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밸류업을 위한 바람직한 재정운용은
[기획- 민주주의·리더십 포럼] 국가부채 증가가 미래세대 착취일까 많은 경제학자들, 이에 동의하지 않아 “국가부채는 우리가 우리에게 진 빚” 국가가 어떤 생산적 역할 하느냐가 중요 국가 밸류업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 2023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는 공동기획으로 [민주주의·리더십 포럼]을 진행합니다. <더 칼럼니스트>는 정치학·법학·언론학·행정학·경제학을 전공하는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통해 월 2회에 걸쳐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소개하여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의식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국가부채는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
지난 8월 말 정부는 2025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총지출 예산은 올해보다 3.2% 증가한 677조 원으로 지난해 2.8% 증가에 이어 2년 연속 긴축재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에서 400조 원의 국가부채 증가 탓에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아직도 전 정권 탓을 하고 있다. 경제가 내수 부진으로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에서 스스로 밝힌 대로 경제가 확실히 살아나는 중이라고 믿어서인지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있다.

자유를 입에 달고 사는 윤 대통령이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부정하는 데는 평소 그의 정치경제 철학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자유를 외치는 보수 정치인들은 국가부채 증가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국가부채가 현재 세대의 이익을 위한 정부지출의 부담을 미래세대로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4월 국무회의에서 ‘”방만한 지출로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4년 7월 한 일간지의 기고문에서 “파국이 예정된 복지는 세대 간 착취나 다름없다. 어떤 누구도 미래세대에 빚을 강제로 떠넘길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부모 된 자로서 자식에게 빚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치적 의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계나 기업과 같은 민간의 부채와는 다르게 ‘국가부채는 미래세대 부담이 아니’라는 점은 거시경제 이론에서 명확하게 정리된 논의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보수 정치인과 언론, 심지어 일부 경제학자들까지 국가부채를 미래세대 부담이라는 주장을 견지하는 배경에는, 실물 경제의 문제를 회계 논리로 보는 사고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이 아닌 이유
먼저 실물자원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소비는 생산에 기초한다. 현재 세대가 미래세대를 착취하려면 미래의 생산을 현재로 가져와야 한다. 이것은 타임머신이 없는 한 불가능하다. 반면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의 생산을 도울 수는 있다. 현재 세대가 생산 중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생산적 자본으로 축적함으로써 미래 세대의 생산을 돕고 결과적으로 소비의 증가를 통해 미래 세대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생산적 자본 축적에 의한 세대 간 자원 배분의 논리는 현재 세대의 자본 축적, 즉 저축이 줄어들면 미래세대의 후생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도 된다. 그러면 국가부채의 증가, 즉 재정적자가 미래세대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은 국가부채의 증가가 생산적 자본 축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고전학파적 전통에 있는 경제학자들은 정부지출의 증가는, 그것이 소비든 투자든, 그만큼의 민간 지출을 구축(crowd out)하고 민간과 비교해서 비효율적인 투자를 초래함으로써 미래세대 후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반면 케인지언적 전통에 있는 경제학자들은 고전학파 경제학의 논리는 경제의 완전 고용 상태를 전제로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경제가 불완전 고용 상태에 놓인 상황에서는 정부지출의 증가가 구축효과 없이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용한 정책 수단임을 주장한다. 결국 실물 경제 관점에서 미래세대의 후생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인 경제성장에 국가부채의 증가가 미치는 영향은 현재의 경제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국가부채가 미래세대의 부담, 나아가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논리적 비약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국가부채가 미래세대 부담이라는 논리가 만연하는 데는 공공선택 이론을 연구한 경제학자인 제임스 뷰케넌(James Buchanan)의 영향이 적지 않다.
