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어떻게 볼 것인가?
국내외 누구도 동의 않는 침략 “독재 타도” 미사여구조차 없어 ‘약탈적 제국주의’ 다시 재현하려 해 트럼피즘 막을 대항력은 “진보세력뿐”
“국내외법상 명백한 불법행위”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외견상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지난 한 세기에 걸쳐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국가에서 유사한 사건이 수십 차례 반복되었으며, 트럼프 행정부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마약테러’(Narco-terrorism) 범죄집단으로 규정하고 수차례에 걸쳐 군사적 경고를 보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군사 행동이 단순한 침공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선제적 자위권’(anticipatory self-defense) 행사라고 주장했으나, 그 실체적·법적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군사력을 이용해서 미국의 영토를 먼저 침범한 사례가 없으며, 베네수엘라 마약카르텔의 범죄 행위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만한 ‘무력 공격’(armed attack)에 해당되는지도 의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 정권을 정상 국가가 아닌 ‘마약카르텔’로 간주했으나, 유엔과 국제사회는 오래전부터 니콜라스 마두로를 베네수엘라의 국가원수를 인정했다. 그가 부정선거로 당선되어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러한 정치적·도덕적 결함이 주권국의 통치자로서 그의 대외적 지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아가 국제사회와 국제법 학자들은 대부분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유엔 헌장을 위반한 국제법상 불법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무력 사용 금지 원칙)은 타국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무력 사용을 금지하고 있고, 제51조는 직접적인 무장 공격이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없는 일방적인 침공은 국제법상 ‘침략범죄’(crime of aggression)에 해당될 수 있으며, 타국의 국가 원수를 강제로 체포해서 자국의 법정에 세우는 행위는 국제법의 오랜 관행인 ‘주권면책’(sovereign immunity) 원칙과 어긋난다.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 행동이 국내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 헌법에 의하면 의회만이 전쟁을 선포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으며, 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전쟁을 시작하거나 타국을 침공할 때는 의회의 승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1973년에 제정된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에 의하면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이 없이 군사 행동을 할 경우에는 48시간 이내에 의회에 보고하고 60일 이내에 의회의 사후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기밀 유출 우려를 이유로 이 절차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공화당 일부에서도 트럼프의 군사 개입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앞으로 의회의 사후 승인이 순조롭게 이루질지도 불확실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9·11사태 이후 테러 조직을 제압하기 위해 제정한 ‘무력사용권한’(AUMF)을 남용하여 주권국을 침공하고 있다는 비판이 공화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단 한 줄의 미사여구도 동원하지 않는 뻔뻔함
이런 이유에서 뉴욕타임즈는 1월 3일자 긴급 사설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불법적이며 아둔한 조치’라고 밝혔고, 영국의 가디언지는 1월 4일자 사설에서 트럼프의 ‘푸틴 따라하기’(Putinization)가 베네수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비판했다. 1월 4일, 라틴아메리카 5개국(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멕시코, 우루과이)과 스페인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하였으며, 주권국의 존엄과 평화를 심대하게 침탈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미국의 군사행동은 국제법 위반이자 “사법적 명분을 앞세워 주권을 유린하는 매우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며 강력한 우려를 표명했다. 1월 5일에 긴급 소집된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들도 주권국의 통치수반을 무력으로 체포하고 정권 교체를 시도하는 행위가 향후 국제 관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지적했다. 이사회에서 미국 측은 “이번 작전은 전쟁이 아니라 수십 년간 수십만 명의 미국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약 테러리스트’를 검거하기 위한 법 집행 작전”이라며 유엔 헌장 제51조(자위권)를 근거로 정당성을 주장했으나, 대체로 지지를 얻지 못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국제법과 국내법적으로 정당성을 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취급될 사건이 아니다. 이제까지 미국이 실행한 타국에 대한 무력 개입의 상당수 역시 그 법적 정당성 여부가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무력 개입은 미국이 이제까지 유지해온 외교적 레토릭과 도덕적 위장을 완전하게 걷어버리고 자신의 진의를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유사한 사건과 큰 차이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통치’(to run)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 발언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인구 3천만 명의 주권국을 무력으로 ‘점령’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유가 이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양의 석유를 미국의 국익에 따라 점유하기를 원하기 때문임을 너무나 당당하게 밝혔다. 미국의 기업을 동원해서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재건하겠다는 트럼프의 발표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동인도회사 운영을 연상케 한다. 독재 체제로부터 베네수엘라의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따위의 인도주의적 구실은 아예 없었음은 물론이다. 같은 맥락에서, 브라질 대통령의 수석고문이자 저명한 외교관인 세우수 아모링(Celso Amorim)은 1월 4일자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무력개입의 이유조차도 위장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왔다는 미사여구도 없었다”고 술회했다.
노골적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선 미국
이 차이는 제국으로서 미국의 성격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영국의 가디언지가 잘 묘사한 것처럼, 이제 미국은 -서방 세계에서는 오래전에 사멸했다고 간주된- 날 것 그대로의 ‘노골적인 제국주의’(naked imperialism)로 복귀했다. 트럼프의 미국은 에릭 홈스봄이 “제국의 시대: 1875-1914”에서 서술한 약탈적 제국주의의 원형을 재현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는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복고적 제국주의 노선은 2025년 11월에 공개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 잘 드러나 있다. NSS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의 근간이 된 1883년의 먼로노선(Monroe Doctrine)에 이른바 ‘트럼프 추론’(Trump Corollary)를 추가해서 이제까지 은폐한 팽창주의 노선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트럼프 추론’의 기본철학은 ‘서반구’(아메리카 대륙)에서 외세와 공산주의의 영향력을 완전히 차단하고 “미국의 경제적·안보적 실익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선언으로 요약된다,
이 새로운 팽창주의 노선은 19세기 서부 개척시대에 원주민 학살과 영토 확장의 명분이 되었던 ‘필연적 운명’(Manifest Destiny)과 닮아 있으며, 히틀러의 대외 팽창 이데올로기인 ‘생활권’(Lebensraum) 개념을 바로 연상케 한다. 베네수엘라 침공 다음날 트럼프가 상기된 표정으로 전용기 안에서 “우리는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대목은 “헝가리와 폴란드의 게르만인 거주지역은 독일 영토로 편입해야 한다”는 히틀러의 발언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노골적 제국주의’ 미국을 어떻게 막을까?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까지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침공으로 베네수엘라는 한동안 통제 불가능한 수준의 정치적·사회적 혼란 상태로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마두로 이후의 정권 교체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개연성은 높아 보이지 않으며, 각종 군벌과 이념집단간 장기 대치가 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태가 인근 국가로 확산되면서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급격한 우경화 또는 이전보다 훨씬 더 과격한 반미주의 성향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미국의 추가적 군사개입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베트남,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등에서 이미 충분히 학습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제사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제국주의적 준동과 그에 수반하는 국가범죄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실효적 장치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시민사회와 법의 지배를 믿는 진보적 정치세력만이 이 시대착오적 정치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극우파 세력들과 부단히 싸워서 미국을 평화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는 정상국가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이들과 부단히 연대하여 제국주의적 준동을 감시하고 억제할 수 있는 ‘초국적압력망’(Transnational Advocacy Networks)을 구축해야 한다. 힘든 길이지만 지름길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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