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왜 보수는 두 번이나 대통령 파면 당했나

[박정인의 정치평론] 보수 내부에서 찾아본 ‘보수의 실패’ 낡은 정치관, 좁은 세계관, 사라진 인재 적에게서 빌려온 후보, 제대로 검증못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됐다. 사진=KBS캡쳐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됐다. 사진=KBS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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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권력 사유화’

보수진영 대통령이 두 번 연속 파면을 당하게 된 배경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대통령 본인의 문제, 둘째 소속 정당의 문제, 셋째 정치구조의 문제다. 어느 한 가지 요인만으로 대통령 파면이라는 파국이 오지는 않는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지난 두 번의 파면은 첫째 요인인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컸다. 두 대통령 모두 권력을 운용하는 방식이 낡았다. 권력의 사유화, 밀실정치, 여론에 대한 무관심, 집권당의 사당화, 국회 무시 같은 것들이었다.

우선 두 대통령은 낡은 권력을 추종한 탓에 권력의 사유화도 주저없이 받아들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법이 정한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고 최순실을 자기 권력 깊숙히 끌어들여 서로 이용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역시 아내 김건희가 공직인사를 비롯한 국정에 간여하는 걸 방치했다.

사유화의 또 다른 특징은 사적 관계에 기반한 공직 기용이다. 박근혜는 검찰총장을 지낸 지 25년이 넘은 김기춘을 비서실장에 앉혔다. 10.26 이후 20년 가까이 사실상 공적인 인간관계가 끊기다 보니 아버지 시절의 인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생 검사였던 윤석열의 측근은 검사들이었다. 문재인 정권에 와서야 검찰 고위직을 맡았던 만큼 보수 쪽과 인연도 깊지 못했다. 자연히 같이 일해 본 검사들이 청와대 참모 뿐 아니라, 당의 요직, 방송통신, 금융 분야까지 자리를 차지했다. 거기에 김건희의 사적 인맥이 추가됐다.

사유화된 권력은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서로 ‘아’하면 ’어’하는 사이끼리 모여서 국정을 운영하니 남 얘기에 귀 기울이고 바깥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없었다. 박근혜는 각료들 만나기조차 꺼렸는가 하면, 윤석열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기 얘기만 하다가 자리를 파했다.

국민정서와 유리된 보수정권

낡고 닫힌 정권은 국민과 유리됐다. 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청와대는 ‘여객선 침몰 사고’로 인식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몰랐다. 아이들이 가득 탄 여객선이 속절없이 가라앉는 장면을 온 국민이 생중계로 목격했고, SNS는 진실과 거짓을 쉬지 않고 실어날랐다. 온 국민이 필요한 것과 몰라도 될 것을 다 알게 되고, 그 결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여객선 침몰 사고가 아니라 국가적 트라우마가 됐는데 대통령은 책임을 피했다.

윤석열은 멋을 부리기 좋아했다. 미국 대통령을 본따 데일리 도어스태핑을 하겠다고 했다가 얼마 못 가 그만둬 버렸다. 대통령이 출근길 기자들 질문에 즉흥적으로 답하는 게 멋있는 줄은 알았지만, 사전에 그걸 준비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지 몰랐다. 진솔한 사과가 필요한 기자회견에서는 사과는 찔끔, 주장은 잔뜩이었다. 국민 마음에는 사과받지 못했다는 섭섭함이 쌓여갔다.

박근혜에게 탄핵과 파면의 표면적인 트리거는 이른바 태블릿PC이지만, 근원적 트리거는 원내대표 유승민을 반역자로 몰아 주저앉힌 데 이은 ‘진박감별 공천’이었다. 여권 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1970년대 유신정우회를 떠올렸다. 그러나 총선후 국회는 여소야대가 돼 탄핵의 토양을 마련했다.

윤석열의 트리거는 물론 비상계엄선포였다. 국민을 너무 놀라게 만들었다. 노년 세대에게는 7, 80년대의 아픈 기억을 소환했다. 젊은 세대는 정치 스릴러의 한 장면을 체험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뎌구나 햄버거 가게 모의부터 엉성한 지휘까지 들통나면서 웃음거리로 전락하기까지 했다. 국제사회의 조롱이 이어졌다.

