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계가 살아가는 원리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국민들, 의료시장의 숨은 비밀 알아야 국가의 통제 받아온 국내 의료시장 낮은 수가에 병원 ‘박리다매’ 고육책 민간 보험사, 의료체계 이원화 노려 국민 부담 증가 불가피..이를 왜 숨기나

한 대형병원의 수술실 내부 모습. 사진= 연합뉴스
한 대형병원의 수술실 내부 모습. 사진= 연합뉴스

▶ 유튜브로 칼럼 듣기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전공의의 대량 사직 이후 생긴 진료행태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우리 의료계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에 대한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두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다. 이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공의료가 굴러가는 원리

대통령이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정치적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을 포함하는 개념인 것 같다. 대기업에 가해진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정부의 사명이라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만개한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영역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 분야다. 국민은 “건강보험 의무가입”이고 의료기관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다. 이 영역의 의료는 국가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공공병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공공적 의료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은 민간병원이 건강보험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수도권 삼차병원이 굴러가는 원리

건강보험 수가는 수요-공급의 균형점이라는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시장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의 수가를 국가가 결정한다. 그렇다면 의료기관은 다 파산해야 할 것이지만 어떻게든 버틴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삼차병원의 경우, 핵심은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이다. 박리다매인데, “박리”는 국가가 결정한 것이고 “다매”는 의료기관의 생존전략이면서 의료소비자의 도덕적 해이와도 관계된다. 누구나 다 빅파이브(Big 5)에 가려 하기 때문이다. “OECD 최고 수준”인 의사당 진료 건수는 이를 반영한다.

물론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저비용 의사(전공의)를 많이 고용하고,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건강보험 진료에 비보험 진료를 섞어 제공한다. 비용에 비해 수가가 너무 낮은 전문과목은 진료를 줄여서 손실을 최소화하려 한다. 그래서 “필수의료” 부족이 발생한다.

사진=KBS동영상 캡쳐
사진=KBS동영상 캡쳐

삼차병원에 환자 빼앗긴 병원들 굴러가는 원리

일부 삼차병원이 환자를 독식하는 상황에서, 지역 병원과 풀뿌리 의원은 환자가 부족하다. 게다가 건강보험 수가까지 낮으므로 도저히 운영이 되지 않는다. 병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환자) 개척을 해야 한다. 다양한 신종 질환과 치료법이 개발되고 유튜브에 광고되고 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은 어느날 자기가 환자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어 병원을 방문한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치료는 대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비보험). 그래야 병원이 살아남는다. 건강보험 수가는 낮고 비보험 환자 발굴이 어려운 전문과는 생존이 힘들다. 소아청소년과는 전문분야를 바꾸거나 병원 문을 닫는다. 심지어 공공의료원마저 적자가 난다며 문을 닫는다. 그래서 풀뿌리 의료, 지역의료 부족이 발생한다.

실손보험사가 번성하는 원리

새롭게 개척된 치료는 대개 비보험이다. 비보험 수가는 시장경제 원칙에 의해 결정되므로 환자의 부담이 매우 크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실손 의료보험’이다. 실손보험을 들면 환자는 부담 없이 비보험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치료를 못 받으면 손해라 생각하므로 되도록 많이 치료받으려 한다. 병원은 환자가 많이 올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이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브로커도 있다. 이들의 도덕적 해이 아래 실손보험은 성장한다. 아직까지는 실손보험이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보험사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한다. 이제 실손보험 하나 들지 않은 국민이 없을 정도로 판이 커졌다. 손해를 보면서 왜 이렇게 할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들의 목적은 공룡 수준까지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수준에 필적하는 가입자를 가진 민간의료보험이 의미하는 것은 ‘보험사가 주도하는’ 의료민영화다. 민간병원에 의해 근근히 유지되고 있는 공공의료는 붕괴될 수도 있다. 서민은 건강보험의 저급 진료, 부유층은 민간보험(확장된 실손보험)의 고급 진료로 의료체계가 이원화되면서 자본주의 의료시장이 펼쳐질 것이다.

