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균형발전에도 안 맞다
국가균형발전정책 전문가의 시각
- 부적절한 정책 결합 대학원 설치라는 숙원을 볼모로 캠퍼스 이전을 몰아붙이는 것은 정책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이해관계의 정치’일 뿐이다.
- 물리적 이식의 한계 예술은 사람과 네트워크가 핵심인 생태계이며, 인프라와 단절된 학교만의 이전은 교육의 질 하락과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 자생적 모델이 해답 특정 기관을 통째로 옮기기보다, 지역 고유 자산과 연계된 특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단계적 확장 전략’이 진정한 균형 발전의 길이다.
정책 목표간의 긴장과 정치적 계산
최근 ‘한예종’의 전남광주 이전을 골자로 한 법률안이 발의되면서 논쟁이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정준호 의원을 비롯한 광주 지역구 의원들과 관련 인사들이 공동 발의한 이번 법안은 단순한 교육기관 이전을 넘어, 국가 예술정책과 국가균형발전 전략이 교차하는 상징적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입법은 대학원 설치 허용과 캠퍼스 이전을 함께 고려하는 점에서 그 정책적 타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역 발전과 교육 정상화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책 목표 간의 긴장과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이 안고 있던 구조적 과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예종은 1991년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출범했지만, 법적 지위가 ‘각종 학교’에 머물면서 학위 수여 문제 등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서울 석관동 캠퍼스가 의릉 복원문제와 맞물리며 이전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후보지 선정은 10년 넘게 표류해 왔다. 즉, 대학원 설치 문제와 캠퍼스 이전 문제는 각각 독립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였으며, 장기적 정책 설계 속에서 단계적으로 접근되어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이 두 가지 사안을 하나로 결합했다. 대학원 설치라는 구성원의 오랜 숙원을 볼모로 특정 지역 이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식으로 지역 국회의원 중심으로 법안을 상정하고 있다.
교육기관의 제도적 정상화와 입지문제는 본질적으로 분리되어야 할 정책의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혼재되어 논의되는 순간 정책의 정당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책설계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선택의 문제에 가깝고, 결과적으로 정책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 입법 과정은 중장기적인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정치인들의 법안 발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해관계의 정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본래 교육기관 이전과 같은 사안은 정부 주도의 중장기 계획, 전문가 검토, 이해관계자 협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사례는 정책의 합리성보다는 정치적 타이밍과 이해관계가 우선된 결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진 발의라는 점 역시 이러한 해석을 강화한다. 국가 정책이 선거일정에 의하여 정책의 창이 열릴 수는 있지만,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될 경우, 장기적 효과보다는 단기적 상징성이 강조될 위험이 크다.
국가균형발전 목표를 달성할 정책인가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의 이전이 과연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 여기서부터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공공기관 이전은 일정 부분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예술교육기관은 일반 행정기관이나 연구기관과는 성격이 다르다. 예술은 산업, 문화, 교육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생태계 속에서 작동하며, 그 핵심은 ‘사람’과 ‘네트워크’에 있다. 물리적 공간의 이동만으로는 이러한 핵심 요소를 이전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예술산업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강하게 집중되어 있다. 공연, 영화, 방송, 전시, 투자 등 대부분의 문화산업 인프라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으며, 학생들은 이 환경 속에서 실습과 현장경험을 축적한다. 실제로 공연예술 매출과 예술인 분포 역시 수도권 집중 현상이 뚜렷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기관만 분리해 이전할 경우, 산업과 교육의 연결 고리가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질과 직결되는 구조적 문제이다.

한예종의 경쟁력 약화 불가피
한예종의 경쟁력 역시 이러한 생태계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이들이 다시 산업으로 진출하며, 그 네트워크가 다시 학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순환 구조가 핵심이다. 그러나 학교가 수도권을 벗어날 경우, 이 순환 구조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수한 지원자들이 수도권 내 다른 교육기관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이 경우, 학교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한국 예술교육 전반의 수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아가 국제적 경쟁력 측면에서도 부정적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지방소멸과 청년유출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며, 문화적 기반 확충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전략이다. 광주 역시 ‘아시아문화전당’, ‘광주비엔날레’ 등 독자적인 문화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도시 전략은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력은 외부 기관의 이전이 아니라 내부 자산의 강화와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실현될 가능성이 더 크다.
지역 고유 ‘예술생태계’를 키우자
문제는 방법이다. 특정 교육기관을 ‘이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고유의 자산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자생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광주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한예종의 단순 이전이 아니라, 지역 문화 자산과 연계된 차별화된 예술교육 모델의 구축이다. 이는 부산, 대구 등 다른 지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이다. 지역마다 다른 문화적 기반과 산업 구조를 고려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대안으로는 ‘확장과 분산’ 전략이 제시될 수 있다. 수도권의 핵심 교육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역에 협력 캠퍼스나 특화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방식이다. 해외 사례에서도 본교를 유지한 채 지역 캠퍼스를 운영하는 모델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교육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지역과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균형적 접근이며, 정책 실패의 위험을 줄이는 점진적 전략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논쟁은 단순히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반복해 온 국가균형발전정책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정책은 상징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된다. 입법을 통한 ‘깃발 꽂기’가 아니라, 장기적 설계를 통한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한예종 구성원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정책 방식에 대한 구조적 비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30년의 숙원을 닥쳐온 정치일정 속에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국가 예술정책과 국가균형발전 전략 속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한예종 이전 논쟁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보다 정교하고 장기적인 정책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