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헌법이 주지 않은 권력 내려놓아야
[기획- 민주주의·리더십 포럼] 헌법은 꼭 필요한 만큼의 권한을, 법이 정한 절차·방법 따르도록 해 ‘적재적소’라는 인사원칙 지키고 비판할 자유조차 부정해선 안돼
- 2023년 3월부터 <더 칼럼니스트>와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는 공동기획으로 [민주주의·리더십 포럼]을 진행합니다. <더 칼럼니스트>는 정치학·법학·언론학·행정학·경제학을 전공하는 <민주주의·리더십연구회>의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포럼을 통해 월 2회에 걸쳐 민주주의와 리더십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을 소개하여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시민의식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취임 후 2년 연속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5·18 민주화운동의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라며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말 비서관 출신 차관 내정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는 “나에게 충성하지 말고 헌법정신에 충성해달라”고 했다. 올 제헌절을 맞아서는 “위대한 국민과 함께 헌법정신을 지켜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국정운영은 국가 사회의 번영에 필수적인 기본원칙을 규정하고 정의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정신, 특히 강자만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의 이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헌법의 정신은 정부가 공익 추구를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의 권력을 법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쓰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번영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는 헌법이 예정한 권력 이상의 권력의 추구는 공익이 아닌 사익이나 일부 집단을 위한 이익을 도모하려는 방편이거나 무능의 표출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구의 근현대사도 ‘제한된 정부’ 이념을 토대로 한 헌정질서가 존중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서구 민주국가들이 권력을 통제받지 않고 행사할 수 있는 전제국가나 독재국가에 비해 훨씬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이념과 정권에 대한 비판을 용납지 않았던 극우 전체주의인 나치 독일은 미국을 필두로 하는 연합국과의 전쟁에서 패망했다. 한때 초강대국 미국과 자웅을 겨룬 극좌 전체주의 소련도 일견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보이는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비효율성을 드러내며 스스로 붕괴했다. 서방의 민주국가들이 이처럼 유능한 국가가 되지 못했다면 입헌민주제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매우 낮은 근본적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헌법의 ‘제한된 정부’의 이념을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검경 등 권력기관들을 이용하여 헌법이 주지 않는 힘까지 억지로 짜내서 우격다짐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국가기구는 물론 법의 정당성과 권위를 휘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에도 배치되는 언행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방식부터 그랬다. 대통령 집무실의 국가적 상징성, 관련 시설의 연쇄적 이전 등에 따르는 수천억 원에 상당하는 이전 비용, 안보 공백의 위험성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사업은 법률적 뒷받침을 받아 차분히 추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새 대통령의 막강한 위세를 배경으로 촌각을 다투는 사업처럼 밀어붙였다.
나라의 중요문제는 국회의 법률의 뒷받침을 받아 이뤄져야 한다는 ‘중요사항 의회유보원칙’이라는 헌법원칙에 반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이 원칙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전 사업을 추진했더라면 주술 등에 업힌 확신과 열정도 절차와 시간 속에서 걸러졌을 것이며, 이태원 참사와 같은 불행한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자유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거듭 천명해 왔다. 최근에는 국정운영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며 야당에 대해서는 ‘가는 방향이 같아야 협치도 타협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협조가 아쉬운 것은 대통령과 여당임에도 말이다.
그의 이어지는 말도 상상 밖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국민, 야당, 자신과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을 향해 “엉터리 사기 이념에 매몰됐다”면서 “이런 세력들과는 싸울 수밖에 없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등등…
그의 이념 중심의 정치는 내치에서는 소련 공산당 가입을 이유로 한 육사 교정 내의 독립운동의 영웅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통일부 조직의 대대적 축소로, 외치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파탄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는 미·일 편향의 이른바 가치 중심 외교, 한·미·일의 사실상의 삼국군사동맹 선언, 우크라이나에 대한 우회 포탄 제공 등으로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말이나 정책을 종합해 보면 그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체가 자신과 달리 생각할 자유,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할 자유조차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반공주의임을 알 수 있다.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도 침해해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러한 이해는 우리 헌법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제한된 정부’ 이념을 구체화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헌법 제4조 및 제8조 제4항)에 배치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우리 헌법재판소의 정의에 따르면, “모든 폭력적·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과 자유·평등을 기본원리로 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정치적 질서”요, 민주제 자체를 폭력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한 어떤 이념과 이익을 추구하는지를 불문하고 누구나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정치질서”이기 때문이다.
