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조희대 라인’ 완성, 그 위험한 신호

박영재 처장 인사가 드러낸 사법독립 주장의 맹점

대법원 사무실을 출근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 연합뉴스
대법원 사무실을 출근하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 연합뉴스
  • [1분 핵심 요약]
  • 논란의 인사: 조희대 대법원장이 최측근 박영재 대법관을 법원행정처장에 임명했습니다. 이는 단순 인사가 아닌 ‘제왕적 사법권력’의 공고화를 의미합니다.
  • 구조적 모순: 사법 독립은 외부(정치)로부터의 독립뿐 아니라, 내부(인사권자)로부터의 독립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법원은 대법원장의 시선에 순응해야 생존하는 구조입니다.
  • 대안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인사권을 분산하는 ‘사법행정위원회’ 등 제도적 설계가 있어야만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이 가능합니다.
  • [The Insight: 행간의 재구성]
  • “독립이라는 이름의 성벽,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사 독점”
  • 정태호 교수는 지금 한국 사법부가 외치는 ‘사법 독립’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보호하는 ‘방패’로 쓰이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 특히 ‘배타적 엘리트 의식’과 ‘인사권자의 신호’가 어떻게 판결의 경향성(윤석열·김건희 관련 재판 등)에 영향을 주는지 분석한 대목은 가히 파격적입니다. 이 칼럼은 사법개혁이 왜 ‘인물 교체’가 아닌 ‘권력 분산’이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적 토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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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임명된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월 중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의 후임으로 임명했던 박영재 법원행정처장이, 2월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5월 1일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린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적극적으로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의 임명을 둘러싼 잡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에 가깝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임명된 대법관이라는 점, 그리고 가장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를 대선 무대에서 제거하려는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 판결에서 보충의견까지 내며 판결의 정당성을 강변했던 이력은 그를 ‘독립된 행정가’보다는 ‘임명권자의 대변인’으로 비치게 하기 충분하다.

‘조희대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단순한 수사가 아닌,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뼈아픈 질문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국민의 신뢰가 왜 무너졌는가

그의 임명은 곧바로 한국 사법 독립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직격한다. 대법원장이 자신의 철학을 가장 충실히 대변해 온 인물을 사법행정의 총책으로 기용한 것은, 단순한 보직 부여를 넘어 법원 구성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다.

주지하듯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의 지휘 아래 법관 인사를 실무적으로 보좌하며 대법원장의 제왕적 지위를 떠받쳐 온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 정점에 대법원장과 정치적 인식을 같이하는 ‘현직 대법관’이 앉아 있다는 사실은, 인사권이 어떻게 법원 내부의 권력구조를 공고히 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박영재 신임 처장은 취임사에서 자신이 “단순히 행정을 담당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닌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그러나 바로 그 ‘국민의 신뢰’가 무엇으로 무너져 왔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기존 권력구조의 한복판에 서는 순간부터 이 말은 구조적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개인의 진정성(?)과 무관하게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그 약속 자체가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문제적 인물이 인사실무 장악

우려는 인물의 성향 평가에서 출발하지만, 곧바로 인사구조의 문제로 확장된다. 문제의 인물이 사법행정의 심장부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상징성이 크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든 일련의 재판의 당부를 떠나 지금 한국 사회가 법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정치적 의미’라는 렌즈를 통해 형성되어 있다. 대법원장이 그 렌즈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핵심은 개인이 아니다. 문제는 대법원장 1인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다. 현행 제도에서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을 행사하고, 그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일반 법관을 임명한다.

동시에 법관의 승진·보직·전보는 물론 징계 절차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이 막강한 권한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일상적으로 집행되는 인사구조에서는 법관에게 헌법적 당위로서의 ‘재판상 독립’은 이 인사체계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 작동하게 된다.

승진의 문이 좁고, 발탁과 탈락이 반복되며, 전보가 잦고, 근무평정이 촘촘할수록 법관은 인사권자의 시선을 계산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법 독립의 핵심은 더 이상 외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만 있지 않다. 내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즉 인사권을 독점한 ‘정점과 개별 법관 사이’의 미시적 권력관계가 진짜 쟁점이다.

“인사가 망치는 법관 직업윤리”

이러한 인사구조의 문제는 개별사건에서의 법관의 위축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법관집단의 문화 자체를 왜곡시킨다. 일반 법관의 보직·전보·승진이 전적으로 법원 내부의 평가 기준과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시민의 관점에서 법관의 책무성을 제도적으로 관철할 통로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법관사회는 외부 비판에 대해 폐쇄적으로 반응하고, 내부 기준에 대한 순응이 미덕으로 자리 잡기 쉽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법관의 독립성은 강조되지만, 법관 집단의 직업윤리가 타락할 때 그 책무성 관철은 어렵다.

특히 경쟁적 선발 과정을 거친 초임 법관들이 장기간 도제식 교육과 평가 체계 속에 편입되는 현실은, 법관집단의 배타적 엘리트 의식과 동업자 의식을 강화해 왔다. 이러한 문화가 정년 이전 조기 퇴직 관행과 맞물릴 때 전관예우를 통한 법의 왜곡이라는 병폐가 구조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는 일부 법관의 일탈이 아니라, 인사권이 집중된 구조가 장기간 축적해 온 문화적 결과에 가깝다. 이 구조 속에서 법원행정처는 단순한 행정지원 부서가 아니다.

