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없인 개헌 없다

개헌이 먼저인가, 청산이 먼저인가? 1960년의 교훈은 ‘구체제 청산 실패’ 부정·폭력 청산없인 민주주의는 늘 위기 현재 개헌논의, 내란세력 책임회피에 권력 나눠먹기 노리는 의도로 이해돼 우리 정치, 부정한 세력 청산에서 출발해야

지난 4월 4일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자 시민들이 기쁨에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4일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자 시민들이 기쁨에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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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신ㆍ구파간의 싸움은 국회마저 무력하게 만들어 이에 격분한 4ㆍ19 부상학생들에 의해 의사당이 점거되는 파동을 가져왔다.
민주당 신ㆍ구파간의 싸움은 국회마저 무력하게 만들어 이에 격분한 4ㆍ19 부상학생들에 의해 의사당이 점거되는 파동을 가져왔다.

청산 못한 1960년 민주당 정부

1960년 4월, 국민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끌어낸 4·19 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기점이었다. 국민은 부정선거와 독재정치를 몰아냈고, 새로운 정치는 의원내각제 “개헌”을 통해 출범했다.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 6월 개헌으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는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곧 파행을 겪었다. 신파와 구파의 분열은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았고, 민심을 떠나게 했다.

1960년 지방선거의 결과는 그 혼란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민주당, 신민당, 그리고 해산된 자유당 출신 무소속 세력의 3분 구도 속에서 과거의 적폐세력조차 다시 정치권에 진입했던 것이다. 이승만의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의 열망은 ‘개헌’이라는 정치공학에 묻혔고, ‘구체제 청산’ 없이 권력을 나누는 방식은 결국 또 다른 파국,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이어졌다.

오늘, 우리는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이 이루어졌지만, 불법계엄의 단죄와 내란 음모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일부 정치권은 다시 개헌 논의에 몰두하고 있다. 이 시점에 개헌논의가 정치개혁이 아니라, 계엄동조 세력들의 책임 회피와 권력 나눠먹기로 읽히는 이유다.

지난 3월 4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정치개혁 대담회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원택 국가미래전략원장, 김황식 전 총리, 김진표 전 국회의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유홍림 서울대 총장, 정세균 전 총리, 박병석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총리,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낙연·김부겸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4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정치개혁 대담회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원택 국가미래전략원장, 김황식 전 총리, 김진표 전 국회의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유홍림 서울대 총장, 정세균 전 총리, 박병석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총리,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낙연·김부겸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제도 고친들 정치 바뀌지 않는다

개헌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그 출발점은 불법과 부정의 단호한 청산이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의는 지난 역사에서 우리가 목격했던 것처럼, 제도만 고치면 정치가 바뀔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1960년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은 제도의 변경만으로는 정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이미 남겼다. 제도를 움직이는 사람, 그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없으면, 아무리 세련된 헌법도 무력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끝없이 ‘현재’를 붙잡는다. 1952년 지방의원 선거에 등장한 친일세력과 조직폭력배들은 이후 정치 깡패로 진화했고, 민주주의의 그늘에서 오랫동안 암약해 왔다. 부정과 폭력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 민주주의는 늘 위태로웠다.

지금의 위기도 본질은 같다. 국정 농단, 사법 농단, 불법계엄, 탄핵 심판 등 수많은 의혹과 불법이 제대로 단죄되지 않은 채, 정치권은 또다시 ‘개헌’이라는 이름으로 권력 재편에 몰두하고 있다. 심지어 내란 의혹 및 불법계엄 세력들과 함께 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아연실색케 한다. 이는 새로운 공화국을 여는 길이 아니라, 과거 실패의 되풀이일 뿐이다.

탄핵이 던진 정치적· 윤리적 명령은 ‘정의’

진정한 정치개혁은 제도의 변경이 아닌, 정치의 정당성 회복에서 출발한다. 정의 없이 새로운 질서는 없다. 불법과 부정을 바로잡고, 역사 앞에 책임을 묻는 일, 그것이 바로 이번 탄핵이 던진 정치적·윤리적 명령이다.

영국의 ‘명예혁명’이 그랬듯, 국민은 부당한 권력을 몰아낸 뒤 ‘권리장전’을 통해 국민 주권의 원칙을 제도화했다. 우리는 지금 그와 같은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제도를 고치기 전에, 그 제도를 왜곡시킨 이들을 청산하고, 부정한 권력이 다시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탄핵 이후의 한국 정치는 개헌이 아니라 부정한 세력의 청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정 새로운 공화국, 정의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글쓴이

소순창 건국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소순창 교수는 오랫동안 정부개혁 및 자치분권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지방자치학회장, 그리고 경실련 정책위원장,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역임했다. 평소 시민사회, 학회, 정부의 자치분권정책을 학문적으로 연구했고, 자치현장에서 경험하였던 것을 정부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해왔다. 현재는 '경기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경기도의 자치분권정책에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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