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갈림길에 선 ‘한국형 민주공화제’ 진보냐 퇴행이냐를 결정할 중대 선거 ‘반독재 민주공화정신’이 심판기준이어야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은 윤석열 정권심판론을, 집권여당은 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웠는데 국민들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은 윤석열 정권심판론을, 집권여당은 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웠는데 국민들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제22대 총선이 절정이다. 재외국민투표나 사전투표의 열기가 매우 높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최소한 누군가를 심판하려는 의지가 표출되고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더 많은 심판을 받아야 하고 또 받을 것인가?

제22대 총선의 의미-한국형 민주공화제의 갈림길

헌법학도의 관점에서 볼 때, 제22대 총선의 역사적 의미는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명운이 걸려 있는 중대선거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은 제2차 대전이후 식민지배에서 독립한 나라 가운데 성공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달성하고 중진국을 넘어 선도국의 지위에 도달한 드문 국가이다. 특히 1987년 이후 40년을 넘보는 역사성을 가진 하나의 헌법 체제에서 지속적으로 민주화와 자유화를 확대해 왔다. 여전히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성취라면 이제 ‘한국형 민주공화제’ 모델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의 새로운 이념형(ideal type)으로 제시할 만한 수준에 다다랐다고도 할 만하다.

아직 좀 더 완숙한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형 민주공화제는 ‘의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하는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입법권은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행정권은 역시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맡는 것이 기본구조이다. 국민의 대표성을 제각각 별도로 확인받는 두 기관의 ‘공화적’ 관계는 정부의 조직적 구성을 법률에 위임하여 입법권자인 의회가 정하도록 하는 의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법률안 거부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여 서로 견제와 균형을 잡도록 한다. 특히 행정권의 인적 구성에 있어 제2인자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임명할 수 있는 국무총리를 두고, 이 국무총리에게 내각을 구성하는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부여하는 분권적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나아가 대통령 1인이 아니라 내각을 포함한 정부 전체가 조직적 단일체가 되어 행정권을 가지도록 함으로써 행정독재를 제어하려는 강한 의지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식 대통령제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처럼 입법권과 행정권의 수평적 분립과 견제와 균형 관계에 더하여 행정부의 조직과 인적 구성에 의회와의 연결고리를 제도화함으로써 그 어떤 형태의 독재(심지어 다수 국민의 독재)도 용납하지 않는 민주공화주의의 기본정신을 구현하려한 것이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골간이다.

이러한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역사적 분수령은 제왕처럼 군림하려던 대통령을 국민의 직접행동으로 시작하여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회의 소추를 거쳐 헌재의 심판으로 탄핵한 것이다. 다수 국민의 민주적 의사의 표출과 대의기관의 숙의와 소추를 거친 후 마지막으로 재판절차에 따른 탄핵이라는, 그 어떤 결정도 독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혼합정’(mixed government)에 기반한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 민주공화제의 핵심가치를 현실적으로 실현한 우리 현대사의 일대사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민주화의 시계추는 앞으로 나아가가기는커녕 오히려 되돌아가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검찰총장으로서 부적절한 행태를 보임으로써 징계를 받고 낙마하였지만, 정치적 항명으로 곧바로 대선에 출마하여 덜컥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2년은 한국형 민주공화제가 퇴행하는 시기였다. 스웨덴 고텐버그(Gothenburg) 대학에 본부를 두고 600여 민주주의 지표를 활용하여 200여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매년 평가해온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 Institute)는 지난 3월 공개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지표가 나빠져서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미심장한 민주화가 진행되었다가 급작스럽게 민주화이전의 권위주의 체제 수준으로 퇴행하는 ‘독재화 모형’(Bell-turn autocratizing countries)의 대표사례로 지목되었다.

‘검찰형 하나회’와 사적 네트워크를 통한 권력의 사유화,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통치, ‘입틀막’으로 상징되는 언론과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 인사권의 일상적 남용에 따른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무법천지적 운영 등,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은밀하게 행하던 만행을 노골적으로 감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진영화와 경제적 상업화로 오염된 공론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민주주의 지표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제22대 총선은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진화 경로’를 복원할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성취를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지게 할 것인지 사이에서 민의를 분명히 드러내야할 중요한 계기가 된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총선의 헌법적 기능–누가, 어떻게 국민을 대표하는가?