‘법원 전체의 살림’을 하는 조직이면서도 동시에 법관사회의 보이지 않는 신호체계- 누가 유망주인지, 누가 소외되는지, 어떤 태도가 ‘안전한지’ - 를 유통하는 통로가 되기 쉽다. 하급심 법관이 법원행정처·법원장·상급 법관 라인의 눈치를 보게 되는 문화가 굳어지면, 정치적·사회적으로 의미가 큰 사건에서 법관이 위축될 위험은 커진다.

박 처장이 취임사에서 말한 “국민의 엄중한 목소리를 겸허히 듣겠다”는 다짐 역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배치의 문제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권력이 집중된 상태에서의 겸허함은 언제든 철회가 가능한 미덕일 뿐이다.

법관은 왜 번번히 실패하는가

작년 말 사법개혁의 파고가 닥칠 때 조희대 대법원장은 전국 법원장회의를 소집했다. 뒤이어 전국 법관대표회의도 가동되었다. 두 회의체는 모두 법원행정처가 이미 취해 온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론을 내놓았다.

전국 법원장회의는 사법개혁 입법을 두고 ‘사법부 참여 없는 개편은 사법 독립을 훼손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실상 대법원장의 입장에 힘을 실었고, 이후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 쟁점 사안에 대해서도 위헌성 우려를 공식화했다.

전국 법관대표회의 역시 한동안 명확한 입장을 채택하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결국 법원장회의와 같은 방향에서 개혁 입법에 대한 반대·신중론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두 회의체는 불신의 대상이 된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나 사법행정 운영 방식 개선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우연이라기보다 대법원장이 법관인사권을 독점하는 구조 아래에서 인사대상자들로 구성된 회의체의 판단과 발언이 자연스럽게 ‘대법원장의 관점’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국회에서 질의답변하는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사진= 연합뉴스
국회에서 질의답변하는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사진= 연합뉴스

이례적 결정과 교과서적인 판결

지귀연 재판부가 설득력 없는 법해석으로 윤석열을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시켰던 일, 3대 특검법 사건들의 수사 과정에서 청구된 영장들에 대한 영장전담판사들의 이례적으로 높은 기각 비율, 확립된 대법원 판례까지 무시해 가면서까지 노골적으로 김건희에 큰 온정을 베푼 제1심판결.

그리고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와 김영선 전 국회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 등은 인사권을 가진 조희대 대법원장이 보내는 신호에 대한 충실한 응답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한덕수 전 총리 등에 대해 법과 원칙에 충실했던 이진관 부장판사의 교과서적 판결이 왜 오히려 ‘이례적인 사건’으로 회자되는지도 이 지점에서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인사권자의 의중과 조직의 논리가 강력한 신호체계로 작동하는 구조 안에서, 법관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만 의지해 독립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당한 ‘인사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고독한 결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의 체제는 소신 있는 판결을 보호하기보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안전한 선택’을 보상하는 구조적 함정으로 기능하고 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채택했던 법원장 후보 추천제처럼 대법원장 중심 구조를 개선하려는 사법부 자체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법원장 추천제가 ‘인기투표화’되고 특정 학술모임이 독식하며 재판 지연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것과 그 자리에 다시 더 강한 중앙집중의 질서를 복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금처럼 사회적 분열이 심각하고 사법 신뢰가 취약한 국면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고쳐 왔는가”보다 “우리가 무엇으로 되돌아가는가”가 훨씬 크게 읽힌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물의 적격성 논쟁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그 논쟁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사법행정을 합의제 기구로 이관하자는 ‘사법행정위원회 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구상이 전제하는 것은, 법관집단이나 정치집단 어느 한쪽에 대한 단순한 불신이 아니라 어떤 단일 집단이라도 인사권을 독점할 경우 독립성과 책무성의 균형이 구조적으로 붕괴된다는 제도적 통찰이다.

법관 대표·비법조 전문가, 그리고 정치적 다원성이 반영된 위원들이 상호 견제와 협력을 이루는 구조만이, 법관인사를 비롯한 사법행정을 개인의 덕성이나 결단이 아니라 제도로 통제할 수 있고 또 법관의 책무성도 관철할 수 있다.

사법부 내부 권한 집중을 막아야

핵심은 단순하다. 권력을 집중시켜 독립을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집중된 권력이 독립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분산하고 투명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이런 장치가 있어야 사법부는 ‘정치로부터의 거리’, ‘법관의 책무성 제고’를 통한 사법에 대한 신뢰 회복을 말이 아니라 설계로 증명할 수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인사구조 개선을 위한 외부의 노력을 ‘사법 독립 훼손’이라는 명분으로 방어해 왔으나, 정작 이번 인사는 사법부 내부의 권력 집중이 어떻게 정치적 해석을 자초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법 독립이라는 방패가 인사권자의 제왕적 지위를 옹위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때, 국민의 신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이제는 ‘한 사람’의 결단이 아니라 ‘한 체계’의 개혁을 통해 사법부가 스스로 정치적 렌즈를 벗어 던져야 할 때다.

글쓴이

정태호 경희대 법전원 명예교수

정태호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독일 Regensburg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헌법재판소 연구원, 헌법재판소 연구위원,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로 정당, 기본권, 헌법재판에 관한 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노무현 재단 ‘민주주의 리더쉽 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주석 헌법재판소법」(공저), 번역서로는 「독일기본권론」, 「독일헌법재판론」, 「정치적인 것의 개념」(공역), 「헌법과 민주주의–헌법이론과 헌법에 관한 연구-」(공역)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국가기관 상호간의 권한쟁의심판절차의 무력화”,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의 부조리성-공직선거법 제9조 제1항의 위헌성에 대한 고찰”, “헌법재판의 한계에 관한 고찰-입법형성의 여지를 규정하는 요인들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 평등권 심사기준의 재정립 필요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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