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유튜브: 카리즈마적 권위의 함정
[박정인의 정치 평론] ‘쉬운’ 정치 하려는 마음에서 비롯 정치는 대화와 타협에 없어지고, 종교에는 진리추구를 놓치게 돼 ‘카리스마 권위’가 된 유튜브 권력 곽상언 의원 지적에 귀 기울여야 토론 실종·정치 극단화 피해야
오래 전부터 보였던 종교 그림자
1997년 대선 TV 토론회장.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후보 간의 라이브 토론이 끝난 뒤 로비에서 기사를 정리하는데 누군가가 말을 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아무개 라고 합니다. 기자님이시죠?”
“네 그렇습니다만.”
“저는 한나라당 경신회 멤버로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경신회요?”
“네 경신회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전국의 역술가 모임입니다.”
경신회 (敬神會). 신을 공경하는 모임. 기상천외한 정당 외곽조직의 정체가 궁금해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경신회는 당시 한나라당이 전국에서 나름 쪽집게를 자처하는 역술가들을 모아 만든 조직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활동하시나요?”
“네 저희는 근거없는 소문 퍼뜨리는 일을 하는 게 아니구요.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 게 확실하고, 그게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에도 맞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이번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가 보군요?”
“그렇지요. 지금은 병역비리 의혹 같은 것 때문에 고생이지만 곧 상황이 반전돼서 여유있게 승리할 겁니다.”
그 해 대선 결과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테니 넘어가겠다. 처음엔 당이 오죽 다급했으면 역술인 조직까지 만들었을까 싶었다. 나중에 당 간부의 말을 들어보니 경신회의 역사가 생각보다 깊었다.
아무리 승리가 절실하다고 해도 역술가들까지 모아서 여론을 움직이려 했을까. 뒤집어 보면 절실함도 절실함이지만 ‘쉽다’는 점이 가장 큰 동력이었다. 선거는 돈이고 발품인데, 돈과 발품 안 들이고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 있다면 경신회가 아니라 경귀회(敬鬼會)라도 만드는 게 정치다.

‘쉽게’ 유권자 마음을 사는 방법들
유권자의 마음을 사기 ‘쉽다(?)’는 논리는 중독성이 강하다. 수십 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지 못했을 뿐아니라 오히려 더 대담해졌다. 최근 김건희 특검은 국민의힘 당원 가운데 통일교 신도로 추정되는 당원 11만 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특검은 국민의힘과 통일교 지도부가 밀약을 맺고 2023년 전당대회 당시 신도들을 대거 당원으로 등록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당은 물론 이런 의혹이 어불성설이며 인구와 당원 비율을 놓고 볼 때 통일교 신자 당원이 11만 명에 이르는 것은 정상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특검이 이미 확보한 증거들은 당 또는 여권과 교회가 긴밀하게 신도들의 당원 가입을 논의한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권리당원을 동원해달라고 했다’거나 ‘신도들에게 입당원서를 나눠주고 할당했다’는 등의 증언이 나왔다. 또 통일교 지도부 인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교단과 관련한 현안을 청탁했다는 증거들도 있다. 당시 전당대회는 당원 투표의 비중을 과거 70%에서 100%로 높여 책임당원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다.
종교 지도자의 말을 의심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유권자들을 무더기 입당시키는 데 어느 정당이든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대규모 정치집회를 하려면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신도들은 스스로 찾아와, 주최 측이 하는 말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요구하는 대로 표를 던져준다.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등록한 책임당원이 46만 명 정도였다. 실제로 통일교 신도 11만 명이 전원 참여했다면 25%에 가까운 공짜표가 주어진 셈이다.
유사종교인 신천지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정황이 발견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2021년 국민의힘 20대 대선후보 경선 당시 신천지 신도들이 조직적으로 입당했다”면서 교주 이만희씨가 윤석열 후보를 도운 건 “검찰총장 시절 신천지 압수수색을 두 번이나 막아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CBS 보도에 따르면 신천지 지도부가 암호명 ‘필라테스’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해 지역별로 신도들의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추진했다고 한다.
정치와 종교의 연대가 주는 ‘쉬운(?)’ 동원력은 대가가 따른다. 정치는 변화하는 현실을 다루지만, 종교는 변치 않는 진리를 추구하는 가치의 괴리 때문이다.
