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사건에 연루된 외삼촌, 고뇌하는 정조
[죄인 심문기록으로 본 조선후기] 신하들이 정조에 ‘외삼촌 추국’ 압박 대비, 정조에 “외삼촌을 살리라” 압박 ‘공적 윤리’와 ‘사적 이익’에 고심한 정조 정조는 어떤 선택으로 국가를 지켰나
영화 ‘역린’은 조선 정조 즉위 1년 여름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 낯선 자객들의 발소리와 함께,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정조의 묵직한 말로 시작한다.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재위 1776-1800년)는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죽음을 목도한 채,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전히 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선왕에 의해 죽음에 이른 자의 아들이 과연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은 당시에도 크게 논란이 되었다. 영화 ‘역린’은 바로 그 점을 문제 삼고 있는 정조의 외척인 홍씨 집안에서 일으킨, 정조 즉위 1년 반역사건의 일부를 허구적 요소를 가미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반역을 시도한 왕의 외삼촌
오늘 살펴볼 사건은 정조 즉위 1년의 반역 사건 가운데 하나다. 정조를 폐위하고 대신 정조의 막내동생인 은전군(恩全君, 1759-1778)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반역의 시도에 연루된 정조의 외삼촌, 홍낙임(洪樂任,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의 아들, 1741-1801)에 관한 것이다. 은전군을 추대하려던 자들이 붙잡히면서, 그들은 홍낙임과 연대하려 했다고 자백하였다. 더불어, 정조가 세손 시절이던 때에 그의 측근 신하를 공격해 역적으로 몰린 심상운(沈翔雲, 1732-1776)과 홍낙임이 결탁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실록에 따르면, 정조 즉위 초기부터 이미 홍낙임을 처벌해야 한다는 상소문이 여러 차례 올라온 바 있다.
홍낙임 사건이 흥미로운 것은 추국 기록의 첫 부분부터다. 다른 추국 기록들은 대체로 죄인을 대령해서 추국하라는 왕의 명령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홍낙임 추국기록은 왕명이 아니라, 정조 2년(1778년) 2월 20일 여러 대신들이 홍낙임을 추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전하께서는 혹시 외척과 친척이라는 이유로 (홍낙임을) 차마 처형하지 못하시는 것입니까? ... 주(周)나라 성왕(成王)은 관숙(管叔)에 대하여 자기 아버지의 동생이라고 해서 용서해 주지는 않았는데, 전하께서는 그(홍낙임)에 대해 어찌 임금의 척신(戚臣)이라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종묘 사직의 역적을 용서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리하여 기어이 왕의 표본을 망가뜨리는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입니까?”
신하들은 죄인이 왕의 친족일 경우, 왕이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려 죄인을 살려주고 싶어하는 마음과, 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죄인을 엄벌해야 하는 마음 두 가지를 왕이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적인 감정에 휘둘려서 왕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죄인은 단순히 왕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자가 아니라, 조선의 종묘와 사직을 보존하는 데에 위협이 될 인물이기 때문이다. 왕의 표본을 세우기 위해, 백성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공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라는 요청이다.

직접 외삼촌 추국에 나선 정조
그런데 정조는 이 문제를 전혀 다르게 제기한다.
“비록 ‘역적들의 진술에 그 이름이 여러 차례 나왔다’고 하더라도 아직껏 단 한 번도 그(홍낙임)에게 물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여부를 알겠느냐? 이 때문에 여태까지 모든 역적들을 이미 모두 내가 직접 심문했고, 또한 결안(結案)을 받은 다음에 법률을 적용하던 입장도 곧 한 사람이라도 원통한 생각이 들게 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국법에 따른 처벌 대상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만일 분별하려고 했다면 어찌 사소한 일에 얽매여 차마 하지 못했겠느냐? 이미 대비(大妃)께도 여쭌 사안이니, 의금부에 명령하여 홍낙임을 즉시 붙잡아 오도록 하라.“
정조는 신하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홍낙임을 추국에 세우지만, 홍낙임을 벌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홍낙임이 정말 그러한 반역모의에 연루된 것이 맞는지, 그 고변이 진실한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 추국에 세우겠다고 한다. 홍낙임이 외삼촌이라서 이러한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본인은 계속해서 그 누구도 원통함이 들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 홍낙임을 추국하는 과정에서도, 정조는 자신이 죄인에게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오히려 왕의 외척으로서 홍낙임이 져야 할 책무를 강조한다.
