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나올까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정신도, 육체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미래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창발능력이 그 원천이 아닐까

영화 '아일랜드'의 한 장면.
영화 '아일랜드'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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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의 토대는 이성과 양심?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존엄성을 지닌다. 우리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지니므로 존엄하다’고 말한다. 인간의 많은 속성 중에서 이성과 양심을 지목한 이유는 임마뉴엘 칸트가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언 명령에 따른 듯하다. 그렇지만 칸트도 하인을 거느리고 인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칸트 이전으로 올라가면 주인과 노예, 문명인과 야만인의 구분이 인간 의식을 지배해왔음을 알 수 있다.

칸트 시대에는 인간의 이성이 부각되던 시절이었다. 인간은 사색을 통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다. 중세에서 내려오던 지식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자각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대의 사람들은 동물을 움직이는 기계 정도로 생각했지만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는 신뢰를 보냈다. 인간의 정신도 물질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던 일부 의사들이 있긴 했지만, 이성을 존중하는 인간의 인식을 바꾸지는 못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정신은 인간만의 고유 속성이라고 믿었고 인권 선언에 녹였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계에게도 정신은 생겨났으니

그런데 인공지능(AI)이 나타나자 정신은 인간만의 속성이 아님이 밝혀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문제 해결능력도 갖추고 있다. 그림을 그릴 수가 있고 현 상황을 더욱 더 잘 판단하기도 한다. 아직은 문자 위주로 상황을 판단하지만 조만간 소리, 시각, 동영상, 표정 등을 통해서도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공 지능의 기억 능력, 추론 능력이 인간을 뛰어넘을 시간도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으니 아직 인간보다 열등하다고 우길 수 있으나, 인공지능에 감정을 구현하는 기술은 사실 엄청 쉽다. 가령 인공지능이 찾는 정보가 없거나 자신의 대답에 사람의 반응이 부정적이면 얼굴을 찡그리고 욕을 내뱉도록 프로그램하면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감정은 별도의 고귀한 인간 속성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표현하는 태도에 불과할 뿐이다. 감정은 이성보다 본능이 작용하는 저(低)차원의 반응이다. 인권선언에서 언급한 양심은 감정의 또 다른 형식이라는 주장할 수 있겠지만, 양심은 타인을 배려하는 이성의 작용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인공지능에 양심의 기능도 프로그램할 수 있다.

이제 기대할 것은 ‘신체’

이제 정신이 인간 존엄성의 토대가 아니니 어디에서 토대를 찾아야 할까? 남은 부분은 인간의 신체이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신체를 정신보다 열등하게 여겨왔으니, 신체로 토대를 전향하려니 거북하기는 하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모습을 따라 창조했다고 했으니 성경을 따라 울며겨자먹기로 따라갈 수는 있다. 내키지는 않지만 문명사의 진보를 냉정히 판단하면 지금에 기댈 토대는 신체밖에 없다.

현재의 과학기술은 인조인간을 만들 수준까지는 오지 않았다. 그러니 당분간 신체에 의거하여 인간 존엄성을 설명할 수 있겠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 대신 ‘신체를 지니고 있으니 존엄하다’는 식으로 인권선언을 고칠 필요도 있겠다. 문제는 이 선언문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는 데 있다. ‘인조’ 정신이 갑자기 나타났듯이, ‘인조’ 인간이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다. 이제부턴 과학적 상상력이다.

존엄성의 토대가 되기 어려운 ‘물체’

인공지능의 정신은 대용량의 메모리에서 나온다. 수억 개의 메모리를 연결하면 정신이 발현되는데, 메모리를 쌓기 위한 기술이 요즘의 첨단 디지털 기술이다. 대표적인 기술이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이다. 메모리 셀 사이에 빠른 통신을 위해 넓고 짧은 도로를 깐 제품이다. 단독주택의 마을 회의보다 아파트 통장 회의가 모이기 쉽듯이 HBM 메모리도 아파트처럼 구획하였다. 엘리베이터는 복도뿐만 아니라 위아래층 거실 간에도 설치됐다. 뭐를 전달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갈 필요도 없다.

수직 이동 통로가 많은 아파트를 건축하려면, 철근을 넣고 시멘트를 부으면서 한 층씩 쌓으면 된다. 그런데 아파트와는 다르게 HBM은 매우 좁은 통로를 건축해야 한다. HBM의 통로는 약 4나노미터(㎚)이다. 이 정도이면 실리콘(Si)이나 구리(Cu) 원자가 20개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거시세계에 익숙한 우리는 잘 모르겠지만 원자의 개수가 작아지면 거시세계에서 일어나지 않는 신기한 현상들이 일어난다. 이를 ‘양자 효과’라고 하는데 가령 댐 높이보다 낮은 물이 댐 너머 흐를 수 있다. 댐에서 물의 누수처럼 메모리에서 정보의 누수와 같은 부작용이다. 나노 메모리는 현재 전자 기술의 한계다.

인공세포의 개념도. 사진=Pixabay
인공세포의 개념도. 사진=Pixabay

HBM이 아니라 인공세포를 만든다면

HBM이 정신을 창발시키지만, HBM 자체는 인조인간이 될 수 없다. HBM은 전력으로 작동하는데 반해 인간의 신체는 먹는 음식으로 작동한다. 음식으로 작동하는 인조인간을 만들려면 HBM이 아니라 인공세포로 만들어야 한다. 2010년경에 미국의 벤터 박사라는 사람은 가장 원시적인 인공세포를 만들었고 이후에도 꾸준한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 초기 단계이다.