‘변화하는 현실’이란 정치 환경의 변화, 특히 민심의 변화다. 정치가 민심을 유연하게 반영하지 못하면 권력이 무너진다. 선거에서 민심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잘못된 세력이 권력을 잡는다. 반면 종교는 시대상황이 변하거나 구성원들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교리를 바꿔서는 안 된다. 신의 영역을 인간이 건드릴 수는 없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가 손을 잡으면 정치에는 대화와 타협 대신 절대성이 개입하고, 종교에는 진리 대신 담합과 파벌이 자란다. 특히 정치권력이 종교적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종교가 정치권력에 관심을 가지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뚱의 말보다도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중세 마녀사냥의 광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막스 베버는 종교의 권위를 봉건군주의 ‘전통적 권위’나 법치국가의 ‘합리적 권위’와 구분해 ‘카리즈마적 권위’로 분류했다. ‘카리즈마’의 어원 자체가 그리스어로 신의 은총을 뜻한다. 카리즈마적 권위는 합리적 근거나 대중의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이란 뜻이다. 그런 권위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법과 규범, 타협과 합의에 의해 유지되는 민주주의 정체는 위기에 빠진다.
또 다른 ‘카리즈마적 권위’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 종교 말고도 카리즈마적 권위를 가진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에이 무슨 소리야”라는 답이 많을까? 아니면 “그거 딱맞는 표현이네, 맞아 맞아”하는 답이 더 많을까?
요즘 민주당 안팎에서 나오는 설왕설래들을 모아 보면 당 주변 어딘가에 이런 카리즈마적 권위가 존재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인물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의원이다.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유튜브 권력은 상시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면서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더 강력하고 노골적 방식으로 정치 권력을 휘두른다.”
“어떤 정치인은 이익과 지위 때문에 유튜브 권력에 편승하고, 많은 정치인은 어쩔 수 없이 동참하거나 방관하고 있다.”
곽 의원 발언의 핵심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을 비롯한 일부 진보 유튜버들이 당의 노선을 좌지우지하고 심지어 공천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곽 의원은 더 나아가 이런 유튜브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권력 때문에 정치 현장에 “극단적 팬덤과 신앙화 구조에 기반한 왜곡된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베버가 말한 ‘카리즈마적 권위’다.
유튜버가 민주당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가장 최근 사례로 조희대 대법원장 긴급 현안 청문회가 있다. 긴급 청문회를 강행하게 된 근거는 한 진보 유튜버가 제기한 이른바 ‘4인 회동설’이었다. 조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건희씨 측근 김충식 등과 만나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 처리 방안을 논의했다는 휘발성 강한 의혹이다.
제보자의 주장 녹취 외에는 증거가 없어서, 폭로한 유튜버조차 ‘사실 확인은 안됐다’고 전제했고, 조 대법원장과 한 총리 등 본인들은 모두 회동 사실을 부인했다. 국회가 정식으로 다루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김어준씨를 비롯한 진보 유튜버들은 끊임없이 의혹을 언급하면서 민주당을 압박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화답하듯이 조 대법원장에 대한 포문을 열었고, 소속 의원들은 따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가 긴급 현안 청문회였다.
당내 정치의 사례도 있다. 당 안팎에서는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후보가 박찬대 후보를 여유있게 제치고 대표로 당선된 데는 김어준 씨의 영향이 컸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심 박 후보를 지원했는데도 김씨가 개딸들에게 영향을 미쳐 정 후보 당선을 도왔다는 것이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런 집권 초기 대통령이, 그것도 여당의 전당대회에서, 유튜버에게 진 셈이다.
대표적인 진보 계열 유튜버들을 보자면 매불쇼(구독자 278만 명),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구독자 224만 명), 서울의 소리 (구독자 156만 명), 열린공감TV, 김용민TV 등이 있다. 구독자가 백만 명대에 이르는 채널이라면 정치인 입장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상대다. 유튜버들의 이런 영향력은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알아서 기는’ 행태와 맞물려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도 넘은 유튜브 권력의 병폐
앞의 사례들이 보여주듯 민주당이 당의 정치행위와 국회의 입법행위를 유튜브에 의존하는 정도는 도를 넘었다. 유튜버들이야 스스로 노력해서 영향력 있는 정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지만, 각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유튜버의 입에 볼모가 된 분위기다.
