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사회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는가
기본사회, 지역이 만드는 새 ‘공공의 틀’ 중앙정부, 같은 지원의 복지 제공되지만 지역마다 삶의 조건 달라 효과 차별돼 자치분권+ 기본사회, 지역맞춤형 설계를 지역 자산 재발견, 주민간 신뢰와 연대 회복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사회”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이 말을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잘 산다’는 말은 단순한 경제적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플 때 진료받을 수 있고, 공부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우며, 가족을 이루고 일할 수 있고,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어느 지역, 어느 세대, 어떤 조건의 사람에게나 공정하게 보장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기본사회’다.
이러한 사회는 단지 중앙정부가 예산을 더 쓰거나 복지 항목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는 조건은 지역마다, 집집마다, 세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사회는 지역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자치분권이라는 제도적 기반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기본사회는 선언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기본사회’라는 개념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국가가, 그리고 지역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선언이자 약속이다. 하지만 이 선언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설계가 필요하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중앙정부 중심의 복지정책에 익숙해졌다. 전국 어디서나 같은 기준, 같은 자격, 같은 방식으로 지원이 제공되었다. 이 방식은 행정 효율성과 형평성을 갖추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의 다양성과 복잡성에 대응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같은 70세 노인이라도 서울 강남에 사는 주민과 강원 산간마을에 사는 주민의 일상 조건은 전혀 다르다. 같은 제도가 두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중앙-지역’의 역할 분담이 아니라, ‘지역 중심의 정책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자치단체는 행정의 말단이 아니라, 공공서비스 설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바로 ‘시·군·구 맞춤형 기본사회 전략’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지역 맞춤형 전략이 필요한 이유
지역마다 문제의 양상은 다르게 나타난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외국인 노동자나 이주민이 늘어나는 곳도 있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지역, 고령화로 돌봄공백이 생긴 지역, 주거 불안이 가중되는 도시 내 저소득층 밀집지역 등 문제의 형태도, 맥락도 제각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전략은 지역의 실정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역의 기본생활 조건과 정책 공백을 철저하게 진단해야 한다. 어떤 영역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지, 주민들이 체감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지역 자원과 공동체 역량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정말 필요한 기본사회 정책을 설계할 수 있다.

기본생활 6대 영역, 지역에서 다시 묻기
기본사회 전략은 소득, 돌봄, 에너지, 교육, 주거, 교통, 금융, 의료의 여섯 가지 기본생활 영역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각 영역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주거가 불안정하면 건강도 악화되기 쉽고, 교육의 기회가 차별받으면 소득의 격차는 더욱 심화된다.
이 여섯 가지 영역에 대해, 각 자치단체는 지역 실정에 맞는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 우리 시의 1인 청년가구는 어떤 형태의 주거불안을 겪고 있는가?
- 읍·면 지역의 고령자들은 필요한 의료와 돌봄에 얼마나 접근 가능한가?
- 교육과 문화기회는 누구에게 제한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근거해 지역이 자율적으로 설계한 ‘기본생활보장 전략’은 단지 행정 서비스의 나열이 아니라, 삶을 위한 지역의 구조개혁이 될 수 있다. 주민은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다.
기본사회는 위로부터의 시혜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주민이 자신이 사는 마을과 동네의 문제를 인식하고, 공론장과 주민자치회, 숙의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직접 정책의 설계자이자 실행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이상적인 그림이 아니라, 이미 국내 여러 지역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예산을 주민이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 마을계획을 함께 만드는 ‘마을총회’, 복지계획을 세우는 ‘읍면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은 기본사회의 참여민주주의적 기반이 된다.
이러한 구조가 마련될 때, 정책은 관료의 문서가 아니라 지역의 언어가 되고, 행정은 시민의 삶에 스며드는 실천이 될 수 있다.
기본사회는 지역의 철학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다. 기본사회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예산이 더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복지비용이 아니라 사회 유지비용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한 아이가 기초교육을 제대로 받고, 한 고령자가 외롭지 않게 돌봄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효과적인 지역의 지속가능성 정책이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전략을 통해 지역은 점점 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지역의 자산을 재발견하고, 주민 사이의 신뢰와 연대를 회복하며, 공공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본사회의 힘이며, 민주주의의 뿌리이기도 하다.
기본사회는 지금 여기에서, 지역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기본사회가 거대한 국가적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틀리지 않은 말이지만, 사실 기본사회는 더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내가 사는 동네, 우리 읍면동, 내가 만나는 공무원과 이웃들의 손에서 실현되는 것이 기본사회다. 이는 단지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가 ‘사람을 중심에 두겠다’는 선언이 실천되는 순간이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 지역에서 기본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답해야 한다. “그 사회를 설계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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