총선은 국민대표 기관인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다. 국회는 입법권과 예산확정권을 통해 국정현안을 선제적으로 결정하는 한편, 그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국정통제권을 가지는 주권자 국민의 대의기관이다. 국가의 최고권력인 주권은 국민대표 기관을 구성하는 선거권을 통해 실현되며, 선거에 의해 구성된 대의기관인 의회가 국민을 대표하여 국정현안을 법률의 형식으로 결정하고 정부와 사법부로 하여금 집행하게 하는 것이 민주공화제의 기본적 권력분립의 구도인 것이다.

헌법의 기본원리인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선거를 통해 구성된 대의기관에서 입법권과 국정통제권을 가지고, 법치주의 원리에 따라 국가권력은 오로지 이 법률에 근거해서만 발동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민주공화제는 국정의 중심에 의회가 있게 되는 ‘의회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의회에 그 존속을 의존하는 내각제가 아니고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에게 행정권의 중심적 역할을 맡기는 대통령제의 경우도 이러한 민주공화제의 의회민주주의에 기초한 국가권력 작동원리는 동일하다.

민주공화제를 의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권위주의체제의 유산으로 국정의 중심을 대통령이라는 정부의 수반에게 있는 것으로 쉽게 착각하게 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오해가 곱씹어야 할 지점이다. 흔히들 우리의 정부형태를 두고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단정하고 우리 정치의 퇴행원인으로 헌법상의 권력구조를 꼽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87년 민주화 이후 오래 동안 형성되어온 의회민주주의로의 발전을 무시하고 제멋대로인 현실이 우리를 착시에 빠뜨리기는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은 헌법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도하고 무책임한 리더십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검찰 등 권력기관의 발호 때문이고, 그 숙주는 민주공화정신에 어긋나는 잘못된 관행과 정치 및 행정 관계 법제와 같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퇴행적 ‘현상’이 있을 뿐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 ‘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닌 것이다.

결국 대선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따라 의회민주주의의 과정에서 형성된 국가정책을 민주공화적인 방법으로 집행할 헌법상의 책무를 지는 행정권의 수반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과정이라면, 총선은 바로 국정의 제1선에서 국민을 대표하여 국가정책을 법률로 확정하고 나라 살림인 예산을 최종적으로 의결할 권한을 행사하면서 국정을 통제할 책무를 감당할 국민대표들을 뽑는 과정이다.

현행 지역대표제를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 즉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이러한 대의기관의 합리적 구성에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지만 누가, 어떻게 국민을 효과적으로 대표하여 국정이 기본질서를 형성할 것인지를 정하는 총선의 기본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은 갖추고 있다. 따라서 현행 선거제도에 따라 지역대표를 개별 선거구별로 뽑아야 하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다수당이 되어 입법권을 주도하고 국정의 집행을 효과적으로 감독하여 통제할 지를 결정하는 것이 총선의 핵심적 과제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마디로 어느 정당에게 국민을 진정으로 대표하도록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총선의 주요한 역할이다. 특히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 헌법은 의회민주주의에 입각하여 의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하는 대통령제를 채택하였지만 현재 이런 헌법정신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번 총선의 주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의회의 다수정파인 제1야당의 대표가 가지는 헌법적 지위를 자기만의 자의적 평가를 내세워 무시하면서 의회와의 협치를 포기한 대통령과 이를 뒷받침해온 집권여당이 의회마저 장악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 헌법이 상정하는 바대로 의회민주주의에 입각한 정부형태를 절반이라도 유지하면서 전면 독재로의 퇴행을 막을 것인지가 관건인 것이다. 발전이냐 퇴행이냐의 교차로에 있는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미래를 어떻게 도모할 것인지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제22대 총선에서 주권자 국민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글쓴이

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공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에 기초한 시민헌법교육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헌법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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