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룰까?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유전자보다 문화·환경의 진화가 더 급속 때문에 유전자의 다양성이 지속가능성 높여 의료 사태, 전체주의적 통제로 해결할 수 없어 의료환경 변화에 ‘점진적 대응’이 바람직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3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텅빈 공간을 몇몇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3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텅빈 공간을 몇몇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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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도, 문화 시스템도 끊임없이 변한다

찰스 다윈(1809 ~1882)의 『종의 기원』(1859)은 학계 및 사회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주제인 생물의 진화는 다윈의 독창성 보다는 19세기 중엽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알프레드 월리스(1823~1913)는 다윈과 같은 시기에 비슷한 진화론을 주장했다. 다른 학자들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1820~1903)는 ‘사회진화론’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진화론을 사회문화적 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본격적인 움직임은 에드워드 윌슨(1929~2021)에 의해 1975년에 ‘사회생물학’으로 제안됐다. 사회생물학은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는 학문인데, 사람에게 적용되면 인류의 사회적 행동이나 제도를 진화론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진화론은 생물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문화적 현상의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진화의 와중에 갈등이 발생한다: 진화적 지체

더 나아가 오늘의 진화론은 유전자 진화와 문화의 진화간 상호작용에 주목한다(공진화, coevolution). 문화는 유전자가 진화하는 환경이 되고, 유전자는 문화적 진화를 제한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두가지는 상호작용하면서 변하는데, 유전자 진화 보다는 문화의 진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전자는 문화와 비교하여 ‘진화적 지체(遲滯)’ 상태에 있다. 문화적 변화가 유발한 급격한 환경 변화는 유전자 진화에 ‘선택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때 ‘지속가능성’이 문제될 수 있다. 현대의 환경은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비만, 당뇨병, 대사증후군 등 영양 과잉 및 운동 부족과 관계된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다. 이 과정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우리 신체는 구석기시대 이후 특별히 진화하지 않았다. 구석기시대 인류는 살기 위해서 하루 10㎞씩 걸어야 했고, 그럼에도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다.

2) 그 결과 단위 용량당 열량이 높은 식품(지방)을 선호하게 되었고, 간혹 열량을 과잉 섭취하는 기회가 있으면 잉여를 체내 지방조직에 저장하도록 진화됐다. 매일 10 ㎞씩 걷기 위해서는 여가시간에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유리했다.

3) 현대 문명사회는 고열량 음식이 풍부해지고 생존을 위한 육체노동의 양도 줄었지만, 우리 몸(유전자)은 여전히 구석기시대에 맞게 세팅되어 있다.

4) 그래서 고열량 식품을 여전히 좋아하고, 뱃속에 지방을 저장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그 결과 생긴 에너지 과잉은 비만과 당뇨병 등의 병을 일으킨다.

현대인의 몸은 현대의 환경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천년의 시간이 지나면 유전자 진화가 일어나 인류의 형질은 소식하고 활동적으로 바뀌겠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에 우리 환경이 또 다르게 바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꾸준한 운동이 권장되고, ‘구석기 식단(paleolithic diet)’이 건강식으로 떠오른다. 몸이 지속가능해 지려면 환경을 옛날에 가깝게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도 갈등을 일으킨다

진화적 지체는 사회문화적 수준 안에서도 나타난다.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적인 틀은 오늘날의 빠른 문화적 변화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세대간 생활방식이 매 세대 달라지지 않았다. 튼튼한 가족제도 아래서 구성원의 역할은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대물림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가 어떤 식으로 양육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맞춰서 우리 문화의 전통적 가치관은 한 세대 내에서 뚜렷하게 변하지 않고 잘 전수될 수 있었다. 변화는 몇 세대의 터울을 두고 봐야 비로소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문화적 환경이 변하는 속도를 사회적 제도와 가치관이 쫓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큰 갈등 없이 삶의 방식이 지속가능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적 환경은 매우 빠른 속도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한 세대는 부모-자식간의 나이 차이인 30년이었고 그나마 전통사회에서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간의 체험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요사이 MZ세대, X 세대 하면서 거의 10년 단위로 특정 연령대가 경험하는 것이 다르다는 주장이 있다(물론 이런 주장들 자체가 과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흥미위주일 수도 있다). 그 결과 세대를 이어가려는 문화적 전통 또는 평형상태에 있었던 시스템과 현대사회의 빠른 변화 사이에 불균형이 생긴다. 이 진화적 지체는 ‘가치관의 공백(아노미)’, ‘불안정한 미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등으로 나타난다.

과거와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문화적 가치나 연속적 제도는 없어졌다. 한 세대에서 당연했던 문화적 아이템은 10년 뒤 같은 연령대의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된다. 새로 태어나는 세대는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난다. 부모가 가졌던 직업은 자녀들이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시대에는 아예 없어지거나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생산성 낮은 일이 되거나 한다.

