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전기차 화재, ‘배터리 인증제’ 도입 반대한다
벤츠가 배터리 공급사 속였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아...법적으로 문제없어 보여 배터리 인증제, 책임공방만 일으킬 것 車제조-배터리사 공방에 소비자는 ‘뒷전’
벤츠가 중국 10위업체 배터리를?
지난 8월 1일 인천 청라지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사고는 여러 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수백 대의 차량이 불에 타고 건물의 안전성 마저도 위협받는 유례없는 규모의 피해, 고급차의 대명사인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생산한 차량에서 불이 발생한 점, 그리고 발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배터리가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 신뢰가 낮은 중국산 배터리라는 점 등이 어우러져 이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고, 이에 대해 여러 전문가와 기관들이 제각각 이 사건에 대한 분석과 대응방안을 제시하면서 혼선이 더욱 가중되어 가는 것 같다.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의 초점은 화재의 책임소재와 전기차 화재에 대한 향후 대응방안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글에서는 이에 더하여 자동차 산업에 대한 영향에 대해서도 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지점은 벤츠 전기차에 사용된 배터리가 어느 회사 제품인가이다. 화재가 발생한 벤츠 EQE 차량은 2023년 4월에 국내에 출시된 차량으로 아직까지 신형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차가 출시되기 1년 전인 2022년 4월에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전기차 개발을 총괄하던 크리스토프 스타진스키가 국내 언론과 했던 인터뷰에서 “EQE 차량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중국의 1위 배터리 기업인 CATL 제품”이라고 얘기한 바 있었으나 이번 사고 이후 실제로 사용된 배터리는 10위권 업체인 파라시스(Farasis)사의 제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벤츠가 거짓말을 했다’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차량이 국내에 수입되어 판매되려면 차량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때 배터리의 제원을 포함하여 차량의 주요 제원을 국토부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신고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파라시스 배터리가 사용되었음이 사전에 신고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수입사인 벤츠 코리아가 국내 판매 전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터뷰 내용을 정정하는 것이 도의적으로 바람직했겠으나 법적으로는 파라시스 배터리가 사용된 것에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국의 배터리 기술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1위 기업인 CATL의 제품이 사용되었어도 논란이 되었을 판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10위권의 회사 제품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자 소비자들의 불안과 불만이 터져 나왔고, 이것이 배터리 인증제에 대한 요구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배터리 인증제, 소비자보호에 별 도움안돼
이에 대해 나는 배터리 인증제가 도입될 경우 소비자의 부담은 늘고, 차량 제조사의 책임은 줄어드는 불합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차량 제조사는 원가 절감이나 공급 안정성 확보 등 다양한 이유로 하나의 부품을 여러 공급사에서 공급받는 ‘멀티 벤더(Multi Vendor)’ 방식을 쓰고 있다. 차량에 사용된 부품이 차량 제조사가 정한 성능과 안전 규격을 충족시키는 한, 소비자는 특정 부품이 어느 공급사에서 생산되었는지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부품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소비자는 차량 제조사에 책임을 물으면 되지 부품 공급사를 찾아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다.
차량의 품질이나 성능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1차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은 차량 제조사가 지는 것이고, 이후 차량 제조사와 부품 공급사 사이에서 책임 소재에 대한 분석과 협상을 거쳐 각 회사가 부담할 보상액을 정하게 된다. 부품의 결함에 대해서 소비자가 부품 공급사를 상대할 필요는 전혀 없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배터리 인증제가 도입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제도를 통해 인증받은 배터리에서는 완벽하게 불이 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모든 배터리는, 확률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불이 난다. 그런데 인증받은 배터리를 사용한 차량에서 불이 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차량 제조사는 배터리 제조사나 인증기관에 책임을 미룰 것이고, 배터리 제조사는 차량 제조사에게 책임을 미룰 것이다. 그 사이에서 소비자는 피해만 입고 보상은 받지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책임소재를 한 곳으로 선명하게 집중시키는 것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고에서도 벤츠 차량에 CATL 배터리가 사용되었는지, 파라시스 배터리가 사용되었는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벤츠의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벤츠에 물으면 된다.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 차량 제조사가 물을 일이다.
벤츠 책임일까, 차주 책임일까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문제는, 과연 벤츠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이다. 벤츠 차량의 결함인가? 아니면 차주의 부주의한 사용 때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문제 해결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지난 8월 11일에 벤츠 코리아는 이번 화재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45억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지만 인도적 차원의 지원”이라고 말하며 제품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제조물 책임법의 “입증책임”이다. 제조물 책임법의 3조 2항에서는 피해자가 아래 세 가지 내용을 증명할 경우 손해의 책임이 제조사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1.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
2. 제1호의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되었다는 사실
3. 제1호의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사실
이번 사고의 경우에는 차량이 출고된 이후에 임의의 변형이나 개조가 가해지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화재가 나기 전에 약 3일동안 차량이 주차된 상태였다는 사실로 볼 때 2호와 3호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1호에 대해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제조사 측에서 차량이 운행 중 과도한 충격을 받아 손상이 생겼고 그것이 화재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번 화재사고의 책임은 차주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상식과 어긋나 보이는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은 유사한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5월 충주시에 위치한 한 골프장에서 클럽하우스 지하에 주차되어 있던 전동카트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2021년 9월에 대법원에서 제조업자에 대한 제조물 책임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최종 판결한 바 있다. 이 판결의 결과로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혹은 피해자는 본인의 과실이 없이 피해를 입었으나 보상은 전혀 받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청주 골프장 사건과 이번 청라 아파트 사건의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사례와 같이 입증책임에 대한 법적 공방은 대중의 상식과 다르게 결론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제조물 책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입증책임과 이에 따른 징벌적 배상이 보다 소비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적용되기를 바란다. ②편에 계속
참고문헌
“전기자동차와 가솔린자동차의 실물화재 비교 분석”, 최아영 외, 한국방재학회논문집 제21권 6호, 2021년 12월.
“최근 5년간 전기차 화재 189건 발생… 지하주차장에서도 22건”, 조정제, 안전신문 2024년 8월 13일 기사(https://www.safet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1660)에서 재인용.
“지하주차장 내 전기자동차 화재의 소방시설 적응성 분석을 위한 실규모 소화 실험”, 고병용 외, 한국화재소방학회 논문지 제38권 2호, 2024년.
“[집중취재] ‘전기차 포비아’ 부른 인천 청라 아파트 화재… 문제는?”, 최영, 최누리, 소방방재신문 2024년 8월 9일 기사.
“Global EV Outlook 2024”, International Energy Agency, April 2024 (https://www.iea.org/reports/global-ev-outlook-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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