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방류 1주년, 우리는 ‘과잉’ 대응했다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오염수 방류 결과, 1년전 예측대로 과학은 예측 가능성의 원칙 따라야 후쿠시마 오염수 안정성 ‘인정하자’ 비과학 태도로 일본 감시 계속해야
방류에 따른 1년 추이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를 처리한 물을 방류한 지 1년이 되었다. 방류 당시 필자는 방류하더라도 삼중 수소의 농도는 기준치 이하라고 주장하여 눈총도 받았다. 필자는 방류 이후 1년 동안 예측한 증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지 동경전력 홈페이지에 수시로 접속하여 후쿠시마 앞바다의 삼중 수소 농도 추이를 살펴보곤 했다. 1년 동안 추이는 예측에 부합되게 방출기준 이하이다. 간혹 탱크를 교체하는 경우 높게 나오는 사례가 있지만 이 경우에도 방출기준 이하였다. 공인기관인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보고도 비슷하다. 일본과 독립적으로 측정된 우리나라도 연해의 방사능 수치가 평상시와 차이가 없다.

모른다는 강박관념
1년간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1년의 예측은 틀렸지만 누적 효과를 보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는 분들도 있다. 어떤 요청이든지 인내할 수도 있지만, 정기적으로 서로의 입장을 나눌 필요도 있다. 특히 도덕률과 철학을 중시하는 분들은 후쿠시마 방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았는데 이들 입장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회의주의와 과학을 빙자한 주장은 수시로 인류 역사에 나타났다. 그리스의 소피스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핑계를 댈 수 있다며 자신했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으로 꿈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의와 이를 빙자한 과신은 일부에게는 이익을 주기도 하지만 전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반박하려 지혜를 구했고 루돌프 카르납은 형이상학을 분쇄하려 검증이론을 꺼냈고, 칼 포퍼는 만병통치약 같은 정신분석학을 억제시키려 반증이론을 제시했다.
회의주의를 깨는 방법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으로 그리스 소피스트들의 궤변에 응답했다. 어휘를 정확히 정의하여 잘못 쓰인 문장이 없도록 상대를 다그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리한 눈으로 동일률, 모순율을 찾아냈다. 동일률은 ‘한 입으로 두 말하지 말라’는 것이고 모순율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허풍 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논리학으로 기초이다. 근대에 이르면 인과율이 추가되었다. 인과율은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는 원칙이다. 모든 현대인들이 이 논리를 철석으로 여기는 듯하다.
일상에서도 실행이 불가능한 제안을 하면 ‘소설 쓰지 말라’거나 ‘형이상학 같은 소리 말라’고 충고한다. 제국주의가 휩쓸던 시기에, 형이상학 철학자들을 반박하기 위해 카르납은 검증 가능성 기준을 제시했다. “검증될 수 없는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는 철학이었다. 현학적으로 글을 썼던 철학자들은 뜨끔했다. 그런데 ‘모든 백조는 희다’라는 진술은 모든 백조를 찾아 검증할 수 없다. 즉 검증 가능성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칼 포퍼는 이 한계를 인식하고 ‘반증 가능성’으로 기준을 바꾸었다.
이후에도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구분 기준은 논란이 뜨거웠다. 검증 가능성이나 반증 가능성이 대체로 적절한 기준임에는 틀림없으나 나온 지 100년이 되어가니 필자는 이제 ‘예측 가능성’으로 바꾸고 싶다. 칼 포퍼보다 과학적 활동을 많이 했으니 엉터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주장이 미래의 특정 시점을 예측하지 못하면 그 주장은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동료 과학자들이 접수된 논문을 검토하여 수용하는 이유는 논문의 예측능력을 보기 때문이다. 저자와 다른 과학자가 실험하더라도 동일한 결과를 낸다고 확신할 때 제출 논문은 게재 논문이 된다.
비과학의 유연성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한다고 비과학 분야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뜨는 현상은 과학의 길이고 다음 미국 대선의 당선자 예측은 비과학의 길이다. 미국 대선 당선자를 맞추기는 어렵지만 대선 당선자를 염두에 두고 한국이 정책을 준비해야 하니 비과학 분야도 중요하다.
