠지만 하여간 사랑을 지킨답시고 거짓말로 때우고자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바로 그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온전히 솔직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때로는 적당히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 필요할까? 여기에 확실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철학에 따라 관계에 따라 달라질테니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답변을 내놓아야만 한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고 결과적으로 관계에 도움이 되는 선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거짓말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뒷감당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도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거짓말의 대가는 크다. (6월21일자 칼럼 ‘거짓말 잘하는 법’ 참조)

솔직함은 실망을 낳고
조금은 융통성이 떨어지는 후배가 하나 있다. 그의 실명을 언급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는 호연이라고 부르자. 어느 날 호연이가 친구들을 따라 헌팅포차를 가게 됐다고 한다. 그냥 술이나 마시자고 해서 휩쓸려 간 건데 본의 아니게 여자들이랑 부킹도 하고 그렇게 됐단다. 아마 분위기에 취해서 술을 좀 많이 마신 모양이다. 술이 떡이 돼서 집에 들어갔더니 와이프의 꾸중과 추궁이 사나웠다고. 겁을 먹었던 걸까? 조목조목 있었던 일들을 ‘고해성사’ 했단다. 호연의 너무나도 솔직한 고백에 그의 처는 감복한 나머지 모든 것을 용서하고 꿀물을 타주면서 지친 호연의 몸과 마음을 잘 추스려줬다…고 결론이 나오면 좋겠지만,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 호연의 고백에 그의 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고 큰 다툼이 일어났고 후유증 또한 커서 그 후로 며칠 동안 냉전과 열전 사이를 오갔다고 한다.
뭐가 문제였을까? 아니, 이런 경우는 어째야 하는 걸까? 당연한 얘기지만 술을 마셨더라도 아내와 분란이 생길 만한 장소에는 가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이든 아니든 사고는 생겼고 그 수습은 해야 하는 상황. 후배는 우선 부인의 입장에서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 술집을 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서로 간의 합의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남편이 그런 곳에 갔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아내는 별로 없을 듯하다. 고해성사를 하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았다고 본다. 아니, 고해성사를 할 정도의 강한 죄책감이라면 그런 곳에 가지를 말았어야지, 내 양심 편하자고 와이프 인내심을 시험하는 꼴 아닌가. 다만 ‘적당한 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이후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호연의 친구들은 호연에게 ‘바보 같은 놈’이라고 질타를 퍼부었다고 한다. 그걸 왜 다 솔직히 얘기하냐고, 이혼이라도 할 셈이냐고. 이에 호연은 다시는 그렇게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단다.(그런 곳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 쩝.)
거짓말은 불신을 낳고
얼마 후, 호연은 학교 동아리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하게 됐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여자 후배들이 상당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여자 후배들과 함께 술을 마신다고 하면 와이프가 좋아할 리 없을 터, 또 얼마 전 경험도 있고 하니 호연은 거짓말을 하기로 결정한다. 비즈니스 자리가 있다고 했단다. 그리고는 즐거운 자리를 갖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날따라 호연의 처가 우연히 호연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게 됐단다. 여자 후배들과 함께 밀착해서 찍은 사진들이며 즐거웠다는 카톡 메시지 등이 발각된 모양이다.(단, 부부 사이라도 남의 휴대폰을 훔쳐 보는 것은 불법이다. 자투리 상식.) 난리가 났을 것은 자명하다. 알게 된 ‘사건’에도 화가 나는데 거짓말까지 했으니. 결국 다시 ‘와장창’ 전쟁이 일어났고 이번에는 신의까지 잃었으니 이전보다 더 오랜 기간 갈등이 지속됐다고 한다.
호연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자꾸 말하지만 정답을 확정 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 후배는 큰 잘못을 하나 저질렀다.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거짓말이 발각됐을 경우도 생각했어야 했다. 모든 거짓말은 언젠가 탄로가 날 수 있다는 가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중장기적 관계를 생각한다면 거짓말은 바보 같은 전략이다. 친구들과 자리가 있다고 하든지 하여간 거짓말이 아닌 범주에서 얘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이 경우에는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하고 한바탕 하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연인이나 부부 간의 대화에 대해서 어떤 조언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환경에 따라, 개인 성향에 따라 각양 각색의 관계를 맺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 후배 부부 역시 그들 나름의 대화법과 관계의 방정식이 있을 테니 이를 일반화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이 에피소드를 통해 뽑아 낼 수 있는 교훈을 두 줄로 짧게 정리를 하자면 이런 정도일 듯하다.
“항상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을 건네라. 그리고 이후 관계를 생각하라. 관계를 생각한다면 거짓말만큼은 절대 금물이다.”