세계는 급변하는데, 국가비전 없는 보수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두 대통령이 나란히 국가비전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약속했고, 윤석열은 자유주의를 외쳤지만 실제는 달랐다. 결과적으로 보면 두 대통령 모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거나, 그냥 허풍을 떤 것에 불과한 셈이었다.

박근혜와 윤석열이 재임한 기간은 마침 금융위기를 벗어난 이후 세계가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였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강제 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세계는 ‘자국우선주의’의 대유행이 시작됐다. 2016년에는 영국이 브렉시트를 강행했고,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백인 중심의 강한 미국을 외치며 대통령에 취임했다. 같은 해 인간과 AI의 바둑대결에서 구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대1로 꺾고 새역사를 썼다.

윤석열 대통령 시절 세상은 또다시 격변했다. 러시아는 아예 우크라이나를 삼키려고 전면전에 돌입했다. 트럼프는 강화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우방들까지 압박하고 나섰고, 시진핑은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알파고의 몇천 배인지도 모를 능력을 가진 AI가 등장했는가 하면, 자동차는 운전이 필요없는 시대의 문턱에 왔다.

두 번의 탄핵 기간 한국은 다람쥐 쳇바퀴만 돌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던 2017년 3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천6백억 달러,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불과 6백억 달러 남짓이었다. 삼성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된 2025년 4월에도 8년 전과 비슷한 시총에 머물렀는데, 엔비디아는 2.3조 달러로 40배 뛰어올랐다.

기존의 외교안보 질서는 무너지고 세계 경제가 기술혁신의 급물살을 타는 시점에, 성장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정권이 오히려 국가전략을 내놓지 못했다. 대통령 공백, 국정 단절, 장기 비전 부재가 이륙을 위해 한참 속도를 내야 하는 비행기를 두 번이나 활주로에 멈추게 한 셈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고 파면됐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고 파면됐다. 사진=연합뉴스

인재가 사라진 보수 정당의 대통령 후보

탄핵 파면의 두 번째 요인인 정당의 문제는 사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나란히 갖고 있는 고질병들이다. 민주당이라고 당 운영이 훨씬 민주적이라는 별점을 주기는 어렵다. 계파정치의 문제도 그렇고, 소속 의원 줄세우기나 거수기 노릇 강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국민의힘 같은 경우는 당내 문제가 결국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는 점이 달랐다. 민주당은 당 안에서 싸워도 지지 기반은 좀처럼 건드리지 않는데, 새누리당과 국민의힘은 그들의 실망을 자초했다. 진박 감별이나 윤·한 갈등은 중도는 물론 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국회 탄핵소추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것이다.

시대변화를 내다보고 인재를 키우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이것도 부족했다. 정당이 인재를 영입할 때 ‘이 친구가 얼마나 말을 잘 들을까’만 따지다 보니 진정한 새 피의 수혈이 불가능하다. 새 인물이 들어오면 지연, 학연, 또 다른 인연에 따라 줄세우기가 시작된다.

그러다보니 보수 정치인은 잘 보이지 않고 극단적인 정치공방에 능한 말싸움꾼들만 여럿이다. 국민의힘 안에서 보수의 가치와 시장경제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래봐야 서초갑에서 국회의원을 한 윤희숙이 마지막 아닌가 싶다. YS(김영삼) 시절 학생 운동권 출신 김부겸, 원희룡, 김문수, 재야의 손학규, 이부영, 이재오, 도시빈민운동가 제정구 같은 인물을 영입해 당의 색깔을 무지개로 만든 사례는 다시 찾아보기 어렵다.

인재가 없는 정당이 권력을 쟁취하려면 불가피하게 무리수를 둬야 한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대선 후보로 옹립한 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내부에서 사람을 키우지 않았으니 바깥에서 불러와야 했고, 바깥 중에서도 적진의 이탈병을 데려올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이 진행됐을 리 없다. 이렇다 할 검증없이 대중 지지만 믿고 공천한 탓에 당은 선거기간 잇따라 불거지는 후보의 문제를 덮는데 급급해야 했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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