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효과”에 대하여
독재자 피노체트 처벌 통해 얻는 세계적 ‘피노체트 효과’ 한국은 ‘전두환 효과’ 상실해 이제 탄핵과 형사처벌로 ‘윤석열 효과’ 얻을 기회 가져야
독재자 ‘피노체트’의 면책
1973년 9월 11일, 칠레의 육군사령관 아구스토 피노체트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켜서 자신을 사령관으로 임명한 살바토레 아엔데 대통령을 축출하고 권좌에 올랐다. 피노체트가 17년(1973-1989)의 재임 기간에 자행한 인권탄압 행위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예를 들어, 칠레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1973년 쿠데타 직후부터 1990년까지 2,095명의 민간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되었고, 1,102명이 실종되었으며, 3만 8,000명 이상이 고문을 당했고, 20만명 이상이 해외로 추방되었다.
1989년의 국민투표에서 신임을 얻지 못한 피노체트는 마지못해 대통령직을 내려놓기는 했으나, 권력 이양 조건으로 재직 중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통치행위’로 간주해서 형사상 면책과 불체포 특권을 보장받았고, 군통수권과 종신직 상원의원 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1990년 3월에 직접선거에 의해 민간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칠레는 형식적으로 민주체제로 이행했으나, 피노체트와 그의 통제 하에 있는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피노체트를 비롯해서 군부독재 정권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들은 최소한 1998년까지 자신들이 가담한 정치적 폭력과 인권탄압 사건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세계 인권 투쟁사의 반전
그런데 1998년 10월 16일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피노체트는 당시 신병 치료를 위해 영국 런던에 체류 중이었는데 갑자기 영국 경찰이 그를 체포하여 구금시킨 것이다. 칠레 망명자들로 이루어진 스페인의 인권단체가 국제법상 “인도에 반한 범죄”와 “전쟁범죄” 혐의로 피노체트를 스페인 법원에 고발했는데, 피노체트가 자국 영토를 떠나서 영국에 체류 중임을 확인한 스페인 법원이 즉각적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하였고, 영국 법원은 이 체포영장이 국제형사법적으로, 그리고 국내법적으로도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피노체트를 1년 이상 동안 인신구속한 영국 정부는 그가 건강 상의 이유로 스페인 법원에서 재판으로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2000년 3월 3일 스페인이 아닌 칠레로 송환했다.
피노체트의 런던 체포는 세계적으로 큰 화제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은 그래서 국제인권법 분야에서 “피노체트 효과”(The Pinochet effect)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먼저 이 사건은 정치적 목적의 살인, 납치, 강제실종, 고문 등의 인권침해 범죄는 국제범죄로서 사법 처리에 국경이 없다는 보편적 원칙을 재확인했다. 1946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이후 국제인권규범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된 인권범죄와 국가폭력에 대한 “보편적 관할”(universal jurisdiction)과 “개인형사책임”(individual criminal accountability)원칙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가 피노체트의 체포에 반영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주권국의 국가수반을 지냈고 외교여권을 소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도에 반한 범죄와 같은 국제범죄에 대해서는 사법적 면책 조항이 적용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공적 신분 때문에 사법 처리를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가중처벌의 원칙’이 확인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한창 논의 중이던 국제형사재판소(ICC) 설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피노체트의 런던 체포가 칠레 사회에 안겨준 충격과 효과 역시 엄청났다. 자국의 전직 대통령이 해외에서 체포되었다는 자괴감과 아울러서, 국제사회가 피노체트를 국제법적으로 ‘인권범죄의 혐의자’로 판단한 이상, 그를 국내법으로 보호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었으며, 피노체트를 비롯하여 군부독재 정권 당시 인권범죄 가담자들을 사법처리하는 등 군부독재의 유산 청산을 위한 사회적, 정치적, 사법적 합의와 노력이 본격화되었다.
