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굴레를 끊는 법, ‘원죄’와의 결별

대한민국의 역사적 굴레,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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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분 핵심 요약]
  • 반민특위 해체라는 ‘원죄’를 청산하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책임을 유예한 관성은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는 오만을 키웠고, 이는 5·16과 12·12를 거쳐 오늘의 내란 사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번 재판이 과거처럼 적당한 타협에 머문다면 우리는 역사의 고리를 끊을 기회를 영영 잃게 됩니다. 이제는 ‘상징적 처벌’을 넘어, 우리 헌정사의 원죄와 완전히 결별해야 할 때입니다.
  •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 원죄의 대물림 필자가 말하는 ‘원죄’는 일제 부역 세력이 단죄 없이 권력의 핵심으로 복귀한 사건이다. 이 오염된 출발이 결국 ‘총칼이 법보다 앞선다’는 내란 세력의 유전자를 만들었다.
  • 청산의 마지막 기회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의 처벌을 넘어, 1949년 이후 미완으로 남은 ‘정의의 완결’을 의미한다. 여기서 멈추면 원죄는 또다시 다음 세대로 유예된다.
  • 원칙이라는 퇴마 기득권은 늘 ‘안정’을 미끼로 원죄를 뭉개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가장 엄격한 법의 잣대, 즉 원죄를 끊어낼 서슬 퍼런 원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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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잘못된 출발

해방은 새로운 출발이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출발선에서 이미 절반의 정의만을 선택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 통치의 말단과 중간을 지탱했던 경찰과 관료 상당수가 미군정 시기를 거치며 다시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질서 유지와 행정의 연속성이라는 명분은 이해 못 할 바 아니었지만, 그 선택은 ‘책임’이라는 질문을 유예하는 것이었다.

1948년 제헌국회가 설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바로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식민지 협력 세력을 조사하고 처벌함으로써 새 공화국의 도덕적 기초를 세우겠다는 시도였다.

그러나 1949년 6월 경찰의 특위 본부 습격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득권의 자기 방어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국회의 법 개정은 결국 특위의 동력을 잃게 만들었다. 정의는 중단되었고, 권력기관은 스스로를 지켜냈다.

과거의 책임을 묻지 않은 후과

이 좌절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었다. 과거를 묻지 못한 국가는 이후의 위기에서 더 쉽게 흔들렸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은 헌정 질서를 중단시켰다. 경제 개발과 국가 재건이라는 명분이 내세워졌지만, 총구가 정치 위에 놓이는 순간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권력의 비정상적 획득이 충분히 단죄되지 않는 사회에서 ‘비상’은 반복되는 통치 방식이 된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군 내부 권력 투쟁이 곧 국가 권력 장악으로 이어졌고, 헌법은 존재했지만 실질적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과거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사회는 또 다른 권력 개입을 허용했다.

이 흐름은 단순히 군부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책임의 미완, 제도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의 습성, 그리고 이를 일정 부분 용인해온 정치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반민특위의 실패가 남긴 교훈은 ‘안정’을 위해 정의를 미루면, 그 대가가 더 큰 형태로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오늘의 헌정 갈등 역시 이 역사적 연장선 위에서 읽을 수 있다. 계엄 선포와 탄핵, 그리고 사법적 판단을 둘러싼 격렬한 반발은 단지 정치적 의견 차이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사법적 결정을 음모로 치환하고, 헌법적 절차를 부정하며, 거리의 힘으로 제도적 판단을 흔들려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것은 기득권이 책임의 문턱에 서게 될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민주공화국은 선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이 헌법의 한계를 넘었을 때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 그리고 그 판단을 수용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의 권위주의, 5·16과 12·12로 이어진 군의 정치 개입, 그리고 오늘의 갈등은 모두 ‘책임의 미완’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정의가 또 다시 유예되지 않도록

이제는 굴레를 끊어야 한다. 첫째, 어떤 권력도 헌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 비상권은 예외적 권한일 뿐 통치의 수단이 될 수 없다.

둘째, 과거사에 대한 책임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를 미루는 선택은 단기적 안정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잠식한다.

셋째,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는 시민적 합의를 확대해야 한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판결의 권위를 부정하는 순간, 공동체의 최소한의 규범은 무너진다.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차례 위기를 넘어왔다. 그러나 매번 상처를 남겼다. 이제는 반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반민특위의 좌절에서 시작된 미완의 청산, 군사 쿠데타의 그림자, 그리고 오늘의 헌정 갈등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법 위에 권력을 둘 것인가, 권력 위에 법을 둘 것인가.

역사는 자동으로 전진하지 않는다. 과거를 끝까지 묻고, 책임을 완결하고, 제도를 존중할 때에만 진전한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공화국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힘이 아니라, 더 분명한 원칙이다. 지금이야말로 그 원칙을 선택해야 할 때다.

특히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한 중죄에 대해 사법적 단죄가 정치적 배려나 상징적 처벌에 머문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유예된 정의일 뿐이다. 법이 허용하는 가장 엄격한 잣대만이 이 지독한 역사의 반복을 멈출 수 있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4:30 반복되는 대한민국 헌정 위기의 원인? 70년 전 실패한 '이 사건' 때문!
글쓴이

소순창 건국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소순창 교수는 오랫동안 정부개혁 및 자치분권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다.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지방자치학회장, 그리고 경실련 정책위원장, 지방자치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역임했다. 평소 시민사회, 학회, 정부의 자치분권정책을 학문적으로 연구했고, 자치현장에서 경험하였던 것을 정부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해왔다. 현재는 '경기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경기도의 자치분권정책에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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