곽상언 의원은 이렇게 지적한다.
“유튜버 정치 권력 문제를 비판했는데 왜 국회의원이 그것에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선 사람들이 정작 타깃이 된 유튜버들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이었다는 사실을 비꼰 말이다. 최민희 의원은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유튜브 권력에 편승했는지 밝히라”며 곽 의원의 비판을 반박했다. 최 의원은 왜 김어준을 지켜야 했을까? 유튜버를 감싸기 위해 동료 의원의 발언을 공격하는 행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민주당에 대한 유튜버들의 과도한 영향력에 대해, 필자가 대화를 나눈 당 소속 현역 의원과 전직 의원들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현을 이해한다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들은 거대 유튜버들이 개딸들로부터 신앙 수준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피해 갈 방법이 없다고 했다. ‘부르면 안 나갈 수 없고, 나가면 진행자 맞장구만 치다 돌아온다’는 푸념을 덧붙였다.
지난 1년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민주당 소속 의원이 전체의 ⅔에 가까운 110명을 넘는다. 곽상언 의원을 포함해 60여 명을 빼고는 죄다 특정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것이다. 이 정도면 민주당 의원들의 의정활동 지표는 유튜브 출연 횟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을 업은 유튜버들의 정치권력화는 얼핏 종교의 정치화와는 달리 합리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인기가 있는 것이고, 인기있는 채널에 정치인들이 몰리는 건 당연하지 않냐는 논리다.
하지만 이렇게 카리즈마적 권위를 가진 유튜버가 설계하고 국회의원들이 심부름을 하는 행태는 정치환경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정치는 우선 토론을 위축시킨다. 맹목적인 지지나 반대에 토론이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디테일한 토론을 통해 숨어 있는 단점들을 찾아 보완하는 게 민주주의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의견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더라도 소수의 반대 의견에 귀 기울여서 그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맹목은 그런 노력을 거부한다.
정치의 극단화도 문제다. 카리스마적 권위는 충성심을 기반으로 한다. 충성심을 보이려면 주인에게 더 복종하고 적에게 더 가혹해야 한다. ‘당신의 생각이 옳지만 이런 면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라거나 ‘적이 아무리 미워도 여기까지는 용인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은 허용되지 않는다. 충성 경쟁이 가속화할수록 정치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카리즈마적 권위에 의존하는 정치는 인물 중심, 감정 우선으로 흐르기도 쉽다. 나의 우상은 길에 침을 뱉어도 멋지다며 사랑에 빠지는데는 대책이 없다. 정치에서 팬덤은 당장은 의사결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민없이 판단을 남발하게 만든다. 법안이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분석하는 대신 팬덤이 원하는 것들만 대량 생산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목소리 큰 자가 이기는’ 약육강식의 정치판이 우려된다. 강철대오로 똘똘뭉친 집단이 한목소리를 내면 다수라도 이기기 어려운 법이다. 일부 유튜버들이 좌표를 찍어주면 떼로 몰려가 국회의원의 휴대폰에 문자폭탄을 쏟아붓는 행태가 그렇다.
카리즈마적 권위에 매몰된 한국 정치는 어디서부터 치료해야 할까. 암과 심장병은 치료할 수 있어도 맹종의 병은 다르다.
새벽부터 밤까지 유권자들을 만나 목소리를 듣고 내 정치비전을 설명하는 일. 법안 한 건 제대로 만들기 위해 전문가들과 토론하고 소수 의견을 경청하는 일. 이렇게 시간과 품을 들이는 고생 대신 종교집단과 손잡고 ‘쉽게’ 표를 얻거나, 거대 유튜버에 의지해 ‘쉽게’ 인기를 얻는 걸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쉽지’ 않다. 더구나 쉬운 길을 포기하고 제대로 일해보려고 그들과 거리를 두면 후환이 두렵다.
해법은 간단하다. 또 유권자가 나서야 한다. 카리즈마적 권위 대신 민주적, 합리적 권위에 복종하는 인물에게 표를 주는 것 뿐이다. 정치에 종교를 끌어들이고, 유튜브에 영합해 표를 얻으려는 선량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잘 될지 역시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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