극적인 ‘피노체트 효과’
피해자 단체와 칠레의 시민사회는 피노체트를 비롯하여 인권범죄 혐의자들을 사법당국에 고발하기 시작했고, 사법정의 실현의 명분을 얻은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서 가해자들을 기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사회학적 개념을 빌리자면, 피노체트 체포는 민주주의로 이행한 칠레가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political opportunity)을 안겨준 셈이다. 이를 계기로 피노체트는 2000년 8월에 처음으로 칠레 법원에 기소되었고, 가택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다가 2006년에 심장마비로 병원에서 죽었다. 사망 당시 그는 최소 700건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였다. 그 후 2018년까지 피노체트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DINA) 수장과 군장성을 비롯해서 최소 451명의 국가폭력 가해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인권유린과 부패로 얼룩진 어두운 과거를 가진 칠레가 지금은 이코노미스트지(誌) 평가 민주주의 발전 지표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세계 25위로 평가되고, 중남미 국가에서는 우루과이와 더불어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피노체트 효과”가 가져다 준 사법정의 실현과 적극적인 과거사 청산 의지가 자리잡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실패한 ‘전두환 효과’
주지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맥락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95년 12월에서 1997년 4월의 대법원 판결에 이르기까지 전두환을 비롯한 소위 신군부 핵심 인물 16명이 군사반란과 내란 그리고 광주학살 가해자로 재판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은 당시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해체와 함께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과 정치안정의 전제조건인 군의 정치 불개입을 각성케 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우리의 “전두환 효과”는 칠레의 “피노체트 효과”와 비교하여 극적인 국면 전환을 가져오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개입으로 166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80명 이상이 실종되고, 2,6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하고, 450명 이상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런 국가폭력 행위로 처벌받은 현장 지휘관은 전혀 없었으며, 전두환을 비롯한 상급지휘부 인물들은 광주에서 자행된 군의 발포와 폭력 행위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광주의 유가족과 피해자 단체들은 현장 지휘관을 비롯하여 35명을 내란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으나, 5.18 사건과 관련하여 최종적으로 기소되고 유죄 판결은 받은 사람을 5명에 불과했다. 나아가 이들은 실형을 선고받은 후 2년 안에 전부 감형되거나 사면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발전 수준에 비추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겪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1987년에 필적하는 정치적 전환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어둡고, 잔인하고, 어처구니 없고, 기이한 사건들이 날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윤석열의 12.3내란 사태는 “전두환 효과”의 한계가 빚어낸 역사적 필연이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나아가 전두환-노태우 정권 하에서 자행된 수많은 인권유린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에 걸맞는 사법정의 실현이 있었다면 과연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 등 헌법기관의 권능행사를 정지시키고, 영장 없이 민간인을 체포구금하고, 정적을 잡아서 “수거”할 계획을 거리낌 없이 상상하고 기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정치적, 인적 자원과 신념체계를 갖출 수 있었을까?
12.3내란 사태는 우리가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잘못된 유산에서 자양분을 섭취하고 자란 정치적 사생아들이 땅 아래에서 구근처럼 얽혀져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자행한 정치적 일탈 행위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정치적 일탈 행위를 계기로 우리 사회 곳곳에 매복해 있던 유사한 집단들이 서로 결속하면서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경악스러운 역사적 퇴행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조치가 없는 한, 우리가 지난 40년에 걸쳐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와 정치발전의 소중한 성과들이 일시에 붕괴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대로 된 ‘윤석열 효과’를 위해
이런 의미에서, 역설적이긴 하지만, 12.3내란 사태 이후의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더 심화하고 사회발전을 이루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보여준 ‘반면교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정치의 폭력화를 부추기는 세력과 이들이 서식하는 토양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과제이다. 따라서 지금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내란 혐의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의 결과는 우리가 “전두환 효과”의 한계를 극복하는 “정치적 기회”를 얼마나 가질 수 있는가를 예시하는 지표이다. 나는 이것을 “윤석열 효과”라고 부르고자 한다.
지금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의 지형과 정치경제 발전의 수준은 “윤석열 효과”로 요약될 것이다. 나는 이 효과가 ‘한국판 피노체트 효과’가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노체트에 버금가는 일을 꾸밀 수도 있는 무리들이 우리에게 안겨주고 있는 이 고통을 보상받을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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