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예산 삭감, ‘문송’들에게 휘둘리는 과학
[정연섭의 과학과 철학] R&D예산 조정되더라도 이번 갈등을 없었던 일로 넘어가긴 힘들 것이다. 과학계에 스며든 부정적 유교문화, 과학문화 훼손한 면도 살펴봐야
연구예산 삭감과 교훈
2024년도 과학분야 연구예산이 삭감되어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연구자들이 불만을 표출하자 정부에서도 의견을 청취하고는 있다. 대부분 과학기술자는 과제를 이어갈 수 없는 낭떠러지 처지라 국회 심의에 목을 매고 있다. 조급한 일부 대학교수들은 학위과정 학생의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참여기업의 책임자는 연구비 분할 상환조건으로 구매한 기자재와 연구비 지원 조건으로 채용했던 연구원을 어떻게 유지할 지 울상이다. 복합 요소들이 작용하는 만큼 필자도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단순하게는 연구예산이 복원되면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설령 예산이 일부분 조정되더라도 이번 갈등은 없었던 일로 그냥 넘어가긴 힘들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계로 스며들고 있는 ‘한국적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은 객관적이라는 인식이 있고 과학기술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 덕에 국민은 과학기술에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연구 예산은 꾸준히 증가했고 과학기술 예산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았다. 과학기술계도 첨단 기술을 개발해 경제성장에 응답했다.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가성비는 높았으나, 최근 들어 과학기술의 성과가 주춤하고 있다.
과학문화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은 윤리에는 관심이 없고, 사실에만 집중한다. 과학자들은 원하는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실험을 설계한다. 미지의 세계에 흥미를 느끼니 머릿속에서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차 있다. 항상 아이디어를 실현하려 땀을 흘리고, 실패하면 다시 실험 조건을 변경한다. 예측이 맞아 실험 성과가 나오면 논문을 발표하고 동료의 심사를 받아 자신의 업적을 쌓아간다. 논문으로 기록이 남으니 객관적이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동료 심사는 익명으로 진행되므로 예의나 친분관계가 작용할 수 없다.
과학활동은 이처럼 객관적인 과학문화를 형성했다. 한국 지식인들이 새로운 학문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났고, 이렇게 과학문화를 익히고 돌아와 전파했다. 한국이 근대화되고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된 이유 중의 하나도 ‘객관적 과학문화’였다.
그런데 유교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사회는 과학기술계에서도 예의가 중요하다. 예의는 개인 간의 관계 속에서는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만, 공적 사회에서는 부작용도 있다. 유학자들이 예를 숭상하고 수양에 힘썼지만, 끼리끼리 문화도 자리하게 됐다. 인간관계는 상대적이라 객관성을 찾기도 어렵다.
과학문화의 훼손
두 번의 세계대전과 최근의 지구온난화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과학을 제멋대로 날뛰게 둘 수 없다는 반성이 일어난 것이다. 사람들은 과학자가 제시하는 목표에 간여하기 시작했다. 우주와 미지 세계의 탐구 외에도 생활 밀착형 과제를 요청했다. 인문학자, 사회학자, 환경론자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학을 알지 못한다는 ‘수알못’들,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문송’들도 과학기술에 기웃거리고, 부유함을 쫓는 의사들도 의공학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융합을 통해 올바른 과제 목표가 세워진다는 희망을 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 갈등을 풀지 못하는 사회학자나 인문학 위기를 초래했던 인문학자들이 이제는 과학마저 죽이지 않을까 두렵다.
과학문화 훼손에 과학자도 자유롭지 못하다. 유학으로 과학문화를 체험했지만, 일부는 고국으로 복귀하면 과학문화를 잊는다. 힘들게 학위를 얻었으니 편하게 살겠다는 인간의 심리를 이해한다치더라도, 한국적 유교문화가 과학문화 훼손을 증폭시키고 있다. 교수는 자식을 논문의 저자로 올리기 시작하고, 긴 시간 큰돈으로 다른 이들의 접근을 가로막아 직위를 세습한다.
우군이 필요한 정권은 이념에 따라 과학 권력을 부여한다. 자연현상에도 진리가 없다고 말하며 객관성조차 부정한다. 유사한 사람들끼리 모임을 하고 공개를 꺼린다. 정치에 빌붙은 기관장은 일반 과학자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 창의성은 뒤로 밀리고 선진국 수준의 90%에 만족한다. 과학기술은 저널에 발표된 논문만 읽어도 99%에는 접근한다. 남은 1%는 과제 기간의 노력이고 연구과제는 105%를 추구해야 한다. 연구하고도 5% 부족한 연구는 연구책임자 자질이 없는 사람의 성과다.
올해에도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국민도 기대를 접었다. 초기에는 과학자들이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변명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당당해진다. 노벨상이 물리, 화학, 생리의학에 집중되어 있으니 노벨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우주, 통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니 이를 반영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노벨상을 하나도 받지 못한 한국 과학자들이 노벨상 기준 운운하는 태도야말로 한국 과학계가 세계적 과학문화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월드컵 16강에 들지 못하니 동네 축구로 만족하겠다는 태도와 다름이 없다. 월드컵 16강에 들기 위해 노력하고 노벨상을 받기 위해 혁신해야지, 동네 리그를 만들어 자기만족에 머물겠다고 할 수는 없다.
과학자의 소명
필자가 과학자를 비판하지만 이들을 ‘연구 카르텔’이라고까지 부를 수는 없다. 연구책임자들은 그 정도로 해 먹을 위치에 있지도 못하다. 카르텔은 카르텔을 혁파했거나, 카르텔을 일삼았던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정책 결정권자의 어휘이니,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 이관섭 정무수석은 약 10년 전에 정부 과제를 중단시킨 적이 있다. 필자는 해당 과제의 제안 과정에서 의견을 냈지만 과제비가 커지자 현실적이고 소심했던 필자는 과제 참여를 포기했다. 이 과제는 인적 실수를 줄이는 게 목적이었는데 다수 인문학 전문가가 참여했다. 과제는 성사되었지만, 과제관리 기관장이 바뀌자 해당 과제는 바로 중단되었다. 이번 연구예산 삭감도 훼손된 과학문화와 정책 결정권자의 과신 탓이라고 필자는 단정한다.
필자의 추정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연구예산 삭감에 일류 과학자들이 침묵하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국가과학기술자문회 위원들의 역할이 아쉽다. 그 자리는 국가가 성장하도록 과학의 투자 방향을 살펴보고 역할에 알맞게 소리를 내어야 하는 자리이다. 발전을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과학문화가 훼손되면 과학자들에게 먼저 쓴소리해야 하는 자리이다. 연구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해 과학문화가 훼손된다면 스스로 연구예산을 축소하여 내실있게 할 필요도 있었다. 정권 바뀌면 사라질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과학기술정책을 내린 결정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연구예산 삭감으로 된서리를 맞기 전에 과학자들도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사회 문화에 영향을 받는 과학 문화가 아니라, 과학 문화가 사회 문화를 바꾸어가면서 창의성과 도전성을 추구해야 한다. 예산조정만큼이나 과학문화를 새롭게 하는 도약의 계기가 되었으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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