교과서에 반드시 있다는 정답
정리하고 보니 너무 교과서 같은, 뻔한 결론이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야 만점이 나오는 법이라고 하지 않나. (학력고사, 혹은 수능 만점자가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말을 안 믿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 나도 그러했다. 그러나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그 말이 사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져 간다. 이것저것 파는 것 보다는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것이 진짜 실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병은(아내) : 아니 밤 늦게까지 어디 다녀오는거야?
명서 (남편): 어, 미안해. 친구들 만났어.
병은 : 술 마신거야? 보니까 술은 안마신 것 같은데?
명서 : 사실은 친구들이랑 포커 쳤어. (사실은 휩쓸려서 카지노에 다녀왔다.)
병은 : 아니, 왜 갑자기 포커를? 당신 그런 거 별로 안좋아하잖아?
명서 : 그게 어쩌다 보니 휩쓸려서 그렇게 됐네.
병은 : 돈은? 땄어? 잃었어?
명서 : 에이 뭘 그런 걸 물어. 내가 포커를 칠 줄 아나? 문외한인데… 아무래도 조금 잃었지 뭐. (카지노에서 30만원을 잃었지만 구체적 액수는 얘기하지 않는다.)
병은 : 에이, 이제 그런 거 하지마.
명서 : 어. 안그래도 다시는 안하려고.
이 대화에서 명서는 사실은 친구들과 휩쓸려서 (불법인지 합법인지 모르겠지만) 카지노를 다녀왔다. 30만원을 잃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꽤 큰 돈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기하면 병은은 남편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고 아마도 둘 간에 적지 않은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자칫 도박 중독이니, 상습 도박꾼이니 말도 안되는 오해까지 받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서는 이 정도 선을 지키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고 거짓말도 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거짓말로 사랑을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적당한 선’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털어 놓는 것, 나름대로 차선책으로 사랑을 지키는 방법이다. 제일 좋은 것은 이런 고민되는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겠지만 세상 살아가면서 배우자나 애인의 입맛과 가치관에 100퍼센트 맞추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조금 더 일상적인 사례들을 들여다 보자.
인호(남편) : 당신 어디 갔다 왔어? 복장 보니까 또 골프쳤구만. 우리 형편에 골프좀 자제하라니까.
애미(아내) : 아니~ 재인이가 보태준다고 해서 쳤지(사실은 캐디피만 내줬다). 돈 많이 안들었어.
인호 : 어휴, 못말린다. 이제 그만좀 쳐라. 그 돈 있으면 차라리 뭐 다른 걸 배워.
애미 : 미안. 자제할 게.
골프 치는 비용을 아깝게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개인의 가치관 문제이다. 인호는 골프 비용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애미의 관점에서는 자신들이 그 정도 여력은 되고 평일 골프는 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충분히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얼마가 들었고 등등 그대로 털어 놓고 남편과 싸울 생각은 없다. 그래서 미리 명분을 만들었던 모양이다. 친구 재인에게 ‘캐디피 돌아가면서 내자. 이번에는 네가 내고 다음엔 내가 내고…’ 뭐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적당한 선’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배우자나 애인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 요인이 있다면 ‘적당한 선’이 무엇인가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치밀한’ 거짓말은 더 큰 화를 부른다
선미 : 은국씨네 상가집에서 밤 샌거야?
병갑 : 어. 너무 피곤하다.
선미 : 적당히 새벽 즈음 들어오지.
병갑 : 에이~ 은국이가 서운해 하지. 어떻게 그래?
선미 : 어? 자기야 바지가 왜 그렇게 더러워? 어디 야외에 있었어? 당신 혹시 낚시 다녀온 건 아니지?
병갑 : (당황하며) 아이구, 설마 장례식 복장으로 낚시터에 다녀 왔겠어? 상가집이 좁아서 마당에 돗자리를 깔아 놨더라고. 옛날식으로…
선미 : 정말이지? 아무래도 이상한데… 거짓말이면 정말 재미없어!
맞다. 거짓말이다. 여기서 병갑은 ‘적당한 선’을 만든답시고 거짓말을 준비했다. 검은 양복을 입고 낚시를 다녀온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검은 양복 차림으로 낚시터에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아마도 상가집에 간다고 하고 갔을 것이다. 하여간, 이처럼 치밀하게 준비한 거짓말은 그 정성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발각되면 그 치밀함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일종의 계획 범죄니까. 이후로는 솔직한 이야기도 거짓말로 여겨질 지 모른다. 이제 결론을 짓자.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사랑은 거짓말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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