비보험 의료가 번성하는 원리

비보험이나 실손보험 의료는 시장경제 법칙을 따른다. 그래서 일부 개업의들은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 체계에서는 의료자원이 시장이 아닌 정부의 결정에 의해 분배된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문제가 해결된다는 정부의 논리는 시장경제 논리다. 의사 수가 급증하면 건강보험 체계 바깥에서 살아가던 의사 중 일부가 도태되어 건강보험 체계 안쪽으로 들어오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들이 필수의료를 담당할 것이라 가정한다(물론 2000이라는 숫자는 시뮬레이션 모델을 가지고 과학적으로 작업한 결과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기울어진 시장에서는 수요공급의 고전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S전자가 새 휴대폰을 내놓으면 휴대폰 시장에 경쟁이 생겨서 값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폰을 쓰던 사람이 새 폰을 추가로 사게 된다. 새로운 재화가 공급되면 새로운 수요가 생기는 것이지, 경쟁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아이템이 계속 공급되는 의료도 이런 특징을 갖는다. 이런 특징 때문에 비보험 의료는 공급이 증가해도 번성할 수 있었다.

정부가 생존하는 원리: 거짓말과 숨기기

정부는 의사 증원 포퓰리즘 정책으로 의사들을 ‘국민의 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의사를 압박하면 의료개혁이 된다고 보게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가 국민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다. 의료개혁이 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돈은 국민의 부담이다.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야 함은 숨긴 채로 의사 수가 늘면 의사 수입이 감소해서 국민의 의료 부담이 줄어든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 알려지면 국민의 화살은 의사가 아닌 정부를 향할 것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숨기는 또 하나의 사실은 국민의 의료 이용이 제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에 의사를 많이 배치하겠다고 주장하지만, 환자들이 자기 사는 지역에서 진료받도록 만드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의료개혁의 핵심인 의료전달체계는 정부가 건드리기 싫은 뜨거운 감자지만, 이 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의료개혁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의료가 건강해지려면?

진짜 ‘OECD적 의료’를 하려면 OECD 수준으로 환자를 진료해도 병원이 굴러갈 수 있어야 한다. 수도권 삼차병원으로 오는 환자도 제한해야 한다. 1998년 폐지되었던 ‘의료전달체계의 재수립’이 필요하다. 수도권 삼차병원은 적절한 숫자의 중증 환자를 의료진의 적절한 부담하에 진료하게 되고, 그동안 여기서 치료받던 다수의 환자는 지역 삼차병원이나 소규모 병원, 풀뿌리 의료기관에서 치료받게 된다. 지역 삼차병원도 중증 환자를 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역의료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이다.

혹자는 국민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료 이용을 제한받는 것은 건강보험 혜택을 보고 있는 국민으로서 최소한 수용해야할 의무다.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도 그동안 당연시했던 도덕적 해이를 되짚어 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내가 빅파이브의 유명 교수에게서 진료받지 못하면 의료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의료전달체계는 만들되 건강보험을 포기하면 내 마음대로 병원을 고르게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의무가입과 당연지정제는 유지되어야 한다. 적자를 무릅쓰고 실손보험을 팔고 있는 보험사들이 바라고 있는 바는 공공의료의 두 축이 없어지는 것이다. 일부 공룡 의료기관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료 이원화는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다.

돈의 문제

의료전달체계가 잘 시행되어 환자도 의사도 편안하게 진료하고 치료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수가가 대폭 오를 수밖에 없다. 전공의 노동착취를 막기 위해서도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 빅파이브의 환자가 우연찮게 OECD 수준으로 줄어들고 전문의 중심의 진료가 이루어지는 지금, 병원들이 경영난에 부딪히고 있음은 수가의 문제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이 문제는 건강보험료 몇 퍼센트 인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몇 퍼센트가 아닌 몇 배의 재원 증가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당장은 건강보험 재정에 정부 예산 지원이 늘어나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정체된 상태로 간다면, 틈새를 파고드는 실손보험들의 입지가 점점 커지게 될 터인데, 이로 인한 문제는 앞에 이야기한 바 있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 없이 의료 개혁이라는 것을 밀어붙인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돈보다 중요한 문제

정부가 국민들을 부추기는 중요한 포인트는 “의사가 돈을 많이 벌려 해서 우리나라 의료문제가 생겼다”인데, 상당히 악의적인 포퓰리즘 선동이다. 높은 수입을 추구하는 것은 악덕이 아니라 자본주의 윤리에 충실한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당위는 다른 사람들이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명감은 스스로 가져야 하는 것이다. 사명감을 갖기 위해서는 내가 의사라는 사실에 대한 자긍심과 자존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결정적으로 이것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정부에 의해 의사는 “국민 건강의 최전선에서 열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 벌기 위해 환자를 내팽개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많은 의사들이 묵묵히 환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