한스 네이서(Hans Neisser)라는 경제학자는 <국가부채는 미래세대 부담인가?>라는 1961년 논문에서 ”미국 대부분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국내에서 발행된 국채의 실질적 부담은 미래세대로 이전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아담 스미스 등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국가부채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극복하고 케인즈가 대공황 극복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한 이후, 아바 러너(Abba Lerner) 등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에 의해 ”국가부채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것은 국가부채를 가계부채에 비유하는 잘못된 논리에 근거한 것”이며 “국가부채는 우리가 우리에게 진 빚“이라는 견해가 주류가 된 것이었다.
이에 뷰캐넌은 1958년 그의 저서에서 국가부채의 부담을 거시적으로 보면 안되고, 미시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부채가 미래세대의 부담이라고 주장했다. 즉 “현재 시점에서 국채를 자발적으로 매입한 사람은 자신의 소비 경로를 최적화하는 데 국채를 활용하였으므로 아무런 부담을 가지지 않고, 현재 납세자는 정부지출을 위한 자금을 국가가 세금이 아닌 차입으로 조달하였으므로 부담이 없으며, 현재 정부지출의 수혜자도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므로, 결국 정부지출 수혜의 비용은 미래 납세자가 부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누군가 수익을 누렸다면 누군가 비용을 부담하는데 현재 세대의 수익에 대한 비용을 미래세대 납세자가 부담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빈틈없어 보이는 이 미시적 논리는 국가부채로 조달된 재정정책이 거시정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국채 매입자는 현재 자신의 소비를 포기함으로써 재정 지출의 수혜자가 누리는 혜택의 비용을 대신 지급한 것이다. 국채 매입자는 미래에 국채 원리금 상환으로 보상을 받으며 원리금 상환은 미래 시점의 세입에 의해 이루어진다. 국채가 나라에 빚이라면 가계에는 자산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회계적으로도 국가부채가 미래세대 부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뷰케넌의 제자인 와그너(Richard Wagner)조차도 과거 군주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국가는 채무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국가의 차입행위는 은행과 마찬가지로 금융 중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런데도 왜 뷰캐넌은 그와 같은 논리를 주장하고,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일부 경제학자들은 뷰캐넌의 논리를 반복하는 것일까? 호주 국립대의 사회학자인 멀린다 쿠퍼(Melinda Cooper)는 뷰캐넌이 생산적 자본을 위한 정부지출이 미래세대의 부담이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개인이 아닌 ‘사회적(social) 이해’에 따라 ‘사회적’ 후생을 위해 집행되는 재정 지출은 우려했다고 보았다. 쿠퍼는 “뷰캐넌이 관료 또는 정치인이 사회적 이해에 관한 결정을 하게 되면 소수의 부자를 착취하기 위해 다수의 저소득층에 의해 설득될 것”이라고 우려하였으며 “국가 부채는 조세부담을 미래로 미룸으로써 생산적인 시민, 즉 부자들로부터 비생산적인 시민, 즉 가난한 다수로 부가 강제로 재분배되는 것을 감추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보았다”고 주장한다. 뷰캐넌의 세대간 부담 논쟁은 사실 ‘다른 사람과 그들의 자식들의 후생을 위해 나와 나의 자식들의 자본을 빼앗고 있다’는 세대내 논쟁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가부채의 미래세대 부담 논리는 전혀 성격이 다른 국가부채를 의도적으로 가계부채에 비유하여 사회 구성원에게 도덕적 부담을 가지게 함으로써 국가의 역할을 제약하려는 이념적 논리에 불과하다. 재정 지출과 동일하게 국가부채를 증가시키는 감세정책에 대해서는 미래세대 부담을 들먹이지 않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한국 경제는 소비 부진으로 인한 성장률 저하와 저출생, 환경문제 등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과제가 산적하다. 미래세대 부담을 핑계 삼아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은 오히려 미래세대에 더 큰 부담을 안기는 위선적인 태도다. 기업의 주가는 자금을 자기자본으로 하는가 또는 부채로 하는가가 아니고 기업의 산출에 달려 있다. 국가의 가치도 재원 조달을 조세로 하느냐 부채로 하느냐가 아니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 국내 주식시장 밸류업만 외칠 것이 아니라 정부는 국가 밸류업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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