이 질서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기본적 인권 보장’, ‘국민주권’, ‘권력분립’, ‘주기적 선거 등을 통한 정권에 대한 책임추궁 및 정권 교체 가능성’, ‘법치행정’, ‘사법권 독립’, ‘복수정당제와 야당의 자유를 포함한 정당의 기회균등’ 등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미명으로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정책을 국민의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하면서 정책적 오류를 비판하는 야당, 언론, 국민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한편, 정치권력을 둘러싼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검찰은 제1야당의 대표에 대해 400차례가 넘는 대대적인 압수·수색에도 물증 하나 확보하지 못하면서도 형사사법적 공세를 부단히 전개하고 있다. 사건의 진실을 헤아려보려는 노력도 없이 검찰 발의 일방적 정보들로 지면과 화면을 도배하며 저렴하게 만들어지는 다수 언론매체를 이용하여 야권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를 정치적·도덕적으로 매장하려는 시도를 법과 정의의 실현을 빙자하여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다.
수년 전에 있었던 야당의 전 당대표 선거에서 불거진 ‘돈봉투 스캔들’에 대해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대대적 수사가 이뤄지는 데 비해 대통령 측근의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는 고사하고 여당의원들의 정치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 소식은 접하기 힘들다. 비판적 언론매체나 언론인에 대한 압수·수색, 고소·고발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자신이 지휘한 검찰수사에서 언론장악에 관여한 인사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혀 그나마 남아 있는 미약한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인사 비리로 선관위를 흔들더니 마침내 친구를 중앙선관위의 사무총장으로 앉혀놓았다.
윤 대통령의 인사방식도 헌법원칙에 안맞아
한편, 그의 국정운영의 방식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성요소이기도 한 「권력분립원리」에도 반한다. 이 원리는 소극적으로는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여 자유를 보장한다. 이를 위해서 헌법은 국가목적 달성에 필요한 국가의 기능들 및 그 기능 수행에 필요한 권한을 각기 별개의 기관에 의해 독립적으로 행사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권 초부터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필두로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이들을 정파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헌법이 예정한 것 이상의 초과권력을 생산·행사하면서 헌법의 권력균형 체계를 뒤흔들어버렸다. 그리하여 국민의 힘 대표 선거에서 확인된 것처럼 여당의 당내민주주의는 껍질만 남고 소속 국회의원들은 용산의 호위무사를 자임하고 있으며, 제1야당의 대표가 정권의 폭주로 인한 무력감을 단식투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인사방식은 권력분립원리의 적극적 측면에도 반한다. 이는 적극적으로는 공동체 사안을 전문적·합리적·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국가를 조직할 것을 요구한다. 그에 따라 각 국가기관에 맡겨진 과제의 특성에 맞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과제수행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각 기관의 구조를 짜는 것은 물론 각 기관의 과제를 최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로 그 기관을 구성해야 한다. ‘적재적소’의 인사원칙은 이처럼 권력분립원리의 내용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최고·최적의 인재를 등용해도 대내외적 악재들을 극복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지상주의와 맹목적 반공주의에 포획된 채 전문성, 경험, 자질을 묻지 않고 검사 출신 인사, 극우성향의 인사를 대거 요직에 앉히고 있다. 그러니 국정운영의 성과가 좋을 리 없다.
불필요한 힘 빼고 국민의 소리 들어야
윤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면, 검찰 등 권력기관과 사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우호적 언론매체에 의존하는 힘의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권력의 제한과 합리화’를 추구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따라 힘을 빼고 유연해지고 투명해져야 한다. 오로지 공익만을 추구한다면 헌법이 주지 않은 권력을 억지로 만들 필요도 없다.
강력하고 유능한 야당과 수준 높은 자유언론은 정부와 여당에는 각성제이자 방부제이다. 불필요한 힘을 빼야 국민의 여론을 향해 귀가 열리고 더 좋은 정책적 대안에 귀를 기울이며 옳다고 믿었던 정책에 대한 질책도 달게 받으면서 유능해지고 권위가 커지며, 사익을 챙기려는 부패세력이 정권에 기생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지지는 따라 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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