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청장 배석, 헌법학자에게 물었더라면
- AI 답변의 한계 같은 제미나이도 질문의 방향에 따라 상반된 헌법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AI의 답변만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 행정감독권과 수사의 중립성 대통령의 행정감독권은 무제한이 아니다. 중수청·공소청의 국무회의 배석 자체와 개별 수사·기소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
- 대통령 곁의 직언하는 참모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뒷받침하는 조문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분립과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적 원칙을 직언할 전문가가 곁에 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 주변에 헌법학자 조언자가 있을까
며칠 전, 대법원장의 제청권 논란에 대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 주변에 헌법학자 참모가 없는 것 같다’고. 헌법학자의 면밀한 검토를 거쳤다면 제청권 문제가 청와대가 대법원에 ‘재제청해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는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법이나, 아예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하는 데 그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지용 중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 문제에 대해 AI인 제미나이에게 물어본 뒤, 헌법에 부합한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주장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헌법은 조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지성과 양심,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리고 헌법적 가치를 지켜내려 했던 역사적 투쟁의 흔적이 헌법 곳곳에 배어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제미나이는 그 무게까지 읽어냈을까.
AI가 대신 답해준 ‘위헌적 억지’
이 대통령이 소개한 제미나이의 답변은 단호했다. 중수청장 등의 국무회의 배석을 비판하는 것은 “정부조직법 제11조를 부정하는 것으로, 공소청장·중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 불가론은 위헌적 억지”라며, “정부조직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행정감독권과 정부 통솔 구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궤변”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이 정부의 수반으로서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고, 국무총리가 지정하는 중요 행정기관의 장은 국무회의에 배석해 소관 사무에 관해 발언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별도의 글에서는 “산림청장, 소방청장, 해양경찰청장도 회의에 참석해 논의한다며 중수청과 공소청 역시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의 지휘를 받는 청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중수청장이 산림청장과 똑같은 성격인가
정말 중수청장과 공소청장은 산림청장, 소방청장, 해양경찰청장과 같은 성격의 행정기관이라고 생각하는가.
대통령의 행정감독권이 있다는 사실과 그 권한이 수사·기소 기관에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무회의에 배석해 소관 업무를 설명하고 정책 논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곧바로 위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행정부의 정당한 정책 조정과 행정감독이 개별 사건의 수사·기소 방향에 대한 정치적 개입으로 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통령의 행정감독권이 수사·기소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무제한으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은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이 다시 확인하는 ‘수사권 독립’
그렇다면 중수청장 등의 국무회의 배석과 행정부 수반의 지휘가 왜 헌법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우리 헌법에는 ‘수사기관은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문구가 없다. 헌법은 기본적으로 통치구조와 국가기관의 큰 틀을 다루는 최상위 규범이기에 개별 수사기관의 위상과 권한까지 일일이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법치주의를 뒷받침하는 헌법적 원칙은 헌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다. 이 조항이 법치주의를 직접 명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특정 권력자나 대통령 개인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민주공화국의 원리를 담고 있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 제도적 원칙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한다. 이 조항은 국민의 기본권 제한에 관한 규정이지, 대통령의 행정감독권을 직접 제한하는 조항은 아니다. 다만 국가권력의 행사가 법률과 헌법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법치국가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권력분립과 사법권의 독립을 규정한 헌법 조항도 있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한다.
물론 이 조항들이 수사기관의 독립까지 직접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의 사법권과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보장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가 정치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우된다면, 독립된 법원의 재판만으로 법치주의를 온전히 지켜내기 어렵다.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역시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살펴야 하는 이유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가능성
수사기관이 행정부 수반의 뜻에 따라 야당이나 정치적 경쟁자를 겨누거나, 권력자의 비리를 덮는 데 동원된다면 독립된 사법 절차의 토대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행정부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헌이라고 단정하는 데 있지 않다. 행정적 지휘와 정책 조정이 어디까지 허용되고, 어디서부터 개별 사건에 대한 정치적 개입으로 변하는지를 가려내는 데 있다.
헌법 제7조 제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한다.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적 가치로 명시한 조항이다. 수사·기소 기관에 소속된 공무원 역시 법률이 정한 제도적 장치 안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수사권과 기소권이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이 정도의 답변은 필자 역시 제미나이를 상대로 얻었다. 필자는 ‘대통령의 생각이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근거를 찾아줘’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제미나이는 수사기관의 수장을 국무회의에 앉혀놓고 공개적으로 지휘하는 것은 정치 권력의 수사 지배를 드러내는 행위이며, 민주주의가 오랜 투쟁을 통해 지켜온 법치주의와 수사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답했다.
AI는 강조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이 받은 제미나이의 답변과 필자가 받은 답변은 왜 이렇게 다를까. 물론 AI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강조하느냐, 조문에 적힌 권한을 찾도록 요구하느냐 아니면 헌법의 가치와 그 한계를 검토하도록 요구하느냐에 따라 답변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사안에서도 질문의 틀에 따라 서로 다른 논리를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AI가 제시한 답변을 근거로 헌법적 논쟁을 끝낼 수 있을까. 대통령이 받은 답변이 정부조직법상 행정감독권을 강조했다면, 필자가 받은 답변은 정치적 중립성과 권력분립의 가치를 강조했다. 어느 한쪽의 답변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헌법적 판단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두 논리를 함께 놓고, 행정감독권의 범위와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따져야 한다.
이마저 초보적인 논리에도 어긋나고 수준이 낮은 주장이라고 할 것인가.
헌법학자들이 대통령에게 해줘야할 조언
필자는 다른 의문도 든다. 왜 이재명 대통령은 헌법학자에게 물어보지 않고 AI에게 물어봤을까. 혹시 헌법학자에게서는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번 논란을 통해 이재명 정부 주변에 헌법적 우려를 가감 없이 전달할 참모들이 있는지 의문이 남는다. 권력의 최고 지도자가 실정법 조문에 기대어 행정부 수반의 지휘권을 강조할 때,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권력분립이라는 헌법의 대원칙을 함께 검토하자고 직언할 전문가 집단은 곁에 있는가.
헌법학자들이 모두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과 행정감독권의 한계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경고는 나와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설명하는 법률 조항을 찾는 일과 그 권한이 헌법적 원칙에 비추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검토하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닫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애초에 헌법학자에게 묻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자신 사건을 변호해온 법률가들의 해석에 더 무게를 두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해프닝은 대통령 곁에 쓴소리를 할 진짜 헌법학자가 제대로 있는지 의문을 남긴다.
헌법의 정신은 문자의 나열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오랜 투쟁을 통해 쌓아온 민주주의의 역사와 권력의 절제, 균형, 타협과 소통 속에 살아 있다. 대법원장 제청권 논란도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AI의 입을 빌려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기에 앞서,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이 헌법적 원칙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불편한 답을 하더라도 기꺼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헌법은 권력자가 자신의 권한을 확인하는 문서인 동시에, 그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묻는 기준이다.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 권력의 색깔이 붉든 파랗든, 최고권력을 견제하고 민주주의의 정신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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