비과학은 자연과학을 제외한 인문과학, 사회과학, 예술 등의 모든 학문이다. 비과학분야는 개입된 인자가 너무나 다양하여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예술은 정확한 ‘미(美) 인식’이 어렵고 정치는 나이, 지역, 학력, 사상 등에 따라 추구하는 목표도 다르다.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신체에는 생각을 전담하는 뇌가 생겼고 자기 주변의 상황을 감시하는 감각기관도 나왔다. 위정자 뇌의 생각이 수시로 변하므로 변동성을 줄이려 사회의 법과 제도가 수립되었다.
이 칼럼은 과학과 비과학의 구별을 인정하면서 과학분야를 비과학분야의 시각으로 보지 말라는 주문이다. 비과학 분야에서는 동일률, 모순율, 인과율도 위배될 수 있다. 정치가들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주장할 수 있다. 비과학 분야는 시공간에 통일성이 없으니 아무렇게 말해도 상관없다. 법과 제도도 시간이 흐르면 바뀌므로 법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여당과 야당도 바뀌므로 야당 때 주장이 여당 때의 주장과 다를 수 있다. 절망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말을 하여도 이 말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비판할 수는 없다. 비과학 분야에서는 모든 말과 행위가 허용될 수 있으며 상황에 맞는 도덕률로 무장되면 금상첨화다.
과학의 엄밀성
반면에 과학의 영역에 속한 진술에는 신중해야 한다. 서쪽에서 해가 뜬다고 주장을 할 수는 없다. 과학의 영역에는 동일률, 모순율, 인과율이 철저히 준수된다. 여기에 과학자들은 관성의 법칙, 질량 및 에너지 보존의 법칙도 적용한다. 가해진 힘으로 바뀔 미래를 기술하는 방정식도 배운다. 과학자들은 다음 상태를 예측해 왔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위배된 사례는 한 번도 없다. 아직도 극한 과학에서 예측이 어려운 영역이 있지만 언젠가는 밝혀낸다는 믿음은 있다.
후쿠시마 방류 건은 과학의 영역이다. 질량 및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예측이 되고 방출량이 기준치 이하이면 무해하다는 경험 규칙도 있다. 엄밀한 분석을 위해 법석을 떨었지만 방류량과 희석량, 자연상태의 삼중수소 농도만 알면 수 분 안에 판단이 가능하다.
과학으로 봐야할 후쿠시마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에 대해 몇 가지의 과학적 법칙으로 해석이 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잉으로 대처했다고 본다. 뻔한 현상에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화학을 공부하면서 배우는 첫 번째 원칙은 유효숫자이다. 몸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이 ㎏단위인데 다이어트를 하여 0.1㎏ 줄어들었다고 주장을 하면 화학자는 믿지 않는다. 50㎏ 대신 49.8㎏로 더 정밀하게 숫자를 기입하는 행위는 칭찬받을 노력이 아니라 데이터 조작으로 간주된다. 후쿠시마 방류의 처리 과정도 비슷하다. 후쿠시마 방류에 의한 영향은 소수점 밑 한참 아래에 나타나는데 이를 굳이 계산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데이터의 조작 같은 인상을 주었다.
과학의 영역에 비과학적인 인식이 불편하지만 일반 대중은 과학적 훈련을 받지 못했으니 과잉대응을 교육한 셈이라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1년 동안 국민의 안전을 고려하여 연안 해안에서 방사능을 측정했지만 문제가 없었으니 이제 측정 빈도를 줄여갈 필요가 있다. 이 예산으로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비과학으로 봐야할 후쿠시마
후쿠시마의 방류 영향은 과학적으로 분석된다고 하여도 방류 프로세스가 정확히 지켜지도록 여전히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 우리는 실수를 할 수 있고 이를 은닉하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조심하여 운전을 하지만 사고가 나기도 한다. 요즘은 대부분 조직이 안전문화를 도입한다. 모든 활동에 안전 우선 원칙이다. 체르노빌 사고 교훈으로 안전문화가 나왔으니 원자력은 각별하게 취급한다. 안전에 대해서는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일본도 실패를 은폐하고픈 유혹이 있다. 우리는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일본의 규제와 안전문화는 강화되었다. 후쿠시마 방류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건사고들이 거의 언론에 공개된다.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작업을 멈춘다. 폐쇄된 원전에 더 이상 미련이 없으니 숨기지 않고 발표한다고 평가절하할 수 있지만 변화된 원전 안전문화의 비장함은 학술대회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인접국에 안전문화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지만 인간의 맘은 잘 모른다. 여전히 관심을 지니고 후쿠시마 방류 과정을 국제적으로 지켜봐야 한다. 거기에 과학적 인식이 가미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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