“너는 왕실의 외척으로 집안 대대로 받은 은덕이 또한 이미 망극하기 그지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심보로 흉악한 숙부와 한통속이 되어 요망하고 흉악한 심상운을 부추기는 짓을 하다가, 추국 진술에서까지 거론되게 되었느냐? 네가 지은 죄는 여러 다른 사람들의 죄에 비해 더더욱 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정조에게 홍낙임은 외척이기 때문에 왕이 은정을 베풀어 용서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행동에 있어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야 하는 대상이다. 따라서 다른 반역자들의 진술에서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정조는 계속해서 추국을 통해 홍낙임에게 억울함이 없도록 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아! 홍낙임에 관한 일이 비록 역적의 진술에서 여러 차례 나왔다고는 했지만, 그 근본을 따져 보건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며 옳은 듯도 하고 그른 듯도 했었다. 만일 단 한 차례도 직접 심문하지 않는다면, 비록 지은 죄가 있더라도 어떻게 법대로 처리하겠느냐?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또한 어찌 억울하지 않겠느냐?”

외삼촌을 무죄로 석방하는 정조
조선시대 추국과정에서는 한차례 심문을 할 때 신장(訊杖) 30대를 때려가며 죄인에게 죄를 묻는 형문(刑問)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추국을 받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형벌이었다. 추국과정에서 가혹한 형문을 받다가 생기는 극심한 상처로 고생하기도 하고,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추국의 결과, 대부분 사형 혹은 유배형과 같은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정조는 홍낙임에 관한 추국과정을 통해서, 죄인에게 공정한 변론의 기회를 주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정조는 홍낙임이 심문과정에서 진술한 내용이 매우 그럴듯하기에 무죄임이 증명되었다고 말하였다. 홍낙임의 말이 구구절절 조리가 있고, 증인을 내세우겠다고 한 말이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황상 왕의 외척이라는 신분을 고려해 보면 홍낙임이 절대 그런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한다. 행적이 설사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홍낙임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는 사람임을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정조는 추국을 통해서 홍낙임이 혐의를 벗게 되고 무죄임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홍낙임을 석방한다고 한다. 아울러, 석방의 의미가 홍낙임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제 자신이 대비나 다른 외척들에게 뵐 면목이 생겼다고도 말한다.
‘공적 윤리’도 지키고 ‘사심’도 지킨 정조
홍낙임 사건에서 과연 국가는 어떻게 상상되고 있는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왕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폭압적인 힘을 과시하거나, 자의적인 권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신하들이 보기에, 최고의 정치행위자인 왕도 결코 자신의 사적인 감정대로 행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할 수 없다. 왕도 사람이기에 본인의 친족이 연루된 사건이라면, 용서해주고자 하는 사적인 마음을 따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왕의 표본을 무너뜨리고, 백성의 마음을 들끓게 하는 행위라고 선언하고 있다. 신하들이 생각하는 ‘국가’는 정치행위자의 사적 감정이 아니라, 공적 윤리에 따라 운영되어야 하는 공공의 영역이었다.
정조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조선이라는 정치공동체에서 최고권력의 담지자이므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바가 곧 공적인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추국이라는 공적인 절차를 통해서, 신하들이 제기하는 이해충돌의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즉, 친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사적인 이해관계와 역적을 처벌하여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공적인 이해관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정조는 추국과정에서 외척의 지위를 재규정하고, 추국의 의미를 재규정하였다. 결과적으로, 홍낙임을 추국에 세우라는 신하들의 요구를 들어줌과 동시에 홍낙임을 무죄로 방면시켜 줄 수 있는 목적을 추국을 통해서 동시에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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