세포의 구조는 세포질에 핵이 떠 있고 세포막으로 외부환경과 구분된다. 세포는 광학 현미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데, 세포 안에 들어 있는 소기관들도 상당히 크다. HBM의 나노미터 통로에 비하면 세포의 소기관은 1000배 정도 크다. HBM은 반복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어 제작할 수 있지만 세포는 무정형질이라 제조가 엄청나게 어렵다. HBM에는 전자만 이동하는데 반해 세포 안에서는 전자와 분자들이 이동하면서 한층 복잡한 현상을 일으킨다. 솔직히 세포를 합성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HBM이나 세포의 작동 원리를 보면 화학 현상에 불과할 정도로 단순하다.

탁란으로 인공세포 합성

과학 논리로 인간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이 남녀의 짝짓기이다. 과학을 몰라도 사랑으로 자녀를 얻을 수 있다. 이보다 더 노력이 드는 방식은 시험관 아기이다. 엄마의 자궁에서 수정시키기보다는 시험관에서 수정시켜 아기를 얻는다. 조금 더 기술적으로 어려운 방식으로 엄마의 자궁 대신 인공자궁을 빌릴 수도 있다. 이 모든 방식을 살펴보면 부모는 아기를 맨땅에서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부가 개척한 능력은 아니며, 진화 덕분에 우리는 아기를 얻는 능력을 상속받았을 뿐이다.

뻐꾸기는 자신이 알을 품지 않고 남의 둥지에서 알을 낳아 새끼를 얻는다. 인공세포의 생성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뻐꾸기의 탁란처럼 기존 둥지에 특정 소기관만 바꾸어 세포를 얻는 방법이다. 황우석 교수가 적용했던 것처럼 젓가락으로 체세포의 DNA를 바꾸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세포의 생성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여 접근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부분만 바꾸어 전체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세포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인공 세포에만 적용되는 기술은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2등을 추구하는 기업이 타 회사 상품에 일부 기능만 바꾸어 새로운 자사 제품을 얻을 때도 쓴다.

인공세포에서 탁란기술은 DNA를 조작하는 기법을 주로 사용한다. 아시다시피 DNA는 세포의 기능이 들어있는 설계도이다. 설계도가 발현되면 세포는 자기 고유의 기능을 담당한다. 실제로 국내 과학자도 DNA를 조작하여 세포에 광합성 기능을 넣기도 했다. 요즘 보편화된 유전자 변형 생물도 이 기술에 속한다. DNA가 발현되어 생성되는 단백질이 수백 종이 넘으니 일일이 단백질을 합성하기보다는 설계도인 DNA를 통해 모든 단백질을 만드는 편이 유리하다. 인공세포의 기술이 더 발달하더라도 DNA를 통한 단백질 제조 기술은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맨땅에서 인공세포 합성

탁란의 방법이 아니라 맨땅에서 인공세포를 만들려는 합성생물학이 과학자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DNA가 생명의 설계도이지만 설계도만 있다고 모든 생물을 만들 수는 없다. 1만 년 전에 멸종된 매머드의 사체에서 DNA를 뽑아도 바로 매머드 탄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DNA가 발현되기 위해서 주변 여건이 모두 갖춰져야하기 때문이다. 이 여건을 현재 과학도 모두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과학자들은 어렵지만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고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과학자들이 부딪치는 첫 번째 난관은 세포 안에 있는 소기관들이다. 핵,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골지체 등인데 이런 소기관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다양한 물질들이 합성된다. 한 울타리 안의 공장이 여러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각 건물이 벽과 지붕과 출입구를 지니고 있듯이 각 소기관은 막을 지니고 있다. 이 막을 통해 세포질과 다른 반응 환경을 유지하고 이 벽을 통해 만든 물질과 쓰레기를 배출한다. 소기관의 막은 기름성분으로 층을 이루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과학자들은 기름 성분 외에 합성된 고분자를 통해 비슷한 막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인공세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들을 모아 고등동물을 탄생시키기까지는 아직도 더 노력이 필요하다. 신진대사를 하고 번식을 하는 기능도 넣어야 한다. 부분적으로 구조와 원리가 규명되고 있지만 전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합성 생물학의 파괴력을 알기 때문에 12대 국가 전략과제로 선정하여 연구개발 투자를 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인조인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백신을 개발하고 유전자 질환을 치료하는 등의 유익한 결과물을 내어 놓을 수 있다.

창발능력과 인간의 존엄성

다시 초기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정신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육체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미래에,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있는가? 출생과정에 상관없이 공장 제품처럼 품질보증 승인을 받은 자만에게만 존엄성을 부여해야 할까?

다윈이 진화론을 제시한 후에 사람들은 더 이상 본질을 묻지 않았다. 본질보다 실존이라는 철학 사상이 한동안 풍미했다. 인공지능과 인공세포는 다윈보다 급격하게 본질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 다시 실존 철학이 풍미할 것인가?

사르트르는 자유로운 선택의 삶을 실존이라고 보았지만 미래에 다가올 실존은 다를 것이다. 인간은 인공세포나 자연세포에 기반하지만 창발적인 존재이다. 물질적 토대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나오기보다는, 창발 능력에서 존엄성이 나타날 것으로 믿는다.

글쓴이

정연섭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

'크로의 과학사냥' 저자인 정연섭은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최근 한국원자력학회 사무총장을 새로 맡았다. 서울대 화학 석사 후에 LG화학연구소, 한국전력연구원을 거쳤다. 50여 편 발표 논문, 10여 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원전 설계 및 수출로 한국원자력학회 기술상, 산자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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