지구의 생물은 어떻게 생존을 이어왔을까. 돌연변이에 의해 다양한 종이 출현할수록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연합뉴스
지구의 생물은 어떻게 생존을 이어왔을까. 돌연변이에 의해 다양한 종이 출현할수록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연합뉴스

‘지속가능성’은 더이상 당연하지 않다

필자의 세대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의 수련을 받고, 일부는 수련병원 교수가 되어 후진을 양성하고, 다수는 지역의 의료기관이나 개원가에서 일하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나이든 의사가 은퇴하는 만큼 같은 전문성을 가진 젊은 의사가 충원되고… 하는 시스템이 너무 당연했고 이것이 세대를 지나 계속 유지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필자의 후배들이 겪는 것을 보면 이런 시스템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 양성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필자의 세대에는 심장수술 하는 의사가 되려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들은 힘겨운 전공의 생활을 마쳐 전문의가 되고 3차병원에 근무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심장 수술 시스템이 동작하는 것은 전문의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흉부외과 수련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수련받은 의사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수련 받은 뒤 심장 수술을 할 일자리가 별로 없다. 흉부외과 의사 10명중 8명이 전공과 관계없는 진료를 하고 있다. 심장 수술 시스템이 지속되려면 수련받는 젊은 의사들은 계속 필요하지만 이제는 지원자가 없다. 열심히 배워 봐야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심장 수술 인력의 수급 파이프라인은 한 세대 만에 고장나 버렸다. 아무런 전문성이 없는 정부는 이 문제를 의사 수 부족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급격하게 의사 양성 시스템 전체를 파괴해 버리려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해당 전문가들 내부에서조차 문제의 소재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정치세력이 포퓰리즘을 앞세워 권력을 휘두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주택 등 물적 자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현 상태로 유지되고 있던 수요공급 균형이 앞으로도 지속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로 자본이 축적되고 축적된 자본으로 재투자돼 부동산 시장은 끊임없이 확장되리라 예상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주택 공급이 늘어도 값이 오르고 공급이 줄어도 값이 오르는 신기한 세상은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이 정상적 방법으로 주택을 구입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이미 부동산 시장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단계에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단선적 증가, 무한정 성장은 원리적으로 지속하지 않다. 우리가 가진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파괴적 방법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해당 전문가와 비전문성 정부가 다양한 해결책들을 제시하지만, 문제는 환경 변화의 방향이나 진화의 방향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진화론은 ‘새 날개의 진화’에 대해 정교하고 합리적인 가설을 제시하지만 예측이 아닌 사후 설명에 불과하다. ‘왜 다른 방식이 아닌 조류들의 날개라는 방식으로 진화해야만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조차도 쉽지만은 않다.

이미 발생한 문제에 대해 이러이러한 환경변화가 이런 문제를 일으켰으리라 추론은 할 수 있지만, ‘그러므로 저러저러한 환경으로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라는 주장은 근거를 갖기 힘들다. 매년 어떤 종류의 여성 의류가 계절 따라 유행하지만, 불과 수개월 뒤에 어떤 종류의 옷이 유행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럴듯한 사후 설명만이 가능할 뿐이다. 미래를 디자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나비효과’로 유명한 ‘혼돈이론’(Chaos Theory)은 세상이 무작위적으로 움직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해진 인과성을 따르더라도, 한 순간과 다음 순간 사이의 관계가 비선형적이기 때문에 장기적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간의 인과관계는 비선형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외국의 예’를 벤치마킹하고 OECD 평균이라는 수치적 계수에 끼워맞춰지도록 졸지에 제도를 바꾸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겉보기에는 같아 보이는 문제더라도 사회가 처한 환경에 따라 문제의 본질이 실제로는 서로 다르다. 분명한 것은 급격한 변화는 새로운 적응보다는 시스템 파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급격한 환경변화는 공룡을 멸종시켰다.

다양성의 존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자연은 환경 변화라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왔기에 생물 종들이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을까? 누군가가 환경 변화를 연구해서 그에 대한 멋있는 해결책을 설계하고 유전자를 조작했기 때문에 환경에 적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해답은 다양성에 있다. 진화의 기초가 되는 돌연변이는 무작위적인 것으로, 다양한 쪽으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 변화된 환경과 맞는 것들이 살아남아서 종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중생대의 급격한 환경 변화는 거대 파충류 공룡을 멸종시켰지만,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다양성이 있었기 때문에 생물학적 성능이 좋은 포유류가 번성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답은 누군가 잘 계획한 한가지 제도를 강력하게 추진하는데 있지 않다. 다양한 가능성들이 상황에 따라 나타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집권의 강력한 통제력으로 현실을 일거에 타개한다고 주장하면서 검증된 바 없는 정책을 밀고나가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

생물계에서는 유전적 다양성 소실과 획일성은 멸종의 조건이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견딜 수 있는 개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진화의 무대에서 다양성 소실은 독재자의 등장을 가져온다. 정치건 경제건 문화건 독재자의 등장은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히틀러가 집권한 배경에는 당시 독일 사회에 인종주의, 즉 인종적 ‘다양성 말살이 선’이라는 포퓰리즘 밈이 퍼져있던 상황이 있었다. 이를 이용해서 나치가 집권했고, 그 다양성 말살은 끔찍한 학살로 이어졌다.

의료에서도 환경의 변화는 끊임없이 있어왔고 그에 따른 문제도 항상 있어왔다. 지금 의료 시스템의 일부가 문제 있다면, 소아과와 흉부외과와 응급의학과가 각각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야 하는 것이지, 비전문가의 전체주의 통제로 한꺼번에 의사 공급을 70% 늘림으로써